유월, 그리움의 영상影像
유월을 맞이하면 유독 느끼는 내 나름의 그리운 정경들이 있다. 계절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포말 같은 회포들이야 언제나 나의 뇌리를 그윽하게 어루만지지만, 유월이 내뿜는 청신한 공기는 깊은 삼림에서 풍겨 나오는 수향樹香과 같은 은근한 정취를 맛볼 수 있어 내게 풋풋한 기쁨을 준다. 그래서 유월이 오면 가까운 동산에라도 오르면서 자욱한 녹음아래 펼쳐진 산허리를 쓸어보고는 울컥 치미는 애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것은 가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옛일이라 할지라도, 내게 아련한 향수 비슷한 목 메임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내 내면에 서린 한 가녀림의 연원淵源이랄 수 있다.
유월이라서 그럴까. 산록에 홀로 서서 저 멀리 울창한 나뭇잎들을 회색으로 뒤집으며 다가오는 한 무더기 산바람을 보고 있노라면, 61년 전 한국전쟁 동부전선 어느 이름모를 산곡에서 붉은 피를 뿜으며 최후를 맞이했을 스물한 살 남한 병사의 일그러진 동공에 서렸을 금강 어느 지류의 하얀 백사장이 떠오른다. 또한 작약 꽃처럼 작열하는 포탄 속에서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을 북한 소년병의 젖은 눈에 비친 황해도 사리원 도화마을, 복숭아나무 밑에서 호미를 놓고 망연자실 남녘하늘을 바라보았을 병사 어머니의 수심어린 얼굴도 아련하고 가느다란 설움으로 가슴을 저며 온다.
유월은 주마등처럼 흘러간 그리운 얼굴들을 회억하기 좋은 달이다. 깊은 밤에 시원한 밤바람이 창문을 노크하는 날이라면, 조용히 창을 열어놓고 어둠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밀과 벗해 볼 일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옛일을 추스르면서 추억의 말편자를 걷어차며 스쳐왔던 주마등을 거슬러 달리다보면, 놀랍게도 섭섭하게 멀어져 갔던 천변川邊의 수양버들이나 주막집 등불이 다시 다가오고 회귀하는 연어의 눈망울에 서린 열망처럼 이마에 기쁨의 여울이 흘러내린다.
이를테면 삼십여 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간 관후한 미소를 지녔던 친구의 얼굴이 두둥실 떠오르고, 붉은 장미 흐드러진 담장이 곡선으로 꺾인 골목길에서 차마 건네지 못하고 찢어버린 청춘시절의 러브레터도 수줍게 펄럭인다. 그런가하면 소금강 깊은 계곡 벽계수에 발을 담그고 초하의 동천洞天을 함께 아우르던 어느 다정한 시인의 단아한 향기도 코끝에 스며든다. 이럴 땐 책상 한 귀퉁이에서 얇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오래된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 넣고 싶은 갈증을 느낀다.
내게 유월은 자동차 키가 못마땅한 시절이다. 아직도 따뜻하게 다가오지 않는 자본주의의 콧방귀 소리, 부르릉 시동소리를 잊고 싶은 달이다. 그래서 유월은 승용차를 외딴 곳에 유배 보내고 열쇠고리에서 자동차 키를 떼어내고 싶은 계절이다. 그러나 유월은 온통 회색빛과 콘크리트 일색이었던 도시의 건물과 풍광도 어엿한 호젓함으로 다가와, 포도에 콧노래를 통통 떨어뜨리며 무작정 걷고 싶은 시절이다. 시내에 난 여러 길목들 2가街 3가를 두루두루 휘돌며,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이 정다워 보여서 초면이 대부분일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 시원한 맥주에 박장대소하면서, 어디 살맛나는 얘기 없소? 물으며 낮술로 통음도 해보고 싶은 날들이다.
그런가하면 석양 무렵에는 교외 아늑한 동네 느티나무 밑 평상에서 두부에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고 묵은 김치로 벌겋게 끓인 찌게 한 냄비 차려놓고, 오래된 벗들과 소주잔 기우리며 왁자하게 노을을 논하고 싶은 달이다.
유월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쪽빛 하늘에 돛단배 하나 띄워놓고 두둥실 뭉게구름 타고 넘으며, 저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노 저어 가고 싶은 달이다. 년년세세 깊어가는 끝 모를 그리움들이 풍선처럼 가슴에 부풀어 올라 내 심상의 체중을 3킬로그램 정도 부풀려주는 포만의 시기이기도 하다. 아! 또한 유월은 저 남녘 만경평야 아슴프레한 지평선 줄에 띄엄띄엄 걸린 촌락들 너머, 은은히 신기루 되어 투영되는 희원의 어느 둔덕에 나비처럼 너울너울 내려앉아 합죽선 두드리며 목 놓아 서편제 서너 편 부르고도 싶은 달이다.
울창한 송림사이 오솔길에서 낙백한 기상을 잠시 접어두고, 살포시 웃음 짓는 한 송이 산유화를 빙그레 응시하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풍진 묻은 미소도 그리운 달이고, 방금 창포로 감은 삼단 같은 머리채를 산들바람에 흩날리며 푸른 원피스에 양산을 펼쳐든 사십대 초반 원숙한 여인의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에 정갈한 기쁨을 느끼는 유월이 더없이 좋다.
아! 그러나 모든 그리움과 소망들 위에서 나를 껴안는 유월의 손길은 명백하다. 그건 아카시아 흐드러진 동산 기슭에서 듬직한 황소와 벗하며 풀피리 불던 내 유년의 청아함이 불쑥 시공을 건너와 해마다 내게 안기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월의 끝자락부터 나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펼쳐들고 힐끔대다가 유월이 오면 삶의 짓무른 허물을 벗고 소년이 된다.
(2006 . 6 . 3 - 2011 . 5월말 보완)
유월, 그리움의 영상影像
유월을 맞이하면 유독 느끼는 내 나름의 그리운 정경들이 있다. 계절마다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포말 같은 회포들이야 언제나 나의 뇌리를 그윽하게 어루만지지만, 유월이 내뿜는 청신한 공기는 깊은 삼림에서 풍겨 나오는 수향과 같은 은근한 정취를 맛볼 수 있어 내게 풋풋한 기쁨을 준다. 그래서 유월이 오면 가까운 동산에라도 오르면서 자욱한 녹음아래 펼쳐진 산허리를 쓸어보고는 울컥 치미는 애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그것은 가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옛일이라 할지라도, 내게 아련한 향수 비슷한 목 메임과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내 내면에 서린 한 가녀림의 연원淵源이랄 수 있다.
유월이라서 그럴까. 산록에 홀로 서서 저 멀리 울창한 나뭇잎들을 회색으로 뒤집으며 다가오는 한 무더기 산바람을 보고 있노라면 치밀어 오르는 감개를 억누를 수 없어진다. 이를테면 61년 전 한국전쟁의 동부전선 어느 이름모를 산곡에서, 붉은 피를 뿜으며 최후를 맞이했을 스물한 살 남한 병사의 처연한 얼굴이 떠오르고…. 그의 동공에 서렸을 고향 금강 어느 지류의 하얀 백사장이 시공을 넘어 나의 망막에 투영되어온다. 또한 작약 꽃처럼 작열하는 포탄 속에서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을 북한 소년병의 젖은 눈망울도 떠오른다. 병사의 눈에 아롱졌을 황해도 사리원 도화마을…. 그곳 복숭아나무 밑에서 호미를 놓고 망연자실 남녘하늘을 바라보았을 병사 어머니의 수심어린 얼굴도 아련하고 가느다란 설움으로 가슴을 저며 온다.
유월은 주마등처럼 흘러간 그리운 얼굴들을 회억하기 좋은 달이다. 깊은 밤에 시원한 밤바람이 창문을 노크하는 날이라면, 조용히 창을 열어놓고 어둠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정밀과 벗해 볼 일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옛일을 추스르면서 추억의 말편자를 걷어차며 스쳐왔던 주마등을 거슬러 달리다보면, 놀랍게도 섭섭하게 멀어져 갔던 어느 시대의 내 인생 주류에서 벗어나있던 편린들…. 천변川邊의 수양버들이나 주막집 등불 따위들이 다시 다가오고, 환등기 흑백필름처럼 빗금선이 수직으로 흘러내리는 옛적의 영상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럴 땐 회귀하는 연어의 눈망울에 서린 열망처럼 이마에 기쁨의 여울이 흘러내린다.
유월의 가부좌 명상은 실로 기쁘기 짝이 없다. 삼십여 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간 관후한 미소를 지녔던 친구의 얼굴이 두둥실 떠오르고, 붉은 장미 흐드러진 담장이 곡선으로 꺾인 골목길에서 차마 건네지 못하고 찢어버린 청춘시절의 러브레터도 수줍게 펄럭인다. 그런가하면 소금강 깊은 계곡 벽계수에 발을 담그고 초하의 동천洞天을 함께 아우르던 어느 다정한 시인의 단아한 향기도 코끝에 스며든다. 그래서 취옹醉翁의 해탈 모양새로 지긋이 미소 지으며, 짐짓 책상 한 귀퉁이에서 얇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오래된 만년필에 잉크를 채워 넣고 싶은 갈증을 느낀다.
내게 유월은 자동차 키가 못마땅한 시절이다. 아직도 따뜻하게 다가오지 않는 자본주의의 콧방귀 소리, 부르릉 시동소리를 잊고 싶은 달이다. 그래서 유월은 승용차를 외딴 곳에 유배 보내고 열쇠고리에서 자동차 키를 떼어내고 싶은 계절이다. 그러나 유월은 온통 회색빛과 콘크리트 일색이었던 도시의 건물과 풍광도 어엿한 호젓함으로 다가와, 포도에 콧노래를 통통 떨어뜨리며 무작정 걷고 싶은 시절이다. 시내에 난 여러 길목들 2가街 3가를 두루두루 휘돌며,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이 정다워 보여서 초면이 대부분일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 시원한 맥주에 박장대소하면서, 어디 살맛나는 얘기 없소? 물으며 낮술로 통음도 해보고 싶은 날들이다.
그런가하면 석양 무렵에는 교외 아늑한 동네 느티나무 밑 평상에 큰 댓자로 벌러덩 누워있고 싶은 달이다. 뚝방에 솥단지 걸고서 두부에 돼지고기 숭숭 썰어 넣고 묵은 김치로 벌겋게 끓인 찌게 한 냄비 차려놓고, 오래된 벗들과 소주잔 기우리며 왁자하게 노을을 논하고 싶은 달이기도하다.
유월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쪽빛 하늘에 돛단배 하나 띄워놓고 두둥실 뭉게구름 타고 넘으며, 저 아프리카 희망봉까지 노 저어 가고 싶은 달이다. 연년세세 깊어가는 끝 모를 그리움들이 풍선처럼 가슴에 부풀어 올라 내 심상의 체중을 3킬로그램 정도 부풀려주는 포만의 시기이기도 하다. 아! 또한 유월은 저 남녘 만경평야 아슴프레한 지평선 줄에 띄엄띄엄 걸린 촌락들 너머, 은은히 신기루 되어 투영되는 희원의 어느 둔덕에 나비처럼 너울너울 내려앉아 합죽선 두드리며 목 놓아 서편제 서너 편 부르고도 싶은 달이다.
울창한 송림사이 오솔길에서 낙백한 기상을 잠시 접어두고, 살포시 웃음 짓는 한 송이 산유화를 빙그레 응시하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풍진 묻은 미소도 그리운 달이고, 방금 창포로 감은 삼단 같은 머리채를 산들바람에 흩날리며 푸른 원피스에 양산을 펼쳐든 삼십대 후반 원숙한 여인의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에 정갈한 기쁨을 느끼고 싶은 유월이 더없이 좋다.
아! 그러나 모든 그리움과 소망들 위에서 나를 껴안는 유월의 손길은 명백하다. 그건 아카시아 흐드러진 동산 기슭에서 듬직한 황소와 벗하며 풀피리 불던 내 유년의 청아함이 불쑥 시공을 건너와 해마다 내게 안기는 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월의 끝자락부터 나는 동몽선습童蒙先習을 펼쳐들고 그윽한 얼굴로 힐끔대다가, 유월이 오면 삶의 짓무른 허물을 벗고 소년이 된다.
(2011 . 6. 2 보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