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구는 사철나무입니다. 사시사철 파릇하지요. 한 해 첫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파릇한 기운이 감돕니다.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태초엔 서면 일대가 바다였다고 하네요. 백양산과 황령산에서 떠내려 온 토사가 오랜 세월 바다를 메워 지금처럼 되었다네요. 전포동은 배가 정박하던 포구였다고 합니다. 바닷가 파릇한 사철나무가 부산진구 옛 모습이지요.
부산진구 역사는 유장합니다. 패총이 있었고 고분이 있었고 오래된 성터가 있지요. 1960년대 세상에 드러났던 전포동과 범전동 패총은 부산진구 역사를 선사시대로 끌어올립니다. 경원고 자리 있었던 당감동 고분군은 5세기로 끌어올리고요. 성터는 당감동에도 있고 가야와 개금 일대 수정산에도 있습니다. 당감동 성터는 동평현 성터라고도 하는 삼국시대 유적이랍니다.
좀 전 가야라고 언급했지요. 지명에서 엿보듯 가야시대에도 부산진구는 건재했습니다. 동평현에 속했던 당감동과 가야동 일대는 낙동강과 가깝고 김해가야와 가까워 지리적으론 부산이지만 심리적으론 가야였지요.
신라가 해운대와 동래지역을 점령한 뒤에도 오랫동안 가야세력으로 남아 제 목소리를 내었다고 하네요.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는 불뚝성질 원조가 부산진구인 셈이지요.
불뚝성질은 부산 내지는 경상도를 대표하는 기질 하나입니다. 다른 말로는 반골기질이고요. 불뚝성질이랄지 반골기질은 부산진구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왔습니다. 일제강점기 부산상고 항일학생운동,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박재혁 의사, 4/19의 불꽃 경남공고 강수영 열사 등등이 부산진구 기질, 부산진구 정신이지요.
반골만 있겠습니까. 함부로 범접치 못할 양반 기운도 파릇파릇합니다. 천년 양반가문, 한국 명문가 시조묘가 부산진구에 있습니다.
연지동 화지산 동래정씨 시조 정문도 공의 묘소, 정묘가 그것이지요. 정확히는 2세조입니다만 시조로 받들어도 무방하겠지요. 동래정씨는 영의정 정광필을 비롯해 모두 열일곱 분 조선시대 재상을 배출했습니다. 전주이씨 22명, 안동김씨 19명 다음으로 많다니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가임은 분명합니다.
하마정이라고 들어보셨지요. 지금도 하마(下馬) 빗돌이 양정동에 남아 있는데요 정묘를 지날 때는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추상같은 표지석입니다. 대단하지요.
부산진구는 문화의 향기도 대단합니다. 고려가요 가운데 유일하게 지은이가 알려진 내 님이 그리워 우나니 정과정곡 지은이가 바로 정문도 공 증손자 정서입니다.
그 기운이 누대에 뻗쳐서 그럴까요, 영남 유일한 국립국악원이 부산진구에 있고 새 도로명 가운데 부산 유일한 문화로가 부산진구에 있습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예술인단체 사무실도 부산진구 곳곳에 상주하고 있고요.
경제도 승했지요. 한국 대기업 발상지가 부산진구였습니다. 삼성 모체 제일제당, LG 모체 락희화학, 대우자동차 모체 신진자동차가 오십년대 부산진구를 파릇하게 했습니다.
동명목재도 그렇지만 육칠년대 가난하던 한국을 먹여 살린 굴뚝산업 신발 대기업들은 또 어떻습니까. 태화를 비롯해 삼화 동양 진양 보생 대양이 모두 부산을 먹여 살리고 한국을 먹여 살리던 어버이 같은 기업들이지요.
부산진구는 공원도 많습니다. 어린이대공원, 시민공원, 송상현광장, 화지공원, 가야공원, 돌산공원, 그리고 숱한 소공원들. 부산 유일 동물원도 있고요, 한 마디로 살기 좋은 곳이죠. 살기가 좋으니 기운이 펄펄 넘칩니다. 사람이 왜 아니 몰리겠습니까. 사람이 몰리니 미래가 파릇합니다. 2014년 연말 부산진구가 받은 청소년정책 최우수기관 대통령상이 그것을 입증하지요.
과거에도 파릇했고 미래에도 파릇할 부산진구야말로 사시사철 사철나무고 천년만년 사철나무 아닐는지요.
이제, 사철나무 이파리를 한 잎 한 잎 들여다볼까 합니다. 부산진구 사시사철 천년만년 파릇한 기운을 함께 나눌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