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카메라의 얽힌 사연
이기숙
요즘 남편의 취미는 사진 찍기이다. 카메라를 장만하려 했지만 이 나이에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니기 쑥스럽다고 망설이다가 선교 차 외국에 나가면서 휴대하기에 간편한 성능 좋은 핸폰을 마련했다. 그 다음부터 어디를 가던 핸폰으로 사진을 찍어온다. 중국 갔을 때, 등산 갔을 때, 모임에 가서도 수없이 찍어오는 사진이 제법 쓸만하다. 그 중 가끔 내가 카페에 올리면 독자들이 보고 잘 찍었다고 호평을 해서 더 열심히 디카 솜씨를 발휘한다.
물론 젊었을 때도 사진 찍기를 좋아했지만 목사가 취미생활 할 새가 없어 접어 버렸다. 나도 역시 70년대 초 남편이 파월장병으로 월남 갔을 때 사온 카메라가 있어 가끔 사진을 찍었다. 직원 여행이라도 가면 내가 가지고 간 카메라로 이 모습 저 모습 담아 왔다.
당시 칼라 사진이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전주에 살면서 김제군 난산초등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농촌 학교라 봄, 가을로 농번기 방학이 한 이틀 정도씩 있었다. 그때 직원여행을 갈 때도 있었다. 자고 오는 여행은 잘 못 가지만 가정부가 있을 때라 한번은 따라 나섰다. 아마 남해대교 쪽으로 갔을 때인가 싶다.
난산초등학교는 8학급 전 직원이라야 교장 교감까지 열 명 버스 대절도 못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갔다. 다녀온 후 나는 사진을 칼라로 뺐다. 모두들 사진을 보고 좋아한다. 나는 독사진 한 장씩을 큰 캔트지에 붙이고는 가장 멋진 사진을 추천하여 표를 던지라고 회람을 시켰다. 당연 키도 크고 날씬한 하나밖에 없는 처녀 선생이 많은 표를 받았다.
당시 교감이 아주 쫀쫀한 구두쇠라고 입을 모아 말을 할 때이다. 그 교감이 출장 중이라 그날은 불참하였다. 다음 날 그 종이를 교감 앞에 갖다 놓았다. 최고의 추천 표를 받은 사람은 한턱 낼 것이라는 표제를 달아서 전 날 이미 추천수가 가장 많은 그 처녀 선생 사진을 떼서 교감 사진과 바꿔 붙였다.
그걸 보는 순간 교감 선생은 좋아 입이 벌어지는데 그 모습은 차마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였다. 하루 종일 싱글벙글하더니 퇴근길에 전주에서 출퇴근 하는 우리 일행에게 뭐 먹고 싶으냐고 하더니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 주는 것이다.
몇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며 모두들 이기숙선생 재치에 교감이 속았다고 통쾌해 한다. 그 교감은 우리가 보기에는 촌사람같이 보이고 막일 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자신은 ‘사나이 중에 사나이’라며 우쭐거리는 사람이다. 자기는 늘 잠바 차림으로 다니면서 우리가 잠바를 입으면 품위가 없어 보인다고 삼가라고 지적을 한다. 뿐만 아니라 그 학교 교사 중 재산은 제일 많은 사람인데 과자 한번 사 주지 않는 사람으로 호가 나 있었다.
그 학교에 근무하면서 아름다운 학교 가꾸기 실적 보고를 하는데 학교 이곳저곳 사진을 첨부해야 한다며 날 보고 사진을 찍으라한다. 우리 카메라로 찍어서 올렸는데 우리 학교가 우수학교로 뽑힐 가능성이 있다고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다.
그 후 가을 어느 날 문교부에서 장학관이 확인 차 학교를 방문하였다. 당시 교장은 이른 봄부터 공원학교를 만든다고 반달 벽돌을 찍어 학교 앞 정원을 아름답게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 덕에 정말 아름다운 학교가 되어 있었다. 마침 무용 경연대회에 출전할 아이들을 찍어 주려고 사진기를 학교에 가지고 온 날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진기를 들고 쫓아 나가 교장과 문교부에서 오신 장학관들을 한창 불타는 듯한 단풍나무 앞에 서시라 하고 찰칵 사진을 찍었다.
결국은 우리학교가 최우수 학교로 판정이 나 상금이 몇 백 만원 나오고 김제군 교육청에서는 전 직원 위로 파티를 해 준다고 교육장과 관리과장이 나와 멋진 축배향연을 벌려 주었다. 어느 정도 음식을 먹은 후 교장이 ‘입은 만족하리만큼 즐거웠으니까 이제부터는 귀를 즐겁게 합시다. 그 시간은 재치 만점인 이기숙 선생님이 맡겠습니다.’라고 해 어안이 벙벙하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 어찌 할 수가 없다. 그냥 노래를 하라고 지적을 하면 한참 뜸을 들여야 하고 분위기가 썰렁할 것 같았다. 당황스럽지만 여기서 내가 망신을 당하고 교장이 난감해 지게 할 수는 없다. 못 이기는 척 나가서는 저를 사회자로 인정을 한다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세요. 그리고 사회자는 왕이니까 사회자의 말에 따르겠다는 약속의 박수도
이렇게 시작된 여흥, 박수치며 동요 부르기, 눈감고 사회자 명령대로 하기, 노래하며 손수건 돌리기 등 간단한 노래와 게임을 섞어가며 웃음을 자아내고 즐거워하였으니 교장 교감은 물론 교육장 관리과장까지 한 곡씩 노래 실력을 과시하였다. 노래 잘 하는 남 선생과 아리따운 여 선생 모두 한 곡씩 불렀다. 이 때는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교육장이 긴급동의를 한다며 사회자도 한 곡 불러야 한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한 곡 불렀다.
그 후 교육장은 가끔 우리학교에 온다. 그때마다 교장은 나를 교장실로 부른다. 교장은 나를 추켜세우고 나는 교장을 띄워준다. 교육장은 내가 보고 싶어 왔다는 등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하라는 등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동료들은 교육장이 이 선생을 좋아하나 봐, 이 선생 애인인가 봐 라며 놀리기도 하였다.
며칠 전 어버이날이라며 두 아들며느리가 맛있는 음식으로 외식시켜주며 우리에게 아주 소중한 카메라를 선물하였다. 남편은 팔라우를 가면서 기어이 성능 좋은 캐논 디지털 카메라를 사 가지고 갔다. 팔라우에서 가는 곳 마다 수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나는 엔간히 찍으라고 제재를 가했다. 맘에 안 들면 삭제하면 된다며 무수히 찍어댄다. 그래서 나는 삭제 작업하기 바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중국인교회 선교사와 같이 섬에 나가 즐거운 시간을 갖는 중에 그 선교사가 우리 사진을 찍어 주다가 자기 카메라가 물에 잠기는 사고가 났다. 그렇잖아도 그 선교사에게는 선교비라도 도와주고 싶은데 모른 척 할 수없어 우리 카메라를 주고 오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자녀들이 이번에 카메라를 선물하는 것이다.
늦게 찾은 취미, 이제 확실하게 해도 될 것 같다. 실은 외국에 나갈 때 마다 사진기 타령을 했지만 자식들 보기도 미안해서 장만 하지 않았었다. 어렵게 마련한 사진기로 3개월 정도 애용하다가 선교사에게 주고 왔으니 또 사기는 힘들 것 같았는데 자식들이 어버이 날 선물로 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새로 생긴 카메라를 만지며 33년 전 아련한 추억에 잠겨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부모에 취미생활을 돕는 자녀들이 있음에 행복감을 느끼면서 남편의 취미를 인정해 주리라.
2007.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