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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사는 이야기방♬ 스크랩 낚시, 그중독에 관하여
또 꽝맨 추천 0 조회 117 08.10.30 21:45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저수지는 소나무와 잡목이 어우러진 산비탈 아래
수목의 빛깔과는 또 다른 초록으로 누어 있었다.
줄과 마름이 강한 번식력을 자랑하고 그 틈새마다에 머물렀던 꾼 들의 흔적이
상처처럼 남아있는 것은 금년 들어 십 여수의 4짜가 나왔다는 소문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조우는 한 걸음 먼저 도착해 둑이 우변으로 뻗어나가는 지점,
줄 풀과 마름 언저리에 찌 아홉 개를 곱게 세워놓고 있었고
물은 마른 장마를 이야기 해 주듯 족히 이미터는 내려앉아 있었다.

 

 

토동지 전경 

 

포인트는 따로 고를 필요도 없었다.
한눈에 좋아 뵈는 건너편 산아래 까지는 더위를 뚫고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제방에 대를 펴기에는 자리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하룻밤을 지새기엔
그 부담이 너무 커 보였다.
차를 밀고 들어가다 끝나는 지점, 아예 그 아래 짐을 풀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는 산을 마주보고 앉아 낚시하는 걸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지자요수(智者樂水)>
마음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인자요산(仁者樂山)> 
조선 후기 학자 황학(黃學)의 시문집 만취동일고(晩翠洞逸稿)에 나오는 이말 대로라면 
물가에 앉아 낚시하면서 산을 바라보는 나는
지혜와 어짐의 성향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 되는 것이고
그런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밤낚시에서 찌 보는데 상당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반대편에서 유입되는 불빛의 반사를 미리 차단하는 한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낚싯대를 펴는 것도 더위는 그냥 두지 않았다.
땀에 젖은 모자를 벗게 만들고,
거추장스러운 저고리를 벗게 만들고,
두 병 밖에 가져오지 않은 냉수를 바닥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욕심사납게 아홉 대의 낚싯대를 펴고 있었다.
채집 망도 두 개나 넣어두고,
난생처음 펴보는 다 대 편성의 의미는 십여 수가 나왔다는 4짜 붕어가
내 뇌리 속에 남아있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재래시장 물건처럼 산만한 내 낚싯대 와 달리
조우의 대 편성은 백화점 식 디스 플레이 이었다.
맨 땅바닥에 용을 쓰며 꼽은 내 받침대에 비해 그는 폼 나는 최신형 받침틀을
차려놓고 있었고 그 위에 일사불란하게 놓인 낚싯대들은 우아하기까지 했다.
각양각색의 내 낚싯대가 작업복 차림이라면
조우의 낚싯대는 까만 정장 차림이었다고 나 할까!
그 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어질러놓고 사용했던 낚싯대들이
도회 조우들의 잘 정돈된 장비들을 만날 때면 갑자기 움츠려 들게 되는 것은
대물과 다대 편성이라는 시류도 시류려니와
그런 구색하나 갖추지 못한 덜 떨어진 스스로의 주변머리를 자책하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떡밥낚시를 선호하고, 낚시해 온 세월은 있고,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대들 3대가 한 셋트로 구성되고,
손때묻은 정 때문에 쉬 버리지도 못하고
그걸 여러 대 펴다보니 산만해지고,
의연(依然)해지자고 다짐은 하면서도 보는 눈은 있으니 늘 마음은 씁쓸하다.
사실 좋은 대로 한 벌쯤 마련하려고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늦게 낳아서 힘들게 키우는 이아들의 허름한 옷차림이 왜 그리 걸리던지...
낚싯꾼 속 들면 큰일난다 던 데!

 

(수입 우렁이 알)

 

 
조우는 나보다 스무 살쯤 젊은 청년이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초겨울 영암의 '영보정지' 에서였다.
마침 서울에서 나를 찾아온 다른 조우와 밤낚시를 즐기던 중이었고
곁에서 낚시를 하던 그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 밤중,
우리를 불러 따뜻한 라면과 커피를 대접해 주었었다.
그후 온라인을 통해 짐작으로만 근황을 알던 그는 봄부터 내 집 가까운
나주 근교의 소류지들을 찾아 와 벌써 몇 주 째 나와 함께 낚시를 즐기고 있다
취사병 출신이었다는 경력을 내세워 늘 저녁을 짓고 간식을 준비한다.
근면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인 그는
나이든 나를 통해 무엇인가 배우고 싶어하지만 그에게 가르쳐 줄게 없이 나이만 먹은 나는 늘 미안하다.

 

 

 

더위 속에서도 꾼들은 하나 둘 모여들고
비나리기 전의 어둠이 사린 작은 소류지 연안은
어느새 그 수조차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찌불로 채워져 있다.
성하(盛夏)의 더위가 가득했던 한 낮부터 꾼 들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자리를 가다듬고 수초를 걷어내며 한밤의 기다림을 준비했었다.
그들은 인생의 여정동안 하고많은 만남 중에
왜 이 힘들고 고통을 수반하는 낚시를 자신의 동반자로 정했을까?

낚시꾼은 어느 순간에도 그들의 머리 속엔 낚시로 가드 차 있다.
좋은 장비로 욕심을 채우고
찌 올림의 환희로 가슴을 채우고
큰 손맛으로 기억을 채우기를 원 한다.
그들의 휴일은 온통 물빛과 비린내로 계획되어 있다.
그리고 주말 오후면 어김없이 희망 가득 찬 낚시가방을 챙겨들고 현실의 문을 닫은 체
가뿐 마음으로 물을 향한다.
어느 수중생물이건 그들을 잡아 물 밖에 놓아두면 그들은 뛰는 방향은 어김없이 물 쪽이다.
낚시꾼이 된다는 것은 수생화(水生化)를 의미하며
낚시란 결국 물을 향해 간다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집 떠난 꾼들의 가방 속에 들어 있는 것은 가득 찬 희망과 낚시도구 뿐이었겠는가?
도시의 소음과, 부양(扶養)의 중압(重壓)과, 경쟁의 치열(熾烈)을,
낚싯대로 가득 찬 가방 틈새에 쑤셔 넣고 자동차의 액세레이터를 밟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은 꾼에게 정화(淨化)의 의미가 짙다.
포인트를 정하고, 수심을 재고, 찌를 맞추는 동안
꾼들은 대와 줄을 통해 가져온 고뇌들을 물로 보낸다.
그리고 찌와 감성을 통해 물 속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정갈한 수향(水香)으로 세상의 잡(雜)것들이 빠져나간 빈 가슴을 채운다.

낚시는 집중(集中)과 해이(解弛)를 동시에 구가하는 취미이다.
이완(弛緩)을 통해 집중을 준비하고 집중함으로서 세상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이완을 맛본다.
낚시란 취미이자 오락이며 일종의 구도(求道)가 될 수도 있다.
구도란 세상과의 단절, 모태(母胎)로의 회귀본능(回歸本能)이 아니었던가.
생명을 부여받은 이후,
우리는 어머니의 자궁 속의 안온함보다 더 평안한 시간을 가져 본적이 있었는지?
대를 펴고 찌를 세우고 그 순간부터 마치 모태에서처럼
꾼에겐 순백의 시간, 진공의 시간이 이어진다.
우리는 낚시를 통해 그 단절과 그 단절 위에 판타지처럼 채색되는 세상과 섞이기 전의 평화를 맛본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추구란 모름지기 절정(絶頂)을 목표로 정한다.
그리고 절정의 순간이 길면 길수록 습성(習性) 의 성향은 길어진다.
사람들은 그것을 중독(中毒)이라고 부른다.
그 절정의 순간이 낚시만큼 오래 지속되는 것이 세상에 몇 가지나 있을까?
어떤 스포츠도, 심지어는 도박이나 섹스까지도, 그 희열의 지속성에서
낚시를 따르진 못한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붕어 잡는 일에 열광한다.
찌올림, 챔질 겨룸 랜딩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낚시꾼은 열락(悅樂)에 녹아들어
그 누구도 세상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 순간만은 세상의 모든 중압감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붕어가 크면 클수록 그 절정의 시간은 연장되며
잡은 붕어의 크기만큼 삶의 무게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을 현실에서  벗어났노라고 목소리 높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추구와 중독의 성향이 강한 취미이기에
낚시에 띄어쓰기와 쉼표를 찍을 줄 아는 꾼 이라면
그는 이미 조선(釣仙)의 반열에 접어든 꾼 일 것이다

 

 

 


낚싯대마다 참붕어와 새우를 끼워 그럴듯한 수초 공간마다에 찌불로 표시해 놓고
4짜를 꿈꾸는 긴장으로 몇 시간을 기다렸지만 나는 물론 어느 곳에서도 붕어를 끄집어내는 물소리나 환호성은 터지지 않았다.

첫 입질을 본 것은 긴장 틈새로 피곤이 밀려들던 자정을 막 넘긴 시간이었다.
참붕어를 끼워놓은 삼 점 이 칸 대의 찌가 두 마디쯤 솟더니 스르르 가라앉는다.
가물치인가?
4짜 붕어는 물론 미터급 가물치도 살고있다는 조언이 생각나 제법 강한 챔 질을  시도했고
팔목의 감각을 통해 고기의 반응과 크기를 가늠해 본다.
가물치 특유의 째거나 뛰는 동작은 나오지 않았고 큰 요동은 없었으나 대의 휨 새는 그럴 듯 한 무게를 전해 주었고 지레짐작으로 턱걸이의 붕어를 상상하고 들어올린 줄 끝에는 엉뚱하게도 자라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몇 번의 입질을 받았지만 한자가 넘는 대형 동자개만 몇 수 끌어 올렸을 뿐 끝내 기다리던 큰 붕어는 그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새벽 저수지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낚싯꾼 모두 힘겨운 밤을 보냈지만 아침은 언제나 청량감을 베푼다
꾼은 맑은 정신으로 이제 자신의 낚시를 마무리 지어야 한다.
망설이는 나태를 보이지 말고 단호함으로
기대와 미련을 어제 풀어 헤쳤던 낚시가방 속에 다시 주어 담고
다음 물가의 시간까지 지퍼를 끌어올려 꼭 잠궈 두어야 한다.

밤새 잡은 빠가사리와 자라를 물 속으로 돌려보냈다.
자라는 사진 한 장 찍을 틈도 없이 사라져 갔다.
모르긴 해도 그 자라는 용왕의 병을 고치기 위해 토끼간을 구하러 산에 올랐던 그 충신 별주부의 후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대로 물려받은 그의 충성심은 내가 살려보낸 자라의 핏속에도 흐르고 있어
후일 인간들의 무분별한 오염물질 투기로 수중세계의 환경이 열악하여지고
용왕의 정력에 문제가 생기면 보신제인 웅담이나 산삼을 구하기 위해
그의 선조 별주부처럼  산에 오르는 충정을 보일 것이다.
아니면 '닌자거북이'로 변신하여 어느 약국을 습격하고
'비아그라나' '시알레스'를 한 웅큼 강탈해 달아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일곱 시가 넘도록 조우는 단잠을 자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천연덕스럽게 자고있는 모습을 보면 그는 붕어만을 노리는 꾼은 아니다.
그도 여느 낚시꾼처럼 일탈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활로부터의 일탈, 낚시로부터의 일탈
그것도 아니면 늦도록 못 본 찌올림을 꿈속에서 보고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저수지 마름 사이에서는 기운을 주체못한 가물치 한 마리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칠월 중순 붕어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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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8.10.30 21:45

    첫댓글 어유당이라는 조사의 조행기입니다.....

  • 08.10.31 08:29

    조행기라고 하기엔 너무 감성적이고, 멋지게 표현하고 있네요. 멋진 분이 십니다...^^

  • 08.10.31 09:47

    글에서 인생철학이 묻어나네요...멋진분 입니다./꽝맨도 그님을 닮아가는듯....

  • 08.10.31 10:40

    멋지네~~~~~~~~~

  • 08.11.03 21:37

    글에서 인생철학이 묻어나네요...멋진분 입니다./꽝맨도 그님을 닮아가는듯....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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