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약 30년 정도 공사현장을 누비면서 여러번 하늘나라로 갈 뻔한 경험이 있습니다.
장마비가 오는 이 때 쯤이면 그 때의 악몽이 되살아 나서 되새겨 보면서 글을 씁니다.
1981년 울산 한국은행 신축현장에서 건축기사로 근무할 당시 소장께서 공사비를 아끼려고 흙막이공사를 대충하는
바람에 흙막이 토류판과 파일이 붕괴 직전에 소장의 명령을 받고 지지대를 설치하러 갔습니다. 한시간 후에 붕괴되었는데
단1초만 늦었어도 신혼 초에 예쁜 새악시 두고 황천으로 갈 뻔했습니다. 비가 너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1982년 수원대학교 신축현장에서 야간에 침범한 괴한이 당직자인 저를 순간적으로 가격하여 오른쪽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습니다. 괴한은 잡지 못하고 도망갔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뭐가 어떻게 된지도 모르고 당했습니다.
1991년에 부산 주공아파트 현장소장으로 재직시 장마비 점검 야간 순찰하면서 밤11시경에 중앙기계실이라는 지하 기계실에
발을 헛디뎌 추락했습니다. 높이가 약6미터이고 바닥에는 쇠로 된 펌프류가 설치되어 머리를 찧었으면 즉사했을 것입니다.
한 뼘의 콘크리트 공간에 추락되어 다행히 아무 곳도 다친 곳이 없이 3시간 뒤에 현장식당 주인이 이상한 소리를 듣고 구출해
주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마철 칠흑같은 밤이었습니다.
아내는 자기가 열심히 천주님께 기도한 덕이라고 열심히 성당에 나가라고 해서 그 때부터 열심히 나갑니다.
1992년 부산 해운대 아파트 현장소장 재직시 태풍에 넘어 가는 철 타워를 넘어 가지 않게 죽음을 무릅쓰고 올라 가서 와이어로
반대편에 고정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누구도 올라 가지 않으려고 하였지만 인근 아파트에 전도되면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불 보듯하여 책임자로서 어쩔 수 없이 올라가서 피해를 막아 내었지만 정말 아찔합니다 .
전도되면 깔려서 죽을 수 있거든요.
2001년 부산해운대 까르프공사에서 소장이 힘들어 도망가 버리고 임원인 제가 옥상바닥에 막지 못한 홈통 구멍에서
빗물이 쏟아져 지하까지 침수되는 것을 막으려 캄캄한 밤에 7층 높이의 외줄 비계를 올라 타고 올라갈 때 제 어머니께서 이런
짓을 하려고 없는 돈에 저를 대학까지 보냈는가? 생각하며 건축과를 택한 저를 무척 원망했습니다.
아찔한 높이에 미끄러운 쇠파이프 한 줄 타고 올라 가다 미끄러지면 그야말로 황천길이지요 . 지하실에는 까르프 매장으로
오픈 준비로 준비된 물품들이 트럭 기 백 대 분량이 들어 있었거든요. 침수되면 수 십억을 변상해야 되니 어쩔수 없었지요.
비만 오면 소름이 끼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공과대학 건축과나 토목과 가려는 친지 후배들 있으면 도시락 사서 말렸지만 누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인명은 재천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은 말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너무 힘들 때가 많아 되도록이면 권유하지 않습니다.
우리 회원님들 가족 중에 건설과 연관 직업을 가지신 분들이 많은데 그 분들의 노고를 아끼지 말고 위로해 주시기를...
밖에는 비가 와서 몇차 적어봅니다. 감미로운 시와 그림이 아니라서 죄송.....
첫댓글 나팔꽃님 장~하십니다...열심히 사셨군요..그렇게 남들을 위해서 솔선수범 힘들게 일을 하시니 천주님께서 돌봐 주셨지요...힘든 고비 많이 넘기셨기 때문에 앞으로는 좋은 일만 가득 할 겁니다.몸조심 하셔요~~
나팔
님,, 

예요.. 그래서 더더욱 걱정을 많이 하시고,, 당부의.. 격려의 말씀을 거듭 말씀 하셨군요.. 힘.. 내시고,,, 건강.. 몸 챙기세요.
나팔
님, 홧팅 
요 근래에 도 타워가 넘어져 선로를 덮치는 바람에 크레인 기사분 세상을 등지고 많은 시민들 불편을 격었지요. 안전 불감증은 우리나라가 아직은 선진국이아닙니다. 남의 나라 예를 드는것은 실례지만 카나다 같은 나라는조그만 길을 하나 고치는데도 앞뒤로 한사람씩서서 호들갑을 떱니다. 그런데 그게 맞는거예요. 우리는 그런것을 배워야 하니다. 내일 봐요. 술한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