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판매업계가 초특급 재편을 눈앞에 두고 있다. 후원방판제도의 신설을 골자로 한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방판법)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2만여 방문판매업체와 50만여 방문판매원들은 초유의 결단을 내려야할 상황에 직면해 있다.
후원방문판매란 판매원의 단계는 3단계 이상이지만 후원수당을 1단계만 지급하는 소위 신방판(신방문판매)를 뜻한다. 후원방문판매제도의 골자는 ▲시 도 등록 의무화 ▲공제조합 등을 통한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가입 의무화 ▲취급제품의 가격 160만원 상한선 규제 ▲후원수당의 총액 38% 이내 제한 ▲최종소비자에게 50% 이상을 판매해야 하는 옴니트리션 기준 도입 ▲판매원의 청약철회 기간 3개월로 연장 등이 특징이다. 이를 다단계판매와 비교해보면 5억원 이상을 자본금 요건이 없고 후원수당을 3% 더 줄 수 있는 대신 옴니트리션 기준이 추가되므로 규제 수준은 거의 유사하다.
후원방판제도가 실시되면 직접판매업계는 기존의 방문판매와 다단계판매 구도에서 벗어나 후원방문판매가 가세하며 삼분되게 된다. 업계도 3세대에 돌입하게 된다. 60년대 방문판매가 본격화된 직접판매 태동기를 지나 ▶ 90년대 다단계판매 도입기를 거쳐 ▶ 올해 후원방문판매제도의 신설과 함께 제도권 밖을 맴돌던 소위 신방판이 어엿한 후원방문판매로 자리 잡는 ‘삼국시대’가 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직접판매 ‘삼국시대’ 열리나
이번 방판법 개정안은 그동안 수도 없이 논의되어온 결과물이다. 방판법 개정은 2002년 다단계판매의 소비자피해보상보험제도 실시를 골자로 한 법 개정 이후 끊임없이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으며 2009년 7월 공정거래위원회가 개정안을 제출하면서 법 개정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번 최종 개정안은 지난해 정부의 법개정 TF팀의 회의 결과와 4개의 의원 발의안을 바탕으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대안을 채택하여 지난 3월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회부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개정안이 법사위로 넘어가자 찬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각계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다단계판매 수준의 규제에 직면한 방문판매업계야 당연하지만 소비자단체까지 나서서 졸속 입법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업계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심의 결과가 법사위로 넘어간 날은 3월4일 금요일. 다음주 월요일 한국직접판매협회는 <방판법 개정안의 문제점 분석>이라는 분석 문건을 전광석화처럼 배포했다. 문건에서는 개정 방판법이 ▲방문판매 고사 초래 ▲영세사업자 폐업 속출 우려 ▲자의적 해석으로 인한 불확실성 증대 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법 개정 TF팀에 참여했던 서울YMCA도 후원방판에만 옴니트리션 규정을 적용한데다 다단계판매의 소매이익을 삭제함으로써 사람장사를 부추긴 꼴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신방판은 다단계일까 방문판매일까
후원방문판매제도의 핵심은 신방판이다. 신방판의 실체가 과연 다단계판매인지, 아니면 방문판매인지가 핵심 과제였다. 기존 방판법 개정안도 김동철·홍영표의원안·정부안은 신방문판매를 다단계판매로 보는 입장인 반면, 박상돈·조원진의원안은 신방문판매를 방문판매로 분류하는 입장이었다. 정무위 대안은 신방문판매를 다단계판매에 편입시키지 않으면서도 규제 수위를 다단계판매에 준하게 함으로써 양측의 입장을 절충했다.
신방판을 다단계판매로 분류할 경우 신방문판매 업체 및 판매원이 강력 반발할 것이 예상되고, 방문판매로 분류할 경우에는 소비자피해를 일으키는 악덕업체를 규제하기가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공정위 잇단 패소 “다단계가 방문판매 판결 받아”
공정위가 적극적으로 신방판 제도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행 방판법의 구멍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방문판매법상 다단계판매 요건 중 하나인 소비자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기존에 등록된 다단계업체도 다단계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는 등 다단계판매 규제가 무력화되어 다단계판매 정의규정에서 악용 소지가 있는 소비자·소매이익 요건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소비자요건이란 판매업자의 제품을 구입해 본 소비자가 판매원으로 가입해야 다단계판매에 해당한다는 규정(방판법 제2조제5호)을 말한다. 이 규정 때문에 공정위는 번번이 다단계판매 관련 소송에서 패소하고 말았다. 지난 1월 미등록 다단계업체(소위 신방문판매)인 M사가 소비자 요건을 갖추지 않아 다단계판매로 처벌받지 않은데 이어 “일부 제품을 구입해본 소비자가 판매원으로 가입한 사례가 일부 있다고 해도 소비자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월드종합라이센스에 대한 고법 판결까지 나와 다단계판매 입증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다단계를 다단계라 부르지 못해
사건은 이렇다. 화장품을 취급하던 방문판매업체 M사를 공정위가 미등록 다단계판매를 했다며 시정명령 및 고발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M사는 이에 불복하여 소송을 제기했고 고등법원은 “비록 원고의 판매원이 되기 이전에 원고의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는 소비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체 판매원들 중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고…다단계판매조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보다 더한 사례는 월드종합라이센스사건이다. 월드종합라이센스라는 특수판매공제조합에 가입한 등록된 다단계판매업체가 법적으로는 방문판매업체가 되는 희한한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다. 현재 회사 이름을 바꿔 방문판매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 업체가 애초에 문제가 됐던 것은 후원수당을 법에서 제한한 35%를 넘어서 47%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시정명령 및 고발조치를 했고 해당 업체는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만 2년을 끌며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나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는 “원고의 제품을 구입한 소비자가 원고의 판매원이 된 것이 아닌 이상…다단계판매조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공정위가 패소하고 말았다. 서울고등법원은 ‘다단계판매조직의 경우 판매원 모집시 소매이익과 후원수당 모두를 얻을 수 있다고 권유해야 하는데, 월드종합라이센스는 소매이익을 권유하거나 지급한 적이 없다’고 판시했다. 다단계판매업체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는 업체마저 다단계 규정을 적용할 수 없는 초유의 희극적인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상조업계 “선불식 할부와 후원방판 2중 규제 받나”
후원방판제도가 모습을 드러내자 상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현재 대부분의 상조업체들은 후원방판으로 구분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 상조업체 대부분이 영업 방식과 수당을 지급하는 구조가 후원방판 또는 다단계판매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현행 수당과 판매조직의 구조를 뜯어 고치지 않는 이상 후원방판으로 등록한 뒤 각종 규제를 받아들여야할 입장에 처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상조업체들은 지난해 개정된 할부거래에관한법률(할부거래법)에 따라 선불식할부거래업체로서 자본금 3억원으로서 소비자피해보상보험에 가입하는 등의 규제를 받고 있어 법 적용의 혼란이 예상된다. 또한 할부거래법에는 없는 제품 가격의 160만원 상한선 규정과 후원수당의 38% 한도 규제가 중복될 것인지 역시 초미의 관심사이다. 후원수당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대부분의 상조업체들이 300만원대의 제품을 운용하고 있어 제품 가격의 상한선에는 저촉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법무법인 정일 설경수 변호사는 “할부거래법에서는 거래 형태를 규정하고 있지만 판매조직의 형태에 대한 규정은 방판법에서 규정하고 있어 상조업체들은 일단 할부거래법에 의한 소비자피해보상보험에 가입해야 하며, 후원수당구조가 2단계 혹은 3단계 이상일 경우에는 후원방판이나 다단계판매에 관한 규정을 함께 준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문대학교 법과대학 김홍석 교수는 <알기 쉬운 상조업과 할부거래법>에서 “선불식 할부거래업자가 방문판매 또는 다단계판매의 방식으로 판매활동을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나, 할부거래법상 이를 금지하는 규정이 없으므로 가능하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방문판매 또는 다단계판매의 방식으로 판매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이 적용되므로 유의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상조업체들이 수당지급체계를 수정하지 않는다면 공제조합이야 두 번 가입하지는 않겠지만 판매상품의 제한 규정이나 수당의 지급 상한 규정에 맞춰 체제를 전면 개편해야하는 결과도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상조업체들은 영업 및 수당 지급 방식이 후원방판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기존 판매제품가격이 300만원 선인 상태에서 선불식할부거래제도가 제정된 상황이므로 전과 같이 방문판매로 분류해줄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후원방판 수혜주는 초대형 방판업체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후원방판제도의 실시로 아모레와 LG생활건강이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유사다단계 시비를 벗어남으로써 이미지 실추를 막고 수당 지급의 상한선이 38%로 정해지면 과도한 가격과 수당 경쟁에서도 유리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더구나 수당 상한선 설정으로 인해 기업의 재무구조는 더욱 견실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전산시스템을 구축하는 업체와 법률 자문 및 보상시스템 전문가들도 특수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선도업체들은 군소업체와는 달리 소비자피해보상보험제도로 인한 자금 부담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여 다단계판매의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선두기업의 기득권이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군소 방문판매업체의 경우 제품은 물론 마케팅과 수당 어느 하나도 경쟁력을 갖추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생업체는 초기 공제조합 가입으로 인한 자금부담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유사후원방판업체나 유사다단계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다고 대형 방판업체들이 후원방판제도를 환영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0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방문판매업체를 전면 조사하며 다단계라고 정의한 이래 지금까지 방문판매업계는 사력을 다해 다단계로 편입되는 것을 저지해왔다. 대형 다단계 업체의 한 고위 임원은 “방문판매는 시간 끌기를 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행정소송 등으로 시간을 끌었고, 후원방판을 수용한 것도 최선의 절충을 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며 이것 역시 시간을 끌기 위한 방패 역할 밖에는 안 될 것이다. 방판 업계 역시 신방판은 다단계와 구조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알지만 지금 당장은 편입될 수 없기에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다”고 말했다.
탈법 막는 실효성 확보는 영원한 숙제
정부의 의지대로 후원방문판매가 제도화되더라도 과연 유사다단계와 피라미드 문제는 근절될지는 미지수라는 것이 많은 업계 종사자들의 의견이다. 신방판 형태로 발효건강기능식품을 팔고 있는 F사 대표는 “신방판이든 방문판매든 소비자 문제없이 건전하게 운영하는 업체들은 많이 있지만 이들이 다단계판매나 공제조합을 꺼리는 이유는 과도한 규제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판법은 사회주의 시스템보다 더하다. 아무리 정직하게 운영해봤자 다단계판매라는 부정적인 인식은 벗어날 수 없어 다단계 등록은 아예 검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문판매업체들의 전산시스템을 전문적으로 구축하는 M사의 대표는 “신방판이 제도화된다고 하더라도 방문판매의 판매원 단계는 역시 2단계까지 가능하다. 공정위에서 각종 매뉴얼을 만들어도 이를 마케팅적으로 피해나가는 방법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기상천외한 마케팅의 변신을 아무 혜택도 주지 않는 규제뿐인 법이 과연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판매원들을 방문판매 등록하게 함으로써 규제를 피해나가려는 시도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단계 규정을 피해나가기 위해서다. 현재도 2만개 이상 난립하고 있는 방문판매업체들은 사실상 규제를 벗어나 있다. 미등록다단계 신고 포상금제가 과연 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과연 규제를 받아들이는 기업에게 자부심과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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