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모 정유회사와 또 CF 계약을 맺으면서 '6억원의 대박'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녀를 별로 마땅치 않게 생각하는 나 개인적으로는, 6억원의 거액을 투자한 그 정유회사가 꽤나 한심스러워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잡생각일테다. 그 정유회사로서는 6억원 이상의 가치가 그녀에게서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하긴, 그녀가 몇개월동안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한 디지털카메라 회사는 그녀 하나로 인해 엄청난 매출고를 기록하고 있다고 하니.
6억원에 대한 그녀의 '투여 노동시간'은 얼마나 될까. CF 한 편 찍는데 얼마가 걸리는지 조사해본 바 없지만, 대략 10시간 정도 계산할 때, 6억÷600분. 즉 분당 100만원의 수익을 얻는 셈이다. 얼마전 정부가 4인기준 한 가족의 한달 최저생계비를 105만원 정도로 발표하였는데, 그녀의 1분 노동가치와 거의 맞먹는다고 볼 수 있겠다.
뭐 이런 답답하기 그지없는 얘기, 하루 이틀 나온 이야기도 아니라서 이젠 별로 놀랄 것도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 6억원의 투여비용을 결국 누가 부담하게 되느냐일테다.
이론이 있을테지만, 어떤 생산물의 '가치'가 그 가치를 생산한 노동자들의 노동강도와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고 본다면, 그 가치와는 별개로 생산물의 가격에 포함되는 '광고비'는 순전히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비용이다. 광고비를 많이 투자하는 오프라인 중심의 브랜드에서 출시된 화장품 가격과, 요즘 인기있는 온라인 중심의 화장품 가격이 차이를 많이 보이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거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 광고를 시청하는 시간은 또 시간대로 투자하고, 그 제품을 구매할 때 해당 광고비에 투여된 비용을 또다시 부담하게 되니, 그야말로 '이중고'를 겪게 되는 셈이다.
무엇보다 '광고'의 큰 문제는 제품의 성능과 질에 대한 올바른 비교를 불가능하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 속도가 급속히 빨라져, 광고 하나 하나에 눈길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없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광고의 목적이 '제품의 설명'보다는 '기억되기'에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최근 백윤식이 주연(?)한 '파란닷컴'의 광고와 같은 예). 광고는 점점 형이상학적으로 변모해지고,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제품소개보다는, 그런 '추상화'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다보니, 기업들로서는 점점 더 광고에 투자하는 비용이 늘어나고, 광고비가 늘어나는만큼 연구개발에 투자되어져야 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는 결국, 가격 대비 제품의 질을 점차적으로 하락시키고, 막대한 광고비를 부담할 여력이 없는 중소 자본의 우량한 기술과 상품을 시장에서 도태시켜, 사회의 전반적인 기술하락과 거대자본의 독점화를 유도한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감기약' 문제도 그렇다. 이번에 판매중지 조처가 내려진 '콘택 600'을 생산하는 유한양행의 경우, 2003년도 광고비 지출이 175억원으로 제약회사중 1위를 차지한다. 그러한 '투자'로 인해, 소비자들은 그 약품의 유해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던 셈이었다. 만약 그 175억원의 광고비를, PPA 성분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물질 개발에 투자했다면?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본다면 어떨까? 모든 TV, 신문, 잡지에 '광고란'을 폐지하고 그 공간을 통해, 해당하는 상품의 전문가 집단이 각 기업의 제품을 비교, 분석하여 장단점을 공개한다면? 소비자로서는 현란한 광고의 장막 뒤에 숨어있던, 그 제품들의 면면을 직접 확인하여 구매할 수 있게 되고, 기업으로부터 전가받는 광고비를 대신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자연히 기업들은 쓸데없는 광고비 대신 기술개발에 전념하게 될 것이고 이는 소비자와 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혹 이렇게도 말할 수 있겠다. 광고가 사라지면 좀 심심하진 않겠냐고. 심심하긴 할지도 모르겠다. 하루라도 광고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이 세상이니. 하지만, 나는 내 지갑 속의 세종대왕이,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좋아하지 않는 '그녀'를 위해 지출되는 것보단, 그리고 보잘 것 없는 내 한 몸의 안위를 위해 먹은 감기약 몇 알이, 몇년 후 '뇌졸중'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나를 다시 찾아오게 되는 것보단 '건강한 심심함'을 택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
첫댓글 그래서 저는 마케팅이라는 과목을 무척 싫어합니다. 최근 정유회사와 계약한 그녀의 경우, 올림푸스 뿐만 아니라 NAVER와 메타콘, 2% 부족할 때(이 때는 많이 알려지기 전), 라네즈 등에서 결과적으로 회사에 큰 이익을 남겼죠..
요즘 미디어.사회.문화. 라는 수업에서 광고랑 가치랑 어쩌고 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데,,,정말 멋지게 서술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