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통 캄캄했던 한 때
휴대폰이 없으면 장님이 된다.
2022.12.6. 사진동호회 회원들과 인천 무의도 출사에 다녀왔다. 무의도 출사를 마치고 부천에 ‘아트벙커 B39’라고 하는 사진 찍기 좋은 문화예술공간이 있다 해서 둘러봤다. 주요전시들이 끝나 오늘은 특별히 볼 만한 전시물은 없었다. 원래 이곳은 쓰레기소각장이었다고 하는데 부천시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고 한다. 건물규모가 꽤 커서 놀랐다.
출사를 모두 마친 후 동호회 회원들은 대절한 버스로 서울로 향하고, 필자는 부천에서 헤여졌다. 부천역으로 가기 위해 시내버스를 타자마자 아뿔사, 휴대폰이 없는 걸 알았다. 이를 어쩌나. 지인들의 전화번호가 모두 휴대폰 속에 저장되어 있으니 전화번호를 몰라 어디로 비상 연락할 수도 없다. 요즘은 도시 어디에도 공중전화 박스가 없어 연락방법이나 신고방법도 막막하다. 마치 어둠 속으로 들어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형국이다. 장님이 되었다. 주요 약속정보나 일정, 전화번호 등을 휴대폰에 저장하고 의존하는 시대. 휴대폰이 문명의 이기인지 내가 휴대폰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 모를 지경이다.
무의도 출사지 아니면 버스에 떨어뜨린 것 같은데 확인해볼 방법이 없다. 어찌해야 할까? 답답할 뿐이다. 휴대폰을 어디에서 분실했는지 혹시 누가 보관하고 있는지를 확인할려면 우선 먼저 내 휴대폰번호로 전화를 걸어보는 게 순서일 터인데 당시에는 당황스럽다 보니 아예 그런 생각이 미치지조차 않았다. 이 때 순간적으로 뭔가 다른 아이디어가 문득 떠올랐다. 무의도에서 별 의미도 없이 버스 번호와 전화번호를 DSLR카메라로 찍어놨던 생각이 난다. 마침 이 버스 밖 옆면에는 버스회사명과 함께 전화번호도 기재돼 있었다. 내가 왜 그런 별 필요가 없을 듯한 사진을 찍어놨을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고가 날 걸 미리 알고 대비해 주신 걸까? ㅎㅎ
시간이 급하다. 부천역 대기실에서 벤치에 앉아 휴대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는 젊은이에게 다가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버스회사에 전화 좀 걸어줄 수 있는지 부탁했다. 젊은이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곧 내 딱한 사정을 이해하고 버스회사에 전화를 걸어 몇 번 버스 기사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버스기사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다.
즉시 버스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제일 앞자리에 있는 승객 누구든 바꿔줄 수 있는지 사정했다. 버스기사도 처음에는 운행 중이라 부담스러워했지만 곧 동호회 회원 중 앞자리에 앉아 있는 여회원을 바꿔준다. 휴대폰 분실 얘기를 하고 혹시 내 자리에 가서 휴대폰이 떨어져있는지 확인을 부탁했다. 1-2분 후 연락이 왔다. 찾았단다. 이런 쾌거가!
그런데 사후적으로 알게 된 것이지만 당시 내 휴대폰은 좌석 아래 보이지않는 곳에 떨어져 있었고 하필이면 볼륨이 낮춰져 있어서 전화를 걸어도 거의 벨소리가 들리지않았다고 한다. 내가 위와같이 먼저 버스회사 연락- 운전기사 휴대폰 번호 입수-운전기사에게 직접 전화 -동료회원들의 휴대폰 찾기 등 과정을 취하지않았다면 좌석 아래 보이지않는 구석에 떨어져 있는 휴대폰을 쉽게 찾기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해프닝을 겪으면서 세가지 교훈과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우선 휴대폰은 늘 정상적인 볼륨을 유지해놓고, 분실시에는 제일 먼저 그 휴대폰에 전화를 걸어 혹시 누가 보관하고 있는 지 소재파악을 먼저 해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대비는 지인들 휴대폰번호와 주요약속 및 일정 등은 평소 반드시 다른 곳에 백업시켜 놔야 한다는 점이다(백업방법은 Smart Switch 등 다양한 방법이 있음. 하단 유튜브 참조). 셋째는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전화번호는 이 세상에서 오직 아내 휴대폰 번호 한 개 뿐이라는 사실이다.
지인들과의 모든 연락을 휴대폰에만 의존하다 보니 평소에는 굳이 기억해놓은 필요를 느끼지않는다. 이런 연유로 오늘같은 분실사고를 당하면 완전 깜깜이가 된다. 자식이나 형제자매의 전화번호조차 전혀 기억나지않는다. 나이들수록, 기억이 희미해질수록 내겐 아내 한 사람 뿐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 오, 아내여! 제일 무섭지만 누구보다 가까운 아내여!
https://www.youtube.com/watch?v=gKhbsIEHERk&t=126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