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발간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서지학자 이동림씨가 집필한 ’월인석보’ 항목을 보면 "1459년(세조5년)에 세조가 세종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을 본문으로 하고 자신이 지은 <<석보상절>>을 설명 부분으로 하여 합편한 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월인석보」에 대한 이런 설명이 가장 일반적이며 일선 중.고교 교육현장에서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들으면 언뜻 「월인석보」가 세종 작품인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세조가 수양대군 시절 석가의 일대기를 읊은 「석보상절」을 적절히 섞어 만든 작품으로 알기 쉽다.
이런 식의 설명이 굳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으나 「월인석보」의 본질을 호도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학계가 전체 25권 정도의 분량으로 추정하고 있는 「월인석보」는 지금까지 발견된 각 권을 보면 첫째 「월인천강지곡」의 특정 부분을 큼지막한 글씨로 먼저 적은 다음 이와 관련되는 「석보상절」 구절을 중간 글자 크기로 배열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월인석보」가 「석보상절」과「월인천강지곡」의 혼합물이라는 설명이 맞다.
하지만 「월인석보」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수많은 불교 경전 내용이 가장작은 글씨로 종횡무진 동원되고 있다.
한성대 문헌정보학과 강순애 교수가 이번에 새롭게 발굴 공개한 권20만 해도 10여종이나 되는 각종 불경이 이용되고 있다.
이 불경들은 모두 주제와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즉 「월인석보」 해당 주제를 설명하고 보충하는 구실을 한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런 불경을 ’협주세문’(狹注細文)이라 일컫고 있다.
따라서 석가모니가 가섭에게 법(法)을 전하는 내용과 석가모니의 부모에 대한효도를 골자로 하는 권20에 동원된 불경 또한 모두 이와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월인석보」가 국어학은 물론이고 불교학, 서지학 사상 불후의 작품으로 꼽히는 까닭은 이런 측면 말고도 협주세문으로 이용된 불경이 모두 한글 번역이돼 있다는 점이다.
「월인석보」가 불경의 한글 번역의 시원을 이루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월인석보」를 한 사람이 연구한다는 것은 그가 불세출의 천재가 아닌한 불가능하다. 우선 국어국문학적 지식과 서지학적 기반이 탄탄해야 하며 나아가불교에 대한 특출한 조예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협주세문으로 동원된 불경이 어느 경전에서 왔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고려대장경」은 물론 그 이후에 나온 다른 불교 경전을 전부 꿰뚫고 있어야 한다.
요컨대 「월인석보」는 조선 왕조판 「고려대장경」이자 국어국문학과 서지학의무궁무진한 보배인 셈이다.
무력으로 왕위를 찬탈한 수양대군 세조가 왜 간경도감이라는 국가 기구까지 만들어 대대적인 불경 번역에 나서게 되었는지, 도대체 이를 통해 무엇을 노렸는지는뚜렷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다만 어떤 식으로든 세조는 「고려대장경」 출판과 같은 초거대 불경 완역 사업을 염두에 두었으며 한글 창제 혹은 보급의 비밀 또한 이런 불경 번역에 있을 것이라는 추정만큼은 강하게 대두되고 있다.
그런데 그 모든 비밀을 푸는 열쇠는 아직까지 전모를 드러내지 않은 「월인석보」가 쥐고 있을 것으로 많은 국어국문학 및 서지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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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석보·석보상절·월인천강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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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05.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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