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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며 삽시다(합 3:16-19)
어느 덧 11월 첫째 주일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는 것 같았는데, 벌써 연말 준비를 해야 합니다.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동안에도, 우리 주변에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눈동자처럼 우리를 보호하시며, 때로는 우리를 두 손으로 안으셔서,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늘 감사하고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감사를 잊고 살았고, 현실과 신앙 사이에 때로 고민하고, 때로 갈등하며, 지금껏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기도할때마다, 주님이 즉시로 우리에게 살아 계신 어떤 증거들을 확실하게 보여주길 원했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시며, 우리에게 인내와 더 큰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말씀을 끝까지 바라보며, 하나님의 때를 마냥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박국의 감사에 대하여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현실과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납니까?”
그는 울분이 섞인 기도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런 갈등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다 이해되는 일만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이해가 안 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보다, 악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더 빨리 성공합니다.
거짓으로 남을 속이고, 타인의 삶과 가정을 무참하게 짓밟는 사람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더 인정 받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성도들은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 자신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출세하는 사람들처럼, 그들의 방법만 따르기만 하면, 나도 쉽게 출세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바로 이때가 중요합니다. 다가온 문제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잘 해석하고, 적용해야 합니다. 급하다고 내 맘대로 처리해 버리면 안 됩니다. 이런 갈등을 잘 극복하면, 믿음은 성장합니다. 결과적으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이해하고 나서, 감사하는 사람이 됩니다.
감사는 환경이 바뀔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에 대한 나의 초점과 관점이 바뀔 때, 비로소 감사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박국은 왜 하나님께 불평 섞인 기도를 드렸는가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그 첫째 항의성 기도는 “정의로운 하나님이 왜 악을 방관하고 계시는가?”하는 문제였습니다.
하박국 1:4절 말씀을 보면,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함입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께 아주 핏대를 세우듯이, 따집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왜 이런 일이, 어째 이런 일이 생깁니까?”하는 질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의가 잠시 잠깐 득세하는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또 다시 하나님께 묻는 기도를 드립니다.
“왜 악인이 의로운 사람을 삼켜도 잠잠하시나이까? 왜 하나님의 나라가 이방인들에 의해 침략을 당해야 합니까?”
1:13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라고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기도 후에, 그는 파수하는 성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실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또 다시 하박국 선지자에게 말씀하십니다.
2:2-4절 말씀을 보면, “너는 이 말씀을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꽉 막혀버린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가 있었습니다. 나는 당장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데, 우리의 부르짖는 그 기도에, 하나님이 무관심 하신 듯이, 전혀 응답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세상에 이해되지 않는 일들, 불공평한 일들이 보입니다. 답답한 일들이 너무 잘 보입니다.
이때 여러분은 하박국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의 말씀에는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체하지 않고 속히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문제를 이기는 방법, 의심을 극복하는 방법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병자를 고치거나, 무슨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먼저 그들에게서 믿음을 찾으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놀랍니다.
그리고 3장에 보면, 하박국은 다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이때의 기도는 1장에서 갈등하며 드린 기도와는 전혀 내용이 다릅니다. 의심의 기도가 아니라 찬양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주변의 환경은 전혀 변한 것이 없는데, 원망과 불평과 의심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의 기도로 바뀌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박국에게서 감사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원망과 불평의 문제를 감사거리, 기도거리로 바꾸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늘 감사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늘 감사할 일들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젠 문제를 축복으로 바라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됩니다. 나의 불완전한 시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감사는 초점을 하나님께 맞출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박국 3:17-1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아멘.
현재 아무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하바국 선지자는 즐거워하고 기뻐하겠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의 침공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온 백성들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농사도 망쳤습니다.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합니다.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습니다.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습니다. 밭에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 양이 없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들은 가정이 아니라 실제상황입니다. “만약 없다면”이 아니라 “현재 없지만”입니다. 그런데 그는 말합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인간은 누구나 다 자기의 소유에 대한 애착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가 없어질 때에는, 대개 실망하고 좌절합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이러한 소유에 대한 애착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축복의 주체는 물질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놓고 감사할 수도 있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같은 환경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느냐, 원망하느냐는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믿음의 차이입니다.
하박국은 불완전한 세상에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나니, 모든 것이 감사했습니다. 안된 것도 감사했습니다.
조금 전에 불렀던 “날 구원하신 주 감사”의 찬양 가사가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날 구원하신 주 감사 / 모든 것 주심 감사 / 지난 추억 인해 감사 / 주 내 곁에 계시네
향기로운 봄철에 감사 / 외로운 가을날 감사 / 사라진 눈물도 감사 / 나의 영혼 평안해
응답하신 기도 감사 / 거절 하신 것 감사 / 헤쳐 나온 풍랑 감사 / 모든 것 채우시네
아픔과 기쁨도 감사 / 절망 중 위로 감사 / 측량 못할 은혜 감사 / 크신 사랑 감사해
길가에 장미꽃 감사 / 장미꽃 가시 감사 / 따스한 따스한 가정 / 희망 주신 것 감사
기쁨과 슬픔도 감사 / 하늘 평안을 감사 / 내일의 희망을 감사 / 영원토록 감사해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드리는 감사는 조건적인 감사가 아닙니다. 이것 저것 비교해서, 보다 좋으면 감사하는 비교급 감사가 아닙니다. 환경을 초월하여 드리는 최상급의 감사입니다.
믿음과 감사는 비례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의 찬양과 감사는, 주께 받은 은혜의 분량에 비례합니다. 믿음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사람은, 언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이 주어질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감사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2절 말씀을 보면, 말세에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한다”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점점 감사가 사라지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속에서 우리는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는 자동차에서 윤활유와 같습니다. 윤활유는 연료보다 중요합니다. 연료는 없으면 차가 멈추기만 하지만, 윤활유가 없으면, 엔진이 타버리고, 차가 아주 망가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각박한 시대에 더불어 살아가다가 보면, 일어나는 잡음들과 마찰이 얼마나 많습니까? 감사가 이 열기와 소음을 막아줍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면,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좋은 윤활유 덕분에, 차의 엔진이 잘 돌아가고, 차가 잘 달리는 것처럼, 감사할 때에, 답답했던 인간관계도, 막혔던 인간관계도, 서운했던 인간관계도, 잘 돌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서로에 대하여, 날마다 감사하십시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미리 감사하십시다. 아직 없는 것도 우리에게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주님이 잠시 보류해 놓으셨다고 믿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주십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면 더 큰 은혜를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꺼번에 모든 것을 허락하시지 않으시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씩, 구하는 분량만큼씩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라는 통로를 통해서 끊임없이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구하는 사람에게,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더 큰 복과 은혜를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아멘.
그가 감사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3:2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에는 답답했습니다. 꽉 막혀 있었습니다. 도무지 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는 감정이 앞섰습니다. 기도보다는 원망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니까, 이젠 자신의 감정이나 뜻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것이 만일 하나님의 계획하신 것이라면, 주의 일이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박국 3:8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말을 타시며 구원의 병거를 모시오니 강들을 분히 여기심이니이까 강들을 노여워하심이니이까 바다를 향하여 성내심이니이까 주께서 활을 꺼내시고 화살을 바로 쏘셨나이다 주께서 강들로 땅을 쪼개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13절 말씀을 보면, “주께서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기름 받은 자를 구원하시려고 나오사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며 그 기초를 끝까지 드러내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구원의 병거를 타고 오십니다. 주의 백성들, 성령의 기름을 부은 자녀들을 구원하시려고 오십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는, 선악이 분명하게 구분이 될 것입니다. 성도와 불신자들이 갈라서게 될 것입니다. 양과 염소를 분리하실 것입니다.
“악인의 집의 머리를 치시고”라는 말은 “악인의 소굴의 우두머리를 부셔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악인의 소굴의 우두머리가 누구입니까? 사탄과 그 졸개들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 사단은 결박당하여, 무저갱에 갇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제일 먼저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영원히 죄의 종으로 살아야 할 인생을,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권세를 주시고, 장차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이을 상속자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시편 116편을 지은 시편 기자는,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 116:8)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2-14)
시편 기자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구원의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너무 당연시하지 마십시오. 당연시하면, 감사의 마음이 생길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으로 고생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는데, 그들은 구원에 대한 감사가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 그것을 40년 동안 매일 먹어도, 너무 당연시 했습니다. 고기까지 먹고 싶다고 불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감사했다는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조금만 어려워지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대적했습니다. 그들은 그들 눈 앞에 있는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면서도, 원망, 불평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원망하는 사람들은 약속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감사하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약속의 땅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감사해야할 조건과 이유가 무지무지 많은데, 내게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대부분 내게 없는 것, 되지 않는 것으로 원망 불평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이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벌거벗긴 채로,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무엇으로 이 크신 구원의 은혜를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감사는 표현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것은 주님이 내게 주신 사명을 알고 감당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철이 들어 부모님의 수고를 깨닫고, 은혜를 알게 되면, 부모를 위해 효도하려고 노력하듯이, 우리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또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현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헌신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사랑을 깨닫고 난 후에,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여러분!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하나님은 감사하면 할수록,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감사해야 할 내용을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문제에서 이기게 하시고,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시다.
우리를 충성되이 여겨,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일군 삼아 주신 것에 감사하십시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육체의 필요를 채우시며, 건강 축복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십시다.
독일의 재무장관을 지냈던 마르틴 바덴의 이야기 입니다. 그는 원래 자유주의 사상을 지녔던 사람인데, 젊은 시절 집권세력인 극보수파에 밀려나는 바람에, 무척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한번은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갔다가, 돈이 없어서 싸구려 여관에 하룻밤을 묵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도둑이 와서 신발을 훔쳐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어찌나 화가 났던지, 그는 도둑에게 있는 욕, 없는 욕 다 퍼붓고 난 다음에 하나님까지 원망했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어떻게 나처럼 가난한 사람의 구두를 훔쳐가는 것을 뻔히 바라보시면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단 말인가!”
자기가 구두 간수 잘못해 놓고서, 구두 잃어버린 것을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고, 원망까지 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주일이었는데, 여관주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마르틴을 달래며, 그러지 말고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습니다. 그는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무엇을 신고 간단 말입니까? 이 눈 위에 맨발 벗고 내가 어떻게 교회 가요?”
여관집 주인이 창고에서 허름한 구두 한 켤레를 찾아가지고 왔습니다. 비록 자기 발에 맞지 않는데도, 허름한 신발을 신고 여관집 주인을 따라 교회에 갔습니다. 자기 옆 자리에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이 앉게 되었는데, 그가 기도하는 것을 마르틴이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돌보아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이 삭막한 세상에서 소망을 가지고 살게 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다리가 없어도 이렇게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게 해주시니, 감사하고, 또 다리가 없으니까 신발 살 걱정도 안 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말이 가슴에 부딪쳐왔습니다. 자기 보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순간 마르티의 얼굴이 화끈 달아 올랐습니다.
“이 사람은 두 다리가 없어도 이렇게 감사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멀쩡한데도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구두 훔친 사람을 저주하고, 하나님을 원망했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그는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두 다리가 있는 것을 감사합니다. 이 분은 두 다리가 없는데도 감사하는데, 나는 두 다리가 있으니 얼마나 더 감사합니까? 신발 잃은 것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너무 낡은 신, 너무 오래 신으니까, 새신을 바꾸어 신으라고, 낡은 신을 없애 주시니, 감사합니다. 없애주신 하나님께서 새 신을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날 이후 마르틴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인생이 점차 변화되었고, 마침내 독일의 재무장관으로써, 국가에 크게 봉사하며, 국민에게 존경받는 정치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구두를 감사했는데, 그의 온 생애가 변화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병이 들었다가 나으면 감사한 줄 알지만, 사실은 병에 들지 않는 것이, 더 감사한 일입니다. 암에서 기적적으로 나은 것도, 감사한 일이지만, 암에 걸리지 않은 것은 더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것에서 감사의 조건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는 것보다, 평범한 삶이, 기적임을 깨닫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 길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어떤 환경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을 초월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살고, 육체가 살고, 환경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 속에 감사를 심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거듭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박국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가 어떻게 불평의 기도를 감사의 기도로 바꿀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했기에, 환난 날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과 조건에 따른 감사가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아무 것이 없다 할지라도,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하늘 문을 활짝 열어,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여러분에게 쏟아부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