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고향 바다ㅡ
남해섬하면 금산(錦山), 노량 이순신장군 묘, 부지런한 삶이 상기되지만 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와 곳곳의 갯벌이 더 상징적이다. 사방이 바다인 섬이므로 그럴 것이겠지만 노량만의 힘찬 바닷물, 아름다운 미조 앞 바다, 그리고 강진만의 질펀한 갯벌은 내 고향, 남해의 자랑거리자 항상 마음에 남아있는 그리움이다.
중학생 때 음악선생님이 “최소한 세 개의 가곡을 잘 익혀 어느 때 장소에서도 자신있게 부를 수있게 해야 한다”며 가르쳐주신 노래,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푸른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어리오 그 푸른 남쪽 바다 (중략)”도 남해섬의 바다를 노래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내 애창곡이 되었고 가끔 분위기 있는 자리에서 부른다. 고향을 생각하면서 노래를 불러 그런지 비교적 잘 되어 앙콜도 받는데, 동심의 세계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게 여겨진다.
강진바다는 시골의 우리 집에서 1km 가량 떨어져 있었다. 바다에는 고깃배들이 그림처럼 떠 있고 바닷새들이 춤추고 놀았으며 오랜 세월에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 왔던 바위들도 밀려오는 파도와 놀았던 곳. 동네 아이들과 언제 가 봐도 큰 가슴으로 안아주었던 그 바다. 바다의 싱그러운 갯내음은 어머니 젓 냄새처럼 느껴졌고 정겨웠다. 바닷물이 모두 빠져나간 바다에는 가도가도 끝없는 갯벌이 광활히 펼쳐졌고 갯벌에는 파도에 밀려 온 미역과 다시마, 미처 바닷물을 따라 가지 못한 어린 고기들 그리고 조개들이 지천이었으니 바구니만 들고 가면 가득 채워 올 수 있었다.
바다 수심도 2m 정도여서 아이들의 수영장이었고 신주머니와 쇠시랑을 들고 헤엄쳐 나가 피망조개 갈망조개 백합까지도 발가락으로 집어 올렸던 곳, 그랬던 바다를 가보니 갇혀있는 해안이 되었고, 바위틈에서 몸 말리다 사람들에게 들킨 문어가 잽싸게 바다로 다이빙했 그 바다는 각종 공사로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거물을 쳐서 숭어를 잡았던 그 바다의 갯벌도 좁아져 있다. 어릴 적 바다를 느끼고 망둥이 낚시를 하며 그 바다에 몸을 담구었던 그런 바다는 이제 그림의 떡이 되었다. 갇힌 해안과 바다 그리고 사라지는 개펄을 살릴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인가?
인간들이 땅을 한 치 더 넓히려고 무지하게 바다와 갯벌을 얄금얄금 파먹고 있으니 어디에서 위안과 안식을 찾을 수 있겠는가?. 그런 자연훼손과 파괘 행위가 재앙이 되어 인간들에게 되돌아 올 것임을 모르고 사니 얼마나 우매한 존재인가?
중국의 창힐(蒼擷)은 새 발자국을 보고 문자를 만들었다는데 그 개펄에 찍혔던 새 발자국, 게 발자국 , 별빛처럼 찍혔던 조개잡는 아낙네들의 고운 맨발자국들은 얼마나 화엄한 팔만대장경이었던가? 자연의 어머니인 바다와 갯벌이 사라지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훗날 자손들이 어린 손을 잡고 이곳에 와 옛이야기 해 주면서 “너희들은 저 바다처럼 넓고 푸른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라고 말해 주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막히고 줄어들고 좁혀져 있으니 어디에서 그런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지금 나는 허물어진 방파제에서 그 옛날 바다와 갯벌과 함께 고향에서, 그렇게 바위를 뚫었던 우렁찬 파도소리처럼 다시 살아갈 수 없을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어제가 입추, 남해바다의 저녁, 그래도 이 낙조가 그저 은총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