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 중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 라는 것이 있다. 찜찜한 일을 당했을 때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을 경계하면서 사용하는 속담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인리히 법칙’을 한마디로 하면 바로 ‘설마가 사람 잡은 이야기’ 라고 할 수 있다.
■ 하인리히 법칙
1920년대 미국의 한 보험회사의 직원이던 허버트 하인리히(Herbert W. Heinrich)는 수많은 통계를 다루던 중 그 통계 속에 하나의 법칙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약 5천 건에 달하는 노동재해를 통계분석 하면서 그는, ‘대형사고 한 건이 발생하기 이전에 이와 관련 있는 소형사고가 29회 발생하고, 소형사고 이전에는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사소한 징후들이 300회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 1 대 29 대 300 법칙은 후에 ‘하인리히 법칙’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 내용을 토대로 하여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 이라는 책이 집필되었다. 이 책은 1980년에 5판까지 발간될 정도로, 산업재해 예방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인리히 법칙은 결국 대형사고가 터지기 전에는 항상 어떤 신호(signal)가 있다는 이론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사소한 일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면 대형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부에서는 하인리히 법칙 뿐만 아니라 베어링스 은행 파산사례, 생수회사 페리에의 위기 사례 등 다양한 실제 경영사례를 언급하면서 실패로부터 교훈을 추출하는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이어지는 2부는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것으로부터 성공의 씨앗을 발굴하는 이른바 ‘역(逆) 하인리히 법칙’에 대한 이야기이다. 결국 이 책은 ‘실패’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디테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실패는 성공의 씨앗
1등만이 기억되고, 성공신화가 잘 팔리는 시대에 만난 뜻밖의 실패 이야기이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렇듯이 실패에도 양면성이 있다. 다빈치의 스케치, 피카소의 습작,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은 엄밀한 관점에서 보면 완성에 이르지 못한 실패작이다. 예술의 세계에서는 이런 작품들처럼 실패가 또 하나의 훌륭한 창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가들과는 달리 보통 사람들은, 특히 리더들은 실패를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책임이 클수록 실패에 뒤따르는 비용, 즉 실패코스트도 너무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성공만을 보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성공했는지 알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얼마나 실패했는지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실패를 완벽하게 피해가는 성공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실패는 성공의 반대말이 아니라 성공의 씨앗이다.
저자는 마린보이 박태환의 사례를 통해 실패야말로 성공의 씨앗임을 주장하고 있다. 박태환은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어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최연소 선수로 참가했다. 그런데 그는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그만 탈락하고 말았다. 그것도 채 겨뤄보지도 못하고 실격당한 것이다. 심판의 ‘준비’ 라는 구령을 ‘출발’로 착각해 물속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분에 못 이겨 화장실에서 펑펑 울었던 박태환은 이를 계기로 꾸준히 스타트 연습을 했고, 마침내 세계 최고 수준의 스타트 반응 속도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4년 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호주의 해켓, 미국의 젠슨 등 쟁쟁한 선수들을 제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은 실패를 패배시킨 것이다.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실패에 침묵하거나 이를 분식하거나, 또는 실패에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실패를 곱씹고, 실패를 패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실패의 매커니즘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 실패를 예고하는 300번의 징후를 놓치지 마라
다시 하인리히 법칙으로 돌아가보자. 역사를 살펴보면, 사소한 일을 외면했다가 큰 봉변을 당한 사례가 너무나 많다. 1941년에 하와이제도 진주만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12월 8일 오전 6시, 레이더를 관찰하던 병사 두 명은 평소에는 나타나지 않던 수상한 항적을 발견했다. 병사들은 즉각 지휘부에 특이동향을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지휘부는 이 보고를 귓등으로 흘려 버리고 말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나자 레이더 스크린이 이상한 항적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상황은 심각하게 흘러갔지만, 여전히 이 보고는 묵살되었다. 레이더의 오류나 새떼의 이동이겠거니 했던 것이다. 심지어 오클라호마 함상에 있던 병사들조차 새카맣게 날아오는 일본군 비행기들을 보고, “아군 비행사들이 곡예비행을 연습하는군” 하면서 한참을 편안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첫 보고가 있은 후 거의 두 시간 동안 아무 대응도 하지 않은 결과는 너무나 참혹했다. 군함 18척이 침몰하고, 항공기 188대가 파괴되었으며, 2,430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었다. 유명한 진주만 공습 당시 일어난 실제 상황이다.
저자는 이같은 비극이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주장하며, 생생한 실제 경영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타이타닉호 침몰, 엔론 몰락, 엑손발데즈호 기름유출사고, 생수회사 페리에의 리콜 사건 등 경영학 교과서에서 많이 접해왔던 사례 뿐만 아니라, 삼풍백화점 붕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고 등 실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서 우리가 경험했던 사례들까지 거침없이 다루고 있어서 생동감을 더한다. 그리고 저자는 책의 절반을 할애해서 실패의 징후를 찾아내고 실패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18가지의 지혜를 알려주고 있다. 요약하면, 실패를 학습하고 보급하고, 심지어 창조적 실수를 조장하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 실패를 조장하라
특히 실패를 조장하라는 용감한 주장이 인상적이다. 새로운 창조와 혁신 과정에서는 마치 그림자처럼 실수와 실패가 따라다닌다. 기업들은 이런 실수와 실패가 내일의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보상을 받는 사람은 새로운 시도를 하다가 실패한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다 아는 전형적인 방법으로 실패 없이 일을 추진한 직원들인 경우가 많다. 기업이 실패를 실패로만 바라보고 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패를 겪었을 때, 그 실패를 ‘걸림돌’로 여기지 않고 ‘디딤돌’로 바라보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리더의 용기이다.
‘꿈의 힘을 믿는다(The Power of Dream)’ 라는 슬로건을 가진 기업, 혼다를 보자. 혼다에는 ‘올해의 실패왕’이라는 제도가 있다. 혼다에서는 매년 가장 큰 실패를 한 연구원을 뽑아서 실패왕으로 삼고, 100만 엔의 상금을 준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실패왕이야말로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가 내건 ‘꿈의 경영’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패를 용서하는 수준을 뛰어넘어서, 혼다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꿈에 도전하도록 직원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실패왕에게 상을 줌으로써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은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혼다에 필요하지 않다.” 라는 창업주의 철학을 직접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오토바이를 만들던 혼다가 세계적인 수준의 자동차를 만들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로봇 아시모를 만들어냈다. 또 이제 심지어 비행기까지 개발하고 있다. 다른 기업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혼다의 놀라운 변신과 창조력은 모두 이런 기업문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 디테일을 통해 300개의 성공씨앗을 심어라
책의 후반부는 실패 이야기라기보다는 도전과 발상, 그리고 창조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굳이 전반부를 읽지 않아도 흐름상 큰 무리는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전반부에서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꾼 후 후반부를 읽는다면 한결 수월한 책읽기가 될 것이다. 큰 실패 전에는 이를 예고하는 사소한 신호가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뒤집어보면, 사소한 성공이 모여서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다는 발견을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역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명명하면서 사소한 것들의 위력, 즉 디테일의 힘을 강조한다. 디테일의 위력을 잘 설명하는 단적인 사례가 바로 과학수사이다. CSI 라는 미국 드라마를 봐도 알 수 있듯이 과학수사는 디테일에서 시작해서 디테일로 끝나는 영역이다. 3년 전에 씹다 버린 껌에서 DNA 정보를 채취해 성폭행범을 검거하고, 범인이 무심코 남긴 족흔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사소한 흔적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 다시 말해 얼마나 디테일하게 증거를 수집하느냐에 따라 범죄해결 여부가 결정된다. 왜냐하면 범죄현장에서는 ‘사소한 것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진리가 통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소함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을 12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여준다. 꼼꼼한 관찰과 기록, 그리고 습관이야말로 큰 성공을 만드는 밑바탕이라는 주장이다. 당연한 주장이고 새로울 것이 없는 이야기 같지만, 풍부한 사례들이 붙어 있어서 마음에 와닿는 강도가 다르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사례로 대표적인 것을 하나 소개하면, 요즘 부상하는 학문 분야 중 생체모방공학(biomimetrics)이 있다. 의생학이라고도 하는 이 학문의 핵심은 생체의 원리나 메커니즘을 이용해 공학적 난제를 풀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배의 유선형 디자인은 물고기의 몸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철사에 날카롭게 자른 철사를 감아 만든 철조망은 양치는 목동이 장미 가시에서 힌트를 얻어 만든 것이다. 새는 활공할 때 날개를 비틀어 비행 방향을 바꾸는데, 라이트 형제는 바로 새들의 활공 모습을 보고 비행기 방향전환 방법의 해법을 찾았다. 이순신 장군이 거북의 등에서 착안해 거북선을 제작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우리는 주위를 무심코 지나치곤 한다. 하지만 사실 우리 주위에 포진해 있는 수많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무한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생체에서 아이디를 얻어서 만들어진 히트상품들, 예를 들면 상어의 피부에서 힌트를 얻은 전신수영복, 사물에 잘 들러붙는 엉겅퀴에 착안해 만들어진 벨크로 등은 사소한 것을 놓치지 않은 결과물이다. 디테일이 만들어낸 축복이다.
■ 반복적 실수, 치명적 실패 그리고 창조적 실패
실패와 실수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복적 실수를 곱씹어보고 퍼뜨리고 공유하면, 치명적 실패를 예방할 수 있다. 그리고 창조적 실패를 권장하면서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 큰 성공의 열매를 얻을 수 있다. 멋진 실패 속에서 위대한 창조의 싹이 돋아나는 법이다. 온 국민이 불황에 고통 받는 이 시점에서 실패의 무거운 그림자를 떨쳐 버리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평범한 성공이 아니라 멋진 실패를 축하하는 조직! Just do it!이 강조되는 조직! 또 용감한 도전자가 넘쳐나는 조직을 만들고 싶은 분들에게도 이 책 ‘하인리히 법칙’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