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포항 일구입혼 야구단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웃자웃자^^ 스크랩 포항의 모습
no00 이동의 추천 0 조회 572 11.02.06 19:14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로타리냉면

경북 포항시 상원동 441-4번지 (사장:권택진) 냉면, 숯불갈비 전통으로 약 40년간 한자리에서 한결같은 맛을 이어온 냉면 맛은 사계절 언제 먹어도 일품. 냉면은 비빔냉면과 물냉면 두가지가 있다. 비빔냉면은 양념이 중요한 만큼 좋은 깨를 구입하여 직접 참기름을 짜서 쓰고, 물냉면 역시 육수와 면이 중요한 만큼 육수는 소뼈와 고기삶은 국물에 한약재를 첨가, 장시간 우려낸 깔끔한 국물과 면발 역시 메밀의 독특한 맛을 살리기 위해 직접 배분하여 쓴다.
숯불구이(1인분, 150g) ­10,000원 냉면(1인분) ­4,500원 포항 육거리 한일은행 옆. 주차장 완비(054)247-­2651





한일냉면갈비식당

경북 포항시 상원동 442-2번지(사장:최명애 054-247-5739)
포항에서 냉면 잘한다는 집을 꼽으라면 로타리냉면(40년 전통)과 한일냉면(30년 전통)이다. 로타리냉면은 비빔냉면이. 한일냉면은 물냉면(평양식, 함흥식 5000원)이 더 맛있다고들 한다.












1968년의 포항의 음식점

당시는 '승리식당'이 포항에서 가장 크고 알아주는 식당이었다. 요즘의 식당들은 음식만을 제공하지만 그때 그 시절에는 요정이나 방석집 따위의 그다지 건전하지 않은 업종의 요식업은 물론 아니지만 분위기만큼은 요릿집 다름아니었다. 저녁이면 술손님을 접대하는 아가씨들을 열댓명씩 데리고 장사들을 했다. 포항제철 기술자로 내한한 일본인들을 위한 전략의 일환임이 분명했다. 당시 일본인 관광객이나 주재원들의 한국 접대여성들을 현지처로 두었다고 지탄의 대상이 되던 때이기도 했다.부친께서 운영하셨던 육거리식당에도 누나들 열 몇명씩 한가족들처럼 한집에서 숙식을 하며 지냈던 것이다.






1970년 포항역

1970년 그때 포항의 최고 중심가는 육거리에서 시민극장, 포항우체국 사이의 길이었다. 서울로 말하면 명동, 대구로 치면 동성로 거리 쯤 될까.
지금은 포항의 중심가가 오거리로 이동했다가 요즘은 또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고 들었다.





1974년 오거리 시민탑

요즘 사람들이 혹시 이런 얘길 들으면 놀랄지도 모르겠지만, 예컨대 '승리식당' 경우, 메뉴의 종목이 한식은 물론, 일식에다 양식까지도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큰 식당들은 중국음식만 빼고는 뭐든 만들어 내놓을 수 있는 조리능력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소위 대중식사라는것이 메뉴의 가짓수에 국한받지않는 범 국가적인 차원으로 어떤 음식이든 만들어내고 있었다. 주방 요리사들의 전지전능한 요리솜씨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기사 양식이라고는 하지만 , 돈까스, 비후까스, 함박스텍 같은 소위 일본사람들이 자기네 입맛에 맞게 만들어낸 일본식 양식을 말한다.

1968년 당시 포항시내에는 영업용 택시도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는데, 기차를 타든 시외버스를 타고오던간에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택시기사에게 포항에서 가장 크고 좋은 식당으로 가자고 주문하면 두말없이 승리식당이나, 육거리식당 정문 바로 앞에 알아서 모실 정도였다.






1960년 말에서 70년 초 포항에 제철소가 생기자 포항은 마침내 만년 하절기 피서지에 불과하던 소도시에서 탈피하여 명실공히 산업도시로 발돋움 하게 된다. 포철 초창기 일본에서 신일본제철 기술자들이 대거 포항으로 들어오고 서울 등지에서 고급 산업역군들이 속속 포항에 도착하였던 시기라, 유흥음식점이나 사비스 업종 등은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기 시작하던 때였다.

포항 요식업 양대 산맥으로 꼽던 승리, 육거리 외에 고급 경양식집으로 포항에서 유일했던 희락식당이 육거리식당(후에 신육거리식당으로 상호 변경) 바로 앞에 있었다. 어쨌든 포항에서 승리식당은 한식으로, 육거리는 일식으로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고 외부손님들을 맞게 된다.





포항의 맛있는 집(펌)

형제통닭/죽도동사무소 건너편
두번망한집 / 동해의료원 철길
조마루뼈다귀해장국/오천서문사거리
신대전숯불갈비/용흥 전자여고
조방낚지/우체국 뒷편
춘천닭갈비(임곡/배우네밥묵자 맞은편)
육일해물찜(흥해)
등촌샤브샤브/이동
다해회하우스/회 장성동 법원 쪽
만민먹골집칼국수/장성동
동래파전/이동 월마트 앞
동굴산방/오천시장에서 장기방향 2km
돈값하는집/오천읍사무소건너편농협샛길 옆
대성숯불갈비/대해성당 맞은편
바이킹스/오광장,
삼오복집/오광장
신라왕갈비/대백앞
서화정복집(참복사시미. 생밀복샤브샤브).연일
선무정"(생갈비 & 간장게장정식, 시래기찌게)남부시장근처
사랑채/중앙시장 건너편
서울막창(오광장 구 동아마트 뒷편)
삼육식당(문덕)
수야/시내 그랜드힐 부근
솔뫼식당(숯불갈비/동대병원 맞은편)
신승리회식당(죽도어시장)
운제산장/송어, 잉어찜 오어사 가기 전 다리 지나서 바로 좌회전
오복네숯불갈비/천북고기단지 내
연화제식당/연화제고개넘으면바로밑(삼계탕)
원주복추어탕/메가라인 건너서 동빈큰다리 건너기 전
인디에나숫불치킨/대이동
영주식당/장성시장(도루묵찌개)
옛정보리밥뷔페/남부시장근처
용경횟집/장기면 모포리
영덕해물찜 (법원동네)
일미 횟집/칠포
왕손짜장/효자시장
연일칼국수(한옥)
안동막창(두호주공 근처/삼겹살)
엄마손(우체국뒤)
양학동 영덕횟집 물회 (양학시장)
왕생굴구이(오광장 근처)
연인(아구찜)
영주매운탕
오천 시장내 추어탕집(상호?)
월성식당(오천, 매운탕)
마포구이/오광장부근
배우네밥묵자/임곡 청룡회관 앞
영천회식당/죽도어시장
연일물회/연일우체국옆
초원통닭/중앙통
통영굴국밥 / 오천 서문
해룡반점/청림동
한가네왕족발 냉채족발/양학
세일식당(항구동, 멸치 등푸른생선회무침 1인분 6,000원)
정선가든(오리고기)/포항1대학앞
마포주먹구이/오광장, 동일기업사거리 2곳 추천
금강산삼겹살(오광장)
금강산감자탕(두호동)
잉걸갈비/해도1동 동사무소 근처
유림칼국수/귀빈예식장 옆
옛그집/시내 임진각 건너편
죽도시장수제비/설명불가
플로리안(중앙통)
평원숯불갈비(돌솥밥)/법원방향
유가네칼국수
이리오너라2(썬프린스건너편)
영일대중국집(지곡)
왕등갈비(이동그린빌 앞)
장백산 (대련하일리/손칼국수 2,000원)
종가집/오거리 제일은행 뒷편
장성동 호동이 갈비촌
정말순낙지 (항구동, 장성동, 흥해, 용흥동, 상대동)
제이드가든(북부해수욕장)
정가네아구찜(형산로타리)
청미칼국수/해도SK2002주유소뒷편골목
천부울릉식당(꽁치회/북부시장)
창수할매숯불갈비(항구동 포고가는 길)
청학골/이동 서울증권1층
초원갈비/이동
천지(터미날 맞은편)갈비탕
천산(육거리-조개전골집)
초야해장국(오거리)
칼국수(식당이름 없음/연일우체국에서 연일초등학교쪽으로 50m 검은색 대문집 가정집, 낮에만 함
포항해물찜(대이동)
푸른식당(신기동)
평화쌈밥(시내 조흥은행 뒤)
평사리(대잠동)
황태칼국수(효자시장 위)
한동한정식(낙천대건너편)
호미곶 전복집(법원 이조한정식 옆)
환호횟집-회국수( 두호2동 바닷길 쪽)
한봉순 해물찜(창포하와이근처)
할매칼국수/오천시장안(값 저렴)
할매집추어탕/용흥
영동식당/북부시장 근처
사가이/롯데백화점
조방할매 돼지국밥(대왕예식장 옆)
시골여행(오천문덕)
세이지(포항시네마근처)
왕돌잠롤엔스시(두호동 피자헛사거리)
꽃돼지보쌈-(해도육교 등외과 옆 보쌈 족발)
할매닭발/상원동조흥은행 뒤
함경찬굴국밥(문덕)
함경찬굴국밥(장성동)
새포항삼겹살/육거리
신포항황양네복집/시그너스 맞은편
시골한우 숯불갈비/터미널 부근
원조할매칼국수/오천공설시장
강원식당/양학시장
꼬꼬향기 (장성동)
가족정(이동)
김해 뒷고기(쌍용사거리점)
구룡포 모리국수
기사식당(용흥동/한빛택시회사)
김밥나라/대백 앞
농원식당(보신용음식/종합운동장 뒷편)
남경갈비성(돌솥밥,갈비살/신광저수지 근처)
노고단칡냉면(남도주유소 근방)
낚시터매운탕(신광)
뒷고기집(대해성당삼거리 근처)
대왕회식당(두호동 리마트앞)
동해회식당/죽도어시장
돌솥정식/오천국민은행옆
대이동 아구나라(유소년 축구장 인디애나 앞)
효자시장 손짜장면(쟁반짜장, 탕수육 )
해물손수제비(이동 월마트 맞은편 골목)
황장군 갈비찜
현대횟집/장성동 현대아파트 앞
흑사랑(우현동)
현대식육식당삽겹살(용흥현대 앞)
할매기사식당(터미널대각선 방향)비빔밥
동순관/예술회관맞은편
대한화반점(육거리의료보험공단 앞)
돈돈 3000? 인가 하는 곳(죽도 파출소 뒤 고깃집 생갈비)
대나무삼겹살/대이동
로타리냉면
무교동낙지(오천문덕에 농협사거리)
미리내추어탕/오어사방향
마당쇠/대백 앞
명동칼국수(흥해육일해물찜 옆)
명화회집(대해시장내. 자연산)
막창(북부)
바다매운탕(청림)
백가냉면-이동
불로만(구 아카데미극장 옆)
백록담/서문오천점
바르미칼국수/신시청부지앞 삼거리
부산밀면 / 환여동
복돼지/해도육교 부근
바닷속 물회
백경횟집(임곡, 마라도 밑으로 들어가는 길)
보성녹돈(신시청사옆)
부천성(중화요리)이동
바다마을에서(달전)
시내할매떡뽁이
세정아구찜/해도조약국근처
수원식당 / 오천동사무소 밑(삼겹살)
생선구이집/북구청 앞
시골한우 숯불갈비(종합터미널 근처)
시골여행 (죽도파출소 앞 국수집, 파전)
신촌 / 대이동 신시청사 앞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포항시 북구 중앙동(中央洞) 유래

면적: 1.01㎢
인구: 8,500명(2001년 말 기준)

중앙동은 포항시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은 송도동, 서쪽은 용흥동, 남쪽은 죽도동, 북쪽은 학산동과 접해 있다. 본동은 포항 역사의 근원지로 기록에 의하면 1731년(영조 7년) 이 지역에서 나는 규휼미 등 양곡을 보관하거나 타 지역으로 수송하기 위하여 포항창진(浦項倉鎭)을 현재의 포항역 부근에 설치한 기록이 있으며(역사적으로 <포항(浦項)>이란 지명의 사용은 이것이 최초이다), 1870년에 해군 군사 목적인 포항진(浦項鎭)을 설치하고 군사들을 배치한 기록이 있다.
조선말까지 중앙동 일대는 연일현 북면과 흥해현 동상면에 속했으며 대부분의 지역의 사람들이 거주하기 힘든 불모지였으나 일제시대 초기 1916년 형산강 제방공사를 하면서 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1913년 종래 연일현, 흥해현, 청하현, 장기현을 합병하여 영일군으로하고 포항면(浦項面)이 생기면서 중앙동 일대가 포항동이 되었으며, 1917년에 기 합병된 영일군의 청사를 현 북구청 자리로 옮겼다.

1931년에 형산강 제방 공사의 준공과 포항면이 형산면과 통합하여 포항읍으로 승격되고 포항동은 포항동(대흥동 지역)과 남빈정(南濱町 남빈동지역), 영정(榮町 덕산동지역), 중정(仲町 중앙동지역), 대정정(大正町 신흥동지역), 명치정(明治町 덕수동지역), 동빈정(東濱町 동빈동지역), 본정(本町 상원동지역), 욱정(旭町 여천동지역)으로 분리되고 일본식 이름으로 불렀다.

8·15 광복 후 다시 현재의 법정동 이름으로 바뀌었다. 행정동인 중앙동은 중앙동(中央洞)·신흥동(新興洞)·남빈동(南濱洞)·
상원동(上元洞)·여천동(余川洞)·대흥동(大興洞)·덕수동(德壽洞)·덕산동(德山洞)·동빈2가(東濱二街) 등 9개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1966년 7월 15일 여천동과 중앙동을 합쳐 여중동이 되었으며, 1973년 7월 15일 상원동과 남빈동이 합해진 상남동과, 1983년 2월 15일에 합쳐 행정동명이 중앙동으로 되었다. 1986년 7월 1일 신흥동을 편입하고, 1998년 9월 1일 동빈동·덕수동·대흥동과 통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중앙동은 6·25 전쟁 때 폐허가 된 지역이었으나, 현재는 음식점, 상가, 병원 등이 집중되어 있는 포항시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동빈동(東濱洞)

1998년 동빈 1가는 학산동에, 동빈 2가는 중앙동에 편입되었다.
포항내항 접안지역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마을이 크게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14년부터 약 20여년간에 걸쳐 진행된 형산강 제방과 포항축항공사였다. 1930년대에는 동해안 수산업의 전진기지로 정어리·고등어·청어의 생산이 특히 많았는데, 그 후 이 일대에는 각종 어업 보조 산업이 번성하여 냉동공장, 통조림공장, 주물공장 등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 포항-울릉간 여객선 터미널은 이 곳에 있다가 1995년 항구동으로 이전하였다.

덕산동(德山洞)

1998년 중앙동에 편입되었다. 포항 북부경찰서, 북구청, 소방서, 시립중앙경로당, 포항시건설환경사업소, 상수도사업소, 북구 선거관리위원회, 포항초등학교등이 위치해 있다.
군청거리 육거리에서 나루끝을 향하는 중심길, 즉 포항 북구청 앞길을 일제시대에 불렀던 명칭 이다. 각종 관공서가 밀집되고 주변에 일인들이 많이 거주하면서 덕산동이 발전하였다. 일제시대 초기 군청거리 서쪽 마을에는 숲이 울창하여 천연두로 죽은 어린애의 시체를 나무 위에 덕(체봉)을 매어 놓기도 하였다 하여 부른 이름이다. 체봉거리라고도 했다.

덕수동(德壽洞)

1998년 중앙동에 편입되었다. 일제 때부터 포항읍사무소를 비롯한 관공서가 밀집되어 있던 마을로 오늘날에도 관공서와 기관장들의 관사가 모여 있다. 읍사무소청사는 시청사로 사용하다가 1992년 철거하고 신축하였으며, 포항시개항지정기념비(1963년 3월 1일 건립)가 있다.
수도산은 본래 백산(白山)이라고 부르던 것을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모갈거사(茅葛居士)란 분이 은둔하다가 순절한 후부터 그 충절을 되새겨 모갈산(茅葛山)이라고 부르다가, 1923-1926년 에 걸쳐 상수도를 시설할 때 배수지를 이 산정에 설치한 후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이 산에 조성된 덕수공원에는 라이온스동산과 모갈거사순절사적비, 모갈정, 충혼탑과 관음사·극락사·보현사 등의 사찰,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와 포항사당, 이명석선생 문화공덕비 등이 위치하고 있다. 여천원이 있던 곳으로 일제시대엔 포항신사(浦港神社)가 자리했으며, 해방 후 중앙교회가 있다가 근래에 덕수성당이 들어선 원터가 있다. 1940년 인가를 받아 개시된 포항중앙상설시장은 1960년 도시계획에 의해 도로에 편입되면서 폐시(閉市)되었다. 시청, 세무서, 문화원, 국가정보원, 덕산파출소, 임협,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 등이 위치하고 있다.

여천동(余川洞)

고려산부인과의원과 금강호텔 사이의 지역으로 1983년 중앙동에 편입되었다.
- 여천동(余川洞) : 나루끝에서 동해 바다로 흘러 내린 여을천에서 명칭이 유래한다.
- 여천원(余川院) : 오늘날 덕수동 천주교회 자리에 있었다고 전해진다.

18세기경 4일과 6일에 시장이 형성되었으며, 일제시대에 한국인에 의한 노점 상설시장이 개설된 여천장이 있었다. 불종거리는 지금의 고려산부인과의원 인근지역에 작은 철탑을 세우고 불이 났을 때 매달아 놓은 종을 쳤다 하여 불린 이름이다. 숙박업소와 음식점, 극장 등이 자리하고 있다.

상원동(上元洞)

1983년 중앙동에 편입되었다. 포항장(浦港場)과 접한 지역으로 일제시대에도 한국 상인들이 다수 거주하던 곳이다. 육거리에서 남빈동 사거리에 이르는 거리는 흥해방면과 연일 방면을 잇는 간선도로로 1950년 도시계획에 의해 4차선으로 확장되었다. 한빛은행포항지점, 국민은행포항지점, 조흥은행포항지점 등이 자리잡고 있다.

남빈동(南濱洞)

남빈동은 칠성강을 타고 배가 드나들던 곳으로 소재지 남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오늘날 서울 은행에서 죽도 어시장에 이르는 지역으로 1946년에 남빈동으로 부르게 되 었다.1983년 중앙동에 편입되었다. 18세기부터 포항장의 중심지였다. 1931년 남빈 매립 공사가 착공 되어 1932년 4월 13일 준공되었다.

조선 후기 정월 대보름날을 중심으로 포항역 공터에서 상리(포항리: 대흥동·남빈동 지 역)와 하리(여천동과 동빈동 지역)의 줄다리기가 행해졌으나, 1930년대에 소멸되고 말았다. 가구점과 의류점, 건축자재와 기계류 상점 들과 신한은행 삼성생명 기업은행 서울은행 대구은행등의 포항지점들이 자리하고 있다.

신흥동(新興洞)

1946년 본래의 부락명인 신흥동(새로 흥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환원되었으나, 1986년 7월 1일 행정적으로 중앙동에 편입 되어 법정동명만 남게 되었다. 포항우체국, 포항전화국, 중앙동사무소, 수협중앙회포항지점이 위치하고 있다.

대흥동(大興洞)

조선시대 칠성강 북서쪽 대흥산 앞에 마을을 형성하여 영일현 북면 대흥리로 불리었다. 1694년경엔 60-70여호의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1700년대초 이 고장의 세곡(稅穀)을 수송·보관하는 포항창(浦港倉)이 설치되면서 부락명이 포항리로 되고, 포항장(1일과 6일)을 형성하였다.1998년 9월 1일 중앙동에 편입되어 법정동명만 남게 되었다.

대흥동

영일현 북쪽 우물곡동(雨勿谷洞)에 대흥제(大興提)가 있어 18결의 논에 물을 대었다는 기록이 있는 유래 깊은 명칭이다. 해방후 택지로 변한 대흥못의 옛 자리는 지금의 용흥동 현대타워 아파트 정문 앞 부근이 된다. 오늘날 대안산 · 대왕산과 대안곡의 명칭은 대흥상과 대흥곡이 변음된 것이다. 포항시제(浦港市提)라고도 할 수 있는 포항사당제(浦港祠堂祭)는 봄과 가을에 향사를 행하고 있으며, 구(舊) 포항의 도심지역으로서 포항역과 중앙상가 등이 위치하고 있다.의 최고 중심지는 육거리와 시민극장 사이의 길이 서울로 치면 명동쯤 될 정도로 유흥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1920년대 칠성천


1966년 동빈내항 돛단배. 지금의 송도해수욕장과 울릉도 여객선 터미널 사이를 배삯을 받고 사람들을 실어나르던 배다.





1966년 학산동. 도로포장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당시 포항은 시내 육거리, 중심가 외에는 거의가 비포장길이어서 여름철 비만오면 진흙탕으로 변해 장화를 신지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1967년 제7회 개항제


1966년 육거리~시청


1961년 동빈내항
 
다음검색
댓글
  • 11.02.07 11:17

    첫댓글 저때로 돌아가서 땅좀 사놨으면..ㅋㅋ

  • 11.02.07 12:03

    저때로 돌아가면 형은 돈이 없는데 ~~~~~~~~~~~~~~~~~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