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산동(高山洞)
경기도 의정부시에 속한 동이다. 조선시대 한양부 양주군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동면 고산리(高山里)·입암리(笠岩里)를 합하여 고산리라 하고 별내면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는 의정부읍이 시로 승격하였으며, 1980년 의정부시에 편입되어 고산동으로 개칭되었다.
법정동인 이 동은 행정동인 송산동에서 관할한다. 고산동은 마을에 있는 야산이 높아서 이를 높은 뫼라고 한 데서 유래된 지명이다.
옛 지명에 장승거리·막은골·양지마을·도림뫼·응달마을·빼뻘·원머루· 양마산소·아기동박골·빈장대·맥재보·광쟁이보·정자마을·복혜터·윗방굴· 샘말·능안말·아래구석말·월유·안고래·부정골·딴뚱우리·구석말·가잿말· 위마전·왕재 등이 있다.
장승거리는 1913~1927년 의정부에서 퇴계원으로 가는 길을 신설하면서 생긴 거리로, 장승을 세워 놓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림뫼는 복숭아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며, 맥재보는 민락동의 중부들로 흐르던 보(洑)인데, 의정부에서 최초로 수리를 이용한 곳으로, 주위에 보리를 많이 심은 데서 비롯된 지명이다.
구석말[構石洞]은 조선 세종의 아들인 운림도정(雲林都正)의 후손들이 살았던 곳으로, 효성이 지극하여 마을로 들어가거나 나올 때 입구에 있는 구석(構石)이라는 돌을 딛고 말을 타거나 내려서 걸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석말이 변하여 구성말[九星洞]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가잿말은 효령대군의 후손인 의원군(義源君) 락이 제주도로 유배갔다가 인조반정으로 방면되어 안식처로 삼은 곳으로, 아름답고 살기가 좋아서 가좌(嘉座)라고 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주요기관에 의정부교도소가 있으며, 문화재에는 신숙주선생묘(경기기념물 88)와 정자마을에 조선 세조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미륵암이 있다.
2. 고산동(孤山洞)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동. 형제봉·모봉·대덕산·성암산·우산·고산 등의 산이 많고, 금호강과도 인접해 있다.
741년 신라 경덕왕 때는 장산군 읍서면이었다가,
1018년 고려 현종 때는 경주군 서면에 속하였고,
1308년 고려 충선왕 때는 옥부 서면이라고 하였다.
1577년 조선 선조 때는 대구부 부동면이 되었다가,
1897년에는 경산현 현서면이 되었다.
이후 조선 고종 때는 경산군 서면으로 고쳐 부르다가,
1914년 고산면으로 바뀌었다.
1981년 대구시가 대구직할시로 승격되면서 경산군 고산면 전역이 대구직할시에 편입되고, 이어서 고산면 전역으로 고산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2년 고산출장소에 1개 행정동이 설치되었고,
1983년 고산출장소가 폐지되면서 그 관할지역에 고산2동이 설치되었다.
1996년 고산1동이 고산1동과 고산3동으로 분동되었다.
법정동인 고산동은 행정동인 고산1∼3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산1동은 법정동인 노변동, 신매동, 욱수동을 관할하고, 고산2동은 법정동인 가천동, 고모동, 대흥동, 삼덕동, 시지동, 연호동, 이천동을 관할하며, 고산3동은 법정동인 매호동, 사월동, 성동을 관할한다.
주요 도로는 경부선이 통과한다. 고모동에는 고모령이라는 고갯길이 있다. 옛날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아서 가난하다는 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서 흙으로 산을 쌓았다. 이것이 현재의 모봉·형봉·제봉이라는 3개의 산봉우리가 되었다. 그런데 형과 동생이 서로 높이 쌓으려고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집을 나와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뒤돌아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길이 뒤돌아볼고(顧)와 어미모(母)를 합쳐서 고모령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러한 전설은 가수 현인이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그리며 부른 노래 ‘비내리는 고모령’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문화재로는 고산농악(孤山農樂:대구무형문화재 1)과 욱수(旭水)농악(대구무형문화재 3), 사월동 지석묘군(沙月洞支石墓群:대구기념물 9), 고산서당(대구문화재자료 15)이 있다. 그외에도 전통건축물로 덕산재(德山齋), 삼강정사(三岡精舍), 솔일재(率一齋), 정효각·정충각(旌孝閣·旌忠閣)이 있고, 산성 건축물로 고산토성과 욱수동 산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