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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2 편
후일의 종교의 진화
.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5년
92:0.1 유란시아에서 인간은 체계적인 계시가 이루어지기 훨씬 전부터 진화적 체험의 일부로 자연적 기원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자연적 기원의 종교는 그 자체로, 동물초월의 자질들인 인간의 산물이었다. 진화적 종교는 야만인, 미개인, 문명화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영향력이 주어지고, 그 안에서 작용하는 감화력에 따른 섬김을 통해, 수천 년에 걸친 인류의 체험적 삶에서 천천히 생겨났다:
1. 예배 보조자 ― 실체 인식을 위한 동물초월 잠재력의 동물적 의식이 나타나는 것. 이것은 신(Deity)을 찾는 인간의 원시적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2. 지혜 보조자 ― 신(Deity) 실체의 개념을 늘 확장해 나가면서 더 높은 경로에서 예배하도록 이끄는 성향이 경건한 mind 안에서 나타는 것.
3. 성령 ― 이것은 초기 초월 지성의 수여이며, 모든 진정한 인간의 personality들에서 변함없이 나타난다. 예배를-갈망하고 지혜를-갈망하는 mind에 대한 이 사역은, 신학적 개념으로서, 실제이고 사실적인 personality 체험으로서, 둘 다 인간이 살아남는다는 가정을 스스로 깨닫도록 그 능력을 창조한다.
이 세 가지 신성한 사역의 조율된 작용은 진화 종교의 성장을 시작하고 추진하기에 아주 충분하다. 이러한 영향들은 나중에 생각 조절자, 세라핌, 진리의 영에 의해 확대되는데, 이 모두가 종교적 발전 속도를 가속화 한다. 이 매체들은 유란시아에서 오랫동안 작용해 왔고, 이 행성이 사람 사는 구체로 남아 있는 한, 여기에서 계속될 것이다. 이 신성한 매체들의 많은 잠재력은 아직 표현될 기회를 가지지 않았어도, 한 수준 한 수준, 모론시아 가치와 영적 진리의 최상 정점을 향해, 필사 종교가 올라가면서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많은 것들이 드러날 것이다.
1. 종교의 진화적 본질
92:1.1 종교의 진화는 초기의 두려움과 귀신들로부터, 영들을 처음에 강제하고 다음에 구슬리려는 노력을 포함하여, 연속된 발전 단계들을 거쳐 내려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부족의 주물은 토템과 부족 신들로 성장했다; 마법의 공식은 현대의 기도가 되었다. 처음에 희생물로 할례를 하는 것이 위생적인 절차가 되었다.
종교는 종족들의 야만적인 초기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 숭배로부터 귀신 숭배를 거쳐서 주물 숭배에 이르기까지 진보했다. 문명의 시작과 함께 인류는 더 신비스럽고 상징적 신념을 신봉했지만, 이제 성숙기에 가까워진 인류는 진실된 종교를 이해하는데, 심지어 진리 그 자체의 계시가 시작되는 것을 위해서도 무르익었다.
종교는 영적 신념과 환경에 대하여 mind의 생물학적 반응으로 일어난다; 종교는 한 민족 안에서 좀처럼 멸망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종교는 어느 시대에도, 신비스러운 것에 대한 사회의 적응이다. 하나의 사회 제도로서, 종교는 의식, 상징, 종파, 성서, 제단, 성소, 성전을 포함한다. 거룩한 물, 유품, 주물, 부적, 예복, 종, 북, 사제직은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순전히 진화한 종교를 마법이나 요술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신비와 능력은 항상 종교적 감정과 두려움을 자극해 왔고, 정서는 이 둘의 발달에 강력한 조건 요소로 늘 작용해 왔다. 두려움은 항상 기본적인 종교 자극제였다. 공포는 진화 종교의 신들(gods)을 만들어내고, 원시 신도들의 종교적 의식에 동기를 부여한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서 두려움은 경외, 찬미, 존경, 동정심에 의해 완화되고, 양심의 가책과 뉘우침에 의해 더욱 수정된다.
어느 아시아 민족은 “하나님은 큰 두려움이다”고 가르쳤다; 그것은 순전히 진화적 종교의 산물이다. 가장 높은 유형의 종교적 생활을 계시했던 예수는 “하나님은 사랑이다”고 선언했다.
2. 종교와 풍습
92:2.1 종교는 모든 인간 제도 중에서 가장 엄격하고 양보하지 않는 것이지만, 변화하는 사회에 천천히 적응한다. 결국, 진화 종교는 변하는 풍습을 반영하며, 이것은 다시, 계시 종교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체험적 논리에 의해 안내되고 신성한 계시에 의해 조명되는 지혜-지식의 결과로서, 종교(예배)는 천천히, 확실히, 그러나 마지못해서, 따라가게 된다.
종교는 풍습에 집착한다; 오래된 것을 신성히 여긴다. 이때문에 석기는 청동기와 철기 시대에도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기록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네가 나를 위해 돌 제단을 만들 경우, 너는 깍은 돌로 세우지 말라. 네가 도구를 사용하여 그것을 만들면, 너는 제단을 더럽힌 것이다." 오늘날도, 힌두교도들은 원시의 불송곳을 써서 제단에 불을 지핀다. 종교의 진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은 언제나 신성모독으로 여겨져 왔다. 성찬은 새롭고 가공된 먹을 것이 아니라, 가장 원시적인 식품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불로 구운 고기, 이스트 넣지 않은 빵, 쓴 나물.” 온갖 종류의 사회 관행, 그리고 법 절차까지도 옛 형태에 집착한다.
현대인들이 여러 다른 종교 경전에서 음란하다고 여길 수 있는 많은 표현에 의아해할 때, 멈춰서서 조상들이 거룩하고 신성하게 여겼던 것을 몰아내는데 두려워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한 세대가 음탕하다고 볼 수도 있는 많은 것을, 이전의 세대들은 풍습의 하나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인정받은 종교의식이라고까지 여겼다. 오래되고 낡은 관습의 교리적 영속을 정당화하는 그럴듯한 이론을 찾기 위해, 오래되고 비난받을 만한 관행을 새롭게 발전된 논리와 조화시키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로 인해 수많은 종교적 논쟁이 야기되었다.
그러나 종교 성장을 너무 급격하게 가속화하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종이나 국가는 현재 진화 과정에서 합리적으로 일치하고 호환되는 진보된 종교, 그리고 그것의 적응 능력에 있을 뿐이다. 사회적, 기후적,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은 모두 종교적 진화의 과정과 진보를 결정하는 데 모든 영향을 미친다. 사회의 도덕성은 종교, 즉, 진화적 종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종교의 형태는 종족의 도덕성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 종족들은 이상하고 새로운 종교를 그냥 겉핥기로 받아들인다; 새 종교를 그들의 풍습과 옛 방식의 믿음에 실제로 적응한다. 이것은 어떤 뉴질랜드 부족의 예에서 잘 나타난다. 이들의 사제들은 이름만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뒤에, 가브리엘로부터 바로 계시를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그 계시의 취지는 바로 이 부족이 하나님이 택한 민족이 되었고, 그들의 절제 없는 성관계, 그리고 오래되고 꾸짖어 마땅한 그들의 수많은 다른 풍습에 마음대로 빠지도록 허락한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새로 된 기독교인들은 모두, 새롭고 덜 엄격한 이 기독교 해석으로 즉시 전향하였다.
92:2.6 종교는 한때 모든 종류의 모순되고 일관되지 않은 행동을 허가했고, 어느 때는 현재 비도덕적이거나 죄악으로 간주되는 모든 것을 실제로 인정했다. 체험을 통해 배우지 않고 이성의 도움이 없는 양심은, 결코 인간 행동의 안전하고 오류 없는 길잡이가 될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수 없다. 양심은 인간의 혼에게 말하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현재 단계에서의 풍습과 윤리적인 내용의 총합일 뿐이다; 그것은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인간이 생각하는 반응의 이상을 나타낸다.
3. 진화 종교의 본질
92:3.1 인간 종교에 대한 연구는 고루한 방식의 과거 시대 사회계층을 조사하는 것이다. 인간을 닮은 신들(gods)의 풍습은 그러한 신들을 처음 생각한 사람들의 도덕성을 진실로 반영한다. 옛 종교와 신화는 오랫동안 잊혀진 가운데 없어진 사람들의 신념들과 전통들을 충실히 묘사한다. 이 옛 종교집단의 관습은 더 새로운 경제적 관습과 사회적 진화와 함께 지속하며, 물론 터무니없이 모순되어 보인다. 그 종교집단의 잔재는 지난날 인종들 종교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종교집단은 진리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교리를 퍼뜨리기 위해 형성 되어졌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
종교는 항상 대체로 관례, 의식, 관행, 예식, 독단의 문제였다. 보통 계속하여 잘못된 오류로 물들어 있는 것은,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망상이다. 기본적인 종교 개념, 곧 주문 외우기, 영감, 계시, 달래기, 뉘우침, 죄값 물어내기, 중재, 희생물 바치기, 기도, 죄 고백, 예배, 죽은 뒤에 부활, 성찬, 의식, 몸값, 구원, 몸값 내고 되찾기, 계약, 더러움, 정화, 예언, 원죄―이 모두가 원시적 귀신 공포증이 있었던 옛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시 종교는 물질적 존재를 위한 싸움이, 무덤을 넘어선 존재를 포함시키기 위해 확장된 것이다. 그러한 교리의 관행은 자아를 유지하는 투쟁, 상상속의 귀신이 영 세계의 영토까지 확장된 것이다. 그러나 진화 종교를 비난할 유혹을 받을 때 조심하여야 한다. 그것은 일어난 일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사상의 힘도 그것의 확신이나 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관심을 끄는 그 사상의 생동감에 있음을 기억하라.
진화 종교는 변화나 수정을 위한 어떤 조항도 없다; 과학과 달리, 진화 종교 그 자체가 진취적으로 수정되는 길을 제공하지 않는다. 진화된 종교는 그 추종자들이 그것이 “유일한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존중을 받는다. “성자들에게 한 번 전해진 믿음”은 이론적으로 최종이고 틀릴 수 없는 것이다. 종교단체는 진정한 진보가 그 종파 자체를 수정하거나 깨뜨릴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진보에 저항한다. 따라서 정정하는 것은 언제나 그 종교단체에 강제되어야 한다.
오로지 두 가지 영향이 자연 종교의 교리를 수정하고 향상할 수 있는데, 하나는 느리게 나아가는 풍습의 압력, 다른 하나는 신기원의 계시가 정기적으로 빛을 비춰 주는 것이다. 그리고 진보가 느린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옛 시대에는 진취적이거나 창의성이 있으면 요술사로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뜻했다. 그 숭배는 세대를 이은 시기와 오랜 세월에 걸친 주기를 가지고 느리게 진보한다. 그러나 앞으로 나가기는 한다. 귀신을 믿는 진화된 신앙은 계시된 종교의 철학을 위하여 기초를 쌓았고, 이것은 궁극에 그 뿌리에 있는 미신을 파괴할 것이다.
92:3.6 종교는 여러 면에서 사회의 발전에 장애가 되었지만, 종교가 없었다면 도덕이나 윤리, 가치 있는 어떤 문명도 없었을 것이다. 종교는 많은 비종교적 문화를 낳았다: 조각은 우상 만들기에서, 건축은 성전 건축에서, 시는 주문에서, 음악은 예배하는 노래에서, 연극은 영의 인도를 대신하는 연기에서, 춤은 철마다 있는 예배 잔치에서 비롯하였다.
그러나 종교가 문명의 발전과 보존에 필수였다는 사실에 주의를 불러일으키는 한편, 자연 종교는 달리 그것이 육성하고 유지했을 바로 그 문명을 또한 절름발이로 만들고 그에 장애가 되는 일을 많이 했다는 것을 기록한다. 종교는 산업 활동과 경제 발전을 방해했다; 노동을 낭비하고 자본을 낭비해 왔다; 종교는 가족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평화와 선의를 적절하게 조성하지 않았다; 종교는 때때로 교육을 소홀히 하고, 과학의 성장을 지연시켰다; 죽음을 부유하게 꾸미기 위해서 삶을 지나치게 빈곤하게 만들었다. 진화된 종교, 인간의 종교는 정말로 이 모든 것들과 더 많은 잘못, 오류, 실수들을 범해 왔다; 그런데도 종교는 문화적 윤리, 문명화된 도덕, 사회의 단결을 유지했고, 나중에 계시된 종교가 많은 이러한 진화적 결점을 보완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진화 종교는 무척 비싸지만, 비할 수 없이 효과 있는 인간 제도였다. 인간의 종교는 오직 진화 문명에 비추어야만 정당화될 수 있다. 인간이 동물 진화의 우세한 산물이 아니라면, 그러한 종교적 발전 과정은 정당화 없이 서 있을 것이다.
종교는 자본의 축적을 촉진했고, 특정한 종류의 일을 발전시켰다; 성직자들의 여가활동은 예술과 지식을 증진시켰다; 결국, 그 종족은 윤리의 기법에서 이 모든 초기 잘못의 결과로서 많은 것을 얻었다. 정직한 무속인과 그렇지 않은 무속인들은 무척 비싸게 먹혔어도, 그들은 제값을 충분히 했다. 지식 계급과 과학 그 자체는, 기생하는 사제 계급에서 나왔다. 종교는 문명을 육성하고, 사회의 연속성을 마련해 주었다; 그들은 모든 시대의 도덕적 경찰의 힘이었다. 종교는 인간의 단련과 자제력을 제공하여 지혜를 가능케 했다. 종교는 진화의 효율적인 채찍질이며, 이것은 게으르고 고통받는 인류를 자연스러운 그 지적 무기력 상태로부터 더 높은 이성과 지혜의 수준으로, 앞으로, 위로, 사정없이 몰아댄다.
그리고 이 신성한 유산인 진화 종교는 드러난 종교에 대한 지속적인 검열과 진정한 과학의 불타는 용광로에 의해 계속해서 다듬어지고 고귀해져야만 한다.
4. 계시의 선물
92:4.1 계시는 진화적이지만, 항상 앞으로 나아간다. 세상의 역사의 시대를 통해 종교적 계시는 점점 확장되어 더욱 깊이 있는 깨우침을 주었다. 계시의 사명은 연속되는 진화 종교들을 분류하고 검열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시가 진화의 종교를 높이고 발전시키려면 그러한 신성한 방문은 그 시대의 생각과 반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 가르침을 나타내야 한다. 따라서 계시는 항상 진화와 접점을 유재해야 한다. 계시 종교는 반드시 인간의 수용 능력에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겉으로 나타나는 연관성이나 유래에 상관없이, 계시 종교들은 최종 가치를 지닌 신(Deity)과 성격 신분(identity)이 죽음 후에 살아남는다는 개념에 대한 믿음으로 특징지어진다.
진화된 종교는 논리적이지 않고 감정적이다. 그것은 가상하는 귀신, 영 세계를 믿는 것에 대한 인간의 반응이다―미지의 깨달음과 두려움에서 자극을 받은, 인간 개념에 대한 반사 작용이다. 계시 종교는 실제 영적 세계에 의해 제시된다; 그것은 우주의 신들(Deites)을 믿고 의지하려는 인간의 갈망에 대한 초월지성의 우주적 반응이다. 진화 종교는 진리 탐구에서 인류의 어수선한 더듬거림을 묘사한다 ; 계시 종교는 진리 그 자체이다.
92:4.4 종교적 계시는 많이 있었지만, 시대적 중요성을 가진 것은 다섯 뿐이다. 이것들은 다음과 같다:
1. 달라마시아의 가르침. 첫째 근원 중심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칼리가스티아 영주 참모진의 유형 참모 100명에 의해 유란시아에 처음 공표되었다. 확대되는 이 신(Deity)의 계시는 행성의 탈퇴와 교육 체제의 붕괴로 갑자기 종료될 때까지, 30만 년 이상 이어졌다. 반(Van)의 업적을 제외하면, 달라마시아 계시의 영향력은 사실상 온 세계에서 사라졌다. 아담이 도착할 때가 되어서는 놋 종족들조차 이 진리를 잊어버렸다. 100명의 가르침을 받은 모든 사람 가운데, 홍인이 그것을 가장 오래 간직했다. 그러나 위대한 영(Spirit)의 사상은 아메리카 인디안의 종교에서 기껏해야 흐릿한 개념이었고, 기독교와의 접촉에서 그 개념을 크게 명확히 강화시켰다.
2. 에덴의 가르침. 아담과 이브는 진화 민족들에게 만물의 아버지 개념을 다시 묘사했다. 첫째 에덴의 분열은 아담의 계시가 미처 제대로 시작되기도 전에 그 과정을 멈추게 했다. 그러나 중지된 아담의 가르침을 셋 사람 사제들이 계속하였고, 이 진리의 어느 정도는 세계에서 결코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레반트 지역 종교적 진화의 전체 흐름은 셋 사람들의 가르침에 의해 수정되었다. B.C. 2,500년 경에 인류는 후원된 에덴 시절의 계시를 대체로 잃어버린 상태였다.
3. 살렘의 멜기세덱. 네바돈의 이 비상시 아들은 유란시아에서 세 번째로 진리의 계시를 개시했다. 그의 가르침의 근본 교훈은 진리와 믿음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한 은혜를 믿는 것을 가르쳤고, 믿음의 행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총을 얻는다고 선포했다. 그의 가르침은 진화 종교들의 개념과 관행과 차츰 서로 섞였고, 그리스도 이후 처음 천년이 시작될 때 유란시아에서 있었던 신학 체계들 안에서 최종적으로 발전했다.
4.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미가엘은 하나님이 우주의 아버지라는 개념을 유란시아에 네 번째로 발표했고, 이 가르침은 그 뒤로 늘 널리 지속하였다. 그의 가르침의 본질은 사랑과 봉사, 생명존재 아들이 자발적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어린 사역을 인정하고 응답하는 사랑의 예배였다; 그같은 생명존재 아들들이 그들의 형제들에게 주는 자유의지의 봉사는, 그들도 이 봉사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깨닫는 것이다.
5. 유란시아 논문집. 이 글은 이 논문집 가운데 하나인데, 이것은 유란시아의 필사자들에게 주는 최근의 진리 발표이다.이 논문들은 단일 우주 personality의 작품이 아니라 많은 존재들에 의한 복합적인 발표이기 때문에 이전의 모든 계시와 다르다. 그러나 우주 아버지의 성취를 제외한 어떤 계시도 결코 완전할 수 없다. 다른 모든 하늘의 사역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이며 시-공간의 지역적 조건에 실질적으로 적응된 것에 불과하다. 이와 같은 인정이 모든 계시의 직접적인 힘과 권위를 손상시킬 수도 있지만, 유란시아의 필사 종족들에게 진리가 최근에 계시되었으며, 이 계시의 미래 영향력과 권위를 약화시킬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러한 솔직한 진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때가 유란시아에 도달했다.
5. 위대한 종교 지도자
92:5.1 진화 종교에서, 신들(gods)은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게 존재한다고 생각되었다. 계시 종교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로―심지어 신성을 가진 유한한 모습을 따라서 빚어졌다고―가르침을 받았다; 계시의 가르침과 진화의 산물로부터 혼합된 합성화된 믿음에서, 하나님(God) 개념은 다음과 같이 뒤섞여 있다.
1. 진화 종교 집단의 선재(先在)하는 사상.
2. 계시된 종교의 숭고한 이상.
3. 인류의 위대한 종교 지도자, 선지자, 선생들의 개인적 관점.
대부분의 위대한 종교적 시대는 몇몇 뛰어난 인물의 삶과 가르침에 의해 시작되었다; 지도력은 역사의 가치 있는 도덕적 운동 대부분의 기원이 되었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가르침을 숭배하기 위해 그 지도자를 존경하고, 비록 그가 선포하는 진리를 놓치더라도 그 인물을 경외하는 경향이 언제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유가 없지는 않다; 진화 인간의 마음속에는, 위로부터 또 저 세상으로부터, 도움을 바라는 본능적인 열망이 있다. 이 갈망은 행성 영주와 나중에 물질 아들들이 땅에 나타나기를 기대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유란시아 인간은 이 초인간 지도자와 통치자들을 박탈당했고, 따라서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인간 지도자들을 초자연적 기원과 기적적인 생애에 관한 전설로 감싸려고 끊임없이 시도한다.
92:5.6 많은 종족들은 그들의 지도자를 처녀들이 낳은 것으로 생각해왔다; 이 지도자들의 생애는 기적적인 사건들로 풍성하게 섞여져 있고, 그들 각 집단들은 이 지도자가 돌아오기를 항상 기대한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부족민들은 아직도 징기스칸의 귀환을 기대하고 있다; 티벳·중국·인도에서는 부처를 기다린다; 이슬람에서는 모하메드이다; 아메리카 인디안 사이에서는 헤수나닌 오나모나론톤이었다; 히브리인들은 대체로 아담이 물질적 통치자로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바빌론의 신 마르둑은 아담의 전설이 지속된 것이고, 이 하나님의 아들 개념은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였다. 아담이 땅에 나타난 후에는, 이른바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계 인종 사이에서 흔한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종종 사로잡혔던 미신적인 경외감에 상관없이, 이 선생들은 인류의 도덕, 철학, 종교의 진보를 위해, 의존했던 계시된 진리의 지렛대로서 버팀목 역할을 하는 시대적 personality였다는 사실이다.
92:5.8 오나가로부터 구루 나낙까지 100만 년 동안 유란시아의 인간 역사에서 수백의 종교 지도자가 있었다. 이 기간에 종교적 진리와 영적 믿음의 물결에는 썰물과 밀물이 여러 번 있었고, 지난날에 유란시아에서 있었던 각 종교 부흥은 어떤 종교 지도자의 일생과 가르침과 동일시되었다. 근래의 선생들을 고려하면서 아담 이후에 유란시아에서 7대 종교 시대로 이들을 묶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1. 셋 종족 시기. 셋 종족 사제들은 아모삿의 지도 밑에서 다시 생겨난 바와 같이, 아담 뒤에 큰 선생들이 되었다. 그들은 안드 종족의 땅에서 두루 활동했고, 그들의 영향은 그리스인, 수메르인, 힌두인 사이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후자 사이에서 이 사제들은 힌두 신앙의 브라만으로서 오늘날까지 계속하였다. 셋 종족들과 그 추종자들은 아담이 계시한 삼위일체 개념을 결코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2. 멜기세덱 선교사 시대. 유란시아 종교는 그리스도보다 거의 2천 년 앞서 마키벤타 멜기세덱이 살렘에 살면서 가르쳤을 때, 그가 임명한 선생들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적지 않게 다시 살아났다. 이 선교사들은 믿음이 하나님에게 은총을 얻는 값이라고 선포했고, 그들의 가르침은 비록 금방 나타나는 종교를 낳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중에 유란시아의 종교들을 세울 수 있는 기초를 형성했다.
3. 멜기세덱 이후 시대. 아메니모피와 이크나톤 두 사람이 이 시기에 가르쳤지만, 멜기세덱 이후 시대에 뛰어난 종교적 천재는 레반트의 베두인 집단의 지도자, 히브리 종교의 창립자―모세였다. 모세는 일신교를 가르쳤다. 그는 말했다: “들어라, 이스라엘아, 주(主) 우리의 하나님은 유일한 하나님이다.” “주(主), 그는 하나님이다. 그 외에 아무도 없다.” 모세는 그의 민족 가운데 귀신 숭배의 찌꺼기를 뿌리 뽑으려고 끈질기게 추구하였고, 그 신봉자들에게 사형을 내리기까지 했다. 모세의 유일신 사상을 후계자들이 더럽혔지만, 나중에 그들은 그의 많은 가르침으로 돌아갔다. 모세의 위대함은 지혜와 총명에 있다. 다른 사람들은 더 위대한 하나님 개념을 가졌지만, 누구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같은 진보된 믿음을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데 그렇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4. 기원전 6세기. 많은 사람이 이 세기에 진리를 선포하려고 일어났는데, 이때는 유란시아에서 일찍이 구경했던바, 종교적 각성이 있던 큰 세기 중에 하나였다. 이들 가운데 고타마 · 공자 · 노자 · 조로아스터, 그리고 자이나교 선생들을 기록해야 한다. 고타마의 가르침은 아시아에서 널리 퍼졌고, 그는 수백만에게 부처로 존경받는다. 공자와 중국인의 도덕성 관계는 플라톤과 그리스 철학의 관계와 같았고, 이 두 가지 가르침에 대하여 종교적 반향이 있었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어느 쪽도 종교 스승은 아니었다; 공자가 인간성에서 본 것이나 플라톤이 이상주의에서 본 것보다, 노자는 도(道)에서 하나님을 더욱 많이 나타내 보여주었다. 조로아스터는 좋은 영과 나쁜 영, 이 두 가지 영 사상의 지배적 개념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궁극에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영원한 한 분 신(Deity) 사상을 분명히 높였다.
5. 기원후 1세기. 나사렛의 예수는 종교 스승으로서 세례자 요한이 세운 종교집단에서 시작하여, 금식과 형식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나아갔다. 예수를 제외하고, 다소의 바울과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이 시대에 가장 위대한 선생이었다. 그들의 종교 개념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닌 그 믿음의 진화에 지배적인 역할을 해 왔다.
6. 기원후 6세기. 모하메드는 그가 살던 시대의 많은 교리보다 뛰어난 종교를 창시했다. 그의 종교는 다른 민족의 믿음이 요구하는 사회적 요구, 또 자기 민족의 종교 생활의 모순에 대한 항쟁이었다.
7. 기원후 15세기. 이 시기에는 두 가지 종교적 움직임이 있었다: 서유럽에서 기독교의 통합이 붕괴되었고, 동양에서는 새로운 종교가 합성되었다. 유럽에서는 조직화된 기독교가 통일성과 일치할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지기에 이르렀다. 동양에서는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의 결합된 가르침은 나낙과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시크교로 통합되었고,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종교 중 하나가 되었다.
92:5.16 유란시아의 미래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하나님 아버지 개념과 모든 생명존재의 형제사랑을 가르치는 종교적 진리 선생들의 출현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들 미래 선지자들의 열렬하고 진지한 노력은 종교 간 장벽을 강화하기 보다 사타니아 유란시아의 특징을 이루는 서로 다른 지적 신학을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 사이에서 영적 예배의 종교적 형제애를 증대시키는 쪽으로 더 향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6. 복합 종교
92:6.1 20세기 유란시아 종교들은 사회적 진화에 대한 인간의 숭배 충동의 흥미로운 연구를 제시한다. 많은 신앙들이 귀신 숭배 시절 이후로 거의 발전하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은 비록 그들 중 일부는 영적 환경을 조금 믿지만, 종교의 한 부류로서의 반응을 나타내지 못한다. 그들은 종교의 진화가 시작되었을 때 원시인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 있다. 원시 종교의 기본적인 신념은 죽은 후에도 살아있음을 믿는 것이었다. Personal(성격적, 개인적)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상은 진보된 진화적 발전 나타내며, 심지어 계시의 첫 번째 단계일 수 있다. 디야크족은 가장 원시적인 종교적 관습만을 발전시켰다. 비교적 근래의 에스키모인과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무척 빈약한 하나님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귀신을 믿었고 죽음 후에 어떤 종류의 생존이 있다는 분명치 않은 사상을 가졌다. 오늘날의 오스트랄리아 원주민은 겨우 귀신에 대한 두려움, 어둠에 대한 무서움, 투박한 조상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줄루족들은 귀신 공포와 희생물을 바치는 한 종교를 진화시키고 있다. 많은 아프리카 부족은, 그리스도 교인과 모하메드 교인들의 선교 사업을 통한 것을 제외하면, 종교의 진화에서 주물 단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불멸을 믿었던 옛 트라키아인들처럼, 그들 중 일부는 오랫동안 일신교 사상을 유지해왔다.
유란시아에서, 종교는 이 논문집을 쓰던 시대에 세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신학적 체계에 섞이고 결합되는 한편, 진화 종교와 계시 종교는 나란히 진보하고 있다. 이 종교들, 20세기에 유란시아의 종교들은, 다음과 같이 열거할 수 있다:
1. 힌두교―가장 오래 됨.
2. 히브리 종교.
3. 불교.
4. 공자의 가르침.
5. 도교 신념.
6. 조로아스터교.
7. 신도.
8. 자이나교.
9. 그리스도교.
10. 이슬람.
11. 시크교―가장 최근.
92:6.14 고대에 가장 발달한 종교는 유대교와 힌두교였으며, 각각 동양과 서양의 종교적 발전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힌두교인과 히브리인 모두 자신들의 종교가 영감을 받고 계시되었다고 믿었으며, 다른 모든 종교는 하나의 참된 믿음의 퇴폐적인 형태라고 믿었다.
인도는 힌두, 시크, 모하메드, 자이나 교인들로 갈라져 있고, 각기 하나님과 사람과 우주에 대하여 자신들이 아는 대로 이들을 그렸다. 중국은 도가와 공자의 가르침을 따랐고, 일본에서는 신도를 섬겼다.
92:6.16 국제적이고 종족을 넘어선 큰 신앙은 히브리 종교,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이다. 불교는 스리랑카, 버마를 거쳐 티벳과 중국, 일본까지 이어지며, 이는 많은 민족의 풍습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그것은 기독교만큼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히브리 종교는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넘어가는 철학적 과도기를 포함한다; 그것은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 사이에 있는 진화의 고리이다. 히브리인들은 초기에 그들의 진화된 신들로부터 곧장, 계시의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따라간 유일한 서양 민족이었다. 그러나 이 진리는 이사야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는데, 이사야는 우주의 창조자와 통합된 종족 신(deity)의 뒤섞인 개념을 다시 한번 가르쳤다: “아 만군의 주(主),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는 하나님이요, 주는 홀로 계신다. 주가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 한때 서양 문명이 살아남을 희망은 숭고한 히브리인의 선(善) 개념과 진보된 헬라 문화의 미(美) 개념에 있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일생과 가르침에 관한 종교이며, 이것은 유대교의 신학에 기초를 두었고, 조로아스터교의 어떤 가르침과 그리스 철학을 흡수함으로 더욱 수정되었으며, 주로 필로, 베드로, 바울 이 세 사람이 형성했다. 바울 시대 이후 기독교는 여러 진화 단계를 거쳐 왔으며, 이제는 그 정도가 매우 서양화되어서 많은 비유럽 민족들이 기독교를 낯선 하나님의 이상한 계시로 자연스럽게 바라본다.
이슬람은 북아프리카, 레반트, 동남아시아의 종교와 문화의 결합체이다. 이슬람을 일신교로 만든 것은 후기 기독교 가르침과 연관된 유대교 신학이었다. 모하메드의 추종자들은 높은 삼위일체 가르침에 휘청거렸다; 그들은 세분의 신성한 성격자들(personalities)과 한 분 신(Deity)에 대한 교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진화된 mind들이 갑자기 상급의 계시된 진리를 받아들이도록 유도하기는 언제나 어렵다. 인간은 진화적 생명존재이며, 대체로 진화적 기법으로 종교를 얻어야 한다.
92:6.20 조상 숭배는 한때 종교적 진화에서 분명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불교와 힌두교와 같이 비교적 발전된 요소들이 많은 환경 속에서 중국, 일본, 인도에서 이 원시적 개념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놀라우면서도 유감스럽다. 서양에서 조상 숭배는 민족 신들을 우러러보고 종족의 영웅들을 존경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20세기에, 영웅을 모시는 이 민족주의 종교는 여러 가지 급진적이고 민족주의를 부르짖는 비종교주의에서 그 모습을 나타내며, 이것이 서양에서 많은 종족과 민족의 특징을 나타낸다. 영어권 사람들의 대학과 대규모 산업 공동체들에서도 이와 매우 유사한 태도가 많이 발견된다. 종교는 단지 "좋은 삶에 대한 공동의 탐구"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 종교"는 초기 로마 황제 숭배, 황실에서 국가를 숭배하는-신도(Shinto)로 돌아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7. 종교의 계속된 진화
92:7.1 종교는 결코 과학적 사실이 될 수 없다. 철학은 정말로 과학적 기초 위에 놓여있지만, 종교는 오늘날 세계에서처럼, 늘 진화되든지 계시되든지 이 두 가지의 가능한 조합으로 남을 것이다.
새로운 종교는 발명될 수 없다; 새로운 종교는 진화하든지, 아니면 갑자기 계시된다. 모든 새로운 진화 종교는 단지 오래된 믿음, 새로운 적응, 적응에 대한 표현을 발전시키고 있을 뿐이다. 옛것은 계속 존재한다; 비록 시크교가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그리고 다른 동시대의 다른 종교들의 토양과 형태에서 싹트고 꽃을 피웠음에도 그것은 새로운 것과 합쳐진다. 원시 종교는 매우 민주적이었다; 야만인은 재빨리 빌리거나 빌려주었다. 오로지 계시된 종교에서 독재적이고 편협한 신학적 이기주의가 나타났다.
유란시아의 많은 종교는 사람을 하나님에게로 데려오고 아버지에 대한 깨달음을 사람에게 가져다 줄 정도로 모두 선하다. 어떤 종교주의 집단이라도, 그들의 교리가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한 태도는 믿음의 확실성보다 신학적 오만에 가깝다. 모든 다른 신앙에 담긴 최선의 진리를 연구하고 흡수해서 이득을 얻지 못할 유란시아 종교는 하나도 없으니, 모두가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인들은 지속되는 미신과 낡은 의식에서 최악의 것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의 살아있는 영적 믿음에서 가장 좋은 것을 빌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이 모든 종교는 동일한 영적 인도에 대한 인간의 다양한 지적 반응의 결과로서 생겨났다. 이 종교들은 결코 그 신조, 교리, 의식행위의 통일성을 결코 바랄 수 없다―이것들은 지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종교들은 만물의 아버지를 참으로 숭배하는 데서 통일을 얻을 수 있고, 언젠가 그렇게 할 것이며, 이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모든 사람이 동등하다는 것은 언제까지나 진실이다.
원시 종교는 대체로 물질-가치를 의식했지만, 진정한 종교는 의미 있고 최상의 가치를 가진 봉사에 자아를 바치는 것이기 때문에, 문명은 종교적 가치를 높인다. 종교가 진화함에 따라서, 윤리는 도덕을 다루는 철학이 되고, 도덕성은 가장 높은 의미와 최상의 가치―신적이고 영적인 이상―의 표준에 따라서, 자아를 훈련하는 것이 된다. 이처럼 종교는 저절로 우러나오는 지극한 헌신, 사랑으로 충성하는 산 체험이 된다.
92:7.6 다음은 종교의 질(quality)을 가리킨다:
1. 수준 가치―충성심.
2. 의미의 깊이―이러한 최고의 가치에 대한 이상주의적 감상에 대한 개인의 민감성.
3. 헌신의 깊이―이 신성한 가치들에 대한 헌신의 정도.
4. 이상주의적 영적 생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 우주에서 끝없이 진보하는 시민권을 실현하고, 이 우주의 길에서 제한받지 않는 personality의 진보.
92:7.11 종교적 의미는 어린아이가 전능의 개념을 부모로부터 하나님에게 옮길 때 자의식이 진보한다. 그러한 아이의 종교적 체험 전부는 대체로 두려움 또는 사랑이 부모-자녀 관계를 지배했는지에 크게 좌우된다. 노예들은 주인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님 사랑의 개념으로 바꾸는 데 항상 큰 어려움을 겪었다. 문명, 과학, 진보된 종교는 자연 현상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두려움으로부터 인류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더 큰 깨달음은 신(Deity)과 소통하는 중개자에 대한 모든 의존으로부터 교육받은 필사자들을 구출해야 한다.
보여지는 인간에서 보이지 않는 신을 숭배함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우상 숭배로 머뭇거리는 이 중간 단계들을 피할 수 없지만, 이 단계는 깃드는 신성한 영의 용이하게 하는 사역을 의식함으로 짧아져야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신(Deity) 개념 뿐 아니라, 또한 명예를 돌리기로 선택한 영웅들의 됨됨이에도 깊은 영향을 받아 왔다. 신성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공경하러 온 자들이 그 사람―씩씩하고 용기가 넘치는 영웅―요수아 벤 요셉(Joshua ben Joseph)을 간과하는 것은 가장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인은 종교를 알맞게 의식하고 있지만, 예배하는 관습은 사회의 변형이 가속화되고 전례 없는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혼란스럽고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생각하는 남녀는 종교가 재정립되기를 원하며, 이러한 요구는 종교가 스스로를 재평가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현대인은 2천 년 동안 이루어진 것보다 한 세대에 더 많은 인간의 가치를 재조정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종교에 대한 사회적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종교는 삶의 방식이자 사고방식이기 때문이다.
92:7.15 참된 종교는 항상 동시에 모든 지속되는 문명의 영원한 기초이자 안내하는 별이 되어야 한다.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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