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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於後親友 會遇見之 而作是言 咄哉丈夫 何爲衣食 乃至如是
어후친우 회우견지 이작시언 돌재장부 하위의식 내지여시
我昔欲令汝得安樂 五欲自恣 於某年日月 以無價寶珠 繫汝衣裏
아석욕령여득안락 오욕자자 어모년일월 이무가보주 계여의리
今故現在 而汝不知 勤苦憂惱 以求自活 甚爲癡也 汝今可以此寶
금고현재 이여부지 근고우뇌 이구자활 심위치야 여금가이차보
貿易所須 常可如意 無所乏短
무역소수 상가여의 무소핍단
於後親友가 會遇見之하고
그 뒤에 또 이 부자인 친구가 그 사람을 또 만났어. 會遇야. 그 사람을 만나서 그 떡 보니까 역시 거지로서 그대로 살거든, 기가 찰 거 아녀.
而作是言하대 咄哉丈夫여
스스로 이러한 말을 하대“하~ 안됐다.”咄哉라 하는 것은‘아이구’咄哉라. 丈夫야. 참 안됐다. 불쌍하다. 이 장부야.
何爲衣食하야 乃至如是오
어찌하여 의식을 위해서, 옷과 밥을 위해서 여기까지 이러한 경지까지 이르렀는가?
我昔欲令汝得安樂하야 五欲自恣일새
내가 옛날에 그대로 하여금 安樂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그 좋은 집 뭐 백 평 넘는 아파트도 사고 그냥 막 은행에 돈도 몇백 억 그냥 예치해놓고 할 수 있도록’그렇게 해서 오욕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그렇게 내가 했것만은 했을새
於某年日月에 以無價寶珠로 繫汝衣裏라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에 無價寶珠로써, 그래 내가 너를 그렇게 할려고 실컷 잘먹고 잘살도록 하기 위해서 無價寶珠로써 그대의 옷 속에다가 매어 줬거늘
今故現在어늘 而汝不知하고
그 어디 내가 넣어준데 찾아보자하고 손을 넣어서 거기 이제 그 구슬 넣어준데를 찾아보니까 그대로 있는거야. 그거 뭐 거지가 되어놓으니까 뭐 제대로 옷을 갈아입을 수가 있나?
지금도 짐짓 나타나 있다 이 말이여. 지금도 그대로 있더라 이거여. 그 보물, 그 어마어마한 보물을 그대로 지금도 있거늘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알지를 못하고
勤苦憂惱하야 以求自活하니
부지런히 고통스럽게 살면서 그저 먹고 입고 할 것을 근심걱정하면서 스스로 스스로 살 것을 구했으니
甚爲癡也로다 汝今可以此寶로
매우 매우 어리석고 어리석도다. 그대는 지금 가히 이 보물로써
貿易所須하면 常可如意하야 無所乏短이니다
이것을 貿易 팔아가지고 所須 필요한 것을 구할 것 같으면은 항상 가히 如意 뜻대로 될 것이다. 뭐 자가용 사고 싶으면 자가용 사고 아파트 사고 싶으면 아파트 사고 무슨 기사두고 싶으면 기사두고, 마음껏 조금도 모자라거나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가 비유에요. 그럼 비유하고 법하고 합해서 이야기합니다.
43 佛亦如是 爲菩薩時 敎化我等 令發一切之心 而尋廢忘 不知不覺
불역여시 위보살시 교화아등 영발일체지심 이심폐망 부지불각
旣得阿羅漢道 自謂滅度 資生 艱難 得少爲足 一切智願 猶在不失
기득아라한도 자위멸도 자생 간난 득소위족 일체지월 유재불실
佛亦如是하야 爲菩薩時에
부처님도 또한 이와 같아서 과거 보살이 되었을 때
敎化我等하야 令發一切之心커늘
우리들을 교화해서 우리로 하여금 일체 지혜의 마음을 발하게 했거늘, 一切之心 이게 중요한 거죠. 지혜의 마음, 일체를 아는 지혜의 마음을 내도록 했는데 실컷 그렇게 가르쳤는데
而尋廢忘하고 不知不覺하며
곧 바로 잊어버리고 그 말입니다. 우리가『법화경』통해서 무수히 그런 것을 이제 글로 보고 말로 듣고 한 번 생각하고 눈으로 보고 그렇게 하지만은, 그만 그저 그 구절 지나가면 또 잊어버리고 책장 넘겨버리면 잊어버리고 일어서면 잊어버리고 집에가면 잊어버리고 시장가면 잊어버리고 그저 잊어버릴거 뿐이야. 그냥
즉시 廢亡이야. 곧바로 잊어버리고, 廢亡이란건 그 말입니다. 잊어버리고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旣得阿羅漢道라하야 自謂滅度나
이미 아라한도를 얻었다. 나는 뭐 그정도 불교안에서 기도해서‘우리집 아이 학교잘가면 됐다. 뭐 이렇게 이정도로만 살면 됐다. 바라던 바 성취하면 됐다.’요렇게만 생각한다 이거지.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자기들의 그 어떤 마음의 안녕만, 개인의 마음 안녕만 취하면은 됐다라고 이렇게 이제 생각을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 예를 들어서 거지로 어디가서 밥을 한 숟가락 얻고 옷 하나 얻고 그럼 뭐 그러면 만족해 여기는거 똑같거든, 그 거지가 그 그렇게 그 한들 또 밥 다음끼 또 얻어먹어야 되잖아. 그럼 그 다음끼 또 얻어먹어야 되는거야. 아 자기 재산이 넉넉히 있으면은 이거 뭐 세세생생 자기 재산으로 살텐데 거지가 돼놓으니까 또 얻어먹어야 되고 또 얻어먹어야 되고 내일되면 또 얻어먹고 모레되면 또 얻어먹고, 이렇게 되는거야. 이건 이제 무슨 뜻인고 하면은?
이 소승의 어떤 아라한도라고 하는 것은 이 자기 그 본성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를 못하니까 이거가지고는 그야말로 한 끼 먹고 나면 또 한 끼 다음끼 걱정해야 되고 또 다음끼 걱정해야 되고 하는 것과 똑같다는 뜻입니다. 여기, 阿羅漢道라고 하는 것은 그래요. 소승불교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멸도, 열반이라는 거죠. 열반을 얻었다고 하나
資生이 艱難하야 得少爲足하나
살아가는데 살아가는 일이 艱難이여. 그 저기 거지처럼 한 끼 얻어먹으면 그 다음끼 또 걱정해야 되고 그 다음끼 또 걱정해야 돼. 그래서 한 끼 얻으면 일단은 그걸로 만족하죠. 작은 것을, 적은 것을 얻어서 만족을 여기나
一切智願은 猶在不失이니라
일체의 뜻과 원은, 그야말로 기존의 보물이죠. 지혜와 원은 오히려 잃어버리지 않는데 있다.
결국 가지고 있다 이 말입니다. 사실은, 자기 본성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그거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불성인간(佛性人間) 인간의 지고한 가치 그~ 지극히 고귀한 그 가치는 정말 그대로 가지고 있다. 猶在不失이야. 잃어버린 적이 없다 이 겁니다.
그 저기 친구가 준 보물을 잃어버리지 않고 내 지금도 가지고 있듯이 그렇게 우리의 본성은 누가 뺏어가지도 못하고 누구에게 주고 싶어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존재에요. 그러니까 사람 사람이 다 평등한 거요. 사실은, 다 존경받아 마땅한거야. 다 부처님처럼 존경을 받아야 돼. 그래 서로 해줘야 돼. 또, 서로 그렇게 위해줘야 되는거죠.
44 今者世尊 覺悟我等 作如是言 諸比丘 汝等所得 非究竟滅
금자세존 각오아등 작여시언 제비구 여등소득 비 구경멸
我久令汝等 種佛善根 以方便故 示涅槃相 而汝 謂爲實得滅度
아구령여등 종불선근 이방편고 시열반상 이여 위위실득멸도
今者世尊이 覺悟我等하사 作如是言하사대
지금 세존께서 우리들을 깨닫게하사 이와 같은 말씀을 하대
諸比丘야 汝等所得은 非究竟滅이라
여러 비구들이여, 그대들이 얻은 바는 究竟의 최상가는 그 멸도, 최상가는 열반이 아니다.
我久令汝等으로 種佛善根일새
내가 오랫동안 그대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선근, 부처라고 하는 그 선근을 심게했을새
以方便故로 示涅槃相이어늘
방편을 쓴 까닭에, 그래서 방편을 쓰다보니까 그런거죠. 그런데 방편마저 안쓰면은 그나마 다 떨어져나가 버리는 거죠. 그 방편을 안쓸 수 없었던 거요. 사실은, 그 방편이 진실은 아니지만은 방편마저 안쓰면은 다 떨어져나가 버리지.
그래 저 선불교도 그런 말이 있어요.‘최상승법만 가지고 이야기하기로 하면은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라가지고 놉을 해서 법당에 풀을 뽑아야 할 처지가 될 것이다.’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법당 앞에 풀이 없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발자국이 많고 반짝반짝하면은‘아 틀림없이 방편을 많이 쓰는구나.’그렇게 알면 돼. 방편 많이 쓰는데는 그냥 구름떼처럼 모이는거요. 어디 어디 다 기억나죠? 눈에 선하죠? 방편 잘쓰는 곳일수록 구름떼처럼 모이는거요. 그래 선사스님들이 그랬다니까‘방편을 안쓰고 진실법만 말하기로 하면은 법당 앞에 풀이 한 길이나 자랄 것입니다.’아무도 절에 찾아오는 놈이 없을 것이다. 이 말이여. 허허허 그래 그런거 지금 우리는 이렇게 늦은 시대에 사니까 다 알게되는 거라. 알아야되요. 그래서『법화경』은 부처님 교설의 완결판이다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런 이야기를 다 하는거죠.
그래서 방편을 쓴 까닭에 열반상을 보였거늘
而汝는 謂爲實得滅度라이니다
그러나 그대는 謂 생각하기를 실로 멸도를, 진실로 이제 멸도를 얻은 것이다. 열반을 얻은 것이다라고 했다 이 말이여.
사실은 방편으로 한 것인데, 그 불교가 여기까지 이것이다. 끝도 없습니다. 이게, 끊임없이 우리가 그 안목을 넓히고 견문을 넓히고 해서 진실한 불교, 바른 불교, 정법 불교를 만나야 이게 이제 서로 소득이 있습니다. 진짜 우리 불자들에게 진짜 소득이 있는 거요. 방편은 우선 입에는 달콤할지 몰라도 그것은 큰 소득은 아닌거죠. 그래 이제 정말 정법을 이해해야 진짜 큰 소득이 있는거죠.
말하자면 밥 한 끼 그저 사주는 것하고 세세생생 뭐 평생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그런 큰~ 보물 덩어리를 하나 얻는 것하고 이 비교가 안되죠.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거요. 이제 그런 것을 이제 이 제자들이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은, 앞에서 비유로 든거와 같이 그러한 삶을 살았노라하는 그런 솔직한 고백이죠. 참 아주 극적인 장면이죠. 그래서 이『법화경』은 참 구석구석이 이야기할거리도 많고 재밌는 비유도 많고 교훈이 되는 점도 많고 그렇습니다.
45 世尊 我今 乃至實是菩薩 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 以是因緣
세존 아금 내지실시보살 득수아뇩다라사먁삼보리기 이시인연
甚大歡喜 得未曾有
심대환희 득미증유
世尊하 我今에 乃至實是菩薩로 得受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하고
세존이시여, 우리가 지금에 이에 실로 보살로서 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기록 얻은 것을 알고
以是因緣으로 甚大歡喜하야 得未曾有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매우 크게 환희해서 미증유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아주 솔직하게 500명 제자들이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이러한 것은 비단 500명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모든 불자들에게 다 해당되는 거죠.
그래 우리 도반 한 분은 그 그전 선방에 있을 때 보면은 하도 사사한 소리를 많이 해. 그 타고난 성품은 참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가지고 아주 삿된 그 생각이 있어. 그 자기 나름대로 뭐 삿된거 하나 이렇게 본 것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달콤하고 좋은가봐. 그 우리가 기탄없이 지적을 해주거든요. 그건 소견이 잘못된거다. 잘못된거다. 그 생각은 잘못된거다라고 그렇게 해주면 이 스님이 또 진실해. 사람이 아주 솔직해가지고 자기도 그것이 이 바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안다는 거요. 아는데 아 고게 고소한 맛이 있다는데, 달콤한 맛이 있어서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는 거요. 자기 얻은 소견에 대해서 달콤한 맛이 있어서 이게 쉽게 스스로 부정할 수가 없다는 거지. 그 솔직하게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구. 우리가 그냥 사정없이 지적하거든요. 그러면 이제 이 스님은 사람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이제“아 자기도 알긴 아는데 쉽게 버려지지가 않는다.”
그렇죠. 우리 불자들도 이제 그런 점에 대해서 갈등하는 일이 아주 많을거야. 대승불교를 안배우면 모를까, 공부해놓고 나니까 아 그다음에 또 이제 그동안의 그 자기가 익혀온 불교가 있거든 그 불교에 대해서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또 그야말로 이걸 또 최상의 불교라고 믿고 따를 수도 없고 또 그동안 공들여 온게 있고 투자한게 있으니까, 용기. 보살의 제일 덕목이 뭐라고? 용맹 그랬습니다. 하하 용기가 필요한 거죠.
그 다음에 이제 중송입니다.
46 爾時阿若憍陳如等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아야교진여등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阿若憍陳如等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그때 아야교진여 등이 이 뜻을 거듭 펴려고 게송으로써 설하대. 시 형식으로 이제 설하는 거죠.
47 我等聞無上 安隱授記聲 歡喜未曾有 禮無量智佛 今於世尊前
아등문무상 안은수기성 환희미증유 예무량지불 금어세존전
自悔諸過咎 於無量佛寶 得少涅槃分 如無智愚人 便自以爲足
자회제과구 어무량불보 득소열반분 여무지우인 변자이위족
我等聞無上 安隱授記聲하고
우리들은 들었습니다. 최상가는 편안한 그 授記聲 수기하는 소리를 듣고
歡喜未曾有하야 禮無量智佛이니다
미증유를 환희해서, 일찍이 있지 않던 것을 기쁘게 받아 들여서 한량없는 지혜의 부처님에게 예배드립니다.
今於世尊前에 自悔諸過咎니다
지금 부처님 세존 앞에 스스로 모든 허물들을 뉘우치대
於無量佛寶에 得少涅槃分호니
한량없는 佛寶에 조그만한 열반이라고 하는 그 부분을 얻었습니다. 그러니까 옛날에 자기가 알았던 그 불교입니다.
如無智愚人하야 便自以爲足이니다
그것은 마치 無智한 어리석은 사람과 같아서 곧 스스로 만족을 여겼습니다.
48 譬如貧窮人 往至親友家 其家甚大富 具設諸肴饍 以無價寶珠
비여빈궁인 왕지친우가 기가심대부 구설제효선 이무가보주
繫着內衣裏 默與而捨去 時臥不覺知 是人旣已起 遊行詣他國
계착내의리 묵여이사거 시와불각지 시인기이기 유생예타국
求衣食自濟 資生甚艱難 得少便爲足 更不願好者 不覺內衣裏
구의식자제 자생심간난 득소변위족 갱불원호자 불각내의리
有無價寶珠 與珠之親友 後見此貧人 苦切責之已 示以所繫珠
유무가보주 여주지친우 후견차빈인 고절책지이 시이소계주
貧人見此珠 其心大歡喜
빈인견차주 기심대환희
譬如貧窮人이 往至親友家하니
비유하자면, 앞에서 들었던 비유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친구 집에, 부자인 친구 집에 가가지고서
其家甚大富라 具設諸肴饍하며
그 집은 매우 큰 부자라. 여러 가지 그 안주와 반찬 등과 음식들을 베풀어서 베풀며
以無價寶珠로 繫着內衣裏하고
無價寶珠로써 속옷에다가 매어주고
默與而捨去하대 時臥不覺知라
묵묵히 주고는 가버렸다. 볼 일로 밖에 나갔다 이거죠. 그 때 그 사람은 누워가지고 잠에 취해서 알지를 못했더라.
是人旣已起에 遊行詣他國하야
이 사람은 이미 일어남에 遊行하면서 멀리 他國에 나아갔어.
求衣食自濟하니 資生甚艱難이라
의식을 구해서 스스로 그것을 제도하니 살아가기가 資生 살아가는 생활이 매우 어렵고 어려움이라.
得少便爲足하고 更不願好者하며
작은 것을 얻고 곧 만족을 여기고 다시는 더 이상 더 좋은 것을 원하지 아니했으며
不覺內衣裏에 有無價寶珠러니
내의 속에 있는 것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고, 無價寶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그런 것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더니
與珠之親友가 後見此貧人하고
그 구슬을 준 친구가 뒤에 이 가난한 사람을 보고
苦切責之已에 示以所繫珠어늘
아주 심하게, 苦는 아주 괴로울 고자니까, 아주 심하게“야이 등신아! 바보야! 이 멍청아! 네가 무슨 팔푼이냐!”이런 식으로 아주 뭐 그 표현할 수 있는데까지 한껏 그저 꾸짖고 욕하고 뭐라고 막 그냥 핀잔을 주고 하는 그런 것을 苦, 苦라고 해요. 苦
아주 괴롭게 심하게 간절히 책망한 뒤에, 그 말입니다. 아주 절절히 책망한 뒤에 그 사람에게 자기가 넣어준 그 보물을 구슬을 꺼내가지고 이렇게 보여주게된 거죠.
貧人見此珠하고 其心大歡喜라
그 가난한 친구가 이 구슬을 보고는 그 마음이 크게 환희했다.
참 아주 극적인 장면입니다. 이게 사실은‘우리가 아주 부족하다. 모자란다. 뭐가 어떻다. 뭐 나는 내 팔자는 어떻다. 내 신세는 어떻다.’이런 그 자기 처지에 대해서 우리가 불만족스럽게 여기고 있는데 사실은 그것보다도 우리 어떤 처지에 있든지간에 우리 개개인이 그~대로 우리 본성, 우리 심성, 나의 그 내 인격의 궁극적 차원에 있어서는 정말 뭐 부처도 부럽지않고 하나님도 부럽지 않고 세상의 어떤 거부장자도 어떤 대통령도 부럽지않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값지고 뛰어난 그런 그 존재라고 하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거요.
그래 貧人見此珠하고 가난한 사람이 이 구슬을 보고 이 보물을 보고 하는 것은, 말하자면 우리 본성에 대한 그러한 사실을 알고 그럼 뭐라고? 見性이죠. 그게, 其心大歡喜라. 그 마음이 크게 환희했다. 기쁠 수 밖에 없죠 뭐. 세상에 무엇을 얻은들 그보다 더 기쁘겠어요.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능가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세상 가치로써는 뭐 천 배, 만 배를 거기서 더 보탠다 하더라도 이 가치에 비교가 안되는데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그 가치에 사실은 눈을 떠야되고 설사 눈을 못뜨더라도 이러한 이야기를 자꾸 귀로 스쳐가는 이근공덕(耳根功德), 귀로 스쳐가는 그저 스쳐가고 말더라도 귀로 스쳐가는 이 사실이 정말 가치있고 값진거요. 그래서 이것은 이제 내가 가끔 말씀드리지만은 이러한 그 최상승의 법문은 마치 다이야몬드를 삼키는 거와 같아서, 다이야몬드는 삼키면 소화되는 것도 아니고 저~기 뭐 똥이나 어디 거름으로 아무리 돌아다녀도 그 다이야몬드는 결코 손상이 없고 그대로 그 가치를 가지고 있듯이, 이 궁극적 인간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이런 대승법문은 귀로 한 번 스치고만 가도 이거 이근공덕이라고 해서 그 어떤 귀에 달콤한 그런 그 법문보다도 천 배, 만 배 가치있다. 이런 이야기를 이제 경전에서 많이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떤 그 믿음이 있어야 되는 거요. 그런 소신이 있어야되요.
그래서『법화경』은 좋아할 수 밖에 없고,『법화경』의 내용이 아주 그 불교의 완결판이다. 이런 표현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49 富有諸財物 五欲而自恣 我等亦如是 世尊於長夜 常愍見敎化
부유제재물 오욕이자자 아등역여시 세존어장야 상민견교화
令種無上願 我等無智故 不覺亦不知 得少涅槃分 自足不求餘
영종무상원 아등무지고 불각역부지 득소열반분 자족불구여
富有諸財物하야 五欲而自恣이니다
이제 부자가 돼가지고서 여러 가지 재물을 소유하고 있어. 오욕락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我等亦如是하야 世尊於長夜에
우리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세존이 길고 긴 인생의 밤 長夜 긴 밤에
常愍見敎化하고 令種無上願이어늘
항상 우리를 불쌍하게 여겨서 우리를 교화해가지고서 최상가는 願을 심도록 했거늘
我等無智故로 不覺亦不知하야
우리들은 무지한 까닭에 깨닫지도 못하고 또한 알지도 못해서
得少涅槃分하고 自足不求餘니다
작은 열반의 분을 얻고는, 열반이라고 하는 아주 소승들이 얻는 아주 조그만한 거에요. 우리 불교에 막 귀의해가지고 뭐 어떤 소원, 작은 소원 성취한 그거하고 똑같습니다. 얻고는 스스로 만족하게 여겨가지고서 나머지를 더 이상 구하지 아니했노라.
그래 뭐 유치원만 나왔다하고는 좋다고 까부는거하고 똑같죠 뭐.‘아이고 나는 더 이상 초등학교도 다닐 것도 없다.’하고‘아 유치원 나왔으면 됐다.’하고 이런거하고 똑같은거야. 이게, 참 얼마나 안타까워요. 끊임없이 정진해야 되는거요.
50 今佛覺悟我 言非實滅度 得佛無上慧 爾乃爲眞滅 我今從佛聞
금불각오아 언비실멸도 득불무상혜 이내위진멸 아금종불문
授記莊嚴事 及轉次受決 身心徧歡喜
수기장엄사 급전차수결 신심변환희
今佛覺悟我하사 言非實滅度라하시니
그래서 부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覺悟케해서, 우리를 깨닫게해서 말씀하시기를 진실한 멸도, 진실한 열반이 아니다라고 그렇게 과감하게 말씀하셨습니다.
得佛無上慧하고서 爾乃爲眞滅이니라
부처님의 그 위없는 지혜를 얻고사 이에 그 眞滅을 삼았나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그 불교안에서 어떤 그 경지를 터득하더라도 거기에 만족할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가고 정진하는 그런 그 자세 그것이 이제 무엇보다도 필요한 거고, 그 자기의 그 작은 그 보물 얻은 것을 과감하게 스스로 부정할 수 있는 그런 용기가 있어야 되는거요. 그랬을때 발전하는 거지.
좋은 유치원에 다녔다고 그게 마음에 걸려가지고 내~ 그 유치원에서만 나이 한 살 더먹고 두 살 더먹고 그래도 내~ 그 유치원에만 맴돌고 그 유치원에만 간다면 그 꼴이 뭐겠습니까? 그런 사람 세상에 없잖아요. 하나도, 그런데 불교에 그런 사람이 많은거야. 불교안에는 내 그 유치원에 맴돌고 있는거요. 몇 년을 아니 몇십 년을 그렇게 맴돌고 있는거요.
我今從佛聞 授記莊嚴事와
우리는 지금 부처님으로부터 들었다 말이요. 뭘? 授記‘그대도 또한 부처다.’또한 이 사실 그것은 아주 장엄스러운 일이야. 授記인 莊嚴事와 장엄스러운 그 일과 그리고
及轉次受決하고 身心徧歡喜이니다
轉次 차례차례대로 수기하라는 그런 그 말하자면은, 뭐라고 할까? 비결같은거죠. 결정(決定) 수기하라는 그런 결정적인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을 듣고, 그러니까 1200명 그리고 500명이‘너희들이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너가 받고 그 다음에 이렇게 이렇게 하라.’그 다음 사람에게까지 수기주는 것을 다 부처님이 말해줬거든요. 그럼 이제 그 얘기를 우리가 안해주면은 이게 이제‘아 이건 부처님이 하는 일이지.’하고 말면은 이게『법화경』이 제대로 전해지는게 아니야.
‘부처님이 하는 일이지.’하고 말면은『법화경』을 제대로 이해한 것도 아니고『법화경』을 제대로 이해했다면은 과감하게『법화경』의 이치대로 아무리 말세라 하더라도 2000년, 3000년, 4000년 뭐 몇만 년이 흐른 뒤에라도『법화경』의 원리대로‘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그런 그 확신을『법화경』에 근거해서 심어줘야되는 거요. 심어줘야되고 그것을 이해하도록 해줘야하는 것입니다. 이게 그거에요.
轉次受決이라고 하는 것이 차례대로 차례대로 또 우리 차례되면 우리가 하고 다음 또 세대가 되면 다음 세대 차례에서 또 이야기해줘. 그래서 어떤 그 결정, 결정적인 그런 그 가르침을 받고 받는 것을 이제 듣고는 몸과 마음이 아주 크게 기쁘게 됐습니다. 그런 이야기죠.
그 다음 또 이게 이제「수학무학인기품」같은 내용이지요. 같은 내용「수학무학인기품」도 같은 내용인데 잠깐 이제 보면은 學無學 授는 준다는 뜻이고 學 배우고 있는 사람. 우리처럼, 無學은 이제 다 배운 사람. 아예 못배운 사람도 無學이죠. 여긴 이제 그게아니고 다 배운 사람. 다 배운 사람이나 아예 못배운 사람이나 사실은 다 無學이여. 배우고 있는 사람이나 다 배운 사람이나 간에 모두 수기를 주는, 준다. 여기서 無學이라고 하는 소승적인 입장에서입니다.
요건 인제 아난존자 수기장이야.‘아난존자 수기장’아난은 말하자면은 그 불교 역사에서 가장 총명하고 또 얼굴도 제일 잘났고, 전하는 바에 의하면은 그렇게 돼있습니다. 그런 분이 이제 아난존자야. 아주 대단한 아주 그 제자지요. 아난존자는 워낙 총명해서 부처님이 설하신 것을 그대~로 기억하고 청중들, 법회 청중들도 전부 그날 누가 누가왔는지 다 그냥 외워가지고 나중에 경전을 결집할 때 그 얘기를 다 하는거야. 그럼 다른 선배들이 듣고는“아 그랬었다. 그랬었다.”하고 인정을 해서 그래서 이제 경전으로 남아있게된 그런 아주 그 제자입니다.
그리고 25년간 자기가 25년간 부처님 비서노릇을 했어요. 부처님 시봉을 25년간이나 했으니까 제일 오래했어요. 그 외에 인제 다른 사람들이 바꿔가면서 했는데 아난존자, 딴 사람은 시봉했다는 이야기 별로 없어요. 그런데 아난존자는 하도 오래했고 또 그 역할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래도 아난존자가 부처님 시봉을 오래했다고 하는 것은 뭐 어느 경이든지 잘나타나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1 爾時阿難 羅睺羅 而作是念 我等每自思惟 設得授記 不亦快乎
이시아난 라후라 이작시념 아등매자사유 설득수기 불역쾌호
爾時阿難과 羅睺羅가 而作是念하대
그때 아난과 라후라가, 라후라는 그 부처님의 아들이죠. 이러한 생각하대
我等每自思惟를 設得授記면
我等이 매양 스스로 생각하기를‘說得授記하면’요건 이제 가령 이런 뜻입니다. 設자가, 베풀 선자. 가령 수기를 얻게 된다면은
不亦快乎아하고
그 앞에서 500명도 주고 1200명도 주고 또 교진여도 주고 그랬잖아요. 그런데 이게 누굽니까? 아난존자는 부처님께 제일 시봉을 오래한 공이 많은 사람이야. 그리고 또 라후라가 누굽니까? 라후라는 부처님 아들이니까, 수기주기로 하면 딴 사람 다 제쳐놓고 자기 아들부터 줘야 될거 아니요. 그런데 저 앞에서 사실은 전체를 다 줬어. 500명속에 안들어갔을리도 없고 1200명속에 안들어갈리도 없는데도 또 이 사람들은 그래도 어딘가 좀 덜 떨어진 그런 인간적인 심리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뒤에 이제 또 이제 부처님의 부인이었던 보살하고 그 다음에 또 부처님을 키웠던 마하파사파제 비구니도 또 이제 속으로 섭섭해가지고 측은한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아 앞에서 수기 함께 다해줬는데 너희는 왜 그렇게 얼굴이 울상이 돼서 그래 있느냐?”이런 이야기까지 이제 뒤에 나와요. 참 그 인간적인 그런 심리까지도 이『법화경』은 아주 표현을 잘하면서 또 아주 최상승의 그 아주 그 고준한 그런 그 법문을 또 하고 하는 그런 것을 이제『법화경』에서 읽을 수 있는데 그래서『법화경』공부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고 또 그 미처 앞에서 몰랐던, 과거에 볼때는 몰랐던 것을 또 이제 발견하게 되고 그런게 있습니다. 참 그래서 정말『법화경』은 위대한 경이다라고 하는 것을 새삼 알게됩니다.
그래서 여기 아난존자, 라후라 둘이 같이 등장하잖아요? 우리도 수기를 받을 것 같으면 참 좋을텐데, 앞에서 다 줬어. 사실은, 그보다 더 앞에 나가면은 뭐라고?「방편품」에서 아주 큰 수기줬잖아요.“나무불”한 마디만 해도 다 개이성불도(皆已成佛道)다. 다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그보다 더 큰 수기가 어딨어요? 세상에, 부처님 앞에서 절 한 번해도 皆已成佛道다. 다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그 다음에 부처님한테 절도 하기 싫으면 손 한 번 번쩍 이렇게 장난삼아 들어도 그것으로써도 다 이미 불도를 이루어 마쳤다. 이런 큰 법문을 했습니다. 이보다 더 큰 법문은 없어요. 세상에, 그보다 더 큰 수기가 어딨어요? 그야말로 진짜 수기지. 거기 깊은 뜻이 있어요. 정말, 정말 깊은 뜻이 있는데
그런 소리 다 들어놓고도 아난존자, 라후라 이 좀 여기와서 이제‘아이고 나도 좀 이름 불러가지고 수기를 주면 얼마나 좋겠나?’이런 생각을 하고서
2 卽從座起 到於佛前 頭面禮足 俱白佛言
즉종좌기 도어불전 두면예족 구백불언
卽從座起하야 到於佛前하야 頭面禮足하고 俱白佛言하사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앞에 이르러가지고 머리로써 부처님 발에다 예배를 떡 하고 함께 같이 합창으로 이야기를 하는 거요.
3 世尊 我等於此 亦應有分 唯有如來 我等所歸 又我等 爲一切世間
세존 아등어차 역응유분 유유여래 아등소귀 우아등 위일체세간
天人阿修羅 所見知識 阿難常爲侍者 護持法藏 羅睺羅是佛之子
천인아수라 소견지식 아난상위시자 호지법장 라후라시불지자
若佛見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者 我願旣滿 衆望亦足
약불견수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자 아원기만 중망역족
世尊하 我等於此에 亦應有分이니
세존이시여, 우리들이 여기에서 또한 말하자면 수기를 받을 만한 분이 있다 이 말이야.
왜? 교진여도 받고 500명도 다 받는데, 내가 누굽니까? 아난존자 스스로 자기 자랑하는 거지. 라후라도‘내가 누굽니까? 내가 꼭 여러 사람앞에 공개해서 밝혀야 압니까?’이런 뜻이 숨어있는 거요. 亦應有分이란 말이, 또한 응당히 분이 있다. 아 나 이름 한 번 불러주면 어디 덧납니까? 이런 식이야. 이게 결국은 이제 덜 떨어져가지고
唯有如來는 我等所歸요
오직 여래는 우리들이 귀의하는 바요.
又我等이 爲一切世間天人阿修羅의 所見知識이며
또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은, 이 말이요. 둘이 아무래도 친하겠죠. 부처님 아들에다 부처님 시자에다 그러니까 뭐 자주 만나도 제일 자주 만날 것이고 그건 이 사람, 세상 사람들이 다 모두다 알고 있다 이 말이여. 보고 아는 바다 이 말입니다. 내 우리들의 그 입장을 세상 사람들이 다 안다 이 말이여. 그러면서 여기서 밝히네.
阿難常爲侍者하야 護持法藏하고
아난은 항상 시자가 돼가지고 法藏을 護持했다. 법의 창고를 보호해 가졌다.
이게 이제 아난존자는 전~부 기억을 다 해가지고 나중에 부처님 열반한 뒤에 결집할 때 다시 부처님처럼 외워냈잖아요. 그래가지고 처음에 저기 저 500아라한들 그 굴에다, 칠엽굴(七葉窟)에다 모아놓고 그 인도 성지순례한 사람들 그 굴에 가보기도 하고 그러는데, 모아놓고 거기 이제 부처님이 설하신 내용을 다시 이제 거기서 이제 기억해내서 이야기하죠. 그게 護持法藏입니다.
羅睺羅是佛之子라
그리고 여기 나온 라후라는 부처님의 아들이다 말이야.]
아 이렇게 너무나도 뚜렷한 그런 그 불교세계에 그 인물들인데‘아 우리가 개인적으로 수기를 안받는다면 우리 체면도 말이 아니다 이거여.’
若佛見授阿耨多羅三藐三菩提記者인댄 我願旣滿하고 衆望亦足이니다
만약 부처님께서 최상의 깨달음에 대한 기록을 주는 것을 입게 된다면은, 부처님으로부터 그걸 입게 된다면은 우리들의 소원이 이미 원만하고 대중들의 바램도, 대중들이 뭐 바라고 있는지 어쩐지 그건 알 바 없는데도 이렇게 대중을 파는거죠. 대중들의 바램도 또한 만족할 것입니다. 사실 분위기야 이해가 안가는 바는 아니죠. 만족할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이제 2000명이 수기를 청하는 거야. 아 아난존자하고 라후라만 떡 나와서 이제 수기를 청하니까
4 爾時學無學聲聞弟子二千人 皆從座起 偏袒右肩 到於佛前 一心合掌
이시학무학성문제자이천인 개종좌기 편단우견 도어불전 일심합장
瞻仰世尊 如阿難羅睺羅所願 住立一面
첨앙세존 여아난라후라소원 주립일면
爾時學無學聲聞弟子二千人이 皆從座起하야 偏袒右肩하고
그때 學無學聲聞弟子二千人이, 그랬습니다. 배우는 사람 또 다 배운 사람 성문 제자 2000명이 곧 그 자리로부터 일어나서‘오냐 느그 일어나면 우리도 뭐 그냥 있겄냐? 앉아 있을 수 없다.’하고 그냥 2000명이 한꺼번에 다 일어나가지고서, 안그래도 앞에서 500명이 일어나가지고 수기 받아가지고 지금 뭐 마음이 부풀어있는데,
그래서 卽從座起해서 偏袒右肩하고 오른쪽으로 이제 옷깃을 다 여미고는
到於佛前하야 一心合掌하고 瞻仰世尊하대
부처님 앞에 이르러서 一心合掌하고 세존을 우러러보대
如阿難羅睺羅所願이라하고 住立一面이러라
아난과 라후라의 소원이다. 이것은 이제 아난과 라후라의 원한 바와 같다. 아난존자와 라후라가 그렇게 수기를 받고 싶어하니 우리도 똑같다 말이야. 如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아난과 라후라의 소원과 같다라고 하고 한 쪽에 가서 떡 이렇게 아주 버티고 데모하듯이, 2000명이나 되니까 뭐 데모하는 기분이죠. 머리에 뭐 띠는 둘렀는지 안둘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하여튼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는거야. 이러니
5 爾時佛告阿難 汝於來世 當得作佛 號山海慧自在通王如來
이시불고아난 여어래세 당득작불 호산해혜자재통왕여래
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
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
當供養六十二億諸佛 護持法藏然後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당공양육십이억제불 호지법장연후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爾時佛告阿難하사대 汝於來世에 當得作佛하대
그때 부처님이 아난에게 고하사대 그대는 내세에 마땅히 부처를 짓대
號山海慧自在通王如來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이라
號는 山海慧自在通王如來 應供正遍知明行足善逝世間解無上士調御丈夫天人師佛世尊이라.
그래 뭐 사실은 이렇게 일일이 호명할 필요도 없는데 또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니까 부처님도 이제 아난존자에게 개인적으로 그렇게 이제 그 수기를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當供養六十二億諸佛하야 護持法藏然後에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고
마땅히 六十二億諸佛에게 공양올려서 法藏을 護持하고 그런 연후에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는다.
6 敎化二十千萬億恒河沙諸菩薩等 令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
교화이십천만억항하사제보살등 영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
敎化二十千萬億恒河沙諸菩薩等하야 令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하리라
그리고 二十千萬億恒河沙諸菩薩等을 교화해가지고서 그들을 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이루게 할 것이다.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게 할 것이다.
7 國名常立勝幡 其土淸淨 瑠璃爲地 劫名妙音徧滿
국명상립승번 기토청정 유리위지 겁명묘음변만
國名常立勝幡이요 其土淸淨하야 瑠璃爲地하며 劫名妙音徧滿이라
국명은 常立勝幡이고 국토는 청정해서 유리로 땅이 되고 劫의 이름은 妙音徧滿
8 其佛壽命 無量千萬億阿僧祗劫 若人 於千萬億無量阿僧祗劫中
기불수명 무량천만억아승지겁 약인 어천만억무량아승지겁중
算數校計 不能得知 正法住世 倍於壽命 像法住世 復倍正法
산수교계 불능득지 정법주세 배어수명 상법주세 부배정법
其佛壽命은 無量千萬億阿僧祗劫이라
그 부처님 수명은 無量千萬億阿僧祗劫이다.
若人이 於千萬億無量阿僧祗劫中에 算數校計로 不能得知며
만약에 어떤 사람이 千萬億無量阿僧祗劫 가운데, 말하자면은 그 부처님 수명을 그 어떤 사람이 수학을 잘하는 사람이 산수로써 헤아린다 하더라도 능히 그 수명을 알 수가 없다.
그랬어요. 이건 이제 무슨 뜻인고 하면은? 사실은 우리 생명의 영원성 또 그 우리 공간적으로는 또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무한광대성, 시간적으로는 영원성 이것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正法住世는 倍於壽命하고 像法住世는 復倍正法이니라
또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수명보다 배가 되고 상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은 정법이 세상에 머무는 것보다도 또 배가 된다.
9 阿難 是山海慧自在通王佛 爲十方無量千萬億恒河沙等諸佛如來
아난 시산해혜자재통왕불 위시방무량천만억항하사등제불여래
所共讚歎 稱其功德
소공찬탄 칭기공덕
阿難아 是山海慧自在通王佛이
아난아 이 山海慧自在通王 부처님이
爲十方無量千萬億恒河沙等諸佛如來의 所共讚歎이며 稱其功德이니라
十方無量千萬億恒河沙等諸佛如來의 다 같이 칭찬하고 찬탄하는 바가 돼서 그 공덕을 일컬을 것이니라.
그래서 이제 아난존자하고 라후라하고 이렇게 이제 둘이 나와가지고 떼를 쓰니까 또 우는 아이에게 밥준다고 또 이렇게 수기를 주는 그런 내용이 여기 있고 또 뒤에 또 라후라에게 또 수기를 주는 이야기가 또 이어집니다.
요 그 다음에는 이제 아난존자는 뒤에 이제 중송이 있는데, 중송을 이제 마져 보죠.
10 爾時世尊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세존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世尊이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니라
그때 세존이 이 뜻을 거듭 펴려고 게송으로 설해 말하대
11 我今僧中說 阿難持法者 當供養諸佛 然後成正覺 號曰山海慧
아금승중설 아난지법자 당공양제불 연후성정각 호왈산해혜
自在通王佛 其國土淸淨 名常立勝幡 敎化諸菩薩 其數如恒沙
자재통왕불 기국토청정 명상립승번 교화제보살 기수여항사
我今僧中說하노니 阿難持法者라
내가 승려들 가운데 이야기하노니, 아난은 법을 가지는 사람이다.
當供養諸佛하고 然後成正覺하면
마땅히 諸佛에게 공양올린 연후에 정각을 이루며
號曰山海慧自在通王佛이라
호를 가로되 山海慧自在通王佛이라 하니라.
其國土淸淨하대 名常立勝幡이며
그 국토는 청정하대 이름이 常立勝幡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질 것이다.
‘항상 승리의 깃발이 서있다.’이 뜻이죠. 常立勝幡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항상 승리의 깃발이, 말하자면 법으로써 왜냐? 법을 의지하는 분이니까 진리의 깃발 그런 뜻입니다. 진리의 깃발이 항상 서있는 그런 나라다.
敎化諸菩薩하대 其數如恒沙리라
여러 보살들을 교화하대 그 수는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고
12 佛有大威德 名聞滿十方 壽命無有量 以愍衆生故 正法倍壽命
불유대위덕 명문만시방 수명무유량 이민중생고 정법배수명
像法復倍是 如恒河沙等 無數諸衆生 於此佛法中 種佛道因緣
상법부배시 여항하사등 무수제중생 어차불법중 종불도인연
佛有大威德하야 名聞滿十方하며
부처님은 큰~ 위덕이 있어서 그 이름이 시방에 가득 찰 것이다.
壽命無有量이니 以愍衆生故라
그 수명은 한량이 없으니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이다.
正法倍壽命하고 像法復倍是며
정법은 수명보다 배가 되고 상법은 또 정법의 배가 된다.
如恒河沙等 無數諸衆生이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無數諸衆生들이
於此佛法中에 種佛道因緣하리라
이 불법 가운데서 가지 가지 도로써 인연을 지을 것이다. 種佛道因緣 불도의 인연을 짓게 될 것이다. 불도의 인연을 짓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제 또「수학무학인기품」앞부분 저 아난존자와 라후라가 일어나서 수기달라고 떼쓰고 또 거기 맞춰서 아난존자에게 수기를 주는 그런 내용이 이야기됐습니다.
누구에게 어떤 뭐 방편적인 또 형식적인 그야말로 형식적인 수기죠. 그런 수기를 주더라도 수기의 근본취지는 제가 말씀 드렸든 그러한 그 우리 인간의 궁극적 차원을 일깨워주는 것이고‘그 우리 인간의 궁극적 차원은 그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사실’우리가 겉으로는 지금 잠깐의 이러이러한 인연에 의해서 이러이러하게 살아가고 있지만은 우리 인간의 개개인의 궁극적 차원은 그대로 불성인간(佛性人間)이고 고스란히 부처라고 하는 이 사실이에요. 이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말하자면은 수기다라고 하는 이 대의명분(大義名分) 수기의 아주 가장 큰 뜻 이것을 놓치면 안되요. 이게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법화경』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 저 3월 강의 시간이 다음 2금 두 번째 금요일도 강의를 하고 3금은 이제 사경 뭐여? 참선하고 4금은 사경하는거. 요 조금 변화가 있으니까 차질없기 바랍니다. 다음주 금요일도 또한 이 강의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이제 내가 늘 나눠드리는 글씨 하나씩 나중에 방에서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一切之心(일체지심)...일체를 아는 지혜의 마음...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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歡喜未曾有하야 禮無量智佛이니다..._()()()_
나무묘법연화경...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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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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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化我等하야 令發一切之心커늘 而尋廢忘하고 不知不覺하며..우리들을 교화해서 우리로 하여금 일체 지혜의 마음을 발하게 했거늘 곧바로 잊어버리고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며..] [資生이 艱難하야 得少爲足하나 一切智願은 猶在不失이니라..살아가는 일이 간난하야 적은 것을 얻어서 만족을 여기나 일체의 지혜와 원은 (일체의 지고한 가치는)잃어버린 적이 없다.]..고맙습니다. _()()()_
佛性人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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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수명은 한량이 없으니 중생들을 불쌍히 여긴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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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우리는 "아주 부족하다,모자란다,내 신세가 어떻다,"하면서 자기 처지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데 우리 내면의 본래의 가치는 너무나 값지고 뛰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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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 나무묘법연화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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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_()()()_
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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