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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계시록!(8) : 예수 생명으로 살아 있는 교회!”
+ 본 문 : 요한계시록 3장 1절 - 6절 (신약 402쪽)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아멘!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잘 알면서도, 가능한 한 쉽고 편안한 것을 선택합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전도하기가 매우 힘듭니다. 왜냐하면 요즘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매우 싫어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 이유를 찾아보면 이렇습니다.
당장 편하고, 쉬운 것을 추구하며, 예 아니오를 즉각 대답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나, 어떤 힘든 문제에 직면하면 헤쳐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 된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교회 나오는 것도 좋아하고, 각 부서에 참여해서 교제하며, 성경 공부하는 것도 매우 즐겁습니다.
뜨겁게 찬양을 부르다 보면, 마음속에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기쁨도 얻습니다. 그리고 은혜 받습니다.
그러나 나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가에 대해서 설교하면, 곧 외면하고 듣는 것을 매우 싫어합니다.
우리 영혼이 하나님 앞에 설 때, 얼마나 비참한 존재일까를 두려워하면서 거부해 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가능한 한 쉽고 편안한 것을 택하고,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도전하기보다는 피해 버립니다.
어떤 사람이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았는데, 맹장염이니 수술하라고 합니다.
그 아픈 중에도 못미더웠던지, 그분은 다른 의사에게도 진찰을 받아보겠다며 다른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번 의사는 위암이라고 진단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여인은 의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첫 번째 의사한테 가겠습니다. 그래도 맹장염이 위암보다는 백 번 낫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질병에 대한 의사의 진단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했다면, 그 사람은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맹장염이 위암보다는 낫다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정말 위험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받은 맹장염 진단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겠다는 식 말입니다.
위암인데 맹장염 수술을 받아도 안 되고, 맹장염인데 위암 수술을 받아도 안 되는 것이 우리 몸입니다.
아마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타조 증후군’ 이라는 말, 말입니다.
타조는 갑자기 사자와 같은 맹수를 만나면 피할 수 없으니까,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는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당장 자기 눈에 자기를 위협하는 사자가 안 보이니까, 사자는 없다고 생각해 버린답니다.
이렇게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아무 일 없다는 식의 어리석은 삶의 태도를 타조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지금 어떤 문제나 위기가 분명히 자신 앞에 놓여 있는데, 지금은 안전하다고 믿는 타조 증후군,
정직하게 자기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고 ‘이 정도 살면 그래도 남보다 더 정직하게 사는 것이지.’
하면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만족해 버리는 증후군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앓고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말씀드리려고 하는 오늘 본문의 사데교회가 그랬고, 사데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일곱교회 중, 주님으로부터 오직 책망만 받은 부끄러운 교회와 성도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데라는 도시는 헬라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탈레스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헬라의 유명한 법률가였던 솔론이라는 사람도, 거기 머물며 거주했던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래서 사데라는 도시는 당시에 철학, 법률, 음악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었던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그리고 사데교회가 위치한 사데라는 도시는, 높다란 언덕 위에 펼쳐진 고원 위의 도시였습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데로 들어가는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길, 오직 한 길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데는 군사적으로 볼 때에도, 그 어떤 군대라도 공격하기가 힘든 난공불락의 요새였습니다.
그래서 수천 년 동안 외세의 침범을 받지 않았고, 그래서 절대로 함락당하지 않는다고 큰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주전 6세기경에는 리디아 왕국의 수도이기도 하였던, 이 난공불락의 도성 사데라는 도시도,
역사적으로 두 번이나 침략해 오는 적에게 점령당하는, 부끄러운 역사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에 의해서이고, 또 한 번은 로마의 안티오커스 대제에 의해서입니다.
두 번 다 큰소리치며 방심하는 사이, 적군이 절벽을 기어 올라와 사데성을 점령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주전 17년에는 지진으로 크게 파괴되어, 거의 사라질 위기를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다 폐허가 되었던 도시 사데가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의 도움으로, 다시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당시는, 사데 도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크게 번영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런 의미를 생각하면서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데는 겉으로는 다시 살아나서 번영하는 도시였지만, 영적으로는 점점 죽어가는 도시였습니다.
그 이유는 풍족하였습니다. 한마디로 부족함이 없이 너무도 풍족하게 잘 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도시는 염직업이 크게 발전했는데 그 덕에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는 아주 윤택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부요함 때문에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과 음란에 빠져,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데에 언제 교회가 설립되었는가에 대한 성경 기록은 없지만,
바울이 사데 남쪽 50리 지점에 있는 에베소에서 3년간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사데교회는 외부로부터 박해도 받지 않았고, 이교도나 유대인 회당, 거짓사도나 니골라당도 없었습니다.
사데교회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유명한 교회로 소문이 났으나, 주님이 보시기에는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교회는 물론 우리교회와 성도들도, 사람 보기에는 살아 있는 교회와 성도이지만,
주님이 보시기에 죽은 교회와 성도가 되지 않도록, 우리 자신들을 늘 말씀과 기도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데교회에 나타난 주님의 모습은 1절에 나타납니다. 1절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아멘!
이 말씀에서 주님의 모습을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땅의 수와 하늘의 수를 합친 완전수 7을 의미하는데, 완전하신 성령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일곱별은? 우리가 이미 1장에서 살펴 본대로, 일곱 교회를 이끌어 가는 일곱 사자를 말합니다.
주님이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이유는, 사데 교회가 생명 없는 죽은 교회이기에 성령의 능력이 필요했고,
또 주님이 교회의 지도자를 친히 심판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지신 분임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데 교회는 어떤 책망을 받은 교회였습니까? 1절 말씀을 다시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아멘!
한마디로 사데 교회는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 이름은 살아 있었지만, 실상은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이름이 살아 있다는 말은 잘 알려져 있고, 유명하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데교회와 성도들은 겉모습, 곧 육으로는 살았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영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죽음의 의미를 "내가 네 행위를 안다." 는 말씀을 통해 이해하면 사데교회는 일이 많았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사역이 많은 교회” - 곧 모여서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잘 참석하고,
교육도 열심히 참여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구제와 봉사와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데교회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그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행위가 있었습니다.
오히려 사데교회는 이런 사역들을 잘한 행위와 행동들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들이 인정할 정도로 사역이 활발한 사데교회를, 주님은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 이유를 오늘 본문 2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아멘!
다시 말하면 사데 교회는 자기만족의 잠에 빠져, 항상 깨어 준비하는 신앙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데가 지형적인 조건만 생각하고 자만하다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나 안티오커스 대제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패망했듯이, 사데교회도 겉으로는 움직이는 것 같았지만, 영적으로는 이만하면 됐지,
하면서 영적 자만의 깊은 잠에 빠져,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다.” 고 책망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주님이 보신 사데교회와 성도들의 올바르지 못한 행위가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4절 말씀입니다. 다함께 봉독하겠습니다. /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아멘!
이 말씀은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있긴 있었지만, 대다수가 그 옷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옷을 더럽혔다는 말은, 당시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의 타락한 문화 속에 묻혀 살아가면서,
똑같이 죄를 지으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주님은 옷을 더럽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시 사데라는 도시는 모직공업과 염색업, 그리고 금은세공이 발달되어 경제적으로 잘 사는 도시였고,
아데미 여신이라는 우상을 숭배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인, 악한 우상숭배의 도시이기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탐심과 과소비와 도덕적 문란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영적 어두움이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적 어두운 도시에도 복음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래서 교회가 세워졌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교회가 부흥하는 축복받은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턴가 갑자기 이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타락한 도시에 살던 사데교회 교인들이, 교회에서는 기도하고 성경공부하고 열심히 찬양했지만,
요즘 말로 하면 교회 밖에만 나가면 곧바로 노래방으로 가고, 술집으로 직행하고, 도박장으로 가고,
PC방으로 가고, 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불신자들과 똑같이 타락한 세속문화에 빠져 삽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천사의 모습으로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사역합니다.
이런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주님은 옷을 더럽힌 사람들이라고 크게 책망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사데교회를 크게 책망하신 후에, 2절과 3절에서 회개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에서는 먼저 "너는 일깨어" 라고 하셨고, 이어서 "굳게하게 하라." 고 하셨습니다.
"일깨어" 라는 말씀은 "타락한 세상문화를 경계하라! 기도하지 않는 영적 잠에서 깨라" 는 뜻입니다.
그리고 3절 후반절에서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 결국 이 말씀은 주님 재림 때에 심판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데 교회와 성도들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 사랑하는 것을 망각했습니다.
그들은 교회 와서 예배는 정말로 잘 드렸으나, 세상에서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명색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던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돈과 재물을 앞세워 살아갑니다.
돈 많이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라면, 성도의 양심도 팔고 온갖 거짓과 불의를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이런 사데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크게 책망하십니다. “네가 내 이름을 부르며 예배드리고,
그러면서 신앙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보니 너의 행위가 문제구나. 썩었구나. 죽었구나.
육체적인 쾌락 때문에 믿음을 지키는 것을 포기하고, 전혀 안 믿는 것처럼 감추고 살아가는구나.”
“그러나 이걸 알아라. 네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그것에 대해 관심 없다. 나는 네 마음, 네 생각, 네 사랑에 대해서만 관심 있다.” 아멘입니까?
저는 이 주님의 이 책망을, 우리 해남중앙교회 성도들과 저에게 주신 무서운 책망으로 들었습니다.
살아있다는 것과 죽어있다는 것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살아있는 것은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은 물고기, 생명이 없는 물고기는 아무리 강물에 집어넣어도, 강물에 둥둥 떠내려가고 맙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물고기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박차고 올라갑니다.
그렇습니다. 살아 있는 것은 강하게 저항하며 도전합니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며 변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 풍조와 맞서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믿습니까?
세상의 잘못된 것을 거슬러 올라가려는 몸부림,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때로는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걸 아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살아 몸부림치는 그런 모습을 보시며 너무너무 기뻐하십니다.
이걸 아는 사람들은 세상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쁨을 체험합니다.
주님과 함께 승리하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이루는 기쁨,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회개하고 다시 변화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국에 로페스라고 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두통이 심해서 병원을 찾았습니다.
병원에서는 임신에 따른 두통일 뿐이라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갑자기 호흡곤란을 느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는 도중 뇌혈관이 터져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태어날 때 뇌동맥과 뇌정맥의 비정상적인 동정맥기형으로 태어나, 그것이 뇌출혈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의사들은 치료방법을 총동원했지만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결국 회생불능이라는 최종결론을 내립니다.
그는 그렇게 47일 동안 뇌사상태에 빠져 있었고, 가족들은 그의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임신 중이었던 그 여인의 뱃속에서는, 잉태 된 새로운 생명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뱃속의 아이가 꿈틀댈 때마다, 무의식 중의 그녀가 갑자기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습니다.
뇌사상태에 빠진 그녀가 뱃속의 생명이 움직일 때마다, 의식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무의식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치료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여인은 무의식 상태에서 건강한 쌍둥이를 출산했고, 그로부터 6일 후 놀랍게도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그녀의 수술을 담당했던 신경외과 존 프레지 박사는, 죽을 것이라고 진단한 뇌사 상태의 환자가,
의식을 회복한 경우는 한 번도 본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태아의 생명이 엄마의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이 혹시나 뇌사상태에 빠져 있지는 않으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아직도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꿈틀대는 예수생명으로, 여러분의 신앙 양심을 깨우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깨워야 합니까? 말씀으로 깨워야 합니다. 기도로 깨워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깨워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양심이 깨어 일어나고, 우리 영혼이 살아나야 천국 문에 들어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 는 무서운 주님의 책망을 받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안에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라는 생명으로 충만하십니까?
아니면 때로 예배도 잘 드리고, 기도도 잘 하고, 찬양도 잘 부르고, 나름대로 사역도 열심히 하지만,
“네가 정말 살아 있느냐?” 라고 질문하실 때, 진정으로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망설여지지는 않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깨어 일어나 네 생명의 불을 지펴 보아라.” 이 말씀에 아멘이십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 3절에서 주님은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여기서 “생각하라!” 는 말은, 죄인들인 우리가 복음을 어떻게 받고 들었는지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기억한다면, 말씀중심으로 살아야죠?
주님 주시는 능력으로,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이루어가는, 주님 뜻대로 살아가야죠? 아멘입니까?
사데교회 안에 그래도 그 옷을 더럽히지 않은,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답게 성적인 타락과 음란으로부터, 자신의 거룩함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재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쓰기를 열망하며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교회 안에서의 믿음이, 교회 밖에서도 그대로 지켜지는 삶을 산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이런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죄악으로 죽어 있는 세상 가운데서도, 죽어 있는 교회 가운데서도,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자,
열망을 가지고 도전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자를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세상이 나를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산 믿음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일깨어 굳게 하고 생각하므로 이기는 자에게, 두 가지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첫째는, 흰옷을 입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흰옷은 고난에서 승리한 자들이 입는 하늘 옷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죄 씻음 받은 사람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입는 옷입니다.
그래서 흰옷은 승리와 속죄와 영광을 의미하는 옷입니다. 바로 이 옷을 이기는 자들이 입게 됩니다.
둘째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구원의 확실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을 때에, 예수님께서 "저 성도는 제가 잘 압니다. 그는 믿음이 순결한 성도입니다." 하고,
시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천국의 확실한 보증인이 되어 주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나 세상에서나 동일한 믿음으로 일깨어 굳게 살아가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사람들이 입는 승리와 속죄와 영광의 흰옷을 다 입으시고,
십자가 지신 우리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보장해 주시므로, 하늘 생명책에 저와 여러분 이름이,
확실하게 기록되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 모두에게 복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름만 살아있어, 주님 보시기에 죽은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대교회처럼 죽어가는 우리들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도록 역사해 주시옵소서.
죽은 우리의 신앙양심이 다시 깨어 일어나게 하시고, 살아있는 성도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주님을 닮아가게 하시고, 온전한 신앙으로 주님 앞에 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믿음대로 우리의 생각이, 우리의 언어가, 우리의 행동이 변화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늘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를 통해서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 우리의 민족의 역사가 바뀌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도적같이 오시리라 말씀하셨사오니, 기름과 등불을 켜들고 주님을 맞이하는 신부가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앞에 인정받는 신부로 일어서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살아나도록 축복하옵소서!
날마다 우리에게 성령으로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