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뜬금없는 ‘주취해소센타’ 설치
‘님비현상’은 정치적 용어로 지역 이기주의의 일종이다.
산업 폐기물이나 쓰레기를 수용하거나 처리하는 시설이 필요한 것은 알지만 그런 시설이 자기가 사는 지역에 설치되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이다. 그래서 ‘님비’는 영어 ‘NIMBY’(Not in My Back Yard)의 우리말 표기다. 한마디로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는 원하지 않는 시설이나 환경을 반대하는 현상이다.
이는 주로 쓰레기 처리장이나 정신병원, 원자력발전소 등 혐오 또는 기피 시설들이 설치될 때 나타난다.
주민들은 이러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의 생활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거주지 주변에는 설치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지역 이기심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님비현상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이슈 중 하나다. 주민들은 자신의 안전과 환경오염 그리고 부동산 가치 하락 등에 매우 민감하다. 주변에 쓰레기 처리장이 들어서면 악취 문제와 환경오염으로 건강에 해로운 물질이 방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며, 이로인해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을 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자신의 생활 환경을 보호하고 더불어 자신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은 정당한 생명권이자 자유권이다.
따라서 님비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해당 시설의 필요성과 당위성이 설득력이 있어야 하면서, 그로인한 부정적 영향 사이에서 균형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그리 쉬운 일이 아닌 셈이다.
지난 23일 종로구 무악동 주민센타에서는 종로구청 측이 주관하는 긴급 주민 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참여한 주민들의 수가 수백 명에 이르면서 신문, 방송사 등에서 수십 명의 취재진이 몰려 눈길을 끌었다. 매우 작위적인 냄새도 났지만 사안의 심각성(?)이 직시되는 모습이었다.
이날 간담회 배경은 최근 서울시가 종로구와 그 어떤 사전협의나 별도의 주민설명회도 없이 매우 일방적으로 무악동 주거지 복판에 ‘주취해소센타’ 설립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주취해소센타’는 한마디로 보호자에게 인계가 어려운 취객을 응급치료 후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임시 구호시설이다. 그동안에는 경찰 지구대나 파출소가 그 역할을 해 왔으며, 취객이 의식이 없으면 경찰과 의료진이 상주하는 주취자 응급의료센타로 이송하곤 했다.
서울의 경우에는 국립의료원과 적십자병원을 포함한 총 4곳의 주취자 응급의료센타를 운영하면서도 내년 초에 추가로 ‘주취해소센타’ 설치를 계획하면서 그 대상지로 무악동 과거 새마을금고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무악동 새마을금고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서울시 소유재산인데 지난 9월 2일경 서울시 자치경찰위원회로 이관하면서 이를 자치경찰위원회가 ‘주취해소센타’로 이용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대는 주민들이 조용하고 평범하게 일상을 이어가는 주거지다. 인근 무악동과 교남동에는 총 7천여 세대가 밀집되어 거주하고 있는 전형적 주거지로 정주권이 크게 보호되어야 하는 지역이다. 무슨 술집이나 유흥주점이 특별히 있는 곳도 아니고 오히려 초중고 4곳을 포함하여 어린이집 9곳이 자리한 학생 안전이 요구되는 위치다. 그런데 갑자기 평온한 동네에 ‘주취해소센타’가 설치된다고 하니까 주민은 물론 종로구 차원에서도 “이게 웬말이냐”고 들고 나선 양태다.
사실 ‘주취해소센타’는 주민 주거지가 아니라 의료원 등에 있어야 한다. 전국 최초의 부산시 ‘주취해소센타’도 부산의료원에 설치하고 운영하면서 여러 성과를 내고 있는 것처럼 응급의료시설과 연계되어 설치, 운영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악동에 ‘주취해소센타’기 설피된다는 것은 매우 뜬금없는 일이며, 경우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님비현상’으로만 간주할 수 없다. 이것은 공리주의 철학도 아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최소 소수의 최소 행복인 셈이다.
설사, 님비현상이라고 우겨대도 서울시와 자치경찰위원회는 보다 투명한 소통으로 진행해야 한다. 주민의 우려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합당하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여 상호 간의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더욱이 주민자치 시대 정책 결정은 주민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것이 기본이다. 지방자치는 한마디로 지역의 일을 지역 주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