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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ler, Leonhard (1707 - 1783)
스위스 출신의 수학자로 요한 베르누이에게 수학 하였다. 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 과학원에서 일하였다. 그는 경이로운 기억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번은 그의 제자 두명이 50 자리 수의 계산에 있어서 서로 다른 결과를 가지고 언쟁을 하고 있자 이를 암산으로 계산하여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1735년에 오른쪽 눈을 잃었고, 1766년에는 왼쪽 눈 마저 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놀라운 기억력에 힘입어(시력을 잃기전에 큰 종이판에 눈을 감고 글씨쓰는 연습을 하기도 하여) 자신의 말을 받아쓰게 하는 식으로 계속 연구하였다. 오일러는 전세계 어느 시대를 통틀어도 가장 많은 저작을 남긴 수학자로 생전에 800편이 넘는 논문과 저작을 남겼다. 누군가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의 저작을 너무나도 쉽게 쓰느냐고 물어보자 오일러는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나의 펜이 나보다 더 지적인 모양입니다." 프랑수아 아라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람이 숨을 쉬듯, 독수리가 하늘에서 활강을 하듯 계산을 하였다."
오일러는 e, i, x에 대한 함수 f 를 나타내는 f(x)를 만들어내서 수학을 체계화 시켰다. 그는 또한 광학, 역학, 전자기학에서 주요한 업적을 이루었다. 그는 미분 방정식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의 저서 Introducio in analysin infinitorum 은 해석학의 기초를 놓은 저서이다. 그는 복소수에 대한 임의의 복소수 제곱은 복소수로 나타내어진다는 것을 증명하였다.(해석이 약간 이상한듯...-해석자 주 -_-) 그리고 베타 함수와 감마 함수를 연구하였다. 또한
에서
까지의 리만-제타 함수의 짝수값을 계산하였다.
그는 또한 수론에서도 중요한 일을 하였다. 조화급수의 발산을 증명하였고 소수의 무한성에 대해서, 그리고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에 대해 n=5 인 경우를 증명하였고(따라서 일반적인 증명에는 실패) 페르마의 소정리를 증명하였다. 또한 e 가 무리수란 것을 증명하고, 1772년에 synodic coordinate 시스템으로 삼체문제를 연구하였다.(특히 달에 관하여) 만약 오일러가 그 문제에 더 오랫동안 연구했다면 그가 뒷날 야코비가 다른 형식으로 만들어 야코비 적분이라고 알려진 운동의 불변성(이것도 약간...-_- -해석자주) 을 밝혀낼 수 있었을 것이다.
오일러는 또한 두개의 고정된 힘 세번째 물체에 미치는 힘에대한 해를 구하였다. 마침내 그는 이항정리를 증명하여 임의의 유리지수(-_-...)에 유효하단 것을 밝혔다. 모든 수학 분과에 대한 오일러의 방대한 업적에 대해서 프랑스의 위대한 수학자이자 천제역학자였던 라플라스는 그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Liesez Euler, Liesez Euler, c'est notre maître à tous"
"오일러를 보라, 오일러를 보라. 그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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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님이 오일러를 존경한다기도 하고 저도 그렇고 해서...
이런거 가끔 보면 지적자극도 되고 그러잖아요.^^
근데 외국 사이트를 해석한거라 무쟈게 어렵네요;;; 어이없는 소리도 많구;;
첫댓글 음.-_-; 논문 수로는 폴에어디쉬가 더 많은것 같은데... 기여도를 생각하면 오일러가 한수위겠죠..;;
오일러는 다른 일을 하면서도 수학을 연구했다죠....마치 컴퓨터의 멀티태스킹....ㅎㅎㅎ 난 하나도 잘 못하는데..ㅜㅜ
저도 에어디쉬가 더 많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란 책에 보니까 에어디쉬를 저작물 면에서 능가하는 수학자는 오일러가 유일하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