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Whoever remains in me and I in him will bear much fruit,
because without me you can do nothing.
(Jn.15.5)
제1독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이 문제를 검토하게 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15,1-6
그 무렵 1 유다에서 어떤 사람들이 내려와,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형제들을 가르쳤다. 2 그리하여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이 일어나, 그 문제 때문에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신자들 가운데 다른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3 이렇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파견된 그들은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다른 민족들이 하느님께 돌아선 이야기를 해 주어 모든 형제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4 그들은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교회와 사도들과 원로들의 영접을 받고, 하느님께서 자기들과 함께 해 주신 모든 일을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하였다가 믿게 된 사람 몇이 나서서, “그들에게 할례를 베풀고 또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원로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복음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3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4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6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7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묵상
그저께는 부모님 모시고 가족들과 함께 청평의 아침고요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그 자리가 무척이나 좋았었지요.
그런데 그곳을 거닐다가 재미있는 대화를 듣게 되었답니다. 아빠와 어린 아들로 보이는 두 사람이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아빠: 너, 너무 까불대는 것 같다.
아들: 제가 뭐……. 그렇죠.
아빠의 충고에 체념하듯이 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도 나왔지만 약간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주님 곁에서 이렇게 체념하고 포기할 때가 많았음을 기억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지요. 그래서 우리에게 여러 통로를 통해서 경고하시고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가르침을 얼마나 잘 받아들이면서 내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했을까요? 주님께 끊임없이 요구만 할 뿐 스스로는 변화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을 때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예전에 갑곶 성지에 있었을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어느 날 어묵이 먹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근처의 마트에서 어묵을 사가지고 와서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30분쯤 끓였을까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맛을 보았지만, 포장마차에서 먹던 그 맛이 나지 않습니다. 비슷하면서도 약간 어딘가가 부족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았습니다. 어묵은 약한 불에 오랫동안 끓여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최고의 길로 인도해주시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갖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의 시간에서 주님의 뜻을 받아들여 나 역시 주님의 뜻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주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가지가 포도나무를 벗어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 역시 주님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음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포도나무이신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 못가 말라 비틀어져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많은 열매를 맺고 싶습니까? 그러기 위해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며 더욱 더 주님께 붙어야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꼭 붙어있을 때, 언젠가 우리가 원하는 그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짐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어떤 불행 속에도 행복이 움츠리고 있다. 어디에 좋은 일이,
어디에 나쁜 일이 있는지 우리가 모를 따름이다.(C.V.게오르규)
+ 빠다킹 신부
묵상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쳐 내신다.’ 열매는 기쁨의 신앙생활입니다. 오랫동안 믿어 왔는데도 여전히 즐거운 신앙이 아니라면 원인을 찾아봐야 합니다. 성당 다니는 이유가 아직도 막연한 의무감이라면 이제는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생명입니다. 잎이 아무리 무성해도 뿌리가 약하면 금방 시들어 버립니다. 물과 양분을 잎과 줄기로 올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뿌리의 역할이 없으면 시들해지고 맙니다. 기쁨이 생겨날 리 없습니다. 뿌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신앙의 뿌리 또한 ‘아무도 모르는’ 적선이며, 기도이고, 선행입니다. 이러한 실천이 없었기에 허전했던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최고의 자선을 무외시(無畏施)라 했습니다. 두려움을 없애는 행위를 가장 높게 평가했습니다. 요즘 표현으로는 ‘스트레스’를 없애 주는 것일 겁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를 밝고 따뜻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들과 맺는 관계가 좋아지면, 주님과 맺는 관계도 좋아집니다.
주님 안에 머무른다는 것은 그분의 도우심 안에 머무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까지도 도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겁주는’ 신앙은 참신앙이 아닙니다. 두려움을 내세우는 지도자는 ‘바른 지도자’가 아닙니다. 남의 두려움을 없애 주면, 자신의 두려움도 언젠가 사라집니다.
+ 매일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