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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정서에 맞는 목회와 교육이 필요하다
- 농촌교회 교육목회 현장사례 -
김유석 목사<남원 원천교회>
아름다운 원천교회
원천교회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교회이다(남원시 소재). 교회가 이곳에 세워진 지는 내년이 50주년이 되는 해이니까 반세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교인 수는 어른이 50여명, 청년이 10여명, 중·고등부 학생이 15명, 주일학교가 30여명 정도이고, 교회 1년 예산은 5천만 원 가량 되는 전형적인 작은 농촌 교회이다.
처음 교회에 부임해 왔을 때 영산(靈山)이라고 불리는 지리산 밑에 자리잡고 있는 아담한 교회가 마음에 들었다. 빽빽한 도시 한 가운데 숨막힐 듯 서있는 교회만을 보아오다가 마을 한 편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는 교회를 보았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이런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교회에서 처음으로 단독 목회를 할 것을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그러나 부임 첫 주일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에 들어서는 순간 그러한 환상이 다 깨어지는 것 같았다. 대략 65세는 족히 넘었을 것 같은 노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낙심이 되었던지 그 순간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아름답고 멋있는 목회는 고사하고 장례(葬禮)만 치르다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어린 학생들이 몇 있어서 도시에서 하던 대로 공부방을 만들어 주고 필요한 책들을 구비해 놓고, 그들과 함께 하는 재미를 위안 삼아서 처음 목회를 시작했다. 솔직히 다른 것에는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처음 목회를 하면서 또 한가지 재미를 붙인 것이 있었는데 교회 앞에 흐르고 있는 개울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것이었다. 맑은 물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기를 잡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어떤 때는 새벽에 기도회를 마치고는 개울에다 어항을 갖다 놓고 아침을 먹고 다시 냇가로 가서 고기를 건져 오는 재미로 어항 목회(?)를 했었다. 개울가 옆에서 밭을 일구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 교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정도이니까.
그렇게 적당히 목회 아닌 목회를 하던 중에 전국을 여성 인권문제로 들끓게 했던 '김부남 씨 성폭행 살인사건'이 교인들간의 문제로 일어나면서 처음으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 당시 생각으로는 이제 원천교회는 끝났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사건을 수습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마침 그 날이 수요일이어서 지친 몸으로 교회에 들어섰는데 그 순간 전율하게 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교인들 간에 큰 문제가 생겨서 목회자인 내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며 심한 좌절감 속에 빠져 있는데 뜻밖에도 교인들이 한사람도 빠짐이 없이 교회에 나와서 수요예배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지 않는가?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나는 이들을 무시하고 가볍게 생각하며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위기 앞에서 변함이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농촌 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힘을 보았다. 그들은 정말 대단했다. 겉으로는 보잘 것 없고 약해 보이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지닌 신앙적 순수함과 인내하는 힘을 눈으로 보게 되면서 처음으로 농촌목회에 대해서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농촌교회가 지닌 힘은 변함 없이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순수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그곳에 있다는 점이다.
농촌목회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점은 결국 목회자 자신의 문제였다. 농촌교인들, 그들은 언제나 변함 없는 모습으로 그곳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문제는 그들의 삶의 자리와 정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오직 목회자 관점에서 그들을 보고 교인들을 이리저리 흔들다가는 제풀에 지쳐서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떠나 버리는 우리 목회자들의 문제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농촌목회를 하기 위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신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었던 내게 농촌목회자 연합회(이하 농목·農牧)와의 만남은 너무나 소중했다. 그 모임을 통해서 농촌교회를 사랑하는 목회자들의 진지한 모습과 열정을 보았다.
농목은 농촌의 삶과 교회, 그리고 교인들을 이해하며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농촌의 삶의 어려운 문제를 몸으로 안고 고민하는 분들을 대하며 그 동안 철부지 같았던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교인들의 삶을 새로이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교인들과의 관계도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농촌교회 교인들이 지니고 있는 삶의 힘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철부지 목회자에서 조금은 철이 들어가는(?) 목회자로서 자리 매김을 하게 된 것 같다.
본격적으로 농촌목회에 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목회 초점이 '도시의 틀'을 벗는 것이었다. 그 동안은 농촌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도 농촌목회이기보다는 농촌교회를 통한 도시 지향적 목회를 하고 있었고 솔직히 그 차이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은 교회 성장 이야기를 끊임없이 해야했고, 도시에서 하던 전도방법들을 그대로 시도해 보면서 따라주지 않는 교인들을 원망도 많이 했고, 도시에서도 잘 안 되었던 성경공부도 시도해 보았지만 내가 부족해서인지 거의 다 실패하고 말았다. 된장국을 즐겨 먹는 사람들에게 피자 먹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결국 내 자신의 실패였다.
그런 중 참가했던 세미나에서 "농촌사역을 하고자 하느냐? 그러면 도시의 때를 벗어 던지고, 땅의 자녀로 거듭나라"고 고함치던 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내게 무엇이 문제였는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내 관심은 농촌의 목회 초점을 어떻게 찾아갈까 하는데 있게 되었는데 그 답은 농촌의 삶의 자리와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농목(農牧)에 참가하면서 느낀 점은 현재 농촌교회는 정확히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몇 가지 유형의 목회가 있다. 농촌의 삶을 질적으로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그래서 유기농법, 직거래를 하면서 농촌의 문제를 안고 씨름하려고 하는 목회자들과 교회가 농촌에 있기에 농촌교회를 섬기는 소박한 목회자들 그리고 지금은 농촌에 몸을 담고 있지만 언젠가는 도시 목회를 꿈꾸고 있는 목회자들이 있다.
나와 교인들은 농촌교회와 도시교회를 연결해 줄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하는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고, 그러한 점에 초점을 맞추는 목회를 지향하기로 방향을 잡았고 우리 교인들은 스스로가 농촌교회의 공동체성을 찾아 훈련해 보자고 하는데 마음을 모아서 지금까지 진행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겠다.
목회자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농촌교회는 매우 열악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 적은 예산, 젊은 사람이 없는 교인들, 교육여건이 전혀 없는 환경 등…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과 초점이 도시적 관점이라는 점이다. 조금만 세밀히 보면 농촌의 교회는 도시교회가 지니고 있지 못한 좋은 점들을 가지고 있다. 농촌교회에서 희망적인 목회를 하려면 목회자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각자의 환경에서 그것을 발견해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어서 춤을 출 수 있게 되면 희망은 저절로 생겨난다.
농촌의 정서에 맞는 목회와 교육이 필요하다.
10여 년 간 시골 목회를 하면서 다양한 목회자의 모습을 보아왔다. 그 중에 본 한 농목(농촌목회자 연합회 약칭) 선배의 농촌 살리기를 위해 처절하리만큼 애쓰는 아름다운 모습은 나에게 농촌목회의 의미를 각인 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농촌교회를 자립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농산물 팔아주기 프로그램을 시작하였다가 농촌의 현실에 눈을 떠서 농민 운동가가 되다시피 한 모습을, 유기농법을 통해 땅의 소중함과 생명의 귀중성을 알리며 동분서주하던 모습, 그러나 끝내는 견디지 못하고 농촌교회를 떠나는 슬픈 모습도 보았다. 그런가 하면 요사이는 농촌에 미래가 있다고 하며 도시의 삶을 과감히 정리하고 농촌으로 내려와 함께 생활을 하면서 미래를 설계하는 이들의 삶도 보고 있다. 어떤 사람은 포기하고 떠나고 어떤 사람은 살아 보겠다고 들어오는 농촌의 현실….
본인도 대다수의 농촌목회자들이 지녔던 열정의 과정을 10년 간 농촌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겪어왔다. 그런 과정을 겪은 지금 내 삶에 한 부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은 역시 농촌이야말로 우리들의 미래라는 점이다. 그러나 지금껏 한 것처럼 현재의 우리의 삶의 정서가 바뀌지 않은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농촌 운동보다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삶의 정서를 바꾸는 과정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바로 이점이 앞으로 교회가 실시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교회 성장의 논리에 젖어들어 있는 한국 교회(도시와 농촌이 별다를 바 없음) 속에 하나님의 정신과 자연, 그리고 인간들이 더불어 사는 조화로운 세상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이미 그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모순된 과정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겪어왔다. 한 예로 유기농산물 거래를 들어본다.
유기 농산물 거래는 말 그대로 농약과 비료를 쓰지 않은 좋은 농산물을 도시인들에게 직접 전달해 주고, 중간상인들을 거치지 않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이익을 농촌에 돌려줌으로써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운동으로서 이 운동이야말로 자본주의 물결 속에서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는 도·농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어왔다. 본인도 이 점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렇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듯 좋은 취지에서 비롯된 운동임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직거래 운동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사안이었기에 그 동안 여러 방향에서 평가와 진단을 내렸고 전문가들의 자문도 들어 왔다. 그 중에 한가지 평가가 판매구조에 문제가 있으니 판매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고, 판매 구조를 바꾸는 일에 최선을 기울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엉뚱한 답이 나왔는데 바로 이익이라는 자본주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의 자본주의적 정서가 문제였다. 즉 비 생태적이요, 반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 몸에 배여 있는 우리들이 갑자기 유기농업, 직거래를 통하여 생태적 삶으로 돌아가 보고자 하니 그 과정이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다. 교인과 주민들에게 유기 농산물 재배를 가르쳐 주어서 농촌수입이 증가되면 오히려 교회를 떠난다. 어떨 때는 이익이 생각보다 작다고 해서 목사와 다투기도 한다. 왜? 모든 것을 이익 위주로 생각하는 몸에 배여 있는 삶의 정서가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교회를 이루어 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의 기본적인 삶의 정서를 바꾸는데 온 힘을 기울이기로 목회의 방향을 결정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교회 구조 안에서 공동체적 정서를 깨트리는 구조와 요소들을 걸러 내는 일을 시작했다.
우선 현재 교회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육 목적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작했다. 지금 대다수의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회교육은 그 내용과 방법이 교회성장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는 어른 중심의 교회 모습에서 그리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모든 것이 시상제도와 학년별 교육 구조 속에서 진행되는, 한 마디로 엘리트 신앙인을 지향하는 교육구조이다. 그러한 신앙 교육을 받고 자라난 어린이들에게서 교회 공동체성(共同體性)을 지향하는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교회 공동체가 지니는 근본 정신 하나님의 정신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해 볼 때 어긋나도 너무 어긋나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모습들이 너무나 당연시 여겨지고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본주의 논리 구조의 정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회의 정서를 되찾는 것이다 라는 생각에 초점이 모아졌고 마음이 모아졌다. 그래서 현재 우리 교회 모든 프로그램들은 공동체 정서를 회복하는 데로 방향 지어져 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점들을 발견하면서 희망을 지닌 교회로 자리 매김을 하기 시작했다.
시골의 사랑방 공동체적 정서를 이용한 생활 나눔(현재 6년째 진행)
이 프로그램은 주일 밤에 하고 있다.
주일 밤 예배는 약 2시간 가량 진행되는데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찬양 나눔
우리 교회 복음 성가 부르기는 70년대 복음성가에서 최근의 학생들이 부르는 찬양을 망라해서 부르고 있다. 학생들과 청년들이 밤 예배에 거의 모두가 참여하기 때문에 다양한 찬양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이가 드신 어른들의 서툰 몸짓과 청소년들의 맑은 노래가 어우러지는 찬양을 상상해 보라.
② 생활 나눔
보통 1시간 가량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교인들 스스로가 진행한다. 밤 예배 시간만큼은 교인들 서로가 애칭을 부르고 있는데 참고로 내 애칭은“돌멩이”란다. 이야기 내용은 주로 지난주간 동안 겪어 왔던 삶의 이야기들이다. 처음에는 주제를 주어서 의도적으로 진행해 보았는데 토론 형식에 익숙하지 않은 교인들에게는 오히려 그들의 이야기를 경직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편안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간이 3대(장년-청년-학생, 또는 할머니-시어머니-며느리)가 함께 할 수 있는 대화(對話)의 자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대화의 주제가 달라서 매우 힘들고 어색했지만 6년이 지난 지금은 매우 다양한 이야기들이 꽃을 피우고 있고, 준비해 오는 다양한 음식들을 함께 나누면서 때로는 울기도 하고 때로는 웃기도 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공동체적 정서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지금 우리 삶의 공간 어디에 가치가 다른 3대가 모여서 웃음꽃을 피울 수 있는 곳이 있을까? 3대가 함께 앉아서 삶의 희로애락의 문제들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한다. "더디 가도 우리식대로 살지요."라고 말했던 이의 말처럼 교회의 공동체적 정신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농촌생활 속에 묻어난 믿음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교회 성장이 느린 것은 사실이다. 우리 교회는 인원을 늘려 가는 데에는 별반 관심이 없다. 더불어 살아가는 기쁨을 맛보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③ 성서 나눔
교인들 스스로가 주어진 성서 본문을 일고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그 동안 도시에서 해보았던 여러 가지 성서공부를 진행해 보았지만 내가 부족해서인지 다 실패를 하고 말았다. 결국은 지적인 성서 나눔으로 갈 수밖에 없는 수많은 교재가 그들의 삶의 신앙을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의 눈으로 보는 성서 나눔을 하고 있는데 생활 나눔의 뒤를 이어서 진행되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누어지고 있고, 그 내용들은 그들의 삶의 고백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성경교사가 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가량 드려지는 헌신예배 시간을 위해서 오시는 강사 목사님들도 여기에 참여하는데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신선함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이 시간에는 참여하여서 그 날 읽은 성서 이야기에 대한 나의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저녁 예배시 내 본분(?)을 다하고 있다.
- 수요 예배도 이와 같은 초점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다.
- 1년에 한 차례 12월 마지막 주간에는 '전교인 공동생활 체험'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3대가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잠을 자고 목욕을 하면서 등을 밀어주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 1년에 4회 정도 은퇴하신 목회자들을 모시고 진행하는 '일일목회' 프로그램이 있다. 공동체 정서 회복에 이 프로그램은 의미가 있었다. 평생을 목회 하다가 어느 날부턴가 소외되었던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은퇴 목회자뿐 아니라 교회 노인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도시와 농촌 교회 연결 고리-도시와 농촌 교회가 함께 하는 시골여행 이 프로그램은 교회가 위치한 교회 환경의 특성을 살려서 진행하게 된 프로그램이다. 현재 도시 교회 교인의 대다수는 농촌 출신이거나 농촌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 교회에 대한 도시교회와 교인들의 이해가 갈수록 어려워져 가고 있는 시점에서 농촌의 삶과 농촌교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농목의 도움을 받아 진행하게 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목은 "도시와 농촌의 학생들이 함께 하는 시골여행"이다. 이 프로그램은 중·고·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름 수련회 프로그램인데 처음 시작은 도시교회가 매년 여름이 되면 각종 형태의 수련회의 반 생태적인 모습에 회의를 느끼던 중 그 대체 프로그램 제시로 시작되었다. 대다수의 도시교회가 여름이면 실시하는 수련회들은 그 장소가 대부분 농촌에서 진행된다. 수련회를 하는 목적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농촌의 아름다움을 보며 신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자는 취지에서 실시하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농촌에 와서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그러한 의미와는 거리가 먼 그 동안 도시 교회에서 하였던 수많은 오락성 프로그램(비 생태적 프로그램들)들을 하고 가면서 가히 놀랄만한 예산들을 쓰고 가는 것을 보면서 비록 어려운 농촌교회이지만 생명의 근원지로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농촌의 모습을 가감 없이 도시교회와 학생들에게 보여 주고 경험케 함으로써 농촌의 생활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창조와 생명의 정신을 느끼게 해주자고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다.
이 프로그램은 1회에 30∼60명 정도의 도시교회 학생들을 초청해서 3박4일간 자연과 농촌의 삶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경험케 하고 농촌의 곳곳에 남아 있는 조상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우리 문화 탐방, 그리고 도시의 삶 속에서 삭막해져 있는 아이들의 심성 회복을 위한 마음 나누기 등의 프로그램들을 경험케 하여 기존의 수련회 모습을 떠난 신앙과 삶의 정서를 회복케 하는 데에는 중점을 둔 프로그램들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우리가 지니고자 하는 초점은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본래적 모습과 정서를 되찾게 하는 데에 있었는데 앞으로 부족하지만 조금씩 더 노력하면서 계속해서 진행해 보려고 하며 전국적인 프로그램으로 확산 시켜 보려고 계획 진행 중에 있다.
대상 : 도시교회 교회학교, 문화권이 다른 교회 학교
제목 : 도시와 농촌의 학생들이 함께 하는 시골여행
내용
① 시골생활 체험(시골집 구경하기, 음식 만들기, 시골집에서의 하루생활, 시골길 걷기 등)
② 자연 느끼기(산행, 야간 산행, 숲 속에서의 하루, 황토 길 걷기, 별 보기…등)
③ 전통문화 체험
④ 심성수련을 통한 마음 다루기
⑤ 영성 회복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지면 관계상 프로그램 내용 소개는 생략하겠다).
결과
① 1 차 : '94∼'99년까지 6년 간 실시, 현재 150여 개 교회에서 2천 여명 학생 참여.
② 2 차 : 2001년 현재 준비 중(7, 8월 실시)
-현재 이 프로그램은 농목 안에서 조금 더 확장되어서 청소년들의 정서에 도움을 주면서 도시 학생들에게 생명의 근원인 농촌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하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고자 농촌교회에서 가능한 프로그램을 기획 준비중에 있다.
우리 교회 교회학교 교육은 이렇게 한다(교육 내용 생략).
① 교회교육에 가장 큰 초점은 '공동체성 함양'이다. 때문에 모든 교육 프로그램들이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한 예로 우리 교회 교회학교는 학년제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활동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주일학교 수가 적어서 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리키고자 함이다. 자기의 동생도 아닌 어린 학생을 화장실에 데리고 가는 언니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② 중·고등부 학생들 교육의 가장 큰 초점은 '다양성'이다. 획일화 된 구조 속에 살기 쉬운 오늘 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창조성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한 관심이다. 그래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 중에 '역사 문화체험 여행'은 현재 7년째 진행하고 있다.
다른 문화권 체험은 학생들에게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지혜를 갖게 하고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 준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농촌이 지닌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알게 하고 농촌이 지닌 공동체 정서 그리고 농촌이 지닌 생명 운동의 가치의 중요성을 체험케 하는데 교육의 주된 관심을 두고 있다. 이것은 매우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하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는 10년 가량 진행해 오고 있다. 내가 부임해 왔을 때 초등학교 학생들이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대학생, 직장인이 되고 결혼을 해서 교회에 남게 되면서 교회가 젊어지기 시작했다. 시골 여행 프로그램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젊은이들이 교회에 남았기 때문이다.
농촌교회의 정서에 맞는 교회학교 교육을 위한 몇 가지 제안
1. 예배(30분)-분반공부(30분)-특별활동(1시간)의 전통적인 교육적 습성에서 벗어나 한다.
① 전통적으로 성인예배를 모범으로 하고 있는 교회학교 예배는 올바른가? 농촌교회 학교의 정서에 맞는 예배 모범을 지니고 있는 교회는 없을까?
② 교사가 없는 교회에 분반공부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가능하다면 학생들 스스로가 할 수 있는 분반공부 방법은 없을까?
③ 1시간이라는 교육시간에 비추어 이제는 15-30분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는 분반 교재도 필요하다.
④ 한 주는 예배를 성실히, 또 한 주는 성서이야기 나눔을, 또 한 주는 생활 나눔을 중심으로 하는 특별활동을, 또 한 주는 어른과 함께 드리는 예배 등으로 나누어서 교육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2. 10명 미만의 교회학교 운영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
한 예로 농촌 회는 교회의 교육구조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 이는 농촌교회는 도시교회와는 달리 학년 구분의 교육이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서 연유된 것인데, 학생 인원이 작아서도 그렇고, 이미 농촌이라는 지역 안에서 그들은 때로는 형과 동생으로, 때로는 친구처럼 정답게 지내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그러한 공동체적 정서를 성경공부라는 미명 아래 애써 나누어 놓기보다는 그러한 정서를 살릴 수 있는 교육을 하는 것이 더 합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견이다. 이와 같이 작은 농촌교회의 현실을 잘 반영할 수 있는 교회학교 운영이 필요하다.
3. 목회자 부부가 진행하는 교회학교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
조사 결과 많은 농촌교회들이 교회학교를 지도해 갈 교사들이 없어서 목회자 부부가 교회학교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농촌목회자들이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교회학교 운영에 정성을 기울여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와는 달리 성장하지 않는 농촌교회를 보면서 의욕을 잃고 마는 것 같다. 이점은 앞으로 농촌교회 학교 교육에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대목이다.
농촌교회를 위해 부름을 받은 목회자로 인해서 농촌의 교회학교가 성장을 멈춘다면 이것이야말로 농촌교회가 지닌 커다란 문제 일 것이다. 그러므로 농촌교회 목회자들에게 교회학교를 잘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의견이다.
4. 예배는 어른들과 함께 교육활동은 어린이, 청소년 스스로가 하는 교회학교운영
① 한 달에 한 번 정도 어른들과 함께 드리는 예배프로그램 기획
② 어린이들 스스로가 진행하는 교육활동
③ 중·고등부 스스로가 진행하는 분반 또는 성경공부
5. 지역의 교회들이 함께 운영하는 교회학교를 만들어 본다.
적은 인원과 부족한 교사로 인해서 교육적 효과가 떨어진다고 하면, 지역의 교회들이 연합 주일학교와 중, 고등부 토요집회를 운영하여 볼 수 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이 이것의 전 단계로서 연합 성경학교와 중·고등부 연합수련회를 진행하고 있다.
6. 통합교육 공간으로서의 교회학교를 운영해 보자.
요사이 농촌에는 결손 가정으로 인한 어린이들 문제가 또 하나의 커다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더욱이 결손 가정의 자녀들은 일반적인 교육 환경조차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학교가 일반 학교 교육과 연계하여 아이들에게 교육의 공간과 내용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다.
예) 공부방, 도서실 등을 운영하여 숙제함께 해주기 등.
7. 특별활동에 대한 이해를 달리해야 한다.
먼저 교회학교 안에서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들이 공동체적 정서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대다수 교회교육이 실패하는 이유는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점 때문에 공동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무차별 진행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점이 재정적인 구조가 열악한 농촌교회에게는 매우 부담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많은 교육 내용으로 교육을 하려고 하지말고 한 가지 일지라도 서서히 그리고 깊이 있게 진행하려고 해야 한다.
8. 정도와 조건이 맞는 도시교회학교와 자매 결연을 맺어 보자.
이 점에 대해서는 많은 목회자들이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여기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도시교회 중심의 일방적이고 시혜적 도움관계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오해에도 불구하고 이 교육과정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된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면 아이들에게 서로 다른 문화권을 살고 있는 형제를 이해하게 하는 유익한 교육일 수 있다.
9. 자연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농촌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삶의 주거지는 농촌이지만 농촌의 생활과 정서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촌 생활을 하며 어려운 농사를 짓고 사는 자신의 부모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모두가 다 농촌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시작된 것이다. 농촌의 정서를 일깨워주고 자연의 소중함을 느껴 그것이 신앙적 고백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 있어야 한다.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
1. 여러분의 교회는 농촌선교를 하고 있는가? 하고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하고 있는가?
2. 여러분의 교회는 농촌교회를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동역자로 인정하고 어떤 배려를 하고 있는가?
3. 여러분의 교회가 농촌의 작은 교회와 자매 결연을 맺는다면 어떨까? 잃는 것이 많을까? 아니면?
4. 농촌교회가 힘을 얻기 위해서 여러분이 조언을 해주신다면?
농촌교회와 교인들은 생명의 기운을 지닌 존재들이다.
현재 한국 교회 전체 교회 중 60% 이상이 농촌이다. 더욱이 우리의 형제인 농촌의 교회가 외적으로 열악한 구조를 지니고 있어서 매우 힘이 드는 것도 사실이며 그러한 모습을 편견 없이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이다.
발제를 하면서 본 발제자는 도시와 농촌을 떠나서 우리의 교회들이 오늘날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공동체성 상실'에 있다고 생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농촌의 교회는 '공동체적 정서'를 일깨우는 데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제는 이를 개발하는 데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까지의 교회들은 우리 스스로가 자주 말하는 바와 같이 도시교회 중심의 구조로 진행되어 왔고 이로 인해 농촌의 교회가 소외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교회는 여전히 생명의 씨를 품고 있는 곳이다. 이를 소중히 여기고 잘 보전하여 농촌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시켜 갔으면 한다. 농촌교회를 다니고 있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의 얼굴에 아름다운 하늘의 미소가 지어지기를 소망한다.
본인은 어느 곳, 어느 자리에서도 농촌교회의 희망을 이야기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농촌교회는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면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도시적 관점에서 보면 농촌의 교회들은 생산성이 보이지 않는 그래서 곧 문들을 닫아야 할 교회처럼 보이고 실제로 그러한 처지에 빠져 있는 교회들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농촌 곳곳에는 작은 교회들이 존재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도시의 교회들이 개척을 하다가 문을 닫고 교인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교회를 찾아서 이리저리 철새처럼 떠돌아다니고 있는 순간에도 농촌의 할마씨(?)들 몇 분은 남아서 소박하게나마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 안에는 아직 자연이 허락하여준 아름다운 삶의 정서가 남아 있다. 어느 곳이 더 아름다운 교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교회들이 이것을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우연히 보았던 미국의 '아뮈쉬 공동체'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도 200년 전의 생활을 고집하며 문명의 이기들을 거부하며 살고 있는 그들에게 현대인들이 많은 질문을 한다. 모든 질문의 초점은 "힘들고 불편하지 않느냐, 어떻게 그런 생활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불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그토록 찬양하고 있는 문명의 이기들이 만들어 놓은 지금의 세계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다만 우리의 신앙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살수 있으며, 이웃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이 생활을 위해서 그것들을 포기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미국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이제 농촌교회들은 하늘 백성으로서의 꿈을 꾸려고 한다. 하나님의 리듬으로 춤을 추려고 한다. 하늘의 가치를 말할 수 있는 교회가 되고자 한다. 아니 이것은 말뿐일 지도 모른다. 사실은 지금 우리가 지니고 있는 삶의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다. 그래서 도시의 삶에 지쳐 오늘도 이곳 지리산 구석구석으로 하루의 휴식을 취하려고 몰려들고 있는 도시인들에게 삶의 향기를 주는 교회들이고 싶다. 희망이고 싶다.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