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위로 나는 새는 비를 맞지 않는다.
집을 나선다. 오후 1시 25분. 행선지는 압구정 CGV 2D 극장.
2시에 시작하는 김 호중의 팬 미팅 영화 ‘그대 고맙소’를 예매해 놓은 터였다.
지하철을 타면 한 정거장. 걸으면 20여분 걸리는 거리다.
걷기로 한다. 늦가을 같은 초가을 날씨. 하늘은 시리도록 청명하고 바람도 싱그럽다.
기생충 영화를 관람한 이래 처음 가는 극장 행이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는 병상의 老夫 때문이다. 그럼에도 무리를 해서 집을 나서는 것은 노래하는 김호중을 보기 위해서다.
인연이란 사람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의 어느 하나가 어쩌다 내게 날아와 특별한 의미가 되는 것.
인연의 시작은 이렇게 된다. 김호중의 노래도 내게 그렇게 왔다.
반년 전의 어느 날. 5년간 앓던 이의 병세에 이상한 조짐이 보였다. 아내만이 감지할 수 있는
미세한 변화였다. “이 이가 떠나려는가?” 57년 간 한 결 같이 못된 아내였던 회한이 가슴을 후려쳤다. 그 때 들리던 어떤 남자의 노래 ‘천상재회’. --천상에서 다시 만나다면 젊은 그 좋은 시절을 사랑하지 못한 후회로 남기지 않으리라--. 소리로는 내지 못하는 내 안의 절규였다. 노환의 남편은 거짓말 같게도 회복이 되었고, 나는 그 가수가 부르는 다른 노래 하나를 또 듣게 된다. “고맙소!!” 고맙소, 고맙소.... 이후 음치인 아내는 그 역시 음치인 남편에게 이 두 노래를 불러주며 6개월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극장에 도착한 것은 1시 50분, 막 입장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모든 관객은 중년 이상의 여인들이다. 좌석은 절반이 비어 있다. 화면은 팬 미팅 때의 영상을 담은 것이라 새롭지 않다.
티슈로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니 타월을 준비하라는 먼저 본 이들의 글을 읽은지라
눈물이 그리 흔하지 않은 나도 걱정이 되었는데 내 누선은 저 홀로 잠잠하다.
나의 감정이 메마른 것인가. 다른 이들 같은 순수를 이미 잃어버린 사람이 된 건가.
아니면 나는 노래에만 심취해 있을 뿐 아직 저 가수에게는 아닌 건가? 그런 건가!.
광고를 뺀 1시간 십여 분의 공연 시간 동안에 내가 접한 것은
서른 살 젊은 가수의 모습도, 그의 빼어난 천부의 목소리도, 귀에 익숙한 노래도 아니었다.
"관계"였고, 아름다워서 너무 아름다워서 황홀한 "情"이었다.
참고 참으면서 가수가 흘리는 눈물이었고, 더 많이 흘리는 팬들의 눈물이었다.
"고맙소."로 시작해서 "살았소."로 마무리 되는 인간관계의 서사시였다.
노래에서 흔들리지 않던 누선이 비로소 천천히 조용히 젖기 시작한다.
걸으면서 돌아오는 귀가 길. 조금 세어진 바람은 모자를 날린다. 바람에 푸른 잎 하나가
떨어져 길 위에 뒹군다. 붉게 물들기 전의 조락은 일찍 꿈을 접은 젊은이 같아서 안쓰럽다.
상념 하나를 안고 나는 천천히 걷는다.
하늘이 분명 한 아이를 세상에 보내면서 "목소리"를 주셨다.
하늘은 사람을 세상에 보낼 때 한가지씩은 크든 작든 재주를 준다.
그 것은 그를 살게 하는 방편이 되지만 남을 살리게 하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받은 재주로 남을 잘 살릴 때 자신은 더 잘 살게 되는 하늘의 이치.
하늘이 이 아이에게 특별한 재주 "목소리"를 주었을 때 "고난"을 같이 주셨다.
유년시절, 소년시절, 청년시절, 아이는 거칠고 至難한 시절을 거쳐 처음으로 제 목소리와 조우한다. 그것은 시작일 뿐 험지는 계속된다. 그리고 서른 해가 지나 그 목소리는 비로소 하늘이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다. 피어날 즈음 지난날이 광풍이 되고 우박이 되어 그를 강타한다. 그러나 그 것은 또 다른 관문의 전주이고, 목소리를 더 깊게 만들려는 주신분의 간섭임을 내가 깨닫는다.
나는 오늘 영화(?)에서 未完의 순기능, 흔히 말하는 여백의 미를 보았다.
빛나는 것들로 채워지기 위해 비어 있는 공간. 젊은 가수는 그 미완의 빈자리에 가득가득
“제가 만든 제 노래”를 차고 넘치게 할 것이다.
그날, 나는 지금 유보된 눈물을 마음껏 흘리리라.
나는 노래하는 젊은 사람에게 말한다. 전심으로 말을 한다.
"높은 곳으로 나십시오.“ "비를 내리는 구름 위로..."
"구름 위에 있는 자는 비를. 우박을 맞지 않습니다.“
어느새 발걸음이 집 앞에 닿아 있다.
(2020년 10월)
첫댓글 아름다운 글이요, 감동과 교훈이 있는 관람 후기입니다.
자기를 살게 하는 방편이 남을 살리게도 하는 예술인의 길,
오늘의 인기와 영광에 자만하지 말고
하늘이 주신 목소리를 갈고, 닦고, 잘 관리하여
영혼을 울리고, 치유해주는 노래를 오래오래 들려줬으면 합니다.
일곱살 아래 내 동생은 참 놀라운 여인입니다.
여러가지로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 전자시대에 젊은이 못지 않게 그 기기들을 능란하게 다루는 솜씨입니다.
현대에 지진아인 내게 둘도 없는 선생이 됩니다.
그녀는 하현우의 찐팬입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우울하던 때 국가스텐 하현우의 노래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김호중의 노래가 좋다고 하자
"누군가에게 입덕하고 입질하는 것, 노후에 아주 좋은 활력소 라오" 하면서
입덕, 입질, 입후, 덕주라는 생소한 단어들을 사전적 풀이를 해주며
적극 권유했습니다.
무료하고 답답한 나의 날들에 김호중 노래를 따라 부르며 입덕인지 입질인지는 모르겠으나
하루 하루 생기가 부어지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젊은 가수여.
그대에게 군복무 기간이 주어진 것을 "신의 한 수"라고 믿으십시요.
미스터트롯 경연이후 그대는 정신 없이 휘몰아쳐졌습니다.
자신을 가다듬을 시간 없이 인기 속으로 떠밀려 광고, 방송, 예능등에 쫓겼습니다.
그대는 가수입니다.
가수는 오직 가수로서 승부를 걸어야 하고 가수로서 빛나야 합니다.
이 시점에서 그 길에 매진하는 그대가 되기를 응원합니다.
긴 삶을 지내온 한 여인이
이제 날개짓을 시작하는 한 젊은이와
노래로 이어진 감동과 즐거움과 염려와 격려의 따듯한 글
너무 좋습니다!!!^^
''구름 위를 나는 새'' 라는 멋진 표현처럼
호중씨가 앞으로 더 고고하고 초연히 좋은 노래로
팬들과 많은 이들을 가슴을 위로하고 대변하는 가수되길 기도합니다!!!^^
일요신문
[일요칼럼] 김호중과 "우산이 없어요"
이주향 수원대 교수
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81064
트롯 열풍이 영화관에도 도움을 주고 있나봐요
서울경제
임영웅->장민호 극장서 본다
'미스터 트롯' 영화10월 개봉
https://www.sedaily.com/NewsView/1Z7Z9IVPG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