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게부터 비가 내린다는 예보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리다. 마음이 바빠진다. 비가 시작되기 전에 완도까지 다녀오려면 갈 길이 멀다. 완도는 장보고(張保皐ㆍ?∼841)의 자취가 남아있는 으뜸 테마여행지다. 청해진이 장도였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거점으로 서남해안의 해적을 소탕하고 해상권을 장악했다. 신라와 일본, 당나라의 삼각무역에서도 주도권을 쥐며 '해상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완도로 가는 길은 멀다. 그러나 길은 어렵지 않다. 남쪽으로 난 13번국도만 타고가면 된다. 광주에서 나주, 영암, 강진, 해남을 지나 완도로 이어진다. 2시간 남짓 걸린다. 완도항 음식특화거리에서 우럭매운탕으로 이른 점심을 먹고 장군섬, 장도(將島)로 간다. 벌써 빗방울이 떨어진다. 봄을 재촉하는 비여서 그런지 성미도 급한 모양이다. 장보고기념관에 들르지 않고 곧장 장좌리로 간다. 비가 더 내리기 전에 청해진을 먼저 보기 위해서다.
바다와 맞닿은 마을에 장군샘이 있다. 수량이 풍부하다. 우물의 바닥이 해수면보다 낮아서다. 청해진 군사들이 생활용수로 썼던 생명수다. 지금도 마을사람들이 마시고 있다. 이 물로 빨래도 한다. 정월대보름 날 우물굿도 여기서 지낸다.
청해진의 본영이었던 장도는 섬이다. 마을에서 200여m 떨어져 있다. 예전엔 하루 두 차례 바닷물이 빠지는 틈을 타 걸어 다녔다. 지금은 나무데크로 연결돼 있다. 아무 때나 드나들 수 있다.
| 장도로 가는 목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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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고즈넉하다. 날씨 탓인지 찾는 사람이 없다. 섬을 독차지한 것 같다. 장보고의 마음으로 차분히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더 좋다. 길이 왼편에 우물을 두고 외성문과 내성문으로 이어진다. 유적지 복원사업으로 들어선 것들이다. 우물은 오래 전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표다. 청해진의 기반이었다.
내성문에 올라서니 외성문과 우물터가 내려다보인다. 조금 전 지났던 장좌리마을과 목교도 한눈에 들어온다. 사방으로 풍치가 빼어나다. 성내를 둘러싸인 토성도 별나다. 이른바 판축토성이다. 흙과 자갈, 갯벌 등을 쌓아 누르고 그 위에 또 쌓는 방식이다. 흡사 시루떡 같다. "돌 하나 빠지면 붕괴위험이 있는 다른 성보다 더 튼튼한 게 이 토성입니다. 포개진 게 열여덟 겹이나 돼요. 당시 사람들의 지혜죠" 이주승 장보고기념관 학예연구사의 얘기다.
이 판축토성을 따라 걷는다. 성곽을 따라 오른편으로 가다 만나는 첫 번째 누각이 고대(高臺). 섬에 있는 3개의 누각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신지도 주변 다도해가 한눈에 보인다. 먼바다에서 들어오는 작은배의 움직임까지도 다 눈에 들어온다. 이 바닷길이 완도에서 청산도를 지나 중국이나 일본으로 나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성곽길은 고대에서 동남치와 남굴립주를 거쳐 사당으로 간다. 치는 관측시설을 일컫는다. 동남치는 청해진의 동남쪽 모서리에 위치해 있다. 완도항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위치다. 신지도와 약산도, 고금도도 눈앞이다.
| 내성문에서 내려다 본 외성문과 목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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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립주는 기초를 따로 다지지 않고 땅에 기둥만 박아 세운 건물의 기둥이다. "건물의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어 기둥만 복원해 놓았다"는 게 이 연구사의 말이다. 굴립주는 남쪽과 북쪽 두 군데에 있다. 고대처럼 치와 굴립주도 바닷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워져 있다. 지대가 높지 않은데도 천연의 요새다. 이곳에 청해진이 설치됐다는 사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당(당집)은 동백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크지 않다. 여기에 장보고대사와 송징, 정년, 혜일대사의 위폐가 모셔져 있다. 음력 정월대보름에 당제를 지내는 곳이다. 장좌리 주민들의 당제는 동틀 무렵부터 2시간가량 진행된다. 옛 방식 그대로다. 제를 마치면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간다. 공동우물에서 우물굿을, 당산나무 아래에선 당산굿을 각각 지낸다. 오후엔 마을을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해질 무렵엔 목교 아래 갯바위에서 갯제를 지낸다. 하루 종일 펼쳐지는 장좌리만의 정월대보름 세시풍속이다.
| 장도에 조성된 성곽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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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2월24일)에 펼쳐질 당제를 그려보며 성곽길을 또 걷는다. 길은 북굴립주와 서북치를 거쳐 성내 숲을 지난다. 조그마한 섬에서 만나는 숲길이 호젓하다. 나름대로 운치도 있다.
길이 또 있다. 이번에는 성곽 아랫길이다. 성곽 아래로 난 길을 따라 서북치로 방향을 잡는다. 조금 전에 걸었던 길을 거슬러 간다. 길이 끊긴 판축토성 사이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포구에 떠있는 낚싯배가 일렁인다. 양식장 풍경도 넉넉하다. 길이 바다와 더 가까워진다. 성곽에서 내려다보는 풍치와는 다른 묘미가 있다. 풍광을 감상하며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길을 따라 늘어선 동백숲도 정겹다. 그리 오래 된 나무가 아닌데도 제법 방풍림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갯바람에 하나씩 꽃망울을 터뜨린 애기동백도 어여쁘다. 두 갈래로 나뉘는 길도 한 폭의 그림이다. 내성문과 외성문을 나와 해변에서 만난 목책(木柵)도 의미가 깊다. 목책은 해안에 통나무로 쌓은 방어용 울타리다. 당시 배를 대기 위한 접안시설이나 호안 방벽으로도 쓰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갯벌에 숨겨져 있어서 아무도 몰랐다. 목책의 베일을 벗긴 건 1959년 태풍 사라호였다. 태풍이 갯벌에 묻혀있던 목책을 드러낸 것이다. 마을주민들의 밭으로 이용됐던 장도가 청해진 유적지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전문기관의 조사결과 여기에 목책 1000여 개가 줄지어 있었다. 거리도 300m나 됐다. 썰물 때면 이 가운데 10여 개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부분 썩거나 잘려나가고 밑동만 남아있다. 따개비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장도는 넓지 않은 섬이다. 면적이 12만5400㎡(3만8000평)에 불과하다. 성곽을 따라가면 금세 한 바퀴 돌 수 있다. 그러나 성곽길이 있고, 성곽 아래와 성내를 잇는 길도 있다. 이야기 거리도 널려있다. 청해진 시대를 살았던 옛사람의 흉내를 내면 결코 짧지 않은 길이다. 섬이 크게 보이는 이유다. 섬에서 나와 만나는 장보고기념관과 수석공원은 덤이다
이돈삼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여행정보
●가는길
광주에서 13번국도를 타고 나주, 영암, 성전, 해남을 거쳐 남창대교와 완도대교를 건넌다. 여기서 완도읍 방면으로 완도터널을 지나면 왼쪽에 장보고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려면 완도군 완도읍 청해진로1455(장좌리 186)를 입력하면 된다.
●먹을곳
싱싱한 회와 전복을 재료로 한 맛집이 많다. 완도항 음식특화거리에 있는 새벽완도항구(554-7227)와 새천년(554-0704), 청해마루(554-3382), 해운대횟집(554-0059), 회모리(554-0068) 등이 소문 나 있다.
●묵을곳
하늘정원펜션(555-0400)이 깔끔하다. 연륙교로 연결된 신지도에 완도해조류스파랜드호텔(550-7000)이 있고, 완도해변에 완도관광호텔(552-3005)이 있다. 로망스모텔(555-2463), 피아노모텔(554-5500) 등 모텔급 숙박시설도 많다.
●가볼곳
장보고 일대기를 다룬 텔레비전 드라마 '해신'의 세트장이 있다. 대신리 청해포구엔 청해진 본영과 객사, 저잣거리 등이 들어서 있다. 불목리 신라방엔 중국거리, 상단, 시전거리 등이 만들어져 있다.
군외면에 있는 완도수목원도 가볼만 하다. 붉가시나무, 황칠나무, 후박나무 등 난대수종의 자생 군락지로 '살아있는 식생교과서'로 통한다. 갯돌이 깔려있는 정도리 구계등(九階燈)도 멋스럽다.
해송과 감탕나무, 단풍나무 등 상록수와 활엽수가 빽빽한 탐방로도 좋다. 완도타워에서 내려다보는 풍광도 일품이다.
●문의
장보고기념관 550-6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