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문화센터에서 박노자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에 대한 강연이 있다기에 가 들었다. 러시아인이면서 한국사를 전공해 한국인으로 귀화한 특이한 경력과 평소 한겨레 신문에 가끔 보이는 칼럼에 호감이 가서 가본 것이다.
그의 한국사와 중국, 일본 , 서구역사에 대한 지식과 통찰력이 깊고 방대해 강연이 참으로 재미있었다. 강연장이 좁아 10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자 서서 강연을 들어야 하는 사람도 있었고 끝난 후 질문도 많이 나왔다.
그는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가장 유해한 개념이 민족이고 이 민족주의로 인해 세계 1, 2차 대전이 일어나 약 8,000만명의 사람들이 죽었다고 했다.
자본주의 국가가 국민을 통합시키고 내부적인 갈등을 호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민족주의이고 민족주의 선포를 위해선 타자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독일 파시즘은 필연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요즈음 학자들은 말한다고 했다.
1871년 프랑스를 패배시키고 독일통일을 완료시킨 국가에 의해서 독일민족이 만들어졌고 비스마르크 시대에 사회주의 배타법이 있었다.
영국의 민족주의는 네델란드와 아일랜드를 아주 무시하고 배타적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도쿠가와 시대에 수많은 본으로 이루어져 메이지 초기에는 일본인의 정체성은 지역감정이었고 이 때는 일본인이 없었다. 일본인의 1/3은 한반도 출신이다. 140년 전 일본 민족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일본의 극우파와 한국의 어용적인 주류파가 민족주의로 장사를 하고 있다.‘한의 민족’이란 말은 일본인이 만들었다.
일본에선 사무라이가 새칼을 만들면 잘 드는지 시험해보기 위해 밤에 길에 나가 지나가는 평민을 아무나 하나 죽임으로써 시험했다. 이것은 풍습이었다. 이렇게 계급적인 차별이 심했던 일본이 국민, 민족을 만들기 위해 청일전쟁으로중국을 타자화 하고 관동지진 때 조선인을 타자화했다.
백제는 귀족과 백성의 언어가 달랐다. 조선시대 후기에 선비들의 소속감은 청나라 시대 지식인이었다. 같은 문화권의 고등언어가 같은 신분의 구심점이 된다. 상류층은 국제적이고 보통 사람들은 집안, 마을, 지방의 소속감 정도였다. 19세기 한반도 주민을 보고 조선민족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함경도는 하오체와 반말 밖에 없었고 과부도 시집을 갔다.
러시아에선 신분층적인 소속감이 더 강했다. 문맹률이 50%가 넘으면 민족국가가 될 수 없다. 국민을 만드는 방법은 언론, 교육, 징병제이다.
1902-1903년에 일본에서 nation을 민족으로 번역했고 유길준과 독립신문이 일본번역을 많이 사용했다.
유럽 중세 대학교 동향회가 nation이었다. 같은 나라 출신의 지식인 집단을 지칭했다. 18세기 후반 프랑스혁명 후에 nation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러시아 황제 Pavel (1796-1800)은 애국자, 애국주의, 민족이란 단어를 못쓰게 했다. 왜냐하면 민족이란 단어엔 수직적인 사회관계 대신에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함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평등. 박애란 말과 같은 맥락에서 생긴 말이기 때문에 민족이란 말을 못쓰게 했다. 전통사회나 절대 사회에 없는 새로운 국가를 민족이 의미했다. 적어도 법적으로 평등한 권리를갖고 있는 시민들의 공동체를 뜻했다. 빈부나 신분 차이보다 더 중요했다. 민족 안에서는 소속감이 민족 밖에서의 소속감보다 더 강했다.
하지만 민족주의는 타자에 대한 배타를 근거로 삼기 때문에 세계 대전을 통해 8천만명이라는 사람을 제사 지내야 했다.
이제는 민족담론보다는 세계연대 차원이 되어야 한다.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환경담론, 인권논리, 평화, 반전, 생활적인 논리로 나아가야 한다. 요즈음 유럽에선 민족이란 말은 극우파들만 사용한다. 근현 사의 불가피한 산물인 민족주의는 진지한 의미의 문화에 대해서는 족쇄 노릇을 한다.
한가지 해명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비판이라기 보다는 우월심에 가득 찬 조소)은 외국 학계, 특히 우파적 색채의 미국 학자에게는 매우 흔한 일이다. 그들의 판단은 간단하고 단순하다. 그들의 목적 (북한을 국제적 '왕따'로 만들어 질식사시키고 남한의 노동력과 시장을 무제한적으로 이용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영구화하는 것)을 달성하는 데 거의 유일하다 싶은 걸림돌은 한국인들의 강한 민족의식이다. 그 의식을 깨뜨리고 마비시켜야
미제 자동차 판매도 촉진되고, 고급인력의 미국 이민도 확대되고, 매향리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적 민족주의를 비웃고 일소에 부치는 것은 민족주의 원칙 자체를 부정해서가 아니고, 한국 민족주의보다 훨씬 절대주의적인 민족주의적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오만한
민족주의보다 한국의 방어적인 민족주의를 훨씬 가깝게 생각한다. 다만, 한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인도 계통의 한 중국학자의 표현대로 "민족 담론으로부터 역사를 구제해 주고" 싶을 뿐이다.
한반도의 문제는 군복 입은 사람의 수가 너무 많다. 남한 70만, 북한 110만. 군대는 인간성을 파괴하고 장애인, 외국인, 여성에 대한 배타적인 자세를 기른다. 유교 국가에선 부역을 줄여주는 것이었는데 현재 대통령이 국민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상호적인 감군이 되어 군기간이 줄어들고 징병제가 모병제로 되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 사회의 폭력지수가 감소될 것이고 한반도 주민의 삶의 질이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주니 나라의 과학 경쟁력도 제고될 것이다.
한국의 3가지 약점은 군사주의, 환경파괴, 학벌위주의 교육이다.
남한 하층은 국민의 30-40%인데 비정규직 노동자, 재산 없는 사람들, 학벌을 자녀에게 전해주지 못하는 사람이며 여기에 절대다수의 농민, 장애인, 여러가지 불이익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자녀들은 신분상승의 기회가 없다.
또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한겨레신문사 출판)이라는 책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박정희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기 내지 종신 집권이었다. 경제적 '실적 올리기'도 이를 위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이를 위해 국내외에서 납치. 고문. 암살. 매수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일제시대식으로 '반공과 권력을 향한 충성심'을 내세운 어용 이데올로기가 도덕과 윤리 없는 경제적 '실리'를 절대화했다는 것이다. 정권에 맹종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밟아가며 나만 잘살려 하는 것이 그 시대의 '고귀한 이상'이 됐다.
'현대'의 합리성과 가치 중립주의 철저한 기술관료 정신이 유태인 대학살과 같은 대량 범죄의 토양을 제공했다고 지그문트 바우만는 주장한다.
그러나 절대선으로 인식하는 '조국 현대화'의 이름으로 박정희에게 면죄부뿐만 아니라 기념관이라는 형태의 '포상'까지 주려는 사람들은 두가지 측면에서 너무나 단순한 이분법에 걸려든다.
하나는, 박정희 자신의 민족적인(?) 궤변 탓인지 모르지만, 한 민족의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직접적으로는 일제의 동아시아형 총동원 사회 모델, 간접적으로는 독일과 소련식의 유럽적 전체주의와 연결된-그의 이데올로기와 모델의 '계보'를 무시하는 오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 박정희의
근.현대화 모델이 얼마나 많은 전근대적인 요소를 유기적으로 내포하는지,
또 전근대적인 요소화의 상호작용이나 전근대적 요소의 재해석과 의미
재부여. 재확인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망각하는 오류다.
북한의 대형 김일성묘에 담긴 개인 숭배를 비판하면서도 국가적인
사업으로 박정희 기념관을 짓는 남한의 자기 모순 (남한 사람들은 대부분 잘
보지도 못하는), 홍경래와 같은 혁명가를 영웅시하는 북한을 못마땅히
여기면서도 충신 이순과 김유신 동상의 존재를 당연시하는 남한 현실의
아이러니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집단에 대한 충성'에서
'개인의 자유. 책임'으로 가치 중심이 이동하지 않는 한, 주연(酒宴)에서
쓰러진 폭군에 대한 '사모'와 그 '사모'의 정치적. 상업적 이용이라는 희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박정희 기념관 모금이 64억 정도가 됐는데 100억까지 모으면 국가에서 보조금을 주겠다고 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적극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말을 김진균 교수 정년퇴임 출판 기념회에서 들었다)
다양성의 나라, 평등한 나라를 위하여
한국에 귀화한 몸으로 노르웨이에 가서 오슬로 대학의 한국어 및
동아시아 역사 담당 부교수가 된 (2000년 3월)나는 이제 한국의 현실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다. 노조의 지원을 받는 좌익 정당들이 국회 의석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공산당의 기관지까지도 국고 보조금을 받아 발간하는 다양성의 나라,
입사 때 여성이나 장애인이 ‘정상적인 남성’보다 더 유리한 평등의 나라에서
살면서, 노동 운동가들이 감옥에 잡혀가고 여성들이 손님의 냉면을 잘라주는
'음식점 아줌마’정도의 역할밖에 맡지 못하는 고국 한국의 현실을 생각하기가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가슴이 아픈 만큼 할 일이 정말 많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기도 한다.
학생들이 교수를 만날 때 노르웨이처럼 동등한 인간으로서 웃으면서
악수할 수 있는 나라, 매매춘을 한 여성이 스웨덴처럼 국가의 보호를 받는
반면에 그들의 성을 돈으로 산 남성 ‘고개’들은 잡혀가서 심판을 받는
나라, 아직 끝나지 않은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에
각종 원조를 제공하는 일이 덴마크처럼 지성계의 가장 중대한 관심사가
될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할 일이 많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 굳어진 분단체제를 당장 청산할 수는 없어도 ‘큰 나라 섬기기’
식의 사고방식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힘과 정의,
물리력과 도덕은 보통 함께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어떤 나라든 군대와 관료
조직이 크고 힘셀수록 오만함과 횡포도 배가된다. 따라서 이른바 ‘주변 4강의
물리력을 현실대로 인정하더라도, 그 물리력만큼 도덕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색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과거에 한반도에서 저지를
일로 봐서라도, 통일과 같은 민족의 핵심적인 문제들은 외세의 간섭을
가능한 배제한 상태에서 논의하고 추진하는 것이 순리다.
한편 그들과의 관계가 불가피한 현실이긴 하지만, 그들이 상습적으로
저지르는 폭력의 규모와 악질성도 잘 인식해야 한다. ‘죽음의 시장으로
불리는 국제 무장을 독점하려는 ‘죽음의 장사치’ 미국과 러시아, 티베트와
신강-위그르 자치구를 군사기지와 무기시험장으로 만들어 생태계를
치명적으로 파괴한 중국, 재무장을 꾸준히 노리는 일본….., 그들의 자본이나
지식, 기술 등이 당장 현실적으로 한국인에게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정신적.도덕적인 차원에서 그들이 한민족에게 가르치거나 본을 줄 수
있는 것이 과연 있겠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그들의 국가로서의 도덕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올바른 ‘주변 4강관’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강도에게 ‘너는 강도다’라고 나서서 말할 여건이 안 된다
해도, 강도를 친구나 스승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위로부터’의 폭력과 외부로부터의 정보 차단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의 아픔’과 그 ‘아픔’을 ‘씻어주는’ 김일성의 민족주의적
명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이 북한 정권을 지속케 해주는 가장 강한
겅신적인 요인이다.
물론 객관적으로 봐서는 김일성 집단의 극단적인 국수주의와 고립주의,
무력모험주의가 민족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6.25 전쟁과
기아사태라는 새로운 ‘아픔’을 초래하는 데 기여했다. ………………………….
지금 북한의 현실이 어떻든 간에, 북한의 건국.집권 집단의 민족투사로서의
명분이 강한 것 또한 사실이므로 이 명분을 전면 부정하는 것은 이념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남한측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좋아요. 아주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