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석굴암은 김대성이라는 자가 전생의 부모를 위해 지어진 절이라고 합니다.(현생의 부모를 위해 지은 절이 불국사라고 하네요.)
지금은 석굴암이라고 하지만.. 원래 명은 석불사라고 합니다.
석불사원은 말그대로 돌로 지워진 절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느 많은곳이 발견되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흔히 찾아 볼 수 없는곳이라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석굴암은 우리가 흔희 애국가에서 보는 큰 불상이 있는데 이 또한 불교계의 배척과 거의 일치하는 부처의 크기를 가지며, 웅장한 모습이 어느 불상보다 뛰어납니다. 또한 절 답게 부처님만이 있는것이 아니라. 문지기인 인왕상부터 11제자등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불국사
신라와 통일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이곳에서 많은 문화유산과 유적지가 많은 까닭은 오랜 시간동안 찬란한 신라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일 것이다. 경주의 문화유적지로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불국사... 대부분 초,중,고등학교때 한번쯤은 수학여행 및 소풍장소로서 자주 찾는 장소이기에 아주 낯설지 않은 곳일지도 모른다. . 이번 문화유적답사를 목적을
1. 불국사의 역사 - 창건 5천년 장구한 세월동안 발전해온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경덕왕 10년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였으며, 김대성이 이 공사를 착공하여 완공을 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국가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으니 30여 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불국사(佛國寺) 다보탑, 석가탑에 얽힌 아사녀(阿斯女)의 전설 백제(百濟)의 석공 아사달(阿斯達)은 많은 사람의 칭찬 속에서 불국사의 동탑인 다보탑(多寶塔)을 완성하고 서탑(西塔)인 석가탑(釋迦塔)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고향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그의 아내 아사녀는 그리운 님을 만나러 서라벌의 불국사로 찾아왔다. 아름다운 이 각시가 아사달의 아내라는 말을 들은 주지 스님은 낭패한듯 말했다. "지금 부인의 낭궁님께서는 심혈을 기우려 명탑을 만들고 계시는데 지금 부인께서 나타나시면 그 정성이 부인께로 기우러져서 탑의 완성에 지장이 있을 듯 싶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아사녀는 예술가의 아내였다. 남편의 예술을 위하여 탑이 완성될 때까지 영지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탑이 완성되면 그 그림자가 영지에 비칠것 이라는 말을 들었다. 불원십리(不遠十理)하고 머나먼 곳에서 님을 찾아 왔건만 그리운 님을 지척에 두고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아사녀는 날마다 영지물만 들여다 보고 있었다.
어느날 휘영청 밝은 달이 못안을 비출 때 그 물속에서 기기묘묘한 하얀 탑이 비쳐져 있었다. 아사달이 이룩한 다보탑이였다. 아사녀는 너무 반갑고 감격하여 "아사달님!" 부르며 물속에 뛰어 들어 탑을 껴안았다. 그리움에 지쳐서 탑의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석가탑을 완성한 아사달은 아사녀가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 왔으나 그리운 아내는 물속에 시체로 누워 있었다. 아사달은 미친듯이 아사녀를 부르며 물속으로 뛰어 들었다. "내가 이제부터는 예술도 생명도 다 버리고 다시는 당신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물에 잠긴 아사달의 입에서 나온 마지막 말이었다. 애달픈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이 못가에 돌부처 한분이 앉아 계시니 두 영혼의 명복을 빌던 영사(影寺)의 부처님이시다.
이 못에 그림자가 비쳤던 다보탑은 일명 유영탑(有影塔)이라 하고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던 석가탑은 일명 무영탑(無影塔)이라 부르게 되었다.
|
첫댓글 유리야 어디서 찾았냐 ㄷㄷ 잘헀다.. 근데 너무 복잡해
하ㅏㅎ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