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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천여선교합창단 원문보기 글쓴이: 기다림(이순의)Happy
1.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Wilhelm Furtwaengler) 1886. 1. 25. 독일 베를린 출생 - 1954. 11. 30. 독일 바덴-바덴에서 사망.
음악으로 일류가 향상된다, 인류가 보다 나아지기 위한 최상의 수단이 음악이라고 확신하고, 평생 이 신조를 지켰던 음악이상주의자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니(Berliner Philharmoniker)를 이끌면서 수많은 명지휘반을 남긴 푸르트뱅글러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지휘자로 첫 손에 꼽아도 결코 무리가 아닐 정도의 위대한 지휘자입니다. 그의 지휘는 박자도 불안정하고 사인도 불분명했지만, 교향악단원들과 청중들을 자신이 의도한 대로 이끌어가는 비상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고고학자인 아버지 밑에서 인본주의의 영향을 받고 자란 영향인지, 그의 지휘는 어딘지 철학적인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는 베토벤, 브루크너(Bruckner), 바그너 해석에 탁월한 경지를 보였으며, 특히 베토벤 교향곡 지휘반은 시대를 초월하여 명반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있는 걸작입니다.
2.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Arturo Toscanini) 1867. 3. 25. 이태리 파르마 출생 - 1957. 1. 16. 미국 뉴욕에 있는 리버데일에서 사망.
그는 최소한 교향곡 250곡, 오페라 100곡 이상을 쉼표 하나 빠뜨리지 않고 외우고 있었다는 불가사의한 천재 지휘자입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졌으며, 뭇솔리니와 히틀러 등이 자신들을 위해 지휘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푸르트뱅글러와 쌍벽을 이루는 지휘자이면서 여러 모로 비교되는 지휘자이기도 합니다. 작품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배격하고, 원래 작곡가의 의도를 잘 살펴서 작곡가의 의도대로 연주해야 한다는, 소위 신즉물주의를 주장했습니다. 특히 오페라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지휘자이며, 만년에 NBC에서 그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NBC 교향악단과 함께 수많은 불후의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3.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1908. 4. 5.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출생 - 1989. 7. 16.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사망.
그의 성(姓)인 카라얀 앞에 von(폰)이 붙어 있는 것을 보면 카라얀은 귀족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사진을 보면 귀족적인 풍모를 느낄 수 가 있지요… 음악을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집이나 방에 카라얀의 사진 한 장 정도는 벽에 걸어놓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푸르트뱅글러의 생존시에는 그의 견제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하기도 했지만, 푸르트뱅글러 사후(死後) 그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종신 지휘자가 되어 세계 음악계의 황제로 군림한 사람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찌에 협력한 전력 때문에 종전 후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귀공자의 풍모와 카리스마, 자신의 천재성을 활용하여 세계 음악계를 좌지우지하게 되지요. 그는 음악을 비즈니즈에 활용한 대표적 지휘자로서, 음악의 제왕 또는 음악의 상인이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베를린 필의 지휘자가 되면서 음악계의 거인으로 클 수 있는 기회를 잡았지만, 그가 지휘자가 된 다음에는 베를린 필이 그에 의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의 일류 교향악단으로 확고히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음악적으로나 음악 외적으로 그가 얼마나 뛰어난 사람이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CD 개발을 위한 포맷을 결정하기 위해 필립스의 기술진이 카라얀에게 CD의 용량에 대한 자문을 구하자 최소한 베토벤의 9번 교향곡(합창) 한 곡은 담아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여, CD 용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4. 브루노 발터 (Bruno Walter) 1876. 9. 15. 독일 베를린 출생 - 1962. 2. 17. 미국 베버리 힐즈에서 사망.
우스개 소리 한 토막. 여기에 히틀러와 스탈린, 지휘자의 세 사람이 서있고, 당신 손에 총알이 두 발 장전된 총이 들려있다. 당신은 누구에게 총을 쏘겠는가? 이 질문을 교향악단 연주자들에게 한다면, 십중팔구는 지휘자다! 지휘자에게 두 발 다 쏘겠다.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독재자를 능가하는 지휘자들의 카리스마를 빗대서 한 말입니다만, 부르노 발터는 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될만큼 인격적으로도 탁월한 지휘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대지휘자이며 작곡가였던 말러(Gustav Mahler)의 수제자로서, 말러 해석의 권위자였으며, 모차르트 해석에도 일가견을 가졌던 지휘자입니다. 그가 빈 필하모니(Wiener Philharmoniker), 케슬린 페리어(Kathleen Ferrier)와 함께 한 말러의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는 시대를 뛰어넘는 명반으로 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만년에 그는 CBS에서 그를 위해 창설한 컬럼비아 교향악단(Columbia Symphony Orchestra)과 함께 녹음작업에 전념해서, 많은 좋은 작품들을 남겨주었습니다.
5. 게오르그 솔티 卿 (Sir Georg Solti) 1912. 10. 21.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 1997. 9. 5. 프랑스 휴양지 앙티브에서 사망.
영국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을 일약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으로 키운 공로로 기사(Sir)의 작위를 받았으며, 레퍼토리가 가장 넓었던 지휘자입니다. 그는 2차대전 이후 25년 동안 오직 오페라만을 지휘하였으며, 1969년에 시카고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이 되어 관현악 지휘자로서의 자신의 두 번째 경력을 시작하여, 1991년까지 재임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지휘자나 연주가들이 한 두 번씩은 소속 음반사를 옮기는데 비해, 솔티 경은 죽을 때까지 오직 데카(Decca)와만 녹음작업을 진행했던 일편단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인 조수미와 함께 한 요술 피리(Die Zauberfloete)가 있으며, 그가 남긴 바그너의 링(Ring) 시리즈는 영원히 남을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6. 레너드 번스타인 (Leonard Bernstein) 1918. 8. 25. 미국 로렌스 출생 - 1990. 10. 14. 미국 뉴욕에서 사망.
작곡가, 지휘자, 피아니스트, 교육가, 평론가 등, 재주가 넘쳐서 고민이었던, 미국이 자랑하는 지휘자입니다. 대지휘자 브루노 발터가 병 때문에 뉴욕 필을 지휘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대역을 맡아 리허설도 없이 훌륭하게 지휘하여 명성을 얻은 이후, 타고난 활력과 열정으로 빠른 시일 내에 대중적 인기를 얻었습니다. 지휘자로서의 쇼맨쉽도 대단하여, 지휘 도중 펄쩍 뛰어 오르기도 하는 등 유별난 행동도 많았으나, 그가 진행했던 청소년 음악회 (Young Peoples Concert)는 텔레비전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고, 새로운 시청자들을 끌어 모으는 본보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이 재즈, 민속 음악, 종교적 합창 주제, 발라드 등으로부터 영향 받았음을 숨기지 않았는데, 자신의 뮤지컬인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가 얼마나 쉽게 리듬과 멜로디를 다루었는지를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나는 전생에 말러였는지도 모른다라고 할만큼 말러에 심취하였으며, 그가 남긴 말러 전집은 드라마틱한 말러를 제시해 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명반입니다.
7. 칼 뵘 (Karl Boehm) 1894. 8. 28. 오스트리아 그라츠 출생 - 1981. 8. 14.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사망
뵘은 정확하게 지휘한다. 이 한마디가 그의 지휘 스타일을 정확하게 나타내 줍니다. 그의 지휘는 정확하고 엄정하면서도 소박했고, 작품 전체의 조형에 집착했으며 냉철하고 현실적이었다고 하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 자신도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가 잘 안되는군요. 그냥 우리식으로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선비같은 지휘 스타일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뵘의 인상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그렇고 말입니다. 법학박사였던 그는 브루노 발터의 영향을 받아, 모차르트의 해석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빈 필하모니와 함께 이루어 낸 모차르트 교향곡 전곡반은 그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8. 카를로스 클라이버 (Carlos Kleiber) 1930. 7. 3. 독일 베를린 출생
그의 아버지는 대지휘자인 에리히 클라이버(Erich Kleiber)로서, 2차 대전 중 나찌의 박해를 피해 부에노스 아이레스로 옮겨가 살았기 때문에 스페인식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나중에 오스트리아로 귀화한 후에도 그 이름을 계속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격이 괴퍅하여, 베를린 필과 연주하기로 되어 있는 당일날 아침에 아무 연락도 없이 짐싸들고 가버려, 베를린 필을 노하게 만들고도 무사했던 지휘자입니다. 보통의 지휘자라면 베를린 필을 지휘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죠,… 아무튼, 그는 지휘자 가운데 가장 적은 레퍼토리를 갖고 있는 지휘자로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지휘한 음반은 모두가 하나같이 명반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필자는 개인적으로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반이라고 하면 묻지마식 구입을 합니다. 예전에 필자는 독일에서 그가 지휘한 요한 쉬트라우스의 박쥐(Die Fledermaus) 오페라 비디오를 구입해서 감상했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지휘를 잘하더군요. 성격이 별난 만큼, 그는 특정한 단체나 기관에 속하지 않고 유명 교향악단이나 오페라 극장에서 객원 지휘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휘자입니다.
9. 오토 클렘퍼러 (Otto Klemperer) 1885. 5. 14. 독일 브레슬라우 출생 - 1973. 7. 6. 스위스 쮜리히에서 사망.
대지휘자이면서도 스캔들로 유명했던 지휘자입니다. 언젠가 공연이 끝나고 나서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여가수를 남편인 교향악단원이 보는 앞에서 껴안고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뻔뻔함을 보여 주었으며, 다음 연주회 때 관객들이 그의 행위를 비난하자, 내가 지휘하는 음악을 듣기 싫거든 여기서 나가라고 되레 소리쳤던 강심장의 사나이입니다. 또한 비행기 트랩에서 떨어져 오른쪽 다리가 골절되기도 하였고, 연습중 무대 아래로 떨어져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잠들어 화상을 입는 등의 역경을 이겨내고 불사신처럼 재기한 의지의 사나이입니다. 필하모니아(Philharmonia) 교향악단을 맡아 세계 정상으로 올려 놓았고,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해석에 정평이 있으며, 바그너, 브람스, 말러, 부르크너 등에 명연주를 남기고 있습니다.
10. 세르주 첼리비다케(Sergiu Celibidache) 1912. 6. 28. 루마니아 출생 - 1996. 8. 15.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
빌헬름 푸르트뱅글러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 선정 과정에서 카라얀과 경쟁했으나 패배하고, 그 후 37년 동안 베를린 필을 지휘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979년 뮌헨 필하모니의 감독이 되어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병으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이 죽기 불과 몇 개월 전까지도 지휘봉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악 연주의 즉흥성을 중시하여 결코 스튜디오 녹음을 하지 않았으며, 공연실황 녹음조차 일반에게 발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가 죽고 난 후 가족의 동의를 받아 그의 지휘반들이 EMI와 DG에서 발매되고 있는데, 그가 과연 저승에서 이것을 보며 뭐라고 말하고 있을지 궁금하군요. 우리에게는 퍽 다행한 일입니다만.
11.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Evgeny Mravinsky) 1903. 6. 4. 러시아 상트 페테루스부르크 출생 - 1988. 1. 20. 러시아 레닌그라드에서 사망.
러시아가 자랑하는 전설적 지휘자입니다. 그는 독재자의 전형이라고 할 지휘자로서 교향악단원들을 공포에 떨게 했지만, 1938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니(현재는 상트 페테루스부르그 필하모니)의 지휘자가 된 이래 교향악단의 수준을 세계 일류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교향악단이 어떠한 레퍼토리도 소화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에 강한 애착을 가졌으며, 20세기의 위대한 작곡가들인 바르톡(Bela Bartok), 호네거(Arthur Honegger), 드뷔시(Claude Debussy) 의 작품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가 가장 많이 지휘했던 작품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으로, 무려 113회를 지휘했다고 합니다.
12.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udio Abbado) 1933. 6. 26. 이태리 밀라노 출생
천재이며 신사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그는 밀라노의 명문 음악 가정에서 태어나 비교적 순탄한 출세 가도를 걸어 왔으며, 1989년 카라얀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Berliner Philharmoniker, BPO라 칭함)의 수석 지휘자 겸 예술 감독에 지명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더니, 오는 2002년으로 예정된 그의 계약 만료 시 BPO와 재계약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혀 다시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는 약관 35세에 오페라의 세계 최고 권위의 밀라노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 종신 지휘자가 되었으며, 3년 후에는 음악감독이 되었습니다. 그가 지휘한 음악은 요란하지는 않지만 마음에 호소하는 감명을 이끌어 내는 힘을 갖고 있으며, 신사인 자신의 스타일과 같이 아주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런지, 왈츠곡 지휘에는 상당히 취약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왈츠곡이 신사들이 추지 않는 춤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
13. 조지 셸 (George Szell) 1887. 6. 7.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 1970. 7. 30.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사망.
조지 셸은 아마추어들에게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지휘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나이 불과 17세 때, 자신이 작곡한 곡을 가지고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했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입니다. 또한 1946년에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을 맡은 후 이 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렸으며, 따라서 조지 셸과 클리블랜드 교향악단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지휘한 음악의 특징은 명확한 리듬감으로써, 살아 숨쉬는 생동감과 다양성이 화려하게 울려 퍼지는 그의 음악을 가리켜 셸-클리블랜드 사운드라고 일컬을 정도의 독특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청중을 사로잡기 위한 어떠한 수단도 사용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었으며, 자신의 음악을 통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청중들을 굴복시켰습니다. 지휘자로서 그는 자기 자신과 연주자들에게 지나치리 만큼 엄격했으며, 그의 권위적인 스타일은 때때로 크고 작은 충돌을 불러 일으켰지만, 그가 지휘한 음악은 비범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가 죽기 불과 3개월 전에 지휘한 드보르작의 교향곡 8번은 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명연주라고 합니다.
14. 에르네스트 앙세르메 (Ernest Ansermet) 1883. 11. 11. 스위스 베베이 출생 - 1969. 2. 20.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망.
지휘자들 가운데는 다른 공부를 하다가 음악으로 돌아 선 경우가 많은데, 앙세르메는 특이한 경력의 지휘자입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로잔대학에서 수학으로 학위를 받고 자신이 직접 수학을 가르쳤던 교수 출신입니다. 그의 지휘 실력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지자 세계의 유수한 교향악단에서 그를 초빙하려 했지만, 그는 자신의 조국 스위스에 생기있는 음악적 전통을 세우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초빙을 거절했으며, 드디어 1940년 스위스 로망드 교향악단(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를 창설하였습니다. 그리고 은퇴하기 까지 이 교향악단을 이끌면서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가 은퇴한 1967년 이후의 스위스 로망드는 예전의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앙세르메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하면, 현대음악을 소개하는데 앞장섰다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난해한 현대 음악도 음악적 아름다움과 찬란한 빛을 더해 청중들에게 전달시켜 주었으며, 특히 스트라빈스키의 음악해석에 독보적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5.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Carlo Maria Giulini) 1914. 5. 9. 이태리 바를레타 출생
현악기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하여, 맑고 팽팽한 울림을 이끌어 내는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휘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가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휘자로, 가정을 돌볼 수 없는 지휘자직은 맡지 않을 만큼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가 다른 어떤 것 보다도 자신의 가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존경스럽지 않습니까? 그는 특히 이태리 오페라에 있어 발군의 실력을 자랑합니다. 카라얀이 인위적인 냄새가 짙게 나는 오페라를 들려 준다면, 줄리니는 천의무봉(天衣無縫)한 오페라를 들려 줍니다. 그가 지휘한 오페라 가운데,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Don Giovanni)를 카라얀과 비교해서 들어보면 앞의 말이 실감나게 다가올 것입니다.
16. 유진 오먼디 (Eugene Ormandy) 1899. 11. 18.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 1985. 3. 12.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사망.
1938년,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vski)의 뒤를 이어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가 된 후, 1979년까지 이 교향악단을 이끌면서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렸던 오먼디는, 필라델피아 교향악단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지휘자입니다. 그의 음악적 특징은 경쾌한 템포와 화사함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레퍼토리가 넓고 다양하기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언제나 조용한 가운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이끌어 냈습니다. 어느 평론가가 그를 평가한 다음과 같은 말이 아마도 그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오먼디를 토스카니니와 같은 위대한 지휘자라 부르기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는 일반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훌륭한 지휘자다.
17. 피에르 불레즈 (Pierre Boulez) 1925. 3. 26. 프랑스 몽브리송 출생
지휘자로서 유명해지기 이전에 이미 현대 음악의 작곡가로 이름을 떨치던 불레즈는 번스타인의 후임으로 뉴욕 필하모닉(New York Philharmonic)의 상임 지휘자가 되어 세상을 놀라게 하였으나, 1971년부터 1979년까지 뉴욕 필을 자신의 스타일대로 잘 이끌어 냈습니다. 그는 악보 속에 숨겨져 있는 번뜩이는 예술성을 이끌어 내어, 이를 재창조하는 놀라운 솜씨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현대 음악을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그는, 처음에는 스트라빈스키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그의 작품 해석의 권위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경력도 화려하여, 바이로이트 축제에서 바그너의 4부작 오페라인 니벨룽엔의 반지(Der Ring des Nibelungen)를 지휘하기도 하였습니다.
18. 툴리오 세라핀 (Tullio Serafin) 1878. 9. 1. 이태리 베네토 지방 출생 - 1968. 2. 2. 이태리 로마에서 사망.
이태리가 자랑하는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입니다. 그는 1909년부터 오페라의 메카인 라 스칼라에서 지휘하면서, 이태리 오페라의 르네상스 시대를 화려하게 꽃피게 하였으며, 베냐미노 질리(Beniamino Gigli), 로자 폰셀레(Rosa Ponselle),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 같은 뛰어난 가수들을 발굴하고, 대가수로 성장할 수 있도록 했지요. 그는 마리아 칼라스에 대한 이야기를 베로나에서 듣고 즉시 그녀와 계약을 성사시킨 다음, 그녀가 전설적인 오페라 가수로 성장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칼하게도, 마리아 칼라스 때문에 비참한 만년을 보내게 되지요. 아무튼, 그가 마리아 칼라스와 함께 남긴 수많은 오페라 음반들을 지금도 그 가치를 잃지 않는 명반들입니다.
19. 프리츠 라이너 (Fritz Reiner) 1888. 12. 19.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 1963. 11. 15. 미국 뉴욕에서 사망.
오케스트라를 한 손에 거머쥐고 압도하던 지휘자로서, 특히 리햐르트 쉬트라우스(Richard Strauss) 벨라 바르톡(Bela Bartok), 리햐르트 바그너 (Richard Wagner) 해석에 독보적인 실력을 자랑하던 지휘자입니다.
20. 한스 크나퍼츠부쉬(Hans Knappertsbusch) 1888. 3. 12. 돌일 엘버펠트 출생 - 1965. 10. 25. 독일 뮌헨에서 사망.
크나퍼츠부쉬에 관한 일화 한 토막. 토스카니니가 세계 지휘계를 휩쓸고 있을 때, 모든 지휘자들에게 토스카니니 식의 암보(暗譜) 지휘가 하나의 유행처럼 되어버렸던 시절에도 그는 언제나 악보를 앞에 놓고 지휘를 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런 그를 보고 왜 암보로 지휘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는군요. 어째서냐고? 그건 내가 악보를 읽을 줄 알기 때문이지! 그는 연주여행을 싫어해서 평생을 거의 독일에서만 지휘하였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린 지휘자는 아니었지만, 낙천적인 생활을 사랑하였고 직관을 존중하였으며, 실제적인 감정과 체험을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바그너와 브루크너 해석의 권위자였으며, 베토벤-슈베르트-브람스로 이어지는 19세기 독일-오스트리아 음악만을 평생 고집했던 지휘자입니다.
21. 제임스 레바인 (James Levine) 1943. 6. 23. 미국 신시내티 출생
미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오페라 지휘자로서, 1973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MET라 약칭함)의 수석지휘자, 75년에 음악감독에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잘 이끌어 오고 있는 대 지휘자입니다. 그가 메트의 지휘자가 되면서, 메트의 3대 징크스를 깨뜨린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것은 키작고, 뚱뚱하고, 안경 낀 미국인은 메트의 지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연습할 때면 항상 티셔츠 차림에 커다란 수건을 접어 왼쪽 어깨에 걸치고 나타나서 쉴새 없이 땀을 닦아대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야구선수라고 평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첼리비다케의 뒤를 이어 뮌헨 필하모니의 상임지휘자가 됨으로써, 유럽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된 최초의 미국인이라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미국의 음악계를 한 수 아래로 평가하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객원으로 지휘는 많이 했지만, 상임으로 입성하는 것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 레바인의 유럽 활동이 기대됩니다. 그가 지휘하는 오페라는 물 흐르듯 유려한 느낌을 주는데, 혹자들은 후반부로 가면 집중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22. 리카르도 무티 (Riccardo Muti) 1941. 7. 28. 이태리 나폴리 출생
미국의 메트와 쌍벽을 이루는 이태리 라 스칼라 오페라 극장의 상임지휘자이며 음악감독입니다. 오페라 극장으로서의 역사와 권위는 라 스칼라가 메트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니만큼, 1986년부터 지금까지 라 스칼라를 이끌어 오고 있는 그에게 레바인보다 더 후한 점수를 주어야겠지요?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지휘자이지만, 가끔 지나치게 신경질적인 면모를 보여 심심찮게 라 스칼라와 불편한 관계를 노출함으로써, 얼마 못가 라 스칼라를 그만두게 될 것이라는 성급한 추측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음악감독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나폴리 출신답게 정열적인 그는 음악도 정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많은 경우에 밀라노 출신의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비교되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은 무티가 한 수 아래로 평가되고 있습니다만. 그는 93년에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Neujahrskonzert)의 지휘를 맡기도 했는데, 특히 2000년 신년 음악회를 지휘함으로써 자신의 성가를 더욱 높이기도 했습니다.
23. 사이먼 래틀 (Sir Simon Rattle) 1955. 1. 19. 영국 리버풀 출생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하모니와의 2002년 재계약 포기를 선언한 이후, 그 후임으로 선출되어 화제가 되었던 지휘계의 기린아 입니다. 그는 영국의 일개 지방 소도시 오케스트라에 불과했던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The City of Birmingham Symphony Orchestra)을 맡은 이래 1990년부터 음악감독으로 재임하면서 이 교향악단의 실력을 세계의 유수한 교향악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향상시킨 지휘자입니다. 어찌 보면, 그에게 있어서 지금까지의 경력은 전주곡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으며, 오히려 21세기에 활약이 기대되는 지휘자입니다.
24. 주세뻬 시노폴리 (Giuseppe Sinopoli) 1946. 11. 2. 이태리 베네치아 출생
칼 뵘이 법학박사 출신의 지휘자인데 비해, 시노폴리는 의사 출신의 지휘자입니다. 1992년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독일의 쉬타츠카펠레 드레스덴(Staatskapelle Dresden) 교향악단을 이끌고 있으며, 교향곡과 오페라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25. 앙드레 프레빈 (Andre Previn) 1929. 4. 6. 독일 베를린 출생
사상 최연소 영화음악 감독으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네차례나 수상하고,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다가 교향악단 지휘자로 변신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이름에서 프랑스 냄새가 풍기지만, 그는 러시아계 유태인 출신으로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현재 자신의 국적은 미국입니다.(나찌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망명 후 국적을 취득하였음.) 적자에 허덕이던 런던 교향악단을 맡아, 이를 흑자로 반전시킨 실력자이며, 심심찮게 염문을 뿌리는 것으로도 화제가 되는 지휘자입니다.
26. 샤를르 뮌쉬 (Charles Muensch) 1891. 9. 26 프랑스 쉬트라스부르 출생 - 1968. 11. 6. 미국 리치먼드에서 사망.
뮌쉬는 유명한 알버트 쉬바이쳐(Albert Schweizer) 박사의 조카입니다. 그는 1967년 파리 관현악단을 설립하여 초대 음악감독이 되었으며, 이 교향악단을 이끌고 미국으로 순회 연주여행을 하던 중 사망하였습니다. 좋은 가문 출신이라서 그런지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지휘자였으며, 특히 프랑스 음악의 권위자로서 베를리오즈, 드뷔시, 라벨, 포레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음악을 알리는데 힘썼습니다.
27. 주빈 메타 (Zubin Mehta) 1936. 4. 29. 인도 봄베이 출생
1998년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 당시 까무잡잡한 주빈 메타가 지휘대에 서서 청중들에게 인사하던 기억이 새롭군요. (물론, 필자는 현장에서 직접 본 것은 아니었고, 이태리에서 TV 중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만.) 그 때 그는 현장에 참석했던 오스트리아 대통령과 청중들에게, 올해(1998년) 처음으로 신년 음악회가 인도 전역에 중계되는데, 인도 출신인 제가 신년 음악회를 지휘함으로써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되어 개인적으로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러한 기회를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정말 부러웠습니다. 한국의 지휘자로서 빈 필하모니의 지휘대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큰 지휘자는 정명훈 씨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정명훈 씨가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에서 메타처럼 인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메타는 인도에서 봄베이 교향악단을 창설했던 부친의 가르침으로 어렸을 때에 바이올린과 지휘법을 배웠고, 빈(Wien)에 유학하였습니다. 아마 이 영향으로 빈 필하모니와의 인연이 맺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웃 일본에서는 메타와 빈 필하모니의 연주라 하면 무조건 꾸벅 죽는다는군요. 그는 착실히 지휘자로서의 경력을 쌓았으며, 현재는 이스라엘 필하모니의 종신 음악 감독이며, 1998년부터 뮌헨 소재 국립 바이에른 오페라 극장의 수석 음악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28. 로린 마젤 (Lorin Maazel) 1930. 3. 6. 프랑스 뇌이유-쉬르-세느 출생
1999년 빈 필하모니의 신년 음악회에서 지휘봉을 잡았는데, 음악회 도중에 자신이 직접 바이올린을 들고 연주하기도 했던, 바이올린의 대가(Virtuoso)이며 천재 지휘자입니다. 그는 불과 9세때 뉴욕 세계 전람회에서 최초로 지휘했으며, 같은 해에 로스 앤젤레스 필하모니 지휘를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의 도움을 받아 성공리에 마쳤습니다. 1941년에는 토스카니니가 NBC 교향악단을 지휘토록 초청했으며,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자 다음 해 여름에는 뉴욕에서 8500명의 청중들을 모아놓고 뉴욕 교향악단을 지휘했습니다. 이로써 그는 신동(Wunderkind)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미국의 일류 교향악단에서 다투어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네덜란드계이고 어머니는 헝가리계 러시아인이며, 국적은 미국입니다. 그야말로 코스모폴리탄으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영어, 불어, 이태리어는 물론, 독일어에도 능통한 천재이지요. 특히 그가 돋보이는 것은,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 자선 음악회를 열고, 불우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금을 희사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는 그의 마음가짐입니다. 그의 연주는 특히 현대적인 것과 고전적인 것을 잘 조화시킨 자연스러움을 강점으로 하고 있으나, 다소 가볍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29. 키릴 콘드라신 (Kirill Kondrashin) 1914. 3. 6. 러시아 모스크바 출생 - 1981. 3. 8.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사망 . 므라빈스키와 쌍벽을 이루는 러시아 출신 지휘자입니다.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니를 중심으로 활동한데 비해, 콘드라신은 모스크바 필하모니를 중심으로 활약했습니다. 1960년부터 모스크바 필하모니의 예술 감독으로 재임했으며, 1976년부터는 국제적인 활동을 위주로 활약하였고, 같은 해에 모스크바 음악원의 교수에 지명되었습니다. 그러나, 1979년 네덜란드 순회 연주에서 그는 정치적 망명을 요청하였으며,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는 즉시 그를 차석 상임 지휘자에 임명하였지요. (당시 수석 지휘자는 하이팅크(Bernhard Haitink)였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친구였던 쇼스타코비치를 후원하였으며, 그의 작품 가운데 교향곡 4번, 12번, 13번 등을 초연하였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곡 녹음반을 남기고 있습니다.
30. 오이겐 요훔 (Eugen Jochum) 1902. 11. 1. 독일 바벤하우젠 출생 - 1987. 3. 26. 독일 뮌헨에서 사망
교사와 아마추어 음악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은 작곡가, 동생은 지휘자가 된 음악 가정 출신입니다. 그는 1927년에 뮌헨 필하모니와 가졌던 자신의 지휘자로서의 데뷔 음악회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7번을 연주한 이래, 평생을 브루크너 교향곡에 헌신한 브루크너 해석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다른 지휘자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지휘 경력을 거치면서 명성을 쌓았는데, 독일 낭만주의에 심취하였고 그 유산을 후배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가 남긴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은 브루크너 해석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만, 브루크너 교향곡 자체가 워낙 일반 아마추어들이 감상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어 일반에게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으며, 오르프(Carl Orff)의 카르미나 부라나(Carmina Burana) 지휘 음반이 명반으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31.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Leopold Stokowski) 1882. 4. 18. 영국 런던 출생 - 1977. 9. 13. 미국 햄프셔에서 사망
월트 디즈니에서 제작한 만화 영화 환타지아(Fantasia)에서 필라델피아 교향악단을 이끌고 배경음악을 지휘했던 멋쟁이 지휘자입니다. 95세의 장수 기록을 갖고 있으면서 무려 7000여회의 음악회를 지휘했던 정력적인 면모를 과시했던 그는 또한 쇼맨쉽의 대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음향효과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때면 주위의 조건들을 향상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하였고, 심지어 조명이 자신의 은발로 모이도록 했던 지휘자였지요. 그의 자유분방한 악보 해석은 그의 등록 상표였으나, 이러한 방식은 그가 노년에 이르면서 점점 더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지휘 경력 가운데 무려 2000여회를 작품의 초연 또는 미국 초연으로 장식한 지휘자이며, 이 가운데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3번과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등이 있습니다.
32. 다니엘 바렌보임 (Daniel Barenboim) 1942.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생
요절한 천재 여성 첼리스트인 쟈클린 뒤 프레의 남편이었으며, 자신은 일류 피아니스트이자 일류 지휘자입니다. 그는 카라얀의 후임 및 아바도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의 상임 지휘자를 선출할 때 두번 다 마지막에 아깝게 패한 지휘자입니다만, 현재 시카고 교향악단과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 감독을 겸임하고 있으면서 세계 음악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는 러시아계 유대인의 혈통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나 5세때 피아노 교육을 받은 후 7세때 최초의 연주회를 가졌었지요. 1952년 가족들이 이스라엘로 이주한 2년 후에 잘츠부르크에서 푸르트뱅글러를 만나 그를 위해 연주하였는데, 그의 연주를 들은 푸르트뱅글러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고 합니다: 11세인 바렌보임은 신동이다… 그의 예리한 지성과 비범한 기교,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섬세한 음악가 정신은 그가 피아니스로서, 지휘자로서 명연주를 들려주게 된 핵심가치라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를 위해 여러모로 힘을 쏟고 있는 평화주의자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그가 내놓은 베토벤 교향곡 전곡 녹음반은 전문가들로부터 비난과 찬사를 한꺼번에 받고 있는 문제작입니다.
(모셔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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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름만 불러도 어렵네요....틈틈이 기억해두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