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정신의학 전문의 김현수 교수
아무 생각 없이 늘어져 있기, 모든 질문에 ‘몰라’라고 대답하기, 일찍 잠자리에 들건만 틈만 나면 졸기….
아이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엄마는 상승하는 화를 누르며 인내력 테스트에 돌입한다. 체력이 문제일까 싶어 홍삼을 비롯한 각종 영양제를 먹여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다. 오랜 시간 청소년의 마음을 살펴온 김현수 교수는 “아이의 무기력은 아이의 마음과 영혼이 보내는 SOS,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라고 말한다.
이제는 사회와 어른이 아이가 보내는 신호에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 교수를 만났다.
취재 김지민 리포터 sally0602@naeil.com 사진 이현준 참고 도서 <무기력의 비밀>
편집부가 독자에게 ...
닫힌 마음을 여는 심폐소생술
무기력은 게으름이나 무책임이 아닌, 무망감(hopeless)이라고 합니다. 안 하거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좌절을 겪어 무기력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버린 아이들. 무기력의 비밀을 알고 나니 ‘기적처럼 살아있는 아이들’을 다그치고 평가하는 어른 중 하나인 것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무기력의 비밀>을 쓴 김현수 교수는 ‘한 아이가 무기력에 빠진다는 것은 한 세상이 닫히는 것이고, 거인이 잠들어 버리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열고, 거인을 깨워 움직이게 하는 일에는 사회와 어른의 절대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깨워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테마인터뷰에 담았습니다.
_김지민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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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51) 교수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의 과정을 마친 뒤 신경정신과 개업과 함께 ‘빵과 영혼’이라는 상담센터를 만들어 어려운 이웃과 아이들에게 쉼터를 제공했다.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며 청소년들의 학교폭력, 왕따, 학업 중단, 가출, 인터넷 중독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상처받은 청소년들을 돌보는 ‘성장학교 별’을 설립해, 치유적 대안학교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도 했다.
청소년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활동이 유난히 많습니다.
중학생 때 가족이 다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을 만큼 힘든 적이 있었어요. 그때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공식적인 기관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만 해도 가족 공동체, 이웃 공동체 의식이 있었지요.
한참 성장하고 배우는 시기에 겪었던 일이라 청소년기에 받는 적절한 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경험한 셈이죠. 학교 공부 친구 가족은 청소년에게 핵심 환경입니다.
이곳에서 도움과 위로를 받지 못하면 위태로워지는 것을 아니까 청소년의 삶에 더욱 관심을 두게 되었죠.
서열화가 고착화되고, 관계망이 좁아진 사회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제도 자체도 변화해야 하지만, 저는 학부모 운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사들의 움직임도 중요하지요. 교육과 미래, 사회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어른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행복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관점을 가져야 해요. 사실 그래야만하는 시기를 넘어섰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병이 나는 것은 청소년들이지요. ‘사교육 줄이기’ ‘입시제도 개선하기’ ‘학교 교육과 지역사회 교육 강화하기’ ‘아동·청소년의 인권 존중하기’ 등 이미 조금씩 시작된 운동들이 있다고 봅니다.
요즘 많은 선생님이 교사 중심의 수업이 아닌 학생 중심의 수업을 진행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수업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인정하고 평가해준다면 적어도 교실에서 무기력한 학생은 없겠지요. 이렇게 현장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가 결국은 제도의 변화를 끌어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자녀와 소통에 지친 엄마의 무기력도 문제인데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엄마의 무기력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에서 비롯되고, 자녀의 무기력은 대부분 강요된 부담을 피하기 위한 보호 장치입니다. 내 자녀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기대를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른들이 보기에 ‘포기’나 ‘무기력’으로 여겨지는 행동이나 말들은 아이들 처지에서는 상처받지 않으려는 행위입니다. 아이 처지에서 보면 화나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포기’나 ‘무기력’을 선택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수포자도 ‘수학을 포기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고 현실적인 기대에 기초해 아이와 함께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는 것,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이 엄마의 무기력을 예방·치료하는 방법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합니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관점과 기대를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자녀의 무기력에 부모의 욕망도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정작 부모는 자신의 욕망을 자식에 대한 사랑과 정성이라고 주장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마음과 같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 부모는 자식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착각의 출발입니다. 욕망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자녀를 독립된 주체로 보고자 하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사실 부모 자신의 욕망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상입니다. 특히 자녀와 자신이 분리되지 않은 ‘부모-자녀’ 사이에서는 말입니다.
혹시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 이것만은 꼭 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욕망일 가능성이 큽니다.
무기력한 아이의 변화를 위해 노력을 하지만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경험상’ 부모의 태도가 ‘낯설기’ 때문입니다. 간혹 부모로서는 격려라고 했는데 자녀의 처지에서는 조롱으로 여길 수도 있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던진 역설적 질문이 ‘역시 우리 엄마는 감이 없어’라고 받아 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와 대화를 위해 부모도 ‘대화하는 방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참 잘한다”는 말은 ‘격려’보다 ‘평가’에 가까운 말이에요. “네가 노력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가 더 격려의 표현인 것이지요. 진정한 격려는 첫째 낙담하지 않도록 하는 것, 둘째 다시 도전할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 셋째 주변이 너의 성공을 간절히 원하고 있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마음이 진심으로 전달되어야 하고, 더는 낯설지 않도록 꾸준히 지속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변화가 급격하고 부모의 대처 능력은 점점 떨어집니다. 자녀의 문제점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본질이 있을까요.
서로가 정말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에 컸던 부모가 스마트폰에 의존하는 사회의 아이들을 지도하기란 어려운 일이지요. 문제점을 찾기보다는 자녀의 모습에서 다른 시대의 특성을 읽으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아닐까요?
교수님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고 싶으신가요.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그 길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언제나 보기 좋습니다. 반면 부모가 아이에게 예정된 실패의 길을 불안으로 끌고 가는 것을 말릴 수 없을 때 가장 힘들지요.
앞으로는 그동안의 경험을 모아 아이들과 부모를 위한 지식과 경험의 교육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요. 성장하는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회적 기업도 운영하고 싶고요. 우리 청소년들이 더 좋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남의 나라 시스템의 좋은 점을 칭찬하고 들여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교육 모델과 시스템, 관계 속에서 우리 청소년들이 행복하게 성장하기를 꿈꿉니다.
미즈내일
첫댓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중,고딩시절 아이들의 마음의 힘듬을 헤아리는 책이 있어 감사하네요!!
아이들을 위해 알게 모르게 애 쓰시는 분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냅니다!!~~^^
신나게 아무 걱정없이 뛰어놀다 벌겋게 달아오른 아이들의 모습을 아무데서나 언제나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만 들어와 씻고 밥먹어라' 하는 엄마들의 소리를 저녁 어스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