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재 윤두서(1668~1715) 고택
해남인으로 고산 윤선도의 증손이자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이다. 장남인 윤덕희와 손자인 윤용도 그림을 그려 3대가 화가 가문을 이루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3원 3재가 꼽히는데, 3원이란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3재는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공재 윤두서(또는 관아재 조영석)을 일컫는다. 젊은 시절, 1693년(숙종 1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남인 계열이 당쟁의 심화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남은 일생을 학문과 시서화로 보냈다. 1712년 이후 고향 해남 연동에 은거하였다가 1715년(숙종 41)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670년(현종 11) 고산 선생이 백포마을 뒷산(망부산)이 멈춘 곳에 풍수지리상 명당인 자리에 집을 지었으나 바닷바람이 심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고 증손자(윤두서)가 살았다고 하고 1811년 수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ㅁ'자 구조로 문간채와 사랑채 등 48칸규모였다고 하나 현재는 안채의 서쪽이 헐리고 'ㄷ'자 구조로 13칸의 안채와 곳간채, 헛간채, 사당만 남아있다.
능통(能通)
사물의 이치를 훤히 통달한다는 뜻으로 시서화에 전념하던 공재가 그러한 마음을 담았다고 본다.
청우재(聽雨齋)
빗소리를 듣는 집이라는 뜻일텐데, 안채에 걸린 현판이라 여인들이 듣는 빗소리라는 어땠을까 생각하다가 이곳 백포마을이 비가 잦은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 본다.
어란항 발 어불도 행 여객선...
이용 승객이 이리 많다는 말인가?
어란진항과 등대
재조명 정유왜란, 구국의 의기(義妓) '어란'
어란 이야기....
명량대첩은 정유재란 당시 해남 울돌목에서 충무공이 12척으로 왜군 133척을 물리쳐 세계 해전사에 다시 없을 큰 업적을 남기게 된다. 이 전무후무한 승전에 기여한 일등공신의 이야기를 두고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마을에는 400년간 철저히 묻혀버린 의기(義妓) '어란'(於蘭·?∼1597)이야기가 있다.
구국의 여인 '어란' 의 이야기
어란진에 주둔한 간 마사가게는 이순신장군의 간첩인 미기(美妓) 어란과 애인관계로 사랑에 빠져 명량해전으로의 출전기일을 발설하고 '어란' 은 이를 김중걸을 통해 이순신군에 연락, 조선군이 대승을 하지만 결국 명량해전에서 애인 간 마사가게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라에는 충성했지만 인간적인 양심의 가책으로 다음날 달 밝은 밤에 명량해가 보이는 서쪽바다에 투신한다.
명량해전 이튿날인 9월17일, 마을 앞 바닷가로 한 여인의 시체가 떠오자 이를 발견한 어부가 시신을 근처 소나무 밑에 묻고 묘 앞에 석등을 세우고 불을 밝혀 이 여인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명량해전에 관한 어란의 기록이 일본 전사 기록과 똑같다는 것이다. 어란의 등장은 충무공의 위상을 깎아 내린다며 논란이 있으나 역사는 역사니까....
어란 마을에서는 충무공 탄생일인 28일 의거지인 석등롱(어란의 넋을 기리는 헌등대), 여낭터(여인이 투신한 낭떠러지), 사당(큰당, 작은당, 현재당)등을 답사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옛 석등롱이 있던 자리 바로 옆에 시멘트로 만든 석등롱이 현재까지 세워져 있으나 원상복구가 시급한 것으로 알려진다.
해저 케이블...
전력을 제주도로 보낸다고?
지금은 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