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부랄친구들과 K2 부근에서 일잔한 후 커피한잔 하려고 아양기찻길에 들렀다.
찻집은 이미 문을 닫았고 강 위아래 전경을 찬찬히 훑어보면서 어린시절을 회상하니
그 시절의 추억들이 강물따라 검댕이로 아득히 흘러간다.
철교 상류 아양교 야경이 화려하다.
예전 아양교 다리는 아래쪽 수면 부근에 난간 비슷한 게 있어서 그 위에 올라가서
다이빙을 하곤 했었던 어렴풋한 기억들
지금의 아양교는 일제시대에 놓은 노후된 다리를 폭파시키고 새로 다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어린시절의 모습과는 다르다.
내가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해에 기존 아양교를 폭파하고 다리를 새로 놓은 걸로 알고 있다.
아양교 폭파 장면을 사진으로 담으려고 유명 사진사들이 카메라를 세팅시키고
주변을 서성거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가뭄으로 물이 많이 줄었을 때 아양교 아래쪽 물이 고인 웅덩이에 반두를 쭈욱 밀고 나가면서
새끼손가락 굵기의 새우들을 엄청나게 잡았던 기억이 새록하다.
붕덤산이 보이는 하류쪽엔 선열공원인 붕덤산만 옛모습을 간직한 채
강건너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사진상 좌측이 우리 동네인 새마을쪽으로 그 옛날엔 강변에 보조수원지 비슷한 건물이
우뚝 서 있었고 주변에는 온통 정구지밭이였다.
매년 큰물이 지면 강물이 세력을 확장하는 범람원이였기 때문에 정구지 외에는 다른 작물을
심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인 듯 하다.
그때도 봄부추는 상품가치가 뛰어나고 가을부추는 인기가 없었던 탓인지 가을이 되면
밭주인들이 정구지를 그냥 베어 가라고 하여서 배고픈 시절에 정구지를 많이 먹었었지.
사진상 우측은 지저동으로 탱자울타리가 쳐진 과수원이 많았다.
사과 낙과가 많이 발생하던 시점에 우리 동네 애들은 자루를 들고 강을 건너 사과낙과를
사러 가곤 했었는데 그 덜익은 사과를 사가지고 와서 삶아 먹은 기억이 아련하다.
인심촣은 과수원에서는 덜익어서 떨어진 사과를 그냥 가져가라고 했지만 인심 사나운 과수원 지기는
애들을 쫒아내거나 돈을 받는 곳도 있었기 때문에 우린 사과를 사러간다고 했었다.
아양기찻길에는 찻집을 비롯한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아양철교 다리사이의 공간을 우리동네쪽부터 1칸에서 12칸으로 구분하여 불렀고
우리가 물놀이를 하던 공간은 주로 건너편쪽인 11칸 부근이였는데 그 쪽이 물이 좀 깊고
수영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철교 아래쪽이 어린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우리들의 수영장이고 놀이터이며
천렵장이자 낚시터 였다.
그 시절 철교 11칸 부근에서 수영하다가 바위에 앉아 쉬노라면 피라미 등의 작은 물고기들이
팔다리며 엉덩이를 톡톡 건드리며 무언가를 뜯어먹는 듯 보였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 유영하던 무리 중에는 학공치 새끼인 듯한 개체도 피라미와 같이
어울려 다니던 걸 본 듯 하다.
아마도 줄공치 였을 듯 한데 훗날 부랄친구들에게 학공치 목격담을 얘기해 보니
자기도 보았다는 이가 과반수는 넘어갔다.
시계가 귀한 시절이라 사발모찌를 놓은 후 기차가 철교위를 세대 지나가면 사발을 거두어
물고기를 털기로 하였고
피라미를 잔뜩 잡아 땅을 파고 돌멩이로 돌담을 빙 둘러 살림망을 만들어 물고기를 가두고
배를 따서 납짝한 돌위에 가지런히 말리던 기억들도 오래된 전설처럼 아득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