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참말이지,
아내는 언제고 기분 좋을 때면,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늘 잊지않고 생각하고 있다가 지금 적고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 꺼내고 했습니다.)
처음 맞선이라고 중매쟁이를 통해서 만나고, 그리고 둘이 만나는 것이
일주일에 한번 꼴이었으니 뭐, 네 다섯번은 더 만난 것 같았던 때에.
"어려우신데 무슨 약혼식이냐"고 그냥 기다렸다가 결혼하면 되는거라고
몇 번이고 집에서 만류했지만, 그래도 대종가집 맏아들을 사위로 보시
는 게 많이 맘에 걸리셨는가 끝내 날짜를 시골집으로 통보해 오셨단다.
"난 희형씨가 정말 좋아요. 그런데 지금은.... 시집갈 형편이 못되네요.
3년만 기다려주면 안될까요? 그러면 돈 벌어 갈 수 있어요."
그렇게 떼를 쓰던 지금의 아내도 어쩌면 허풍만 앞세운 내 말 한마디에
그만 다운이 되고 말았다.
"그냥 우리 사랑하고 살면 되지. 무엇이 더 필요해요. 아무런 조건 없어요.
몸만 와서 살면 되지. 명색이 유씨가문 대종가집 맏아들인데 우리집에서
이불 한 채 숱가락 몇 개 안사줄려구...."
아무튼 약혼날짜는 바짝바짝 다가오고 시집 올 여자역시 돈 걱정에 애가
탈 즈음 내겐 목돈이 생기는 기회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직장에서의 상반
기 보너스였다. 그것도 명색이 " 대통령은 몰라도 돈누구는 안다는.... " 모
그룹의 상반기 정산이었고, 내 석달치 월급을 합쳐보니 그때 당시엔 꽤 큰
돈이었다.
머리 잘 돌아가는 이몸이 어찌 그냥 넘어가랴.
보너스 봉투에 석 달치 월급을 넣어 시골집 어머니한테는 아무 말씀 안드
리고 이 여자 만나자고 급히 전화하였더니 사실은 독한 감기에 몸살까지
겹쳐 꼼짝 못하고 누워있단다.....그 속사정을 내가 왜 모르리. 약혼 한답시
고 이것저것 하려하니, 준비되지 않는 돈 걱정을 부모만 했겠는가, 솔직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당사자인 본인이 더 속이 탔지.
워낙에 그땐 튀는 성격이니 퇴근뒤 바로 택시타고 약혼녀 집을 찾아갔다.
"어서 오시게, 요새 감가하고 몸살이 나 아프다고 누워있어."
반갑게 맞이하시는 시늉 하시면서도 이밤에 웬일로 하는 표정 역력하시다.
겨우 머리를 손으로 빗어내리며 얼굴을 내미는 여자를 보니, 며칠만인데도
얼굴도 수척하고 몸도 많이 지쳐보였다.
"내가 너무 힘들게 하나봐요, 후회하지 않아요" 하면서 봉투를 쥐어주었다.
"이거 보너스랑 월급 조금이예요,"
"왜 이런 걸... 어머니 갖다드리지 않고,"하고 말끝을 흐린다.
"얼마 안돼요, 제대하고 복직이 늦어 월급도 많이 안주네, 그리고 힘드신 살
림에 약혼식 준비하신다고 부모님들 걱정 많으실텐데.... 절대 내가 드렸다
고 얘기 마시고 보태도록 해요."
그리곤 반 시간여 있다가 예약된 택시타고 돌아왔다.
훗날 얘기가, 세상이 뒤집어진 걸로 알았단다. 내가 집을 나서고 돈을 세어
보니, 이건 조금이 아니라 신랑 패물이며 약혼식을 넉넉히 다하고도 남을만큼
이었으니.....사실 나중 며칠뒤 어머니가 패물하라고 주신 금액하고 맘 먹는 돈
이었다. 패물때도 어머니가 오신다는 걸
" 어머니, 색시집서 못해주면 맘 상해요" 하곤 나혼자 나갔었다.
그랬었으니, 내 떠난 뒤 "엄마! 아부지!"부르며 난리를 친 건 안봐도 본것 같은
거 였고, 그 자리서 간 밤에 꿈 얘기가 몇 번이고 되풀이 됐을 것... 처제 하나씩
올 때마다 반복했었다니까.
"글쎄요, 어젯밤 꿈에 웬 죽은 사람을 보았거든요. 온 몸이 시커먼 껌둥이었는
데.... 많이 무서웠지만 깨끗하게 목욕을 시켜야 한다고 해서 내가 나서서 벌거
벗은 몸뚱아릴 비누칠하며 씻겨줬는데, 물기를 닦아내는 자리마다 누런 금덩이
로 변하더니 나중엔 번쩍번쩍 하는 금부처가 되더라구요. 금부처님이 되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꼭 끌어안고 있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어요. 마음에
'오늘 무슨 좋은일이 꼭 있을 거 같았는데....' 이렇게 꿈도 꾸지 못한 돈뭉치를,
받았네요"
"언니, 이건 돈뭉치가 아니라... 돈벼락이지."
"그래, 맞다. 니덜 말이 맞아. 이건 돈벼락이여"
어떤 사람한테건 시집와 살며, 좋은 일이건 아니건 이야기 꽃이 필때면 아내는
이 이야기를 단골메뉴로 꺼내곤 했습니다.
글쎄, 나는 "그냥 몸만 와서 살자"고 했던 그 말에 따라준 아내에게 작은 선물이
었는데, 아내는 살면서 평생동안 기쁨이었을까요.
"정말이야, 살며 암만 화가나도 난 그때 그 생각만 하면 모든 게 다 행복해진다."
아내의 마무리 말입니다.
ㅡ 간 밤엔 컴 정말 다운됐었다.
ㅡ10.09.17.
첫댓글 잊혀지기 전, 잊혀지진 않는 것이지만.... 조금씩은 내 카메라에 감겨있는 필름들을 꺼내보기로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