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
시작부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인것 같다.
특히 불평등 문제와 순환경제를 통해(혹은 사회적 경제) 진정한 번영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제시하는 그런책인듯 싶다.
01. 읽어버린 번영(13)
Prosperity without growth~
번영이란 모든 일이 우리의 희망과 기대대로 순조롭게 풀려나가는 것~
번영이 경제성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 가족과 친구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모두 비참할 정도로 궁핍한 상황에 빠져있다면 나 개인의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한들 나에게 큰위안이 되지 못할 것이다."
"번영을 실현할 믿음직한 탄탄한 메커니즘(장치, 사회적 규범, 수단 등)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책의 목적은 이시대에 맞닥트린 가장 큰 문제에 대해 실행 가능한 답을 찾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가용 자원이 줄어들고 있고 환경의 절대적인 한계와 마주하고 있으며 '빈곤의 바다' 위에 '번영의 섬들'이 떠 있는 형국이라 할수 있다.
아주 열악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이 겪는 혹독한 고난이 사회 전체에 부작용을 낳고 있다(K형 성장).
<스턴보고서, 2006>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당장 GDP의 아주 적은 일부(대략 GDP1%)의 비용을 들이면 시간이 흐른뒤 생길 더 큰 손실(GDP의 20%)을 막을 수 있다고 함.
번영은 물질적 이해관계를 넘어선다. 번영은 우리 삶의 질과 우리 가족의 건강과 행복 안에서 피어난다. 번영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좋아지고 사회에 대한 신뢰가 높아질때 그 안에서 피어난다. 번영은 우리가 사회생활에 참여함으로써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02. 무책임의 시대(34)
국가의 전략이 불안정해 지면 많은 사람들이 지속해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험에 빠진다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그런 위험은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닥친다. 번영은 고사하고 돈을 빌려서 써버리게 하는 상황이 그들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조지 소로스는 <금융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 The New Paradigm for Financial Markers>이라는 책에서 자신이 금융시장의 수퍼버불이라고 불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은 유동성을 증가시켜 소비를 진작하려는 일련의 경제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함. 시장은 불한당 같은 개인들의 독자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붕괴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경제성장을 자극하기 위한 정책들이 경제침체를 불러온 것이다. 성장 그 자체가 시장을 붕괴시킨 것이다.
성장이 자원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이 책이 가장 중요하게 삼고 있는 주제다. 경제위기가 이와 관계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무책임의 시대는 우리가 오랜 기간 물질계의 한계를 눈여겨 보지 못했음을 증명해 준다. 이런 무책임은 우리에게 천연자원을 보호하고 생태계 파괴를 줄일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무능력 때문에 금융시장을 통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생태부채는 금융부채만큼이나 우리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03. 번영 다시 정의하기(56)
기후변화, 생태환경 악화, 자원부족이라는 유령은 금융시장의 실패와 경제침체를 불러왔다. 무언가 다른 시도들이 필요한데 그 기본 출발점은 소비증대애 기대지 않고 이룰 수 있는 번영에 대해 일관성 있는 개념을 세우는 것이다(새로운 번영에 대한 재개념화).
대부분 번영이 물질적 차원과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물질자원, 즉 음식과 식수 또는 의류와 주거공간 등이 부족한데도 우리가 번영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안전 역시 중요한 요소다.
인류는 번영을 위해서는 물질적 충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번영은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차원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 우리가 잘 살아간다는 것은 사랑을 주고받고 동료에게 존중받아 즐거움을 느끼고, 사회에 소속감과 믿음을 가지는 우리의 역량과 관계된 것이다.
부유함으로서의 번영prosperity과 효용으로서의 번영flourishing - 물질적 만족(양적만족 극대화), 상품이 주는 만족감(효용), 그러나 한계효용체감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 자기실현 능력으로서의 번영.
04. 성장의 딜레마(73)
소득은 행복을 이루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득은 절대 수준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비교할 때 많고 적음, 즉 상대적인 소득 수준이다.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소득 격차가 더욱 심한데, 그런 사회에서 소득의 많고 적음은 사회적 지위에 심각한 차이를 불러일으킨다. 소득 수준은 직접적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때로는 권위와 권력과 계급까지 나타낸다.
에브너 오프너는 높은 사회적 서열 순위는 일종의 내적 만족감을 불러온다. 이는 높은 기대수명과 양호한 건강상태를 이루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봄. 이 주장은 불평등이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준다는 설득력 있는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예로 영국의 여성의 건강수명 기대치는 하위 10% 사람들이 상위 10% 사람들보다 16년 더 짧은 것으로 나타남).
현대 경제는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원활한 순환 매커니즘이 경제를 더 높은 성장으로 이끈다. 그러나 소비증가 추세가 멈추면, 구 시스템은 점차 붕괴되기 시작할 것이고 마침내 인간의 성취에 큰 타격을 줄 것이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생계를 위협받게 된다. 역설이 존재하는데 성장기반 경제에서는 성장을 통해 안정을 이룬다. 그러나 자본주의 모델에서는 지속적인 안정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자본주의 모델 고유의 동역학은 팽창과 붕괴 두 국면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향해 움직이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장의 딜레마'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지금과 같은 형태로는 그러하다. 자원소비의 급증과 환경비용의 증가는 사회적 안녕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불균형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음은 탈성장은 불안정하다. 적어도 현재의 조건 아래서는 그러하다. 소비 수요의 감소는 실업증가와 경쟁력 하락, 침체의 악순환을 불러온다.
05. 디커플링의 신화(93)
성장의 딜레마에 대한 기존의 반응은 디커플링decoupling(커플링의 반대개념으로 탈동조화를 뜻하는 의미)은 생산량이 증가하더라도 자원의 소비나 환경파괴는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고 더 낮은 증가율을 보이거나 아니면 오히려 절대적으로 더 감소하는 관계를 가리킴. 이것은 경제적 산출은 자원처리량에 점차 덜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고 이런 식으로 생태 한계를 고려하며, 또는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성장이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상대 디커플링'과 '절대 디커플링'을 구분해야 한다. 상대 디커플링은 경제적 산출 단위당 생태집약도의 감소를 가르킨다. 이렇게 되면 자원의 소비량은 GDP에 비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자원의 소비는 증가할 테지만 그 추세는 GDP 중가보다는 느려진다는 의미이다. 다시말해 환경을 덜 파괴하면서 더 많은 경제활동을 하는 것, 더 적은 자원을 투입하고 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키면서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반면 자원소비량이 절대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을 절대 디커플링이라고 한다.
디커플링은 성장의 딜레마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다. 끊임없이 커지는 자원소비량은 경제성장의 추동력으로 작용한다. 산업생태학자 로버트 에이리스가 지적했듯이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이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 처럼, 소비는 성장을 부추긴다. 그러나 성장주의자들은 이런 관계가 몰고 올 결과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탄소감축은 생태투자를 통해 실현하고자 하는 여러 가지 목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밖에도 자원효율성, 자원 대체, 사회 기반시설의 전환, 생태계 보호와 증진 등의 목표가 있다.
<스턴보고서>가 제시한 비용은 세계 탄소 배출량 감축에 근거해서 세계 GDP에 대한 비용 비율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선진국이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매우 높을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우선 현재 배출 수준은 부유한 국가들이 더 높고 따라서 더 많이 감축시킬 수 있다. 게다가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에 대해 분명히 역사적인 책임도 있다. 따라서 선진국이 단지 자신들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배출을 줄이는데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원효율성 제고, 재상 가능 에너지 활용과 자원처리량 감소는 모두 경제활동의 지속가능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볼때 탄소 배출의 대폭적인 감축과 자원절감이 시장경제 구조에 맞서지 않고도 달성될 수 있다는 가정은 공상에 지나지 않음을 시사한다.
06. 소비주의의 철창(117)
소비자본주의는 그 핵심을 보자면 대단히 단순하다. 넓은 의미로 말해서 기업은 가계가 원하고 필요로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노동(자)과 자본(건물과 기계설비등)을 고용한다. 가계는 기업에게 자신들의 노동과 자본을 제공하여 소득을 얻는다. 기업은 재화와 서비스를 판매하여 얻은 수입을 사람들에게 소득을 얻게한다. 사람들은 소득의 일부를 더욱 많은 소비재 구입에 지출하여 소득의 일부는 저축한다. 저축된 예금은 다시 기업에 직간접으로 투자된다. 이것이 경제순환이다.
효율성은 성장을 부추긴다. 효율성은 노동과 자원 투입을 감소시킴으로써 상품비용을 낮춘다. 이는 상품가격하락으로 이어져 수요를 자극하고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를 불러온다. 하지만 이렇게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 향상은 자원처리량을 감소시켜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효율성, 창조적 파괴 등 혁신을 통해 성장이 일어나더라도 성장을 그만 멈춰야 할 시점, 그토록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는 시점이 있지 않을까? 분명히 우리가 이러한 순환을 중단하지 못하는 것은 지금의 시스템이 끊임없는 성장에 구조적으로 의존한다는 데에 그한 원인이 있다.
이와같은 쉼없는 과정이 진정한 사회의 진보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과정은 때로 행복을 무너뜨리고 사회 침체를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한데에는 몇가지 분명한 까닭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가 불안을 동력으로 삼는 시스템이라는점에 있다.
<계속 정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