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鮑石古詩 포석고시 /혜완
금오산의 서쪽자락 전복모양 鍊石하여
유상곡수 포석정에 경애왕이 宗戚大臣
妃嬪美姬 더불어서 置酒娛樂 연회하니
후백제의 견훤왕이 침공하여 殺戮하네
그때당시 遊樂奏曲 아직까지 전해오니
기원함의 실제로다 동서에는 두절두고
송백서로 버팀하며 넝쿨덮힌 골속이네
머리돌려 바라보면 언덕가득 꽃이로다
실안개와 엷은구름 달빛함께 어리어라
石虎새긴 궁중에도 가시돋아 자라나고
구리낙타 장터에는 사람자취 간곳없이
높은정자 현금소리 솔바람에 零落하고
지는달빛 아쉬워서 옛성터를 비추나다
거문고와 피리소리 목메이게 슬픈것은
띄워보낸 금술잔이 굽이굽이 흐를적에
못다흘러 대궐산하 허무하게 사라지니
술취하여 즐기던곳 日月만이 진을치네
포석정앞 말세울때 옛날일이 그립구나
유상곡수 하던터는 여전하게 남았지만
음주가무 미쳐날뛴 그옛일이 그릇되어
荒淫으로 망하잖은 나라있지 아니하니
慷慨하여 나혼자서 눈물로서 옷적시네
오릉길을 지나가며 시한수로 읊조리니
金城石堡 모두가다 석양빛에 물들었네
포석정변 해저물고 들해당화 주인없어
당년에는 三風戒를 살피지도 않았더니
눈깜작새 堪傷하여 일만사가 잘못되니
꽃이물에 떨어지니 어찌할수 없었으며
죄인옷을 갈아입고 어찌차마 술잔치나
포석정의 끝없는한 마음깊이 생각하니
우는새와 지는해에 붙혀볼까 하노매라
전복등위 굽이쳐서 물이돌아 나가는데
깃털장식 송죽사이 은은하게 비추이네
궁중안의 돌저울은 오랫동안 쓰지않고
무당제사 빙자하여 한가로움 탐닉했네
군신들이 기뻐뛰며 유상곡수 구경할때
견훤군의 북소리에 금오산이 진동했네
허둥지둥 임금수레 길로모두 달아나니
사나운적 그누구가 꾀를내어 막겠는가
붉은피는 견훤왕의 칼날위를 더럽히고
만조백관 띠풀처럼 狼藉하게 쓰러졌네
편안함을 즐긴재앙 잠시라도 지탱못해
모름지기 진한국의 힘든국운 믿어야지
그당시의 종묘사직 이미타고 남은재뿐
천년세월 무디어진 돌조각만 남았도다
내가와서 옛사람을 조문하여 휘파람부니
바람구름 슬퍼하고 시냇물은 흘러가네
푸른시내 한줄기가 에워싸고 감도는데
쓸쓸하고 거친골짝 잇달아서 열렸구나
산해진미 흩뿌려서 쓸려나간 개울곁에
봄볕남은 늙은돌에 푸른이끼 돋아났네
그옛날의 신라임금 온갖政事 싫어하여
금수레에 옥가마를 길게늘여 배회타가
이곳으로 흘러들어 맑은물을 희롱하니
깃털술잔 둥둥떠서 물결따라 흘러와서
임금신하 노래하고 몽롱하게 취하였네
악기소리 땅울리니 봄날우레 소리같아
적병들이 깊숙하게 들어감도 모르도록
밝은대낮 철갑기병 재갈물려 잠입하여
피를밟는 궁전뜨락 어찌차마 말하리요
창황하게 아침저자 휘날리는 티끌먼지
궁녀들은 군사들에 짓밟히며 울부짓네
보물비녀 풀섶위로 떨구면서 달아나니
蟹目嶺의 마루턱에 슬픈구름 어리었다
솔바람은 아직까지 슬픈역사 띄고있고
그대께선 모르는가 봄을맞아 취하고서
문지키던 韓장군도 모르고서 당했음을
계수나무 푸른달빛 옛노래는 끊임없어
중국강남 王業들이 연기같이 스러졌네
앞서가는 수레따라 경계할만 하다마는
뒷수레에 마구쫒겨 엎어지고 말았으니
원하노니 하늘께서 넋이라도 수호하사
이곳머문 後人들이 거울삼게 하옵소서
계림의 단풍나무 그가지를 바꾸었고
견훤왕이 신라왕조 멸했음이 아니로다.
포석정이 제스스로 적병불러 들인것을
이렇게된 임금신하 어찌대책 있었으리
큰고개가 험준하게 신라국을 감싸있고
낙동강은 밤낮으로 동해구로 흘러가네
굳센강토 흠이없어 왕업이 장구하니
군신들은 안일꾀해 제멋대로 즐기누나
명활성밖 정자하나 포석정이 높이있어
대낮에도 잔치벌여 뭇관리들 모여놀며
맑은노래 몇번인가 춤은몇번 추었던가
구름안개 분분하여 큰변란이 일어나니
여러술병 아직미처 비우지도 못했는데
밖에서는 천군만마 풍우처럼 몰려오네
봄기운이 갑작스레 殺氣되어 다가오니
바람불어 계림황엽 모조리다 쓸어가네
임금님이 엎어지니 용이물을 잃었으며
미인들은 통곡하며 얼굴감춰 도망가네
세성인이 이룩하신 천년왕업 어찌하며
연기처럼 사라지고 눈과같이 녹았으니
荒淫하고 毒酒마심 뉘우쳐도 소용없고
황천에서 운다한들 부끄러움 없겠는가
만고부터 포석정은 여전하게 전해오니
앞의행적 뒷사람이 어찌따라 밟으리오
삼월초순 청명절에 답청놀이 나섰더니
문천내의 꽃과버들 어둠속에 잠겨있네
굽이굽이 잔흘러서 마음상한 일뿐이니
바람부는 포석정엔 오르지를 말으시오.
*포석사와 나을신궁(나정)은
신라왕실의 종묘로 왕의 즉위식이나
제사, 길사를 행하던 장소였다.
후세의 騷客들은 나라 망한
이유를 여자와
음주가무에 부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