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5.
된장찌개
텃밭 앞에 선다. 나야말로 창조주다. 땅콩, 깻잎, 대파, 둥근조선호박, 서리태콩, 쥐눈이콩, 참외, 토마토. 이들은 나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고 열매를 맺었으니 나는 창조주임이 틀림없다. 자만인가? 오만인가? 잠시 교만한 인간이 되어 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농작물을 키워보는 중이니 어여삐 여겨 용서해주실 절대자에게 감사드린다.
필요한 만큼 가져야겠다. 성큼성큼 걸어가서 잘생긴 호박을 하나 잘라낸다. 깻잎은 고운 새순으로 수북이 꺾어 담고 고추도 매운 청량으로 5개만 골랐다. 대파도 필요하니 세 뿌리 윗부분만 잘랐다. 준비는 완벽하다.
메뉴는 된장찌개다. 창조주에서 요리사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냄비에 물을 담아 끓인다. 육수 내는 알맹이 하나를 꺼내서 냄비에 던져 넣었다. 제일 먼저 감자를 썰어 넣고 호박, 고추, 양파, 대파, 깻잎 순으로 냄비를 채웠다. 맛있는 우리 집된장을 두 숟가락 가득 넣고 휘휘 저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된장찌개는 안 짜야 한다. 심심해야 밥 한 숟가락에 두 번 퍼먹을 수도 있고 맨입으로 먹을 수도 있다. 감자 없는 된장찌개는 상상하기도 싫다. 잘 익은 호박이 빠져도 허전하다. 양파가 단맛을 내고 고추는 입술에 약한 통증을 만드니 양을 적당히 조절하여 끓이는 감각이 필요하다. 물론 깻잎은 향이다.
맛있다. 된장찌개 하나로 끼니를 완벽하게 해결했다. 거의 모든 재료는 영농 실습장 텃밭에서 재배한 것이다. 사람 살아가는 일이 먹는 것에 국한되기야 하겠냐마는 다들 먹어야 사는 일이고 먹기 위해 살아가는 일들의 반복이지 않은가. 어렵게 돌려서 말할 게 뭐 있나. 먹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런 것들에 만족할수록 텃밭의 창조주로 계속 살고 싶어진다.
대학 생활 4년을 자취생으로 보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맛이야 덜하지만 모양은 엇비슷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다 먹고 살기 위함이니 스스로 할 수 있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쌀 씻어 물 맞추고 포슬포슬한 밥을 할 줄 안다면 찌개 하나 제대로 끓이기만 하면 된다. 김치찌개나 된장찌개 둘 정도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어야 아쉬움이 덜하다.
젊은 날 힘들었던 경험이 삶의 지혜가 되었다. 경험이 가장 정확하게 빨리 배울 수 있는 지식이라던 아버지의 충고가 생각나는 하루다.
첫댓글 그래가 맛은 있고?
그 맛이 그 맛인거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