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 정세가 어지럽습니다. 마치 임진왜란,병자호란 상황과 유사해 보입니다.
이일.신립.배설,원균,이순신은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장수들이고 정온,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활약했던 정치가들이었습니다.
이일장군은 조정에서 처음으로 파견한 장수로서 경상도 상주에서 패퇴한 장수였고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서 최후를 맞이한 장수였습니다.
이일과 신립은 당대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었던 장수들이었지만 적들의 사정을 충분히 파악, 대처하지 못한 장수들이었습니다.
이일과 신립은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왜군들의 무력수준을 외면하고 정면대응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로 이일은 군사를 모두 잃고 노비와 함께 간신히 전장에서 도망쳤고 신립은 탄금대에서 군졸들과 함께 모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수원에서는 각지역에 흩어져 있던 관군들이 합세하여 왜군 2,000여명과 전투를 벌였는데 이 전투에서 5,000여명의 정예 기병이 몰살당하게 됨으로써 관군이 더이상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한편 조정에서는 전장에 나가 싸우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순신을 불러들여 죄를 묻습니다.
이순신을 형벌을 받는 동안 원균이 수군의 총지휘 책임을 맏게 되는데 원균 또한 나가 싸우지 않으므로 군 총지휘 책임을 갖고 잇었던 도원수 권율은 원균을 끌어다가 곤장을 쳤습니다.
이에 원균은 아무런 준비 없이 전 수군 동원령을 내리고 왜적과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그 결과는 원균뿐만 아니라 이억기 최호 등 수군 지휘부 상당수 장군들이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원균과 함깨 참전했던 수군장수 배설은 전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자신의 휘하부대 12척을 후퇴시켜 남해 어느 섬에 은밀히 숨겨놓게 됩니다.
조정에서는 이사실을 알고 도원수 권율이 배설을 전장에서 도망쳤다는 이유로 잡아다가 참형에 처하게 됩니다.
이로써 육군은 물론 수군까지도 전쟁을 더이상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하게 됩니다.
왜이런 사태가 벌어졌을 까요?
이유는 이일장군이나 신립장군처럼 상대를 앝잡아 본 탓도 있지만 문관 위주로 구성된 조정 관료들이 전장에서 싸워야 하는 장수들의 독자적인 작전권한을 인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립장군의 경우 문경에서 충주로 넘어가는 조령에서 매복작전을 펼렸다면 왜군들은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립장군 자신감에 도취되어 탄금대에서 전면전을 펼치게 되고 군사들은 자신과 함께 몰살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원균 또한 자신이 수군의 총 지휘권을 행사하게 될 당시 해전은 사전에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느꼈었을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개전과 함께 출전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엇습니다. 남해바다는 해류가 수시로 변하고 조수간만의 차도 심하고 섬들도 많은 지역입니다. 따라서 전투에서 이러한 지형지새를 활용 능력에 따라 전투결과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잇었던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출전하지 않는 동안 이러한 사정을 살폈던 것입니다.
전투에 임함에 앞서 사전에 충분한 상황파악은 장수가 갖추어야 가장 최고의 덕목입니다.
이순신장군이 위대한 것은 자신이 형별을 받으면서도 장수로서 갖추어야 할 소신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원균은 도원수 권율이 출전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곤장을 맞자 곧바로 사전 준비도 없이 전군동원령을 내리고 전투에 임하여 상당 부분의 전력을 상실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장수로서 냉정함을 잃은 처사라 할 것입니다.
한편 전세의 불리함을 느끼고 자신의 휘하 전함 12척을 빼돌려 남해안 한적한 섬에 은폐시킵니다.
조정에서는 이를 두고 역적으로 몰아부쳤습니다만 장수로서 후일을 도모햇다고 할 수 있는 것인데 역적으로 몰아붙일 수 있을까요?
이 12척이 나중에 조선을 구했습니다.
원균을 비롯하여 수많은 수군장수들이 전사하고 이순신 장군이 수군 지휘권을 행사하게 되자 이순신 장군이 배설장군이 은폐해 두었던 12척을 수습하게 됩니다.
이로써 이순신 장군의 그 유명한 말씀이 나오게 됩니다.
"신에게는 12척의 전선이 있아옵니다."
만약 배설장군 12척을 은폐시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제대로 싸워 볼 수 있었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사전에 충분히 준비한 결과로 연전연승을 거두게 됩니다.
임진왜란의 사례는 조정의 무리한 작전 수행 요구로 관군이 초전에 전몰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수많은 백성이 왜적의 칼부림과 총질에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전세계 노에로 팔려나가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조정에서 관군 장수들로 하여금 융통성있게 잔술을 행사할 것을 주문했다면 그토록 삼천리 강토가 왜적에게 수난을 당했을까라는 생각이 치밀어 오릅니다.
정온과 최명길은 인조때의 인물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를 상대로 주전파와 주화파로 대립했던 인물들이옸습니다.
정온은 주전파의 대표적인 인물로 청나라와 전쟁불사를 외쳤던 사람이었고 최명길은 군사력이 강한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모한 일이니 외교적으로 잘 대응을 하여 전쟁만을 피해보자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조정의 대세는 주전파가 대세였고 결론은 일전불사를 외치게 되고 남한산성으로 조정이 옮겨가 농성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과는 항복이라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됩니다.
병자호란의 결과로 10만명에 이르는 백성이 포로로 끌여가게 됩니다.
실록은 삼전도의 굴욕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포로로 잡힌 수많은 백성들이 항복식을 마치고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는 인조를 향해 "임금님! 임금님! 우리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외쳤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인조는 이러한 백성들의 외침을 외면하고 뒤도 돌아보지 얺고 강을 건너갔다고 합나다.
전후 최명길은 청나라로 건너가 포로로 잡혀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다했습니다. 다행히도 그의 노력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고국으로 되돌아 올 수 잇었습니다. 그는 타국에서 백성들을 살피다 병을 얻어 결국 세상을 따나게 됩니다.
반면 정온은 청나라와 같은 오랑케 들과는 외교관계를 맺을 수 없다면서 전쟁을 계속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사실 인조조정이 남한산성으로 들어 간 것은 백성들이 임진왜란 때와 같이 의병을 일으켜 주기를 바랬습니다.그러나 전국에서 의병은 한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정온의 전쟁론은 비현실적 주장인 셈이었습니다.
사실 병자호란은 그 과정을 보면 일어날 수 없는 전쟁이었습니다. 쇠락해 가는 명나라와 새롭게 일어서는 청나라 간에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온과 같은 강경 주전파들이 군사적 사전 대비책도 없이 분쟁 개입을 적극 주문했고 그 결과는 청나라의 수십만 대군의 침략을 받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정온과 최명길 중 누가 더 충신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선전 준비도 없이 왜적관 전면전을 펼치고 군졸들과 함께 전사한 신립,원균과 승리를 담보하기 위해 형벌을 받아가면서 사전 준비에 전력을 쏟고 준비가 끝난 후에는 전장에 나가 승리를 거둔 이순신 장군이 충신이었을까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합니다.
오늘날과 같은 엄중한 사태에 최명길,이순신과 같은 과연 있을까요?
우리는 정치인과 장수들 중에 최명길과 이순신 같은 인물을 선별해 낼 수 잇는 혜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우리 자식들을 최명길이나 이순신 같은 인물로 키워내지는 못할 망정 그러한 인물들을 선별해 낼 수 잇는 혜안을 가진 사람으로 키워내야 하지 않을까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야심한 밤입니다.
첫댓글 지금 전쟁 나면 전쟁이나 제대로 수행 할 별들이 몇이나 있을까 걱정입니다. 천안함이나 연평도 사태를 보더라도 오합지졸로 보입니다. 명나라에 300만 대군이 있어본들 청나라 10만 팔기군을 못 막았죠. 권율과 원균의 일을보면 육군적 사고와 해군적 사고의 차이가 있음을 간과해야 되는데...울 나라 중요자리는 육군 출신들이죠 그들의 생각의 한계는 분명 있습니다 국방을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자칭 보수라는 자들의 지켜야 될 나라는 있는지...
초등학생 보다 못한 한끼를 먹고 충성할 군인이나 있을라나 모르겠습니다
전쟁나나요? 전쟁얘기가 심심잖게 나오는것 자체가 이미 문제는 커진 상황이라 보이네요..이걸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전쟁나도 그냥 살아야죠..이 좁은 땅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날수도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것만으로도 이건 엄청난 스트레스입니다. 그냥 전쟁 안난다 생각하고 있어야죠 ㅠㅠ
병자호란 당시에 의병하나 나타날 수 없었던 이유는 간단했죠.. 나라를 위해 한 목숨을 바쳐도 보상은 커녕 유배를 보내거나 역모죄를 물어 능지처참이나 참형을 내렸는데.. 어느 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어했을까요? 60여년 전에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하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아직도 힘든 삶을 산 사람들이 허다하고 친일행각을 벌이고 빨갱이 짓을 한 사람들의 후손들은 덩떵거리며 사는데 국민들 중 누가 나라를 위한 전쟁터에 나가고 싶어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