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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야, 구단선배들의 숙원을 네가 좀 풀어다오.
멜로와 아이버슨을 주축으로 대권을 노리는 덴버 너겟츠의 간략한 역사와 함께 지난 40년간 이 구단이 배출한 훌륭한 선수들을 모아서 너겟츠 All-time team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 덴버 너겟츠 농구구단은 1967년에 창단되었습니다. 올해로 꼭 40년입니다. 창단시의 팀명은 덴버 로켓츠 (Rockets)였습니다. 1974년에 현재의 이름인 너겟츠로 바뀌었죠. 1967년부터 1975년까지, 너겟츠의 홈구장은 Denver Arena였습니다. 그리고 1975년부터 1999년까지는 McNichols Arena를 홈구장으로 썼었고, 1999년에 현재의 Pepsi Center로 옮겼습니다. 구단의 역사를 돌아보면, 여덟 번의 디비젼 타이틀을 따냈는데, 그중 세 번 (1970, 1975, 1976년)이 ABA 시절에 이룬 성과였고, 다섯 번 (1977, 1978, 1985, 1988, 2006년)이 NBA에 병합된 후의 결과였습니다. 구단 역사상 컨퍼런스 타이틀을 따낸 것은 ABA 시절이었던 1976년이 유일합니다. 리그 우승이야말로 이 구단이 이뤄야 할 숙원이겠죠? 덴버 너겟츠는 세 명의 ‘명예의 전당’ 선수들을 배출해 냈습니다 – 알렉스 잉글리쉬, 댄 이셀, 그리고 데이빗 톰슨입니다. 유명한 래리 브라운 감독은 ABA 시절에 팀을 강팀으로 조련한 공헌에 힘입어, 너겟츠의 감독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지요. 다섯 개의 등번호가 영구결번됐는데요, 알렉스 잉글리쉬 (#2), 데이빗 톰슨 (#33), 바이런 벡 (#40), 댄 이셀 (#44)이 그 주인공들이고, 1980년대 너겟츠를 이끌었던 더그 모 감독의 커리어 승수인 432 또한 “명예”영구결번 되어 있습니다. 바이런 벡은 1967년부터 1977년까지 덴버의 일원으로 활약한 백인 장신 슈터였습니다. 제가 이 선수의 뛰는 모습을 두어 번 밖에는 못 봤기 때문에, 아래에 있는 All-Time team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이 선수에 대한 정보는 여기를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덴버는 전통적으로 수비와는 거리가 먼 구단이어서 그런지, 7~80년대에는 한 경기 최고득점, 또는 한 쿼터 최고실점과 같은 기록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팀입니다. 현재의 팀을 봐도, 최우수 수비상을 받은 마큐스 캠비가 버티고는 있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제, 지난 40년간 이 구단이 배출해낸, 현역선수들을 제외한, 뛰어난 레전드급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 보겠습니다.
All-Time Team Starting Five SF: Alex English
1954년생, 6-7 (201cm). “득점력”으로만 말한다면 80년대 최고의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80년대만을 통틀어 따로 계산하면 최다 득점자니까요. 커리어에 걸쳐 총 25,613점을 득점함으로써, 은퇴할 때 역대 최다득점 랭킹 7위에 랭크된 선수입니다. All-NBA 팀에도 세번 이름을 올렸고, 8회에 걸쳐 올스타게임에 출전한 너겟츠 구단을 대표할 만한 인물이 되겠습니다. 1976년 밀워키 벅스에 의해 드래프트 된 이후, 인디애나와 댈러스에 한 시즌씩 머문 뒤에, 1979~80 시즌 중간에 덴버로 트레이드 됐습니다. 그 때부터 잉글리쉬의 인생에 꽃피는 봄이 찾아 옵니다. 8시즌 내리 2,000점을 돌파한 선수였기도 합니다. 1983년에는 득점왕의 자리에도 오릅니다. 80년대 덴버 너겟츠의 일원으로서 그가 기록한 스탯을 보십시오.
80~81 : 23.8점, 8.0리바운드, 3.6어시스트 81~82 : 25.4점, 6.8리바운드, 5.3어시스트 82~83 : 28.4점, 7.3리바운드, 4.8어시스트 83~84 : 26.4점, 5.7리바운드, 5.0어시스트 84~85 : 27.9점, 5.7리바운드, 4.2어시스트 85~86 : 29.8점, 5.0리바운드, 4.0어시스트 86~87 : 28.6점, 4.2리바운드, 5.1어시스트 87~88 : 25.0점, 4.7리바운드, 4.7어시스트 88~89 : 26.5점, 4.0리바운드, 4.7어시스트 잉글리쉬는 줄리어스 어빙이나 도미니크 윌킨스의 운동능력도 없었고, 래리 버드나 버나드 킹의 카리스마도 없었으며, 제임스 워디나 애드리안 댄틀리와 같은 좋은 신체조건마저도 없었던 선수였습니다. 그의 성공의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두가지로 요약됩니다 - 슈팅에 있어서의 섬세한 기술과 타이밍, 그리고 상대방 수비를 읽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포스트업을 설 때, 상대 수비수의 타이밍을 빼앗아서 던지는 턴어라운드 점퍼와, 페이스업 상황에서 풀업점퍼 비슷하게 쏘는데, 풀업점퍼라고 할 수는 없고, 긴 팔을 쭈욱 위로 뻗으면서 손목스냅으로만 던지는 뱅크샷이 주무기였습니다. 이 두 가지 슛으로만 30점의 대부분을 득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잉글리쉬는 조용하고 겸손한 성격이었고,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성격과는 달리 연기에 관심이 많아서, 1987년에는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에도 출연하지요. 제목이 Amazing Grace and Chuck인데, 아주 감동적이고 잘 만들어진 농구영화였습니다. 아직 DVD화 되지는 않은 것으로 아는데, 잉글리쉬가 보스턴 셀틱스 선수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이런 뛰어난 선수가 덴버 너겟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잉글리쉬야말로 너겟츠 All-Time Team의 최고 선수일 것입니다. PF: Bobby Jones
1951년생, 6-9 (206cm). ABA/NBA 도합 12시즌을 뛰면서 11번의 All-Defensive Team 에 선정되고, 10번 연속으로 퍼스트팀에 뽑힌 유일무이한 수비수입니다. 별명이 “국방부 장관” (The Secretary of Defense”)이죠. 1982~83 식서스의 우승시즌에는 벤치에서 나와 팀에 공헌하며 올해의 식스맨 “초대 수상자”가 됩니다. 사실 이 선수때문에 식스맨상이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올스타 (76, 77, 78, 79, 82)인 선수가 스스로 자원해서 벤치에서 나오면서 식서스의 65승 시즌과 우승을 이루는데 큰 역활을 담당한 것에 따른 보상이었다고나 할까요? 운동능력이 워낙 탁월했던 백인이라, 80년대초 식서스 경기를 보면 속공시에 칙스의 패스를 받아 런닝덩크를 호쾌하게 성공시키는 장면을 많이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이 선수는 주로 상대방 주득점원인 파워포워드와 스몰포워드를 전담마크 했는데, 정말로 "깨끗한" 수비로 상대방을 제압해 많은 칭찬을 받았던 선수였습니다. 그리고 스틸 수치가 높은 선수는 아니었지만, 박빙의 게임에서 마지막 순간의 결정적인 스틸을 해내던 '완소'선수였습니다. 2005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이 선수의 덴버 시절의 경기를 보신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너겟츠의 일원으로는 ABA 두 시즌, NBA 두 시즌, 도합 4시즌밖에는 안뛰었지만, 이 선수로 인해서 덴버 너겟츠가 리그에 이름을 알리게 됐었습니다. 미국 농구역사에 있어서 가장 기분 나쁜 패배를 경험했던 1972년 뮌헨 올림픽 미국팀의 에이스로 맹활약을 했던 선수였고, 명문 노스캐롤라이나대 출신의 선수라서, 루키시즌부터 인기가 많았던 선수입니다. 1979년 시즌을 앞두고 식서스에 합류한 후에는 줄리어스 어빙과 행동반경이 겹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파워포워드를 자원했던 이타적인 선수이기도 하고요. 아래의 스탯이 증명을 해주듯이 이 선수는 덴버 시절에는 아주 뛰어난 올라운더였습니다. ABA 1974~75 : 14.8점, 8.2리바운드, 3.6어시스트, 2.0스틸, 1.8블락샷 ABA 1975~76 : 14.9점, 9.5리바운드, 4.0어시스트, 2.0스틸, 2.2블락샷 NBA 1976~77 : 15.1점, 8.3리바운드, 3.2어시스트, 2,3스틸, 2.0블락샷 NBA 1977~78 : 14.5점, 8.5리바운드, 3.4어시스트, 1.8스틸, 1.7블락샷 상대팀 에이스들은 이 선수가 벤치로 들어가면 그제서야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고 합니다. 훌륭한 수비기술을 배우고 싶으신 분은, 이 선수의 게임을 구해서 보실 것을 권합니다. 80년대 초반 식서스의 경기는 아직도 구할 수가 있습니다. 브루스 보웬 수준의 수비를 펼치면서도 구설수(?)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수비의 교과서였던 선수가 바비 존스입니다. 코트 안팎에서 진정한 젠틀맨쉽을 보여준 바비 존스를 덴버 너겟츠 All-time Team 파워포워드에 추대합니다. C: Dan Issel
1948년생, 6-9 (206cm). 1970년에 ABA의 켄터키 커널스와 함께 프로생활을 시작한 단신센터 댄 이셀은 득점에 일가견이 있었던 훌륭한 선수였습니다. 이미 루키시즌에 29.9점에 13.2리바운드를 해냄으로써 신인왕을 수상한 이셀은 아티스 길모어와 함께 ABA 역사상 최고의 센터로 불리웁니다. ABA와 NBA 통산 커리어 득점이 27.482점에 달하는 이셀은 길모어와 트윈타워스를 이뤄 1975년에 켄터키팀을 우승시켰으며, 그 해에 덴버 너겟츠로 트레이드가 되어, 이후 10년간을 덴버 너겟츠의 센터로 뜁니다. 올스타전에 6회 초청받은 이셀은 NBA에 와서도 매시즌 20점 이상과 두자릿수 리바운드를 해주었습니다. 그의 커리어 평균은 22.5점, 9.1리바운드, 2.3어시스트입니다. 빅 리그에서 성공한 단신 센터답게 이셀의 플레이 스타일은 참 희한했습니다. 잘 달렸고, 헤드페이크에 의한 드라이브인이 좋긴 했으나, 기본적인 신체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고, 운동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히 이 선수를 규정지을 만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득점을 잘 합니다. 그야말로 빈자리를 잘 찾아 가 있었습니다. 리바운드 할 때도 그랬고, 외곽에서 슛을 날릴 때도 그러했습니다. “왜 저 선수는 수비수가 안 붙어있지?”와 같은 느낌을 자주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이 선수가 몸싸움을 기피한다거나 줏어먹기나 하는 선수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몸싸움을 거칠게 하다가 상대선수에게 맞아서 앞니를 몽땅 잃기도 했었던 근성가이였습니다. 저는 이 선수가 쌓아올린 스탯이 그의 근성과 탁월한 감각의 산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이셀은 1992년부터 1994년까지 덴버 너겟츠의 감독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그의 용병술로 8번 시드의 너겟츠가 1번 시드의 수퍼소닉스를 잡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지요. 1998년에는 덴버의 단장과 매니저를 맡기도 했었습니다. SG: David Thompson
1954년생, 6-4 (193cm). 데이빗 톰슨은 동게시판 1044번 글에도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일단 톰슨은 불운의 사나이였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1975~76 ABA 루키시즌부터 폭풍처럼 리그를 강타하며, 너겟츠를 파이널에 올려놓았던 선수였고, 이듬해에 팀이 NBA에 병합된 후에도 NBA 최고의 선수들과의 대결에서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놀라운 고공쇼를 선보였던 희대의 걸작품이었습니다. 프로입단시의 공식 서전트가 48 inch (120cm) 였으며, 키는 작았지만 긴 팔과 운동능력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알았던 톰슨은, 같은 ABA 출신인 줄리어스 어빙과 함께 NBA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이라는 평을 받습니다. 1976년 ABA 올스타 게임 전야제로 알고 있습니다. 그 날 밤에 있었던 점프력 경연대회에서는 193cm의 키로 백보드 상단이 거의 닿는 점프력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날, 줄리어스 어빙은 백보드 위에 놓여있던 동전을 투스탭 점프로 잡아내기도 했지요.
1978년에는 덴버와 5년 4Mil의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당시로서는 프로농구 사상 최고연봉자가 된 선수가 바로 톰슨이었습니다. 1982년까지 7시즌을 덴버와 함께 했던 톰슨은 1978년 4월에는 정규시즌 마지막 날, 스퍼스의 조지 거빈과 리그 득점왕을 놓고 경합, 73점을 득점하기도 했고, 1979년 올스타 게임에서는 팬투표 최다득표자답게 고공쇼를 팬들에게 선사하며 MVP를 거머 쥐기도 했습니다. 26.0점-25.9점-27.2점-24.0점-21.5점-25.5점 – 너겟츠의 소속으로 톰슨이 낸 매시즌 평균득점입니다. 이 득점의 대부분이 덩크나 공중묘기였습니다. 1977년과 1978년에는 All-NBA 퍼스트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톰슨이었지만, 1982년 뉴욕시의 유명한 ‘스튜디오 54’라는 디스코 클럽 계단에서 구르는 운명적인 사고(?)를 피할 수는 없었고, 그 사고로 인해 그의 무릎은 대수술을 받게 되지요. 수술 후에, 의사로부터 다시는 전처럼 점프를 못 할 것이라는 ‘사형선고’를 받은 톰슨은 좌절해 버렸고, 술과 마약으로 자기 자신을 자학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해에 시애틀로 트레이드 된 후, 절치부심 재기를 위해 노력한 톰슨은 1983년 올스타 게임에 뽑힘으로써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120cm에서 90cm로 줄어버린 자신의 점프력을 한탄하며 계속해서 술과 마약에 손을 대다가 1984년을 끝으로 조기은퇴를 해버립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인물, 데이빗 톰슨. 덴버 너겟츠 역사상 톰슨보다 더 위대했던 슈팅가드는 없습니다. 톰슨은 1996년에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PG:
1960년생, 6-2 (189cm, 76kg). 5.0, 5.4, 8.9, 8.1, 9.3, 9.3 – 이것이 무슨 스탯 같으십니까? 1984년부터 1990년까지 덴버 너겟츠의 단신 포인트 가드였던 라파옛 리버가 잡아낸 매시즌 리바운드 평균입니다. 매직 존슨과 아이재야 토마스와 동시대 선수였던 라파옛 리버는 그 뛰어난 실력에 비해 명성이 높지가 못합니다. 리버는 올스타 게임에 두 번 밖에는 못뽑혔지만, All-NBA팀이나 All-Defensive팀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고, 득점력이나 어시스트, 스틸 능력도 뛰어나 19~20점에 7~8어시스트, 그리고 게임당 2~3개의 스틸을 해주던 명 포인트 가드였습니다. 플레이옾 경기에서 15-15-15를 찍은 세 명의 선수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다른 두 명은 체임벌린과 제이슨 키드). 트리플 더블도 아주 잘 했습니다. 역대 트리플 더블 횟수에서도, 빅 O, 매직 존슨, 제이슨 키드, 체임벌린, 래리 버드에 이은 6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이 선수의 신장과 체중을 기억하신다면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기록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무릎부상으로 30세에 조기은퇴하지만 않았더라면 키드와 트리플더블 역대순위 3~4위를 다툴만한 올라운더였습니다. 이 작고 마른 선수가 골밑에서 상대방 빅맨들과 몸싸움하는 모습을 한 번은 꼭 보셔야 합니다. 80년대중후반의 너겟츠 게임을 찾아 보시면 됩니다. 한 번은 찰스 바클리와 골밑에서 거친 몸싸움을 하고 기어이 리바운드를 잡아낸 적이 있습니다. 바클리가 뻘쭘해져서 그냥 너털웃음을 짓더군요. 터프가이, 터프가이 하지만, 저는 이런 터프가이는 농구코트 위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진정한 ‘작은 거인’, 라파옛 리버. 스피드와 재능도 출중했고, 포인트 가드로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선수였습니다. 수비도 뛰어났고, 3점슛도 좋았고, 드라이브인, 페네트레이션, 패싱 등등, 모든 부문에 있어서 단점을 찾아볼 수 없는 선수였지만, 이 선수를 다른 모든 NBA 선수들과 구별 지었던 것은 바로 그만이 갖고 있던 ‘근성’이었습니다. All-Time Team Bench Members F-G: Kiki Vandeweghe
1958년생, 6-8 (203cm). 키키 벤더웨이는 명문 UCLA 출신으로, 개인적으론 제가 참 좋아했던 선수입니다. 독일 (구 서독) 태생으로,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온 케이스인데, 어떻게 보면 데틀레프 슈렘프와 노비츠키의 대선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아버지인 어니 벤더웨이도 NBA 출신의 스타플레이어였습니다. 어머니는 1952년 Miss America ‘진’이었던 케이 헛친스 여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타고난 운동신경과 출중한 외모를 타고 났습니다. 수비력과 리바운드 능력은 조금 의문이 들었지만, 2번부터 4번을 볼 수 있는 기량과 빼어난 공격력으로 이러한 단점을 커버했던 선수였습니다. 특히, 요즈음 카멜로 앤써니의 유명한 “잽 스탭”을 공격시마다 거의 매번 사용했던 선수이기도 합니다. “키키 무브”라고도 불리웠었죠. 포스트업, 속공 피니쉬, 3점슛, 훅슛, 드라이브인 등을 골고루 섞어가며 게임당 25~30점을 득점해 준 에이스였습니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덴버 소속이었던 벤더웨이는 높은 득점력을 자랑하며 83년(26.7점)과 84년(29.4점), 두 차례 올스타게임에 출전한 전적이 있습니다. 2001년에 덴버 너겟츠의 매니저가 되어, 카멜로 앤써니의 드래프트와 조지 칼 감독의 영입에 있어 큰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생, 6-8 (203cm). 라폰소 엘리스의 이름 “라폰소”는 Great Warrior (위대한 전사)라는 뜻을 갖고있습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운 선수지요. 노틀댐 대학의 에이스 (92시즌 – 17.7점, 11.7리바운드, 63.1%야투성공률, 2.6블락샷)로서 1992년 1라운드 4번으로 덴버에 드래프트된 엘리스는 자타가 공인했던 너겟츠의 “미래”였습니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첫 두 시즌을 파워포워드로 뛰면서 맹활약했고, 디켐베 무툼보와 함께 1994년 1라운드 시애틀 업셋의 일등공신이기도 했습니다. 1994년에는 상대팀의 브라이언 데이비스가 완전한 덩크 찬스를 얻어 덩크를 할 때에, 엘리스가 뛰어올라 그 공을 블락하면서 한 손으로 공을 완벽하게 잡아 끌고 내려온 적이 있지요? 카터의 올림픽 덩크를 The Dunk라고 하듯이, 이 엘리스의 블락을 The Block이라고 부릅니다. 화려한 첫 두 시즌을 마감하고, 드디어 올스타 레벨로 자신을 끌어 올릴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을 때, 연습경기에서 팀원인 브라이언 스티쓰와 부딪히며 큰 무릎부상 (a stress fracture of the patella in his right knee)을 당합니다. 이 부상은 다음 시즌을 날려 버렸고, 엘리스의 조기은퇴를 가져오는 원흉(?)이 되지요.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계속되는 재활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1996~97 시즌에는 21.9점, 7.0리바운드와 함께 재기에 성공합니다. 맥다이스때문에 스몰포워드로 뛰었지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던 “전사” 엘리스는 너겟츠에서 뛴 6시즌동안 343게임을 뛰며 15.2점에 8.0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F-C: Antonio McDyess
1974년생, 6-9 (206cm). 맥다이스는 알라바마 대학시절부터 점프력이라면 일가견이 있었던 센터였습니다. 대학때의 최고 서전트 기록이 43 inch (108cm)였습니다. 덴버에서는 1995~97, 1998~2002, 총 6시즌을 뛰었습니다. 프로 데뷰 첫 여섯 시즌의 스탯이 17.8점, 8.8리바운드, 1.8블락샷으로 일찌감치 프로에 적응을 한 선수라 하겠습니다. 2000년 올림픽 금메달과 2001년 올스타게임 출전이 생애 최고 하이라이트였다고 말하는 맥다이스는 커리어를 위협한 두 번의 무릎부상을 잘 이겨내고, 지금도 디트로이트의 핵심전력으로 남아 있습니다. 초창기에 점프력과 힘을 바탕으로 한 다이내믹한 플레이를 위주로 했다면, 지난 몇 년간은 요즈음 NBA에서 좀체로 보기 힘든 '블루-칼라-워커'형 파워포워드로 거듭나 활약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덴버 너겟츠가 배출한 최고의 파워포워드가 아닌가 싶습니다.
C: Dikembe Mutombo
1966년생, 7-2 (218cm). 자기의 출생년도가 확실치 않다고 하며 1964년이나 65년생일 수도 있다고 인터뷰했던 그 무툼보를 빼놓을 수가 없겠죠? 1991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번으로 뽑히며, 그의 프로 첫 4시즌을 덴버에서 보냅니다. 아마도 NBA 역사상 최고의 샷블라커가 아닐런지요? 최우수 수비수상 4회, All-NBA 3회, All-Defensive Team 6회, 올스타게임 8회 출전, 리바운드왕 2회, 블락왕 3회. 1994년 플레이옾 1라운드 시애틀 업셋의 주역이었으며, 당시에 5게임을 통틀어 31개의 블락샷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시애틀 소속 선수들중 무툼보에게 블락을 안 당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루키시즌에 이미 16.6점, 12.3리바운드, 3.0블락샷을 기록했던 레전드입니다. ---------------------------------------------- 이 외에도 90년대 초중반, 트위너 가드로 맹활약했던 마아뭇 압둘라훕(Mahmoud Abdul-Rauf) 이란 선수가 있는데, 지면 관계상 위의 벤치멤버에 넣지를 못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안드레 밀러도 훌륭한 포인트가드지만, 덴버에서 보낸 시즌이 3시즌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었어서 진정한 "덴버맨"이라 볼 수가 없었습니다. 로버트 팩이란 단신가드도 다이내믹한 플레이를 많이 펼쳤지만, 위에 열거된 선수들과는 비교가 안되는 레벨이라 All-Time Team에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덴버 너겟츠를 거쳐간 수많은 위대한 선수들 – 그들이 결코 이루지 못 한 것이 있으니 바로 리그 우승입니다. 1976년 시즌에는, 바비 존스, 데이빗 톰슨, 댄 이셀을 앞세워 ABA 파이널까지 진출했습니다. 그것이 구단 사상 최고의 성적입니다. 이제 이 선배들의 숙원인 우승을, 앨런 아이버슨 (라파옛 리버), 캐년 마틴 (안토니오 맥다이스), 마큐스 캠비 (디켐비 무툼보), 그리고 카멜로 앤써니 (알렉스 잉글리쉬 + 키키 벤더웨이)가 좀 풀어 줬으면 좋겠습니다.
글: Doctor 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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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었어요^^
작년 시즌이 시작할 즈음에 작성한 글인데, 이제는 아이버슨이 없어서 좀 그렇네요. 대신, 맥다이스가 친정팀으로 돌아 오나요? 글의 내용은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겠습니다.^^
잘봤습니다! 엘리스,맥다이스 좋아했는데 참..비슷한 길을 걷네요.
정말 맘에드는 글입니다. ^^ 덴버역사도 궁금해하던 차에 우연히 보게되서 즐겁습니다. "추천" 하고 싶은 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