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린 날은 궁핍과 허기의 연속이었지만 가난이 웃음까지 앗아가지는 않았다. 행과 불행은 재물의 과다가 아닌 기쁨의 유무로 결정된다면 웃음은 행복열차의 출발점에서 울리는 팡파르에 다름 아니리라.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행복했고 웃음소리가 호박을 업고 있는 낮은 돌담을 넘어 고샅에 깔렸다.”
한창 먹성 좋은 학창 시절에 꿀꿀이죽 한 그릇, 국화빵 한 개가 그토록 먹고 싶어 ‘영한사전’을 사야 한다고 '콘사이스‘를 사야한다고 어머니를 속이라 돈을 타냈다. 그리고 나중엔 ’피타고라스 정리‘와 ’인수분해‘ 까지도 책의 제목이 되어 가난한 어머니의 주머니를 홀쭉하게 만들었다. 그 장본인으로 <어머니의 손 맛>(이 숲) 을 쓴 구활을 들 수 있다.
그는 청상과부가 된 어머니와 다섯 형제들과 자랐다. 동이 트기도 전에 밭으로 나가는 어머니의 마음도 모른 채 철부지로 자란 그는, 온 산과들 그리고 강을 쫒아 다니며 가재 피라미 모래무지를 잡고 개구리를 잡고 논 고동을 잡았다.
책에는 77가지 음식이야기가 나온다. 대체적으로 그의 어머니의 손맛에 대한 기억이다. 가난 했던 어린 시절 산과 들과 내에 나가 놀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조리해 먹었던 꿀맛 갔던 음식들을 소개한다. 때로 웃음을 자아내고 때로는 가슴 뭉클하다. 오밀 조밀한 삽화만큼이나 읽는 맛도 다양하지만 그가 직접 요래해 먹는 방법을 소개할 때는 노다지를 본 기분이다. 여자보다 더 여자 같은 그의 음식이야기.
중학 입시를 치르고 어머니와 들렀던 시장 안 곰국 집에서 곰국을 달랑 한 그릇만 시키는 엄마. 보다 못한 곰국 주인은 국물에 밥을 한 술 더 말아 어머니에게 내밀려 어머니의 가난을 위로한다. 하지만 어린 구활은 그게 상처가 되었다. 그래서 곰국을 먹지 않는다고. 그렇지만 그는 그의 어린 시절이 가난했지만 결코 불행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요즘 한창 김장을 하는 시기이다. 지금은 김장의 의미가 다소 축소되고 그 양도 많지 않지만 예전에는 김장의 의미가 대단했다. 그것은 한겨울 ‘비상식량’ 과도 같은 것이었다. 비닐하우스고 없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 가을에 수확한 식량들을 잘 보관하고 저장하여 내년 까지 버텨낼 수 는 지혜의 대표적인 방법이 김장이었다. 지방마다 가정마다 개인마다 그 기호와 재료와 맛과 방법이 달랐던 김장의 미묘한 매력. 그의 어머니는 김장과 저장에 목숨을 걸었노라고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다섯 식구의 목숨 줄이 거기에 있음에야 어쩌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은 많다. 아니 싫어하는 음식은 없다. 그 중 시래기 예찬이 가장 눈에 띈다. 개장국을 끓이는 방법도 물론 눈에 띄지만 말이다. “나는 죽이며 반찬 이니라” 그가 시래기에 보낸 예찬이다. 겨울철 시래기는 서민의 삶에 때론 끼니가 되고 때론 반찬이 된 없어서는 안 될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씨눈이 붙어 있는 현미에 가까운 쌀, 보리를 도정할 때 나오는 보릿가루로 만든 개떡, 시래기를 삶아 만든 국과 찬. 이것들로 인해 당뇨, 대장암 같은 성인병은 거의 없었노라고 말하며 그 시절을 그리워한다. 흰쌀과 패스 푸드, 유전자 변이 식품을 상식하고 살아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비만환자와 각종 암환자를 병원마다 넘치게 양산하고 있음을 안타까워 하는 대목이다.
그는 말한다. ‘우리 식생활을 옛날로 돌릴 수는 없을까.’ 그의 말처럼 옛날로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다. 단지 그가 말하는 것처럼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하지만 농약, 방부제 ,향료, 인공색소, 패스 푸드와 가공식품을 줄일 수는 있다. 그리고 햇볕을 쪼인 제철 음식의 비중을 높이는 것 그것이 지금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