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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동북으로 2백리 길, 포천땅에 솟아 있는 명성산(923m)은 산자락에 산정호수를 끼고 있다. 명성산은 호수의 정취를 만끽하면서 등산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산이지만, 그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져 있다. 태봉국을 세운 궁예가 망국의 슬픔으로 이 산에서 통곡하자 산도 따라 울었다 하여 울 명(鳴), 소리 성(聲)을 붙여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이 바로 그 사연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궁예는 자신의 세력이 커지자 호화와 사치를 일삼고 교만해졌다. 그러면서 거칠고 잔인한 본성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 결과, 그를 따르던 많은 신하들과 백성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다. 결국은 왕위에서 쫓겨났고 변복차림으로 도망하다가 평강(平康)에서 백성들에게 피살당하는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918년, 천 년도 더 지난 옛날의 일이지만 우리는 역사의 교훈으로 받아야 할 사실(史實)이다. 무소불위,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자라도 그의 처신에 따라 운명은 이렇게도 바뀔 수가 있다는 사실들을 우리는 많이 보아 오면서 살고 있지 않는가.
경기도 포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산정호수는 1925년 농업용수로 이용하기 위해 축조된 저수지인데, 명성산을 비롯해 주변의 높고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이 호수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일약 절경 중의 절경이 되었다. 이 호수가 1977년 3월에는 국민관광지로 지정이 되어 연간 10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로 변했다. 호수 주변은 50여 곳이나 되는 식당들이 문을 열어 놓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산정호수 주차장 모범업소
금수강산
산정호수는 ‘산속의 우물과 같은 맑은 호수’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이 호수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명성산 등산의 나들목이기도 하다. 호수에 접해 있는 포천군 영북면 산정리, 상동 주차장에는 먹거리촌이 형성되어 있다. 수도권 여러 산악단체들과 긴밀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소문의 ‘금수강산(031-531-4653)’이 바로 이 주차장에 위치하고 있다.
식당측에서는 ‘맛과 멋을 생각하는 금수강산’이라는 구호가 적힌 전단지를 내놓고 있지만 업주 이학무(47)씨의 ‘멋’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초면에 금수강산은 어떤 업소며 특징은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돌아온 답이 걸작이었다. 식당 한 켠을 차지하고 즐겁게 식사하고 있는 한 무리 여성 등산객들을 가리키면서 “보시다시피 배 고픈 사람들이 와서 밥 먹고 가는 집”이라는 설명이다. 맞는 말이다. 멍청한 질문을 던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문답 같은 초면의 대화에서부터 시작, 식탁을 사이에 두고 긴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식당 입구 벽에 걸려 있는 모범업소 팻말을 떠올리며 이 팻말을 ‘모범업주업소’로 바꾸어 달았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여느 업소의 업주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다. 극성스러울 정도의 학구파임을 느끼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연세대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 과정에서 공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만큼 식당운영에 기본을 갖춘 업소로 손님들은 깊은 신뢰를 갖고 이용해도 좋겠다.
무엇보다도 명성산을 오르겠다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산정호수를 거친다는 사실을 감안, 서울만이 아니라 수도권 일원에 교통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돋보였다. 15인, 25인, 39인, 45인승 차량 4대를 5분 대기조처럼 확보해 두고 산악단체가 원하는 지점으로 출동시키고 있다. 많은 산악단체와 끈끈한 인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이학무씨는 포천시 문화관광해설사로 봉사활동을 펴고 있는 실력이라 산정호수와 명성산을 가장 잘 아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겠다. 이런 배경의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이기에 연중 10월과 11월 두어 달, 명성산 억새꽃 축제가 열리는 계절이면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바쁜 사람이 된다고 했다. 6만여 평의 명성산 억새꽃밭은 ‘수도권 억새 감상 일번지’라는 명성을 갖고 있다.
300명까지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금수강산의 메뉴(이동갈비 24,000원)는 주변의 음식점들과 별 다름없는 것들이기는 하지만, 업주의 남다른 정성과 그만이 갖고 있는 비법으로 많은 산꾼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 정평이다. 식당 앞 헐벗은 나뭇가지에는 이동막걸리 병들을 무수히 달아 놓았다. 무슨 나무의 열매인양 재미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집주인 이학무씨는 현지 각흘산악회 회원으로 월간山에는 이미 소개된 적이 있는 처지다. 손님들은 식탁에 앉아 산꾼들만의 단골 메뉴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챙겨두면 어떨까. 이 집에서 특별대우(?)를 받을 수 있는 한 방법이겠다. ‘아이 러브 펜션’라는 숙박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자연산 철원 논우렁 전문점
이모네식당
대단한 고집이다. 일년치 식자재를 확보해 두었는데 그 식자재 모두가 일찍 소모되고 말았다. 그 식자재를 구하기에는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동안 같은 식자재를 구할 길이 없어 몇 달씩이나 식당문을 닫았다고 한다. 정말 대단한 고집이다. 아니, 고집이라기보다는 대단한 신념이다. 산정호수에 있는 자그만한 식당, 논우렁 요리 전문점 ‘이모네(031-534-6173)’ 식당 이야기다.
논우렁은 양식도 하고 값싼 중국산도 있다. 하지만 이 식당 주인 박점령(52)-천향란(49)씨 내외는 철저하게 강원도 철원의 자연산 논우렁을 고집한다. 2005년의 경우 이모네 이야기가 모 TV 방송에 나가자 밀려든 손님들로 식자재인 철원산 논우렁이 거덜났다고 했다. 주인 내외는 식당 문을 4개월이나 닫고 다음 식자재를 구할 수 있는 시기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주변에서는 철원 이외의 곳에서 나오는 우렁으로 영업하라고 권유했지만, 이모네 내외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다고 했다. 박점령-천향란 씨 내외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 손님들과의 약속, 즉 철원산 우렁만을 쓰는 업소로 손님들과 약속했는데, 그 약속은 어떤 경우라도 지키겠다는 신념이라는 것이다.
취재를 갔던 날은 마침 바깥주인의 생일날이었다. 동네 손님들이 모여들었고, 주인공은 우렁이 아닌 별미로 구룡포 과메기 요리를 준비했다. 우렁초무침을 차려 내겠다는데 아쉬웠지만 사양했다. 대신 이 집에서 먹은 과메기는 여태 먹어 본 것 중에서 최상의 맛이었으니 전문과목인 우렁이야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겠다.
우렁은 지방에 따라 논고동, 골뱅이 등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농약을 쓰지 않으면 전국의 어느 곳에서나 논과 소택지에서 자랄 수 있는데, 겨울에는 동면한다. 동면하기 전 살찐 놈을 잡아 두었다가 식탁에 올린다. 수명은 6~7년이 된 놈도 있다. 단백질과 당질, 칼슘과 철분이 많은 식품으로 살짝 데쳐서 회로 먹거나 된장국 등에 넣어 끓이면 감칠맛과 씹히는 맛이 그만이다.
우렁된장찌개 2인 기준 14,000원. 우렁쌈밥 2인 기준 18,000원. 우렁초무침 20,000~30,000원. 통우렁초장회·우렁전골 각 30,000~40, 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