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의 바이올린
이장규(전 원자력병원장)
어렸을 적, 한산했던 서울 거리에 흐르던 약장수 바이올린 선율은 나를 매혹시켰다.
해방이 되자 본토로 돌아가는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물건이 시장바닥에 쏟아져 나왔다.
호주머니를 털어 싸구려 바이올린을 하나 샀다. 일본제 스즈키 바이올린이라기보다는 깡깡이라고 부르는 게 나았을 것이다. 그때 내 나이 열아홉, 대학 예과 졸업반이었다.
무턱대고 긁어 댔다. 그 소리에 질려 상을 찌푸리던 식구들도 일 년쯤 지나니까 완전 면역이 되었던지 자못 평화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학부에 진학했을 때 이른바 국대안(國大案)으로 해서 대학은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고 휴교 조치까지 내려졌다. 그래서 나는 군정청 보건사회부 통역사로 취직했다. 차라리 잘 되었구나 싶었다. 등록금이라도 벌자는 것. '주변 없는' 이 사관이었던 부친 호주머니에는 늘 찬바람이 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에 들락날락하는 한 젊은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다. 나중에 그가 내 바이올린 선생이 되고, 내가 그 영어 선생이 된 것은 한 기연(奇緣)이 아닐 수 없다.
악기를 바꿨으면 하는 그 눈치를 챈 나는 한 달 치 봉급을 몽땅 털어 모처럼 구했던 다섯 권짜리 독일어판 해부학 교과서를 내다 팔았다. 얼마 뒤 나는 사이언티스트 오케스트라 단원이 되었고 급기야는 꿈에 그러던 제1바이올린 주자로까지 올라갔다.
<시인과 농부> 초입부 연주에서 E선 꼭대기가 짚이지 않아 애 먹었던 추억.
선생끼리 배우는, 학생끼리 가르치는 이 공부는 6.25 동란이 터질 때까지 근 5년간 계속되었다. 마지막 받았던 레슨은 스프링 소나타.
중공군이 서울에 육박하고 있을 때 나는 선친 친구였던 R국장 지프에 편승, 남하했다. 이불을 지프 지붕에 실을 정도였으니까 '바이올린도!' 라는 말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그대로 가라앉았다.
그때 서울대학병원은 제주도 한림에까지 후퇴했다. 진료는 오전 중, 그래서 오후만 되면 바닷가에 나가 육지를, 식구를, 집을, 그리고 바이올린을 그리워했다.
간호원들이 붙여 준 내 별명은 '약장수'. 가끔 미친 듯 빈손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내 모습을 훔쳐 본 모양이었다.
이듬해 몹시도 추웠던 그 어느 날, 나는 인기척 없는 서울 거리를 달리고 있었다. 한시 바삐 그 바이올린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바이올린은 산산조각이 난 채 방 한구석에 내동댕이쳐져 있었던 것이다. 후퇴하면서 총 개머리판으로 짓이긴 듯, 그 처참한 잔해(殘骸)는 시신(屍身)을 방불케 했고 교과서까지 내다 판 쓰라림을 되살아나게 했다.
2년이 지났다. 공군 군의가 된 나는 여전히 빈손으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이종찬 장군이 소싯적 당신이 아껴 간직했다는 바이올린을 보내 주었다. 바이올린 수학 차 청운의 뜻을 품과 현해탄을 건넜던 장군은 어쩌다 군도(軍刀)를 잡게 되었고 마침내는 명장(名將)이 되었다.
세월은 흘렀다. 셋방살이 시절 내 바이올린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 단잠을 설치던 갓난아이가 어언 커서 동아음악콩쿠르 바이올린부에서 1등을 차지하게 되었다. 아들은 지금 미국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하고 있다. 대를 물린 셈이다.
-작년 집에서 지냈던 크리스마스가 생각나는군요. 집안 음악회가 퍽 멋있었다고 기억합니다. 올해는 제가 없으니 아버지가 대신 바이올린을 맡으셨으면 합니다. 한때는 날리셨다고 늘 말씀하시잖았어요? 제가 듣기에도 약주를 안 드셨음, 제법 음정도 정확하시던데요. 기분 먼저 내시느라 템포가 틀려서 사고지…….
미국에서 온 편지다.
얼마 전 나는 20여 년 만에 그 바이올린을 장군에게 반납했다. 추억의 바이올린!
"한 곡 들려주시겠소?"
백발이 성성한 퇴역 장군 앞에서 나는 <수버니어(추억)>를 연주했다.
이제 바이올리니스트도 퇴역하는 것이다.**
**범우사 간 이장규 수필집 <외상진찰>에서 발췌
주- 글 속에 나오는 이종찬 장군(전 육군참모 총장)
첫댓글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납니다.
배경음악이 더욱 옛추억을 불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