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제주교구 신자들이
성시돌 회관과 삼뫼소 은총이 동산을 자주 가면서도
성 이시돌 성인에 대하여 하는 잘 모랐는데 우연히 피정관계로
이시돌 시설을 온라인상으로 기웃거리다 이시돌성인에 대한 글이 있어 퍼왔습니다.
----------------------------------------------------------------------------------------------------------------
성 이시돌은
스페인의 농부로 1110년경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
성인은
가난하고 비천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을 돕기 위해
‘데 바가스’라는 농장에서 일을 하였으나,
신앙심이 굳은 그는 평생을 미사참례와
성체께 대한 흠숭과 사랑으로 일관된 생활을 하였다.
이시돌은 일생동안
가난하고 흠숭과 사랑으로 일관된 생활을 하였다.
이시돌은
일생동안 간난하고 검소하게 생활하였지만,
가난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거나 나그네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농부 이시돌은 땅을 극진히 사랑하였다.
하느님의 영토인 땅을 가꾸고
농사를 짓는 일에 열성을 다하였으며,
또한 그 성품이 지극히 온유하고 자비로워
겨울에는 먹이를 찾지 못해 헤매는 새들을 위해
곡식을 뿌려주기도 해
가축과 새들도 그를 따랐다고 한다.
주일에는 성당에만 갈 뿐,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농장에서 일하는 일꾼들은
주인에게 ‘이시돌은 믿음을 핑계로
농사를 게을리 하는 게이름뱅이’ 라고 고자질을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주인은 화가 나서 밭으로 조사하러 나왔다.
주인이 숨어서 보니 이시돌은 쟁기 하나로 밭을 갈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이시돌은 천사와 함께 밭을 갈아
세사람 몫의 일을 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
이시돌은
나이 60세가 되는 1170년 5월 15일에 주의 부르심을 받아 숨을 거두었는데,
그의 죽은 얼굴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운 광채가 가득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이분은 성인이었구나!’ 하고 부르짖게 할 정도 이었다.
1622년 3월 22일에
그레고리오 15세 교황 성하에 의하여 성인품에오르게 되었으며,
1947년 2월 22일,
성교회는 이시돌 성인을 국제가톨릭 농민 협의회와
모든 농민의 주보로 정하였다.
첫댓글 아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