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회 산행일지 : 차별없는 산, 천상의 돌 공원
(광주광역시 무등산)
일시 : 2011년 2월 19(토)
날씨 : 눈 녹는 따뜻하고 맑은 날
조선시대의 장서가 이하곤(1677-1724)은 ‘산수를 보는 것은 미인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라는 말로써 경험이 많은 자라도 그 이름만으로는 실제를 알 수 없다고 했다.
또한 동시대의 성리학자 어유붕(1672-1744)은 그의 책 東遊記에서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하는 것과 같다.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도 좋지만 실은 충분히 익히고 또 익히는데 핵심이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무등산은 내게서는 이름보다 훨씬 더 미인으로 다가온 이하곤의 산수였고 2004년 12월 이미 이곳을 다녀온 세 山友, 靑竹, 每松, 僑梅에게는 두 번 째 읽는 책에 더 큰 감동을 받은 어유붕의 산이었다.
지리산 휴게소는 88고속도를 지날 때마다 어김없이 들르는 곳이다.
지난 해부터 공사로 인해 작은 임시휴게소를 사용하고 있어 불편하기는 하지만 대구서 광주 혹은 더 먼 곳으로 가려면 이곳이 얼추 중간쯤 거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고속도 준공 기념 첨탑이 이제 눈에 많이 익었다.
대구에서 광주까지는 통행료가 4,000원이다.
잘 닦여진 4차선 국도보다 못한 도로이지만 그래도 통행료는 싸다.
동광주 IC에서 곧바로 월드컵로로 편리하게 이어지는데 무등산 증심사 입구까지는 1,200원이다.
공용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어서 조금 더 산쪽으로 오르니 어린이집 마당에 4,000원을 주고 주차한다.
쉬는 날인데 수입이 꽤 괜챦을 듯하다.
종점에 도착하는 시내버스마다 천연색 산꾼들을 쏟아 붓는다.
진입로는 줄지은 모든 종류의 화려한 아웃도어 상점들과 길을 가득 메운 사람들로 복잡하다.
입장료는 없다. 오늘은 증심사-당산나무-중머리재-용추삼거리-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중머리재-봉황사거리-증심사의 약 11km를 상회하는 왕복형 산행인데 실제로 등하산이 같은 코스가 겹치는 구간은 증심사 입구까지만이다.
큰 입간판 지도 앞에서 2004년과 같은 코스인지 아닌지 의견이 분분하나 아직까지의 대체적 의견은 “지난 번에는 원효사로 올랐고 이쪽은 처음이다”로 모아진다.
아무튼 나로서는 무등산이 처음이니 상관없지만 아마 모두들 책을 설렁설렁 읽은 모양이다.
증심사 입구에는 계곡에는 등산화를 닦는 솔들이 여럿 기둥에 깜찍하게 매여 있다.
증심사를 들르지 않고 지나 조금 더 오르자 어느 교회의 작은 수양관이 좁은 땅에 놓여있는데 이를 보고 청죽은 “수양관을 보니 지난 번 이쪽으로 온 것 같기도 하다”고 하나 아직 확신은 아니다.
곧 당산나무에 이르자 셋 모두 “이 길이 맞다”고 하며 의견일치를 보인다.
입구의 큰 길이 새롭게 정비되어 몰랐다는 핑계가 그럴 듯하다.
교매는 mp3를 꺼내더니 오늘 내내 무언가를 듣고 있다. 음악이겠거니 하며 물었더니 영어성경이라는 말에 매송과 내가 충격을 먹었다.
오래도록 얼었던 길이 녹아 등산로가 진창이지만 높이를 더한 곳의 응달진 곳은 아직도 눈길이어서 간혹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중머리재는 생각했던 것보다 해발높이가 낮아(586m) 약간은 실망이나 탁 트인 시야가 제법이다.
장불재와 서석대 일부가 보이는데 아직도 상구 멀다.
진창인 능선에 모여 선 이들, 새인봉 쪽에서 오는 이들, 곳곳의 억새밭에 모여 앉은 이들 등 사람도 참 많다.
다들 바짓가랭이가 흙투성이다.
장불재 방향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많이 누웠고 볕이 잘 드는 곳이라 길도 많이 꾸덕꾸덕해졌다.
용추삼거리 부근의 돌밭에서 좌측으로 등산로를 약간 벗어난 곳에서 점심자리를 마련하고 식사준비,
오늘은 식사를 기다리며 개그콘서트의 ‘두 분 토론’ 중 남하당 박영진의 ‘뭐어~’ 놀이에 푹 빠졌는데 이 개그의 응용은 돌아오는 차안에서까지 계속 되어 우리를 오랫동안 웃게 하였다.
늘 하던대로 식사와 커피까지 마치니 벌써 2시.
900m 높이의 장불재는 장관이다.
입석대에서 옮겨온 듯한 각진 기둥 같은 돌들이 너른 공간에 여기저기 유적처럼 놓여있고 주변을 감아도는 부드러운 산능선이 편안하다.
입석대 전망대는 만원이지만 그 광경은 태초의 신비처럼 경이롭다.
대나무 갈라지듯 각진 높이 10-16m의 거대한 돌기둥들은 서석대와 함께 천연기념물 제4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망대에 난간에 현수막처럼 붙여놓은 ‘입석대’란 제목의 찬양시는 오히려 입석대의 느낌을 크게 감하는 것 같다.
입석대에서 서석대에 이르는 500m 정도의 능선 길은 천상의 돌 공원 같다.
푸른 하늘, 키 낮은 나무와 억새들, 그리고 화려한 점점의 등산객들은 군데군데 놓인 돌덩이를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조연들이다.
어느 돌인들 아무 곳에나 옮겨 놓기만 한다면 아무런 치장 없어도 훌륭한 조형물이 될 성 싶다.
입석대, 서석대를 품은 무등산은 돌들의 산, 하늘이 빚은 석재 조형물의 전시장이다.
정상을 대신하는 서석대(1,100m) 정상석에는 인증샷을 기다리는 사람이 줄을 섰다.
가까이 보이는 무등산 정상인 천황봉(1,187m) 역시 우람한 돌들이 둘렀지만 군부대가 자리하여 통제구간이다.
이천십년 세워진 서석대 정성석 뒷면에는 ‘광주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로 적고 있는데 지리산 정상석-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의 카피임에 분명하다.
無等山, 무등이란 이름이 습지를 뜻하는 무돌에서 연유하였건, 부처님의 가장 높은 자리를 의미하는 '無有等等'의 불교용어에서 왔건 간에 나는 차별과 계급이 없는 산으로 이해한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요 당송8대가였으며 돼지고기 요리인 동파육의 전설이 된 동파(東坡) 소식(蘇軾, 1037~1101)은 벼슬 기간보다 길었던 유배의 삶 중 동쪽언덕(東坡)에 기대어 살며 땀 흘린 삶에 대한 자부심을 다음과 같은 시로 표현하였다.
‘밥지어 먹을 쌀과 불 땔 나무가, 모두 시장에서 사온 것들, 쟁기질하고 씨를 뿌려 얻은 것이 아닌지라, 배불리 먹어도 전혀 맛이 없다.’
산은 오직 힘들여 땀을 흘린 사람에게만 감동을 주기에 산에서는 차별이 없다.
서석대의 잘생긴 참모습을 보려면 중봉 방향으로 200여 미터에 있는 전망대에 서야 한다.
서석대의 돌은 제주도의 주상절리형의 절벽으로 입석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주지만 같은 저자가 쓴 ‘서석대’라는 시는 입석대에서와 매한가지로 차라리 없는 편이 나을 듯 했다.
혼자 온 아가씨에게 부탁하여 오랜만에 넷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내려서는데 눈도 많고 많이 미끄럽다.
예비고딩들이 과감히 엉덩이를 깔고 미끄러지는데 위험하게도 보이지만 젊음이 풋풋하다.
임도까지 내려와서 보니 교매가 보이지 않는다.
저 멀리 중봉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교매처럼 보여 크게 불러보기도 했지만 대답이 없던 교매는 한참 후에야 내려왔다.
서석대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어준 그녀에게 아이젠을 양보하여서 늦었댄다.
아침에 배낭에 있던 아이젠을 오히려 뺐다는 그녀는 20대 중반 정도였는데 아마도 산행이력이 좀 있어 보였다.
눈 녹은 물이 작은 계곡을 이루며 임도를 흘러넘치고 있다.
운동화를 신고 서석대를 향하려던 세 모녀를 장불재 방향으로 돌려 세우고 원효사 방면으로 내려서는 그녀와 인사를 나눈 후 우린 거의 평길에 가까운 중봉으로 오른다.
중봉에서부터 하산하는 길은 미끄럽지도 않고 전망도 매우 좋다.
장불재에 이르러 사과를 먹고 이번에는 토끼등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봉황사거리에 거의 이르렀는데 교매가 뒤에서 넘어지고 곧이어 한 아주머니가 “엄마” 하면서 또 넘어진다.
옷과 배낭까지 흙칠갑을 한 교매는 아이젠을 빌려준 그일을 염두에 둔 듯 “친절을 그렇게 베풀었는데도 넘어지나”,
“요셉의 성경에 심취되었다가“ 하면서 툴툴 거린다.
다시 증심사, 아침에 보았던 물가에서 줄을 섰다가 그 솔로 흙떡이 된 등산화를 씻는다.
천성산에서 에어로 먼지를 털 때처럼 개운하다.
5시 40분 하산 완료, 어린이집 주차장에 이르니 마당엔 개와 우리 차만 있다.
순창IC를 나와 자리를 옮긴 우리의 단골집 옥천골한정식(063-653-1008)에 들러 연탄불 구이 돼지고기와 쇠고기, 청국장, 반찬들이 맛있는 만원짜리 정식으로 배를 불렸다.
교매는 형님들 잠을 재우지 않겠다며 음악을 틀었는데 등산을 6시간이나 했고 배가 불렀음에도 교매의 작전대로 정말 아무도 한숨도 못잤다.
청죽의 ‘전단지와 홍보지’ 우스개는 차안을 뒤집어 놓았으며, 서석재의 소녀와 7080 가요들은 아스라한 추억속으로 몰아넣었다.
거창을 지나 내리막길에 만난 가조면, 밤안개에 깜싸인 파스텔풍의 보름달, 사방을 둘러싼 산 그림자, 읍내의 불빛들은 우리 모두를 십대의 소년으로 되돌려 놓았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