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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odahati
철환 경(S51:22) 2. Ayoguḷasuttaṃ
834. Sāvatthinidānaṃ.
Atha kho āyasmā ānando yena bhagavā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bhagavantaṃ abhivādetvā ekamantaṃ nisīdi.
Ekamantaṃ nisinno kho āyasmā ānando bhagavantaṃ etadavoca –
2. 그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abhijānāti nu kho, bhante, bhagavā iddhiyā manomayena kāyena brahmalokaṃ upasaṅkamitā’’ti?
‘‘Abhijānāmi khvāhaṃ, ānanda, iddhiyā manomayena kāyena brahmalokaṃ upasaṅkamitā’’ti.
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신통에 의해서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범천의 세상에 가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아난다여, 나는 신통에 의해서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범천의 세상에 간 것을 알고 있다.”
‘‘Abhijānāti pana, bhante, bhagavā iminā cātumahābhūtikena kāyena iddhiyā brahmalokaṃ upasaṅkamitā’’ti?
‘‘Abhijānāmi khvāhaṃ, ānanda, iminā cātumahābhūtikena [cātummahābhūtikena (sī. syā. kaṃ.)] kāyena
iddhiyā brahmalokaṃ upasaṅkamitā’’ti.
4. “세존이시여, 그런데 세존께서는 네 가지 근본물질로 된 이 몸으로
신통에 의해서 범천의 세상에 가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아난다여, 나는 네 가지 근본물질로 된 이 몸으로 신통에 의해서 범천의 세상에 간 것을 알고 있다.”
‘‘Yañca kho, omāti, bhante, bhagavā iddhiyā manomayena kāyena brahmalokaṃ upasaṅkamituṃ,
yañca kho abhijānāti, bhante, bhagavā iminā cātumahābhūtikena kāyena
iddhiyā brahmalokaṃ upasaṅkamitā,
tayidaṃ, bhante, bhagavato acchariyañceva abbhutañcā’’ti.
5.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신통에 의해서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범천의 세상에 가실 수도 있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된 이 몸으로 신통에 의해서 범천의 세상에 가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니 이것은 세존의 입장에서는 경이롭기도 하고 놀라운 것이기도 합니다.”
<*opapātī : [adj.] arisen without visible cause; born spontaneously.
Opātiha bhante, bhagavā iddhiyā manomayena kāyena brahmalokaṃ upasaṅkamituṃ.
samañño kho bhante, bhagavā iminā cātummahābhūtikena kāyena iddhiyā brahmalokaṃ upasaṅkamīti.
Tayidaṃ bhante, bhagavato acchariyaṃ ceva abbhutaṃ cāti.>
‘‘Acchariyā ceva, ānanda, tathāgatā acchariyadhammasamannāgatā ca,
abbhutā ceva, ānanda, tathāgatā abbhutadhammasamannāgatā ca’’.
“아난다여, 여래는 경이롭기도 하고 경이로운 법을 구족하기도 하였다.
아난다여, 여래는 놀랍기도 하고 놀라운 법을 구족하기도 하였다.
‘‘Y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o
kāyampi citte samodahati [samādahati (sī. syā. pī.)]
cittampi kāye samodahati,
sukhasaññañca lahusaññañca kāye okkamitvā viharati;
아난다여,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t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assa kāyo
lahutaro ceva hoti mudutaro ca kammaniyataro ca pabhassarataro ca.
여래의 몸은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난다.”
註)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이란 신통지의 마음에서 생긴 인식이다.
[마음이] 평화로운 행복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행복의 인식이라 하고,
오염원의 지둔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가벼움의 인식이라 한다.
‘‘Seyyathāpi, ānanda, ayoguḷo divasaṃ santatto
lahutaro ceva hoti mudutaro ca
kammaniyataro ca pabhassarataro ca;
6. 아난다여, 예를 들면 철환이 낮에 열을 받아 달궈지면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나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ānanda, yasmiṃ samaye tathāgato
kāyampi citte samodahati, cittampi kāye samodahati,
sukhasaññañca lahusaññañca kāye okkamitvā viharati;
t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assa kāyo
lahutaro ceva hoti mudutaro ca
kammaniyataro ca pabhassarataro ca.
아난다여, 그와 같이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여래의 몸은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난다.”
‘‘Y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o
kāyampi citte samodahati, cittampi kāye samodahati,
sukhasaññañca lahusaññañca kāye okkamitvā viharati;
7. “아난다여,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여래의 몸은 더욱더 가벼워지고 더욱더 부드러워지고 더욱더 다루기에 적합하고 더욱더 빛이 난다.”
t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assa kāyo
appakasireneva pathaviyā vehāsaṃ abbhuggacchati,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
ekopi hutvā bahudhā hoti, bahudhāpi hutvā eko hoti…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i.
‘‘Seyyathāpi, ānanda, tūlapicu vā kappāsapicu vā lahuko vātūpādāno
appakasireneva pathaviyā vehāsaṃ abbhuggacchati;
8. “아난다여, 예를 들면 마치 목화나 케이폭의 씨를 싸고 있는 솜털이 가벼워서
바람을 받으면 아무 어려움 없이 땅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다.
evameva kho, ānanda, yasmiṃ samaye tathāgato
kāyampi citte samodahati, cittampi kāye samodahati,
sukhasaññañca lahusaññañca kāye okkamitvā viharati;
아난다여, 그와 같이 여래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물 때
tasmiṃ, ānanda, samaye tathāgatassa kāyo
appakasireneva pathaviyā vehāsaṃ abbhuggacchati,
여래의 몸은 아무 어려움 없이 땅에서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so anekavihitaṃ iddhividhaṃ paccanubhoti –
ekopi hutvā bahudhā hoti…pe… yāva brahmalokāpi kāyena vasaṃ vattetī’’ti.
그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툰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神足通]”
Dutiyaṃ.
Pali Canon: Paracanonical, Nettippakaranam, book: 1, database record: 15284.
[BJT Page 246] [x 246/] [PTS Page 165] [q 165/] [*경전 이해의 길 네띠빠까라나]
‘‘Cattārome, bhikkhave, iddhipādā [passa iddhipādasaṃyutte]. Katame cattāro?
Chanda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 vīriya…pe… citta.
Vīmaṃsāsamādhipadhānasaṅkhārasamannāgato iddhipādo’’ti.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는 신통의 기반이다. 무엇이 넷인가?
의욕에 의한 삼매를 지닌 정근과 지음을 갖춘 신통의 기반,
노력에 의한 삼매를 지닌 정근과 지음을 갖춘 신통의 기반,
마음에 의한 삼매를 지닌 정근과 지음을 갖춘 신통의 기반,
고찰에 의한 삼매를 지닌 정근과 지음을 갖춘 신통의 기반이다.
Idaṃ dhammādhiṭṭhānaṃ.
이 [경구는] ‘법이라는 관점’에 해당한다.
So kāyepi cittaṃ samodahati, cittepi kāyaṃ samodahati,
kāye sukhasaññañca lahusaññañca okkamitvā upasampajja viharati.
그는 몸에 마음을 모은다. 마음에 몸을 모은다.
몸에 대한 즐거움의 지각과 가벼움의 지각이 나타난 후 도달하여 머문다.
Idaṃ sattādhiṭṭhānaṃ,
idaṃ sattādhiṭṭhānañca dhammādhiṭṭhānañca.
이 [경구는] ‘중생이라는 관점’에 해당한다.
또한 이 [경구는] 중생이라는 관점과 법이라는 관점의 [둘 다에] 해당한다.
sutta pitaka, khuddaka nikaya 2, book Patisambhidamaggo 1, record 9421
[BJT Page 210] [x 210/] [PTS Page 111 [q 111/]
So imesu catusu iddhipādesu cittaṃ paribhāvetvā paridametvā
muduṃ karitvā kammaniyaṃ
kāyampi citte samodahati, cittampi kāye samodahati,
kāyavasena cittaṃ parināmeti, cittavasena kāyaṃ parināmeti,
kāyavasena cittaṃ adhiṭṭhāti, cittavasena kāyaṃ adhiṭṭhāti,
kāyavasena cittaṃ parināmetvā, cittavasena kāyaṃ parinametvā,
kāyavasena cittaṃ adhiṭṭhahitvā, cittavasena kāyaṃ adhiṭṭhahitvā,
sukhasaññañca lahusaññañca kāye okkamitvā viharati
so tathā bhāvitena cittena parisuddhena pariyodātena
iddhividhañāṇāya cittaṃ abhinīharati abhininnāmeti.
http://dictionary.buddhistdoor.com/search
samodahati [saŋ+odahati] to put together, supply, apply s. i.7; iv.178 sq.;
to fix nett 165, 178;
ppr. samodahaŋ s i.7=iv.179; ger. samodahitvā s iv.178; & samodhāya vism 105; sdhp 588.
-- pp. samohita.
odahati([o下]+[dahati放置]): 放下{pp. ohita}
[PTS Page 029] [q 29/] [*경전 이해의 길 네띠빠까라나]
Odahanakārako upāyāso.
고뇌<*放下>를 야기하는 것이 절망<*惱>이다.
Taṃ bhavassa padaṭṭhānaṃ.
그 [절망<*放下>은] 존재(有)<*變成>의 근접요인이다.
Imāni bhavaṅgāni yadā samaggāni nibbattāni bhavanti,
그 존재<*變成>[를 이루는] 부분<*變成/有-分: 바왕가>들이 합쳐져서 발생하는 것이 있다.
so bhavo.
그 때 그것이 존재(有)<*變成>이다.
Taṃ saṃsārassa padaṭṭhānaṃ.
그 [존재는<*變成>] 윤회의 근접요인이다.
거북이 비유 경(S35:240) 3. Kummopamasuttaṃ
240. ‘‘Bhūtapubbaṃ, bhikkhave, kummo kacchapo sāyanhasamayaṃ anunadītīre gocarapasuto ahosi.
Siṅgālopi [sigālopi (sī. syā. kaṃ. pī.)] kho, bhikkhave, sāyanhasamayaṃ anunadītīre gocarapasuto ahosi.
Addasā kho, bhikkhave, kummo kacchapo siṅgālaṃ dūratova gocarapasutaṃ.
Disvāna soṇḍipañcamāni aṅgāni sake kapāle samodahitvā appossukko tuṇhībhūto saṅkasāyati.
3. “비구들이여, 옛날에 거북이 한 마리가 해거름에 강둑을 따라서 먹을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때 자칼도 해거름에 강둑을 따라서 먹을거리를 찾고 있었다.
비구들이여, 거북이는 자칼이 멀리서 먹을거리를 찾아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는 사지와 목을 자신의 등딱지에 감추고 미동도 않고 침묵하며 엎드려 있었다.”
Siṅgālopi kho, bhikkhave, addasa kummaṃ kacchapaṃ dūratova gocarapasutaṃ.
Disvāna yena kummo kacchapo tenupasaṅkami; upasaṅkamitvā kummaṃ kacchapaṃ paccupaṭṭhito ahosi –
‘yadāyaṃ kummo kacchapo soṇḍipañcamānaṃ aṅgānaṃ aññataraṃ vā aññataraṃ vā
aṅgaṃ abhininnāmessati, tattheva naṃ gahetvā uddālitvā khādissāmī’ti.
Yadā kho, bhikkhave, kummo kacchapo soṇḍipañcamānaṃ aṅgānaṃ aññataraṃ vā aññataraṃ vā
aṅgaṃ na abhininnāmi, atha siṅgālo kummamhā nibbijja pakkāmi, otāraṃ alabhamāno.
4. “비구들이여, 자칼도 거북이가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는 거북이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거북이 곁에서 ‘이 거북이가 사지와 목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내놓으면
바로 그것을 붙잡아 끌어내어 먹어버릴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거북이가 사지와 목 가운데 어느 것도 내놓지 않자
접근할 기회를 얻지 못한 자칼은 거북이에게 싫증을 내고 거기서 떠나갔다.”
‘‘Evameva kho, bhikkhave, tumhepi māro pāpimā satataṃ samitaṃ paccupaṭṭhito –
‘appeva nāmāhaṃ imesaṃ cakkhuto vā otāraṃ labheyyaṃ…pe… jivhāto vā otāraṃ labheyyaṃ…pe…
manato vā otāraṃ labheyya’nti.
5.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마라 빠삐만도
‘나는 눈을 통해서 … 귀를 통해서 … 코를 통해서 … 혀를 통해서 … 몸을 통해서 …
마노를 통해서 이 자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항상 끊임없이 그대들의 곁에 서 있다.”
Tasmātiha, bhikkhave, indriyesu guttadvārā viharatha.
Cakkhunā rūpaṃ disvā mā nimittaggāhino ahuvattha, mā anubyañjanaggāhino.
Yatvādhikaraṇamenaṃ cakkhu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ha, rakkhatha cakkhundriyaṃ, cakkhundriye saṃvaraṃ āpajjatha.
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며 머물러라.
그대들은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말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말라.
만약 그대들의 눈의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대들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대들은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라.
Sotena saddaṃ sutvā… ghānena gandhaṃ ghāyitvā…
jivhāya rasaṃ sāyitvā… kāyena phoṭṭhabbaṃ phusitvā…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을 감촉을 느낌에 …
manasā dhammaṃ viññāya mā nimittaggāhino ahuvattha, mā anubyañjanaggāhino.
Yatvādhikaraṇamenaṃ manindriyaṃ asaṃvutaṃ viharantaṃ abhijjhādomanassā pāpakā akusalā dhammā
anvāssaveyyuṃ, tassa saṃvarāya paṭipajjatha, rakkhatha manindriyaṃ, manindriye saṃvaraṃ āpajjatha.
마노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말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말라.
만약 그대들의 마노의 감각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대들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런 그대들은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라.”
Yato tumhe, bhikkhave, indriyesu guttadvārā viharissatha,
atha tumhehipi māro pāpimā nibbijja pakkamissati, otāraṃ alabhamāno – kummamhāva siṅgālo’’ti.
‘‘Kummo aṅgāni sake kapāle,
Samodahaṃ bhikkhu manovitakke;
Anissito aññamaheṭhayāno,
Parinibbuto nūpavadeyya kañcī’’ti.
7. “거북이가 자신의 등딱지에 사지를 집어넣듯
비구는 마음에 일어난 사유를 안으로 거둬들여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남을 해코지 않으며
완전한 평화를 얻어 아무도 비난해서는 안 되리.”
tatiyaṃ;
행하기 어려움<*초불 역>/이루기 어려움의 경<*성전협회 역> 7. Dukkarasuttaṃ(S1:17)
2.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이 게송을 읊었다.[하늘사람]
지혜가 없는 자에게 수행자의 삶은
이루기 어렵고 지키기 어렵네.
어리석어 타락하면
그곳에 참으로 장애가 많으리
17. ‘‘Dukkaraṃ duttitikkhañca, abyattena ca sāmaññaṃ.
Bahūhi tattha sambādhā, yattha bālo visīdatī’’ti.
“어리석은 자에게 출가생활이란 것은
행하기 어렵고 견디기 어렵나니
거기에는 실로 많은 장애가 있어서
어리석은 그런 자는 쓰러지고 맙니다.
2. 마음을 길들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날을 수행자로 살 수 있을까?
생각의 노예가 되어,
걸음마다 타락에 빠져들리.
‘‘Katihaṃ careyya sāmaññaṃ, cittaṃ ce na nivāraye;
Pade pade visīdeyya, saṅkappānaṃ vasānugo’’ti.
만일 그가 마음을 단속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많은 날을 출가생활 하오리까?
[나쁜] 사유 지배 받아 이리저리 헤매면서
매 걸음걸음마다 쓰러질 것입니다.”
3. [세존] 3. [세존]
거북이 자기의 등껍질에 팔다리를 당겨 넣듯,
수행승은 정신의 사유를 거두어 들이고
‘‘Kummova aṅgāni sake kapāle,
Samodahaṃ bhikkhu manovitakke;
“거북이가 자신의 등딱지에 사지를 집어넣듯이
비구는 마음에 일어난 사유를 안으로 거두어들여
집착을 여의어 남을 헤치지 않고,
완전히 소멸하여 누구도 비난하지 않아야 하리.
Anissito aññamaheṭhayāno,
Parinibbuto nūpavadeyya kañcī’’ti.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남을 해코지 않으며
완전한 평화를 얻어 아무도 비난해서는 안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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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몸을 마음에 <스며들게 하고> 그리고 마음을 몸에 <스며들게 하여>
몸에 대한 행복의 인식과 가벼움의 인식에 들어가서 머문다.” 혹은
“몸에 마음을 <모은다>. 마음에 몸을 <모은다>.
몸에 대한 즐거움의 지각과 가벼움의 지각이 나타난 후 도달하여 머문다.”
이러한 [身<-samodahati->心] 수행을 하시면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
[神足通]”을 얻으실 수 있답니다.
“우리는 전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졌고(意成-manomaya) 희열을 음식으로 삼았고
스스로 빛났고(自體發光) 허공을 다녔고(空間이동) 천상에 머물렀으며 길고 오랜 세월 살았습니다.”
---D26(세기 경)에 의하면 중생들은 이러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축소된 세상이 확장될 때)와 비슷하게 다시 되돌아가는 방법인 듯합니다.
이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숙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디다.
(예를 들면) 사람이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칼집으로부터 칼은 끄집어내졌다."라고. ...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意)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心)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합니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 냅니다. ---디가 등에서의 정형적 표현
--- 그 다음으로 나타나는 내용이 신족통 등 6신통입니다.
@봄봄 이어지는 경문-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합니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합니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합니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합니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합니다
-디가니까야 [사문과경]에서 나타내는 마음으로 만든 몸 (의성신)
불자여, 이 보살이 한량없는 신통의 힘을 얻어서, 땅덩이를 흔들며,
한 몸으로 여러 몸이 되고, 여러 몸으로 한 몸이 되며,
숨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며, 돌이나 절벽이나 산이 막혔더라도 장애 없이 통과하기를 허공과 같이하여,
공중에서 가부좌(跏趺坐)하고 가기를 나는 새와 같이하며, 땅에 들어가기를 물과 같이하고,
물을 밟고 가기를 땅과 같이 하며, 몸에서 연기와 불길을 내는 것이 불더미와 같고,
물을 내리기를 큰 구름과 같이 하며 해와 달이 허공에 있듯이 큰 위력이 있어 손으로 만지고 주무르고 부닥치며,
몸이 자재 하여 범천에까지 이르느니라.
이 보살이 천이통(天耳通)이 청정하여 인간의 귀보다 썩 지나가서, 인간이나 천상이나 가까운 데나 먼데 있는 음성을 모두 들으며, 내지 모기?등에?파리 따위의 소리들도 다 듣느니라.
이 보살이 타심통의 지혜(他心智)로 다른 중생의 마음을 사실대로 아나니, 이른바 탐심이 있으면 탐심이 있음을 실지대로 알고, 탐심이 없으면 탐심이 없음을 실지대로 알며.. 등등
- 화엄경 - 십지품 중에서 나타내는 의성신-
선남자들아, 여래가 연설한 경전들은 모두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므로
혹 자기 몸을 말하고 혹 다른이의 몸을 말하며, 혹 자기 몸을 보이고 혹 다른 이의 몸을 보이며 ,
혹 자기 일을 보이고 혹 다른 이의 일을 보이거니와, 여러가지 말한 것이 다 진실하여 허망하지 아니 하니라.
부처의 몸으로 제도 할 이에게는 부처의 몸으로 나타내어 제도 하고
벽지불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벽지불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말하고
성문의 몸으로 제도 할 이에게는 성문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말하고 ,
범천왕의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범천왕의 몸을 나타내어 법을 말하고
우바새 우바이 몸으로 제도할 이에게는 우바새 우바이 몸으로 나타내어 법을 말하고 - 등등
-
대승경전을 전하고 설하고 수행하는 공덕으로 ->
선남자. 선여인이 부모가 낳아준 청정한 육안(肉眼)으로
삼천대천세계의 안과 밖에 있는 산과 숲과 강과 바다를 보며,
아래로 아비지옥(阿鼻地獄)과 위로 유정천(有頂天)을 보느니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중생을 보고, 업(業)의 인연과 과보로 태어나는 곳을 모두 보고 다 아느니라."
-법화경에서 나타내는 의성신-
초기불교에서 나타내는 마음으로 몸을 만들어낸 (의성신) 신통변화가
대승불교에서의 마음으로 몸을 만들어낸 (의성신) 그 신통변화는
오로지 중생제도, 중생구제에 활용되는 것으로 보이네요.
어느 강의에 들으니 화엄경의 십지품에서 1-5지 보살까지는 의성신이 거친 의성신이라고 하네요.
8지 보살은 되어야 거친 의성신에서 벗어나 청정한 의성신으로 범천에 닿는다고 합니다.
대승불교에서 나타내는 의성신이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아닌것 같네요.
소개된 초기(원시)불교 경문에서 의성신이 나타내는 것을 보면요..
대승불교에서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부처님 이라는 말씀이 황당무계하게 지어낸 말씀은 아닌것 같네요.
대승불교에서 등장하는 온갖 부처님들과 온갖 보살님들이 법화경에 와서야 오직 석가모니부처님 한분에서
나간 화신의 나툼이라고 하신다네요.
관세음보살이 실존인물이 아니며 지장보살이 실존인물이 아니며 , 아미타불이 실존인물이 아닌 다 공갈이다
그간 대승불교에 속았다 분하다 원통하다 ㅜㅜㅜ ㅡㅡㅡ ㅠㅠㅠ 하시는 분들은
니까야에서 보여주는 ‘마음으로 몸을 만드는’ 경문을 잘 새기면 대승불교에 대해 속았다라는
분한 마음이 조금은 가셔지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nidana 초기불교 수행이 자신을 건져내는 결과물로 대승불교에선 중생을 향한 자비실천 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그 인연과보로 해탈열반.. 초기불교다 대승불교다 서로 배척할께 아니라 조화로움이 필요한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