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동시장에서
경동시장은 1960년도부터 6.25전쟁 후 서울 사람들의 생활이 나아짐에 따라 경기북부, 강원도
일대 농민들이 생산 채취한 농산물, 채소 및 임산물을 옛 성동역(미도파 백화점에서 한방타운으
로 변경)자리에서 시작 되었다한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는 정능천을 중심으로 성동역과 반대편
의 서울 사범대학교 자리에는 높은 건물과 주택이 자리 잡고 그 옛날의 모습은 기억 속에만 남아
돈다.
우리는 미아리 산 동내에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조그마한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누님과 사촌언니의 중매로 만난 노총각 노처녀는 소개 받은지 두달만에 동대문성당에서 천주님
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했다. 가끔씩이나 그 옛날을 돌아보면 부족하고 모르는 것이 많았지만 아
름답고 행복한 시절이었다. 지금까지 큰 다툼 없이 지친 하루의 피로를 달래며 밤이 오면 한 이
불속에서 두 손을 꼭 잡고 꿈나라에서 다시 만난다.
우리는 신혼시절부터 일요일 동대문 성당의 미사가 끝나면 새신랑 새신부는 경동시장의 이곳 저
곳을 구경하다 배가 고프면 장바닥에 걸터앉아 호박죽도 먹고 팥죽도 먹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
냈다. 지금도 경동시장 지하 음식백화점은 약간의 개보수를 하여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음식이 많
은데 이곳에는 보리밥이 일품이다. 큼직한 양푼에 갖은 야채와 된장에 쓱쓱 비벼댄 보리밥은 ‘다
먹을 수 있을까’ 걱정도 해 보지만 먹다 보면 바닥이 깨끗이 보인다. 그리고 껄죽하고 시원한 막
걸리 한잔은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로 그 맛이 일품이다. 지금도 가끔은 그 곳을 찾는
다. 보리밥에 전라도식의 젓갈이 잘 버무러진 갓 김치를 우리에게 대접하던 젊은 아낙은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지만 지금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잊지 않고 찾아주는 정겨움에 건네
주는 음식은 이웃집 아낙의 훈훈한 인심이 겯들여 한상 가득 차려진다.
이곳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손뼉을 치며 목이 터져라 ‘골라 골라’를
외치는 구성진 음율, 땅바닥에 옹색하게 자리 잡고 야채 몇 가지 벌려 놓고 손님을 애타게 기다
리는 할멈, 리어커 좌판에서 슥 사슥삭 신명나게 고기 자르는 솜씨, 몇 푼 않 되는 과일 값을 깍
느라 열을 올리며 흥정하는 중년의 아줌마, 못이기는 척 봉지에 한 움큼씩 덤으로 넣어 주는 훈
훈한 정, 이 모든 풍요로움이 우리가 살아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부지런함 속에서 생업에 열중하는 장사꾼들의 모습은 침체된
우리들의 생활에 색다른 활력소가 되기도 한다.
-2008,01,31-
첫댓글 요즈음에는 해지면 아주 한산한 거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