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게르가 거세게 흔들리는 걸 느꼈다. 낮에 믕근머리트 캠프에서 보았던 돌풍과 우박이 테를지국립공원으로 몰려와 게르를 뒤흔드는 모양이다. 한 30분 게르의 기둥을 사정없이 흔드는 와중에 밖에서는 놀라 소리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며 잠시 어수선해진다. 잠결에 게르가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수천 년 사용해온 게르가 이 정도 비바람에 부셔질 리 없다 생각을 고치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은 쾌청하고 고요한데 게르의 중앙 기둥이 받힘돌과 어긋나 있다. 일행이 머문 게르 한 동의 지붕이 내려앉았다는데, 우리 게르도 무너질 뻔 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사진으로 보았던 야크가 떼를 지어 목초지로 이동한다. 이럴 때 카메라가 없다.
흰죽이 나온 아침을 먹고 울란바타르 시내로 들어간다. 승합차는 물러나고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포장도로를 이용하므로 승합차를 보냈다고 한다. 노선 표시가 남아 있는 관광버스는 얼마 전에 서울을 달리는 시내버스였을 텐데, 낡았어도 불편하지 않다. 에어컨도 시원하다. 시내로 들어서니 도로가 꽉 막힌다. 신호가 없거나 있어도 지키지 않아 요령껏 피해 다녀야 한다. 약속 시간에 5분 정도 늦는 게 이 나라 예의라는 가이드 설명에 충실하게, 교육부와 통계청이 함께 사용하는 환경부 건물에 15분 늦게 도착했다.
몽골 자연환경부의 그린벨트 담당 바야바르바트 국장은 40대 후반의 학자 같은 모습이다. 담당 공무원을 배석하고 우리와 마주 앉아 자국의 사막화 현황을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그러내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는 방문자의 뇌리에 깃들었을지 모르는 편견, 다시 말해 몽골 사막화의 원인을 몽골 내부에서 찾는 걸 경계하는 듯 보인다. 지구온난화와 주변국의 산업화로 인한 자원 낭비로 내륙국가 몽골에 사막화가 진행된다고 운을 띄우고, 현재 사막화를 막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책임자다운 이야기를 펼친다.
가축 밀도가 높은 걸 인정하면서 민주화 이후 자율에 맡기는데 목초지 잠식을 막는데 한계가 있다고 고백하는 그는 방목하는 염소의 수가 늘어나는 현상을 걱정한다. 몽골의 캐시미어 제품이 고가로 수출되는데, 양 떼와 섞여 10퍼센트 정도 사육하던 염소가 최근 50퍼센트까지 늘어나는 추세하는 것이다. 염소는 먹을 게 없으면 발로 흙을 파 풀뿌리까지 먹는다. 정부는 광업을 육성해 유목의 비율을 줄이려 계획하고, 차량 이동으로 파괴되지 않도록 초원에 도로를 개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강우량을 늘이기 위해 곡식과 채소를 경작하고 물을 공급해 나무를 심고 보전하려 노력한다면서 비닐하우스와 유실수 식재를 병행할 생각인데, 한국 농업기술의 전수를 희망한다.
황사 원인이 국제적이기도 하므로 인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는 그는 사막화를 차단하기 위한 그린벨트를 2035년까지 수천 킬로미터 조성하려 한다며 한국의 산림청에서 나무 식재를 위해 95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아울러 유네스코와 독일과 일본에서 지원하여 몽골 정부는 한 해 5000에이커의 땅에 나무를 심는다며 유목문화에 젖은 몽골인의 낮은 인식과 심은 나무를 관리할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토로한다. 현재 44.7퍼센트의 땅에 사막화가 진행 중인 몽골은 이런 추세를 막지 못하면 90퍼센트가 사막화될 것으로 UNCP가 경고했다고 밝히는 국장은 지하수는 아직 충분하지만 의존율이 80퍼센트에 달해 고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자기 말을 마쳤다. 이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떤 식의 국제협력에 나설 수 있는지를.
우리는 사막화 방지를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감복했다면서 협의를 거처 구체적인 지역을 정해 기술과 자본을 지원할 생각을 전했다. 한국 민단단체의 지원에 거듭 감사를 표한 국장은 정부가 창구 역할을 맡을 테니 사막화가 진행되는 지방과 협의해 도움을 주길 바란다며 우리의 실천 의지에 고마워한다. 동행한 기자의 질문에 국장은 해마다 4에서 5억 투그릭의 예산을 나무 심는데 사용한다며, 몽골 환경부 예산의 1퍼센트에 해당한다고 답한다. 몽골 전체 예산 중 4에서 5퍼센트가 환경부에 배정된다고 덧붙인다. 노력하는 모습이다. 참고로 1원은 1.24투그릭에 해당한다.
황사 관련된 일정은 모두 끝났다. 몽골국립자연사박물관을 찾았다. 작지 않은 박물관에는 공룡 화석이 많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공룡 화석을 좋은 자리에 전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자료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외국 관람객이 몇 명 보인다. 국립박물관은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비록 오래되어 수리가 필요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자연환경에 대한 몽골의 의식은 우리보다 높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지 않은가.
소매치기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주의를 듣고 몽골 최대의 백화점에 올라가 티셔츠와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기념품을 샀다. 싸구려 티셔츠는 집에서 세탁하고 나니 염색이 얼룩얼룩 빠졌고, 더 나쁜 것은 멀쩡한 옷을 망치게 했다는 거다. 가난한 몽골 아이들이 관광객 호주머니를 노린다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것 참! 몽골 아이와 청소년이 근처에 다가오면 공연히 신경 쓰인다. 식당에서 싱가포르의 타이거 맥주를 마시고 노천카페에서 몽골 맥주를 마셨다. 첫맛은 단데 끝맛이 씁쓸한 몽골 맥주 맛보다 어두워지는 밤하늘에 서너 마리가 날아다니는 박쥐를 본 것이 좋았다.
양고기 고치를 주문해 놓고 느긋하게 맥주를 즐기는데, 몽골 환경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 자원활동가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소명의식으로 충만된 그는 무지몽매한 몽골을 개화시킬 책임감에 젖어 한가롭게 맥주를 마실 시간이 없는 듯 부산하다. 몽골의 한인 사회에서는 똑똑한 한국인 만 명만 들어가면 몽골을 접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한몽연합’ 따위의 용어가 거침없이 회자된다는데, 언제부터 한국인들이 그렇게 교만해졌나. 소득의 다소보다 문화의 폭과 깊이에 감동해야 하거늘, 왜 이리 천박해졌나. 교회에서 선교 목적으로 온 한국인들이 특히 유난스럽다고 하는데, 몽골인이 우리 교회에 포교를 의뢰했을까.
첫댓글 사막화 책임 담당관을 만나면서 공식 일정을 마무리한 넷째날의 기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