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가능인구 계속 늘고 중산층 급증…자원 워낙 많고 GDP 중 내수 비중 55%
해외자본 쇄도, 세계적 위기에도 고성장…작년 성장률 6.3%로 세계 2위…주가는 10년 동안 1300%나 뛰어
이달 9일 오후 1시쯤 자카르타 시내 중심부 인도네시아증권거래소 맞은 편에 있는 퍼시픽플레이스(Pacific Place) 쇼핑몰. 리츠칼튼호텔과 고급 레지던스, 사무실 등이 입주해 있는 39층짜리 대형 몰 로비층 안으로 들어서자 벤틀리·마세라티·아우디·재규어 등 명품 수입차 전시장이 보인다. 사방 벽마다 자동차와 명품 광고 선전판이 휘황찬란하다.
아우디 매장에서 만난 엘란 솔리힌(Solihin) 매니저는 "올 들어 외제차 판매가 전년 대비 20~30%씩 늘고 있다"며 "작년 여름에는 대당 120만달러(약 12억원) 하는 이탈리아 최고급 명차인 람보르기니 인기가 치솟아 6개월 정도 기다려야 본사 주문 차량을 넘겨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람보르기니는 인도네시아 최상류층의 부(富)와 성공의 상징이다.
인근 도요타 전시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신차 판매 1위를 기록한 아반자(Avanza)를 비롯해 2012년 도요타 차의 판매량은 전년 대비 36%나 늘었어요. 인도네시아는 아세안에서 구매력이 가장 활발한 황금 시장입니다."(와유디 헤루시·33·도요타 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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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해 세계 16위 경제 국가인 인도네시아는 급증하는 중산층과 탄탄한 내수를 바탕으로 아세안 지역을 통틀어 최고의 경제 활황세를 구가하고 있다. 자카르타 시내 번화가에 있는 아트리움 플라자에서 최근 열린 호화 부동산 판촉 행사에서 관람객들이 모형을 보고 있다. / Corbis
이런 열기를 반영하듯 인도네시아에서 팔린 자동차 수는 2005년 53만대에서 지난해 111만대를 돌파해 7년 만에 두 배 넘게 늘었다. 하지만 자동차 보급률은 1000명당 22대로 중국(58대)·태국(123대)보다 훨씬 낮다. 자카르타 소재 자동차 분석 기관인 'IHS오토모티브'의 제세다 통팍(Thongpak) 애널리스트는 "지금보다 최소한 2~3배 성장은 확실하다"고 했다. 이를 겨냥해 올해부터 2018년까지 27억달러(약 2조9000억원) 투자를 결정한 도요타와 혼다(3억4000만달러)·GM(1억5000만달러) 등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인도네시아 진출이 불붙고 있다.
고가(高價) 명품 수요도 급증해 지난해에만 에르메스·구찌·루이뷔통·펜디 등이 10개가 넘는 명품 매장을 자카르타 시내에 오픈했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최근 8년 가운데 한 해(2009년)만 제외하고 매년 5%가 넘는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6.3%)은 세계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2위였다. 외국인직접투자(FDI)는 3년 만에 배 이상 늘었고, 증시 종합지수(JCI)는 10년 전 대비 1300% 치솟았다. "싱가포르 등의 시가총액은 GDP의 100%가 넘지만 인도네시아는 50% 수준이어서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위디아사리 드위·Dewi·증권거래소 상무)
글로벌 연쇄 경제 위기 와중에도 '무풍(無風)지대'로 승승장구하는 인도네시아의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이 꼽는 힘의 원천은 폭발하는 중산층과 그들이 견인하는 소비 붐이다. 1인당 연간 소득이 3000~2만달러에 이르는 중산층이 2004년 160만명에서 2009년 5000만명으로, 올해는 최소 1억명 이상(세계은행·노무라증권 등)으로 늘어난 것이다. 총인구의 61%가 35세 미만이며, 노동시장에 매년 230만명이 신규 진입하는 '젊은 역동성'도 돋보인다.
'금융 자산 100만달러가 넘는 고액 자산가(HNWI) 매년 25%씩 증가', '팜오일·석탄·고무·코코아·주석 같은 천연자원 생산·매장량 세계 1~2위', 'GDP에서 내수 비중 55% ' 같은 측면도 세계경제의 외풍 충격을 막는 강력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가 2030년에 세계 7위 경제 대국으로 부상을 예상하는 등 인도네시아에 대한 글로벌 전문 기관들의 낙관적 전망도 잇따른다.
하지만 모든 게 장밋빛만은 아니었다. 특히 인프라 상황은 최악이었다. 기자가 3박4일 동안 둘러본 자카르타 시내 도로는 툭 하면 주차장으로 변했다. 우회 도로는 거의 없고 좌·우회전조차 쉽지 않았다. 오후 5~9시 퇴근 시간에는 도로 정체가 극에 달했다. "자카르타에서는 '고무줄 시간(jam karet)'이란 말이 보통명사로 쓰여요. 정부 공식 행사나 다국적 기업 미팅에도 30~40분 정도 늦는 것은 실례가 아닙니다."(아프릴리안 헤르마완·Hermawan·'비즈니스 인도네시아' 에디터)
여기에다 사회 곳곳에 만연해 있는 부정부패와 유능한 인재 부족 같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세계 4위 인구대국(2억5000만명)으로서 '넥스트 차이나'(Next China)의 선봉장이자 뻗어가는 아세안의 대표 주자로 떠오른 인도네시아 경제와 공략 방안을
Weekly BIZ가 짚어봤다.
"인도네시아의 도로 등 인프라만 개선되면… 성장률 7~8% 달성은 쉬워"
세계은행 인도네시아 담당수석이코노미스트 은디암 디옵
"인도네시아 경제의 가장 큰 장애물은 열악한 인프라와 부정부패입니다. 특히 교통·물류 등 취약한 인프라는 시민 불편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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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은행 인도네시아 담당수석이코노미스트 은디암 디옵
은디암 디옵(Diop) 세계은행(World Bank) 인도네시아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인도네시아에서는 물류비가 상품 원가의 30%를 차지해 중국(12%)의 2.5배나 된다"고 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에서는 전국 도로 가운데 비포장도로가 40%를 넘고, 100만명당 철도는 11마일(약 17.6㎞)로 중국·인도·태국 등의 절반 미만이다. 공항과 항만은 능력을 초과한 여객·화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자카르타 시내에서 빈약한 인프라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0년 52억달러로 1년 전보다 30%나 늘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나?
"올해 착수키로 확정한 인프라 프로젝트만 146개에 총 545조루피아 규모이다. 또 작년 말 '토지수용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공공 인프라 건설 때 국가가 개인의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사상 처음 마련됐다. 인프라 문제만 개선돼도 인도네시아 경제성장률은 지금보다 1~2%포인트 더 높아져 연간 7~8% 이상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성장률 기준으로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부정부패는 얼마나 심각한가?
"2012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176개국 중 118위로 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보다 부패가 심하다. 이집트·마다가스카르 수준이다. 대선·총선 등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고 언론도 기능을 하며, 반(反)부패 위원회도 가동 중이다. 하지만, 아직도 툭하면 부정·부패 문제로 조사를 받고 사임하는 장관들이 나온다. 지방은 더 심하며 공무원들의 자의적인 판단도 큰 부담이다."
―인도네시아의 고도성장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당분간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인구배당효과로 인구 구조상 15~64세 노동가능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 높아져 GDP를 끌어올린다. 둘째는 도시화이다. 현재 53% 인구가 도시에 살고 있는데, 앞으로 70% 이상까지 높아진다. 도시화는 경제의 집적 효과를 내고,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일차 관문은 유도요노 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4년 말 이후이다. 이 단계를 잘 헤쳐가면 2025년까지는 강력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다."
―고도성장에 따른 부작용은 없나?
"매년 인구는 평균 1% 정도, 경제는 6% 넘게 각각 늘고 있는데, 1990년대까지 0.32 정도이던 지니계수가 최근 0.41까지 치솟았다. 지니계수가 10여년 새 10%포인트 정도 올랐다는 것은 부의 불평등과 빈부 격차 확대가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도네시아의 다른 취약한 점은?
"고급 인력 부족이다. 영어와 인도네시아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대졸 인재를 구하기 어렵다. 다국적 기업 간에 인재 쟁탈전이 수년째 벌어지고 있다. 근로자들의 애사심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도 단점이다."
―인도네시아는 자기 상품을 만들지 못하는 등 제조업 분야가 특히 약해 보인다.
"혁신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단계에 이르지 못한 탓이다. 현재의 소비주도형 성장 모델은 연구개발(R&D)에 기반한 성장모델로 진화할 것이다. 자기 상품을 만들 때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서두르면 안 된다. 양질의 교육이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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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트라' 수기아르토 대표이사
"자동차 구매 5년 새 2배 증가… 일본 차가 94% 장악"
185개 회사 둔 인도네시아 최대 그룹 '아스트라' 수기아르토 대표이사"도요타와 닛산, 미쓰비시 등 일본 차 8개 브랜드가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의 94%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성공 비결은 제품만 팔지 않고 현지에 공장을 가동하면서 현지화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자동차·금융·에너지·인프라 등 6개 부문에서 185개의 회사를 둔 인도네시아 최대 그룹 아스트라 인터내셔널(Astra International)의 프리요노 수기아르토(Sugiarto) 대표이사(CEO)의 말이다. 그는 "1950~60년대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을 석권했던 미국과 유럽 차 메이커들은 차 판매에만 몰두하고 현지 공장을 세우지 않아 결국은 패퇴했다"고 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15%를 차지한 아스트라그룹은 자동차(54%)와 오토바이(58%)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위이다. 팜오일·석탄생산 등에서도 손꼽히는 굴지의 대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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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카르타에는 매일 수백대의 승용차와 오토바이가 팔린다. 그래서 시내 주요 간선도로 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뒤엉켜 매일 수시로‘교통지옥’을 방불케 한다. / AFP /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왼쪽)와 대형 쇼핑몰 퍼시픽플레이스(Pacific Place)가 마주보며 서 있는 자카르타 시내 중심가. / 자카르타=장일현 기자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이 급팽창하는 이유는?
"세계은행 기준 중산층 소비자들은 하루 2~20달러 정도를 쓰는데, 대부분 오토바이 소비층이다. 자동차 구매층은 연소득 1만달러 이상자로 그 숫자는 2006년 660만가구에서 2011년 1370만가구로 늘었다. 2020년에는 3110만가구가 예상된다. 할부로 차를 구입할 때 부담하는 이자율(5~10%)이 안정된 것도 강점이다. 차는 보통 36개월 할부로 구입하는데 이자율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해 인플레이션 4%대, 중앙은행 기준금리 5.75%를 유지하는 등 안정적인 금융환경도 한몫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는 이자율이 20~25%에 달했다."
―일본 차가 현지 시장을 석권하는 비결이 있나?
"1971년 아스트라 인터내셔널과 도요타가 제휴해 첫 현지 공장을 지어 차를 만들었다. 도요타는 지금 생산공정의 85%를 현지화했다. 오토바이를 합작생산하는 혼다도 마찬가지다. 한국 업체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가족이 대다수인 인도네시아에선 5~7명 가족이 모두 탈 수 있는 차량이라야 잘 팔린다. 인도네시아에서 1000명당 자동차 보급 대수는 2005년 15대에서 2010년 19대, 2011년 22대로 늘었다. 앞으로 최소 300만대 규모로 클 것이다."
―최근 급격한 임금 상승이 기업들에 부담일 듯한데.
"올해 자카르타 지역 최저임금은 220루피아(약 24만원)로 지난해보다 44%나 폭등했다. 다른 지역의 최저임금도 연평균 30~40%씩 오르고 있다. 아직 인도네시아 임금은 중국 등에 비해 저렴하다. 그러나 이런 급상승세가 계속되면 기업에 큰 위협이 된다. 모두 죽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해 석탄을 제외한 65개 광물에 20% 수출세를 부과하고, 2014년까지 모든 광물 생산·수출업체는 반드시 제련소를 세워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했다. 외국 투자자들이 광업(鑛業)에 투자할 경우, 생산개시 후 6~10년 사이에 지분의 51% 이상을 내국인에게 양도하라는 시행령도 발표했다.
―자원 민족주의와 토종 기업 보호가 외국인 직접투자를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리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원자재 상태로만 수출해 왔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모델로 진화해야 하며, 그 위에서 성장과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