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 하루 일찍 제주도에 내려갔습니다. 내려갈 때부터 관음사에서 비박을 계획했습니다. 기본 장비는 오래전에 산 코베아 타프에 그라운드 시트 그리고 동계침낭 + 비비커버입니다. 법원 시청에 볼 일이 있었는데 예상보다 늦게 끝나 관음사 야영장에 도착하니 벌써 어둑합니다.
급하게 그라운드 시트깔고, 그 위에 타프를 펼쳤습니다. 폴대 없이 스틱 하나를 전면 중앙에 메인기둥으로 세우고, 전면 2개 후면 3개로 팩을 박았습니다. 토질이 푸석해서 팩이 그다지 견고하지 않았습니다. 출입구쪽 날개에 팩을 하나박아 고정하고 스틱에 스트링을 V자로 연결하여 텐션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스트링을 멜 위치가 애매합니다. 경사면을 받친 나무 받침에 구부러진 대못이 있어 대강 잡아 맵니다.
타프의 형태를 갖춘 후 그라운드 시트 위에 1인용 발포 매트를 깔고 그 위에 엑스패드 7W 에어매트리스를 깔았습니다. 에어매트에 바람 넣는 것이 장난이 아닙니다. 어댑터를 베개에 연결하여 펌핑했지만 효율이 별로 입니다. 결국 핸드펌프로 수십번 펌핑해서 바람을 넣습니다. 에어 매트리스 위에 비비커버를 펼치고, 그 안에 동계 침낭을 펼쳤습니다. 커버가 침낭의 오염도 막아주고 좋습니다. 침낭안에 써머레스트 얇은 놈을 펼쳐 놓으니 침낭과 커버가 각이 살아납니다.
이미 해는 떨어지고, 점심을 늦게 먹어 저녁 생각이 없습니다. 미배 사장님께 염가로 구입한 코베아 휘발유 버너를 처음 사용해봅니다. 설명서를 두고 와서 당황했지만 연료통과 펌프를 조립하고 설치를 하니 그냥 자연스럽게 펌핑, 예열, 버닝으로 연결됩니다. 직관적으로 되는 것이 신기합니다. 식수를 사려고 매점에 갔더니 아직 9시도 안되었는데 문을 닫았습니다. 할 일도 없고 그냥 침낭속으로 들어갔습니다. 포근하고 아늑합니다. 쉽게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붙였는데 잠깐 잠든 후에 비가 오기 시작합니다.
바깥에 벗어논 등산화를 서둘러 안쪽으로 들여놓고 장비들을 타프 안쪽으로 모아 놓습니다. 버너는 그냥 빗속에 남겨 두었습니다.비바람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오줌도 마렵지만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귀찮아서 참고 있습니다. 짐승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고 약간 무서운 생각도 듭니다. 근처에 대형 텐트가 있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혼자서 타프 안에서 비바람을 맞습니다. 침낭안이 뽀송뽀송해서 마음이 푸근해서인지 두려운 마음은 곧 사라집니다.
타프 뒤쪽이 비바람에 많이 기울었다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타프가 무너집니다. 그라운드 시트위에 무너진 타프와 침낭커버가 그대로 빗속에 노출됩니다. 무너진 타프를 장비위로 덮어 대충 비를 가린 후 그대로 침낭 커버안에서 버팁니다. 커버를 완전히 덮으면 빗소리가 요란해도 비는 전혀 침투하지 못합니다. 다만, 타프가 없으니, 내리는 빗물의 무게로 침낭이 꺼져서 공간이 좁아집니다. 커버를 덮으면 약간 답답하기는 해도 호흡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혹시나 질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 30분 정도 마다 커버를 살짝 열면 매쉬 사이로 빗방울이 살짝 들어옵니다.
비가 약간 약해진 틈을 타서 침낭에서 나와 근처에서 볼일을 봅니다. 개운합니다. 빗속에서 그대로 침낭안로 들어갑니다. 침낭 커버가 모양을 잡아주어서 다시 들어가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렇게 2~3시간을 버티니 새벽에 비가 그칩니다. 커버를 살짝 여니 밤하늘에 별이 보이지만 구름과 나뭇가지에 가려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동이틉니다.
침낭에서 빠져 나와 잠자리를 보니 가관입니다. 그라운드 시트는 물이 고여 여기 저기 조그만 연못이 생겼고, 바닥은 모두 비에 젖었습니다. 그라운드시트, 발포매트리스, 에어매트리스가 따로 놀아 침낭 커버의 다리쪽은 그냥 젖은 땅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다리쪽을 반을 꺽어서 매트위에 올려 놓습니다. 비비커버는 빗물을 모두 팅겨내서 오염이 없습니다.
타프를 걷어 나무가지 사이에 스트링을 걸어 그늘막을 만들었습니다. 타프를 말리고 젖은 것들, 주로 각종 수납 주머니를 스트링에 걸어 말립니다. 물을 끓여 햇반과 깡통으로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신후에 비로소 여유가 생겨 사진을 남깁니다. 허술한 타프와 그라운드 시트가 측은해 보입니다. 그러나 침낭커버는 빵빵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폭우는 아니었지만 완전히 빗속에 노출된 하루밤. 침낭커버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 주었습니다. 커버안의 침낭은 뽀송뽀송합니다. 따로 건조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계곡에는 해가 늦게떠서 장비를 어느 정도 건조 시키고 나서 짐을 꾸리고 산행을 시작하니 11:45분입니다. 백록담은 포기하고 삼각봉까지만 오르고 하산하니 오후 6시 정도 됩니다. 비록 백록담은 오르지 못했지만, 겨울산 빗속에서 비박을 한 소중한 경험을 챙겼습니다. 우중 비박의 일등 공신은 비비커버였습니다. 장비의 신뢰성이 민수용과는 비교불가라고 생각됩니다.
우중 비박을 마친 후의 사이트 전경 비에 젖은 장비속에 침낭 커버가 빵빵한 자태를 보여줍니다.
첫댓글 역시 군용이 갑입니다~~~
커버 준비해 놓고 한번도 사용못했네요... 가을 에는 열심히 사용해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