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지도에 점으로 찍히는 ㅇ니구 3만 리히텐슈타인에 갔더니 장관이 마중을 나왔다.
외교,관광 같은 주요 직책을 두어 개를 맡은 '진짜' 장관이었다.
손수 벤츠를 몰았다.
그는 여권에 입국 스템프를 찍어주고 수수료 1프랑을 받았다.
저녁 술자리에서 친해지자 그가 농담처럼 말했다.
"킴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다시 찾아오시오" 리히텐슈타인은 1926년 자산신탁법을 처음 만든 '원조' 조세 피난처였다.
그는 아시아 부자를 많이 알았다.
고대 그리스 무역상인들은 2%씩 물리는 세금을 피하려고 에게해 섬을 비밀 창고로 썼다.
근대에 들어 영국 기업인들은 높은 세금에서 벗어나려고 영국해협에 있는 채널 諸島나
잉글랜드 서쪽 Man 섬에 독립된 조세 피난처를 만들었다.
1차대전 뒤 유럽 큰 나라들은 전쟁 복구비를 대느라 세금을 많이 올렸다.
그러나 리히텐슈타인과 영국령 버뮤다 같은 小國이 발 빠르게 세율을 낮춰 외국 부자 돈을 끌어들였다.
누가 뭐래도 '진짜 원조' 조세 피난처는 스위스이다.
중립국으로 전쟁 피해를 면했고 복구비도 들지 않아 낮은 세금을 유지할 수 있었다.
러시아,독일처럼 혁명이나 전쟁에 휘말린 나라의 뭉칫돈이 스위스로 몰렸다.
그때부터 스위스 은행은 '20세기 비밀 계좌'로 이름을 날렸다.
지금은 조세 피난처가 60곳쯤 된다.
그곳에 숨어둔 돈이 32조달러라고 한다.
모두 공개돼 정상적 수익을 올리고 세금을 떼면 2000억달러가 넘는다.
그리스처럼 채무에 허덕이는 나라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돈이다.
카리브해에 있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도 잘 알려진 조세 피난처다.
그곳에 차려진 페이퍼 컴퍼니만 12만개다.
비밀 계조를 가진 사람도 수천 명이다.
미국에 있는 기자 단체 구구제탐사보도협회가 이런 정보가 담긴 컴퓨터 파일 250만개를 손에 넣었다.
호주 기자가 찾아낸 자료를 46개 나라 기자86명이 매달려 진짜 돈 주인을 쫓고 있다.
곧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하면서 여러 나라 대통령과 기업인 이름이 들먹여지고 있다.
-독재국 장기 집권자들은 죽은 뒤에 은닉 재산 수백억달러가 드러나곤 했다.
미국 대선 후보 롬니는 케이만 아일랜드에 숨긴 돈이 드러나 곤욕을 치렀다.
버진아일랜드엔 한국인 투자한 회사도 꽤 있어서 국세청이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한다.
얼마 전 한 고위 공직 후보도 신고를 안 한 해외 계좌가 들통 나 낙마했다.
한쪽에선 죽을 힘을 다해 숨기고 한쪽에선 그 돈을 필사적으로 찾아내는 숨박꼭질을 보면서
'돈'이 '사람'을 비웃지 않을까. 김광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