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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찬란한 슬픔의 봄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절약이 악덕이고 소비가 미덕이다.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 매 한 대 더 때려라. |
이런 표현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모순’과 그것을 넘어선 ‘진리(깨우침)’에 있습니다. 이 가운데 두 개만 설명해보겠습니다.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님의 침묵」, 한용운) : 안 보냈으면 안 가야 말이 되는데 갔다고 하죠. 겉으론 말이 안 됩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모순어법’이라고 하죠. 그러나 님이 떠난 객관적 현실(사실)을 님을 보내지 않은 마음, 즉 주관적 의지로 극복하는 상황을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님과 영원히 함께 존재한다, 정말 사랑한다는 의미겠죠.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깃발」, 유치환) : 아우성은 시끌벅적 소리 지르는 거죠. 소리가 있을 뿐 아니라 중구난방 요란스러운데도 소리가 없다고 표현합니다. 말이 안 되죠. 역시 모순이죠. 그러나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서 끊임없는 내적 몸부림을 보이는, 울부짖는 듯한 깃발의 모습을 형상화한 부분임, 작품의 앞뒤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깃발과 같은 이상향에 대한 화자의 염원을 나타내는 거죠.
이처럼 표현 자체는 모순되지만 진리를 내포한 표현을 역설이라고 합니다. 나머지 예문도 거개가 비슷한 원리로 역설적 표현에 해당합니다.
김종길의 「설날 아침에」의 부분도 이런 역설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다음 인용부를 보세요.
⑸ 오늘 아침 따뜻한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을 앞에 하였거든
고마운 것이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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⑸연을 보면 “한 잔 술과 한 그릇 국”이 있습니다. 편의상 ⓐ라 하죠. 이어 ⑹연에서는 그것만으로도 “푸지고 고마운 것”이라고 말합니다. 편의상 ⓑ라 하죠. 이쯤에서 눈치채셨죠! ⓐ가 어찌저찌 “고마운 것”일 수는 있겠지만 ⓑ가 되는 것은 누가 봐도 아니지요. 따라서 ⓐ와 ⓑ의 관계는 모순입니다. 그런데 이는 이 시의 주제를 위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역설입니다.
또 ⑺을 보면, “세상은 험하고 각박하다”(ⓐ)고 하면서 “살만한 곳”(ⓑ)이라고 말합니다. ⑺연에서는 세상에 대한 주관적 정의가 두 번 내려지고 있습니다. ⓐ와 ⓑ. 세상이 험하기만 하고 각박하기만 하면 “살만한 곳”이 아니지요. 역시 ⓐ와 ⓑ의 관계가 모순된 표현이지요. 그러니까 이는 ⓐ와 ⓑ를 통해 ‘현재의 넉넉하지 못한 생활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구절입지요. 앞서 말한 주제를 위한 것이지요. 주제가 ‘지난 날의 어려움과 삶의 고통을 착함과 슬기로써 이겨내고 기쁨과 반가움으로 새해를 맞이하자’는 새해 다짐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