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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학(大堤學) 박연(朴堧)은 영동(永同)의 유생이다. 젊었을 때에 향교(鄕校)에서 학업을 닦고 있었는데 이웃에 피리 부는 사람이 있었다. 제학은 독서하는 여가에 겸하여 피리도 배웠다. 이에 온 고을이 그를 피리의 명수(名手)로 추중(推重- 높이 받들어 귀하게 여김)하였다.
제학이 서울에 과거를 보러 왔다가 이원(梨園 장악원)의 피리 잘 부는 광대를 보고 피리를 불어 그 교정(校正)을 청하니, 광대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소리와 가락이 상스럽고 절주(節奏- 리듬)에도 맞지 않으며, 옛 버릇이 이미 굳어져서 고치기가 어렵겠습니다."고 하였다. 제학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더라도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고, 날마다 다니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수일 후에 광대가 제학의 연주를 듣고는 말하기를, "규범(規範- 법도)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장차 대성할 수 있겠습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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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일찍이 석경(石磬)을 만들고 제학(박연)을 불러 교정하게 하였더니...
제학이 말하기를, “어느 음률(音律)은 일분(一分) 높고, 어느 음률이 일분 낮습니다.”고 하였다. 다시 보니 음률이 높다고 한곳에는 찌꺼기가 붙어 있었다. 세종이 찌꺼기의 일분을 떼어내라고 명령하였다. 또 음률이 낮다고 한곳에는 다시 찌꺼기 일분을 붙였다. 제학이 아뢰기를, “이제 음률이 바르게 되었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모두 그의 신묘(神妙)함에 탄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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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이 정비하여 궁중 아악에 사용해온 악기들. 왼쪽부터 편경, 편종, 특종, 방향(方響)이다. 현재도 종묘제례악에 쓰이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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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 위치한 난계사. 난계 박연을 모신 사당이다. |
박연의 글을 모아 엮은 시문집 난계유고(蘭溪遺稿). 여기에 실려있는 상소문 39편은 대부분 악기, 음률, 악제 등 음악에 관련된 것으로 조선 전기 음악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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