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식량재앙이 다가오고 있다
녹색평론 87 호에 실린 시민 발전 대표 박승옥 님의
식량 재앙, 에너지 위기, 한국의 농민운동 이란 좋은 글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머리가 먼저 아는 일을 몸과는 무관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몸이 먼저 실천하면 머리가 하는 걱정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흙이 1 cm 만들어지는데 대략 200 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매년 약 240 억톤이 넘는 표토가 유실되고 있다.
시골길을 돌아다니다 보면 포크레인이 산을 부수어 시멘트를 만들지요.
몇사람이 돈을 벌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엄청난 짐을 떠안게 되지요.
화학농업의 근간인 석유는 2007 년에서 2010 년 무렵 생산의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석유가스정점연구회 ( ASPO ) 가 예측하고 있다.
석유정점이 되면 석유와 천연가스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갈 것이고
지금의 값싼 비료와 농자재, 농기계는 더이상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전기가 없던 가난한 시절 호롱불에 불밝히고 날마다 십리길을 걸어다녀도
불편한 줄 모르고 발아픈줄 몰랐던 그런 시절도 있었지요.
우리가 그리움을 찾을 수 있다면 희망도 찾을 수 있겠지요.
사실 현재의 곡물생산량은 지구상의 65 억 인구를 충분히 먹여살리고도 남는다.
굳이 식량과발전연구소 ( 푸드퍼스트 ) 의 주장을 되살리지 않아도 이는 상식이다.
지금 세계 곡물생산량의 40 % 가 가축사료로 소비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곡물생산량의 80 - 90 % 를 가축사료용으로 소비한다.
우리는 선진국의 비만과 다이어트,
제 3 세계의 굶주림과 기아사망이 공존하는 기이한 문명병의 세계에 살고 있다.
이같은 부조리와 불합리는 물론 식량의 불평등한 분배에 그 까닭이 있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배를 불리는
곡물교역량 80 % 점유의 미국계 카길, 아처대니얼스미들랜드와
프랑스계 드레퓌스 ( 12 % ) ,
아르헨티나계 벙기 ( 7% ),
스위스계 앙드레 ( 5 % ) 등 5 대 곡물 메이저들,
몬산토와 같은 유전자조작 종자와 농약생산 다국적 기업들이 있는 한,
그리고 이들을 지원해 소농 중심의 지역 식량 자립을 무너뜨리고 있는 국가가 있는 한
이같은 어처구니없는 불평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현재의 굶주림은 분명히 식량생산의 문제가 아니라 불평등 체제의 문제이고 민주주의의 문제이다.
우리가 생활의 불편함을 괴로워 할때 한끼 식사를 위해 목숨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닐테지요. 우리의 잘못과 책임을 곰곰히 생각해 볼 때 입니다.
지속가능한 식량생산량이란 엄밀하게 말해 ' 현재의 햇빛에너지 ' 로 생산되는 생산량이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으며 석유화학 에너지에 의존하지 않는 옛날식 농법 으로 돌아가야지요.
미국은 농산물 수출로 매년 100 억 달러 이상의 흑자를 내고 있다.
또한 곡물자급률 127 % 로 세계 곡물교역량의 35 % 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100 억 달러 이상의 손해 를 보는 나라들은 헐벗고 굶주릴 수 밖에요.
미국정부는 아직도 농장주들 순소득의 절반 이상을 직접지불금으로 보전해주고 있다.
귀농 6 년 동안 정부에서 한 푼도 못받고 농사지었네요.
수십조 농촌 지원자금 뉴스만 실컷 보면서...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7 % 수준이다.
쌀을 빼면 그나마 5 % 수준
식량자급율로 보니 우리 나라는 사막이거나 황무지이군요.
북한의 식량자급률은 75 % 로 나머지 25 % 를 사올 돈이 없어
수십 수백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비참하게 굶어죽었다.
북한의 비극은 그 흔한 돈이 없었네요.
남한은 아파트 한 채가 10 억이 넘어가는데...
2004 년 말 현재 농민은 341 만명 ( 총인구 4,800 만명의 7.4 % ) , 농가호수는 124 만이다.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기 전인 1960 년
1,460 만명 ( 총인구 2,500 만명의 58 % ) , 233 만 가구에 견주면 근 반세기 만에
얼마나 농업과 농민이 파괴와 쇠락의 길을 걸어왔는지 금방 알 수 있다.
국민총생산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0 년 32 .9 % 에서 겨우 3 . 5% ( 2003 년 ) 로
줄어들었다. 또한 농민인구 가운데 60 세 이상이 1,374,778 명으로 자그마치 40 % 나 된다.
반면에 20 대와 30 대는 각각 8 % , 7 % 로 50 대와 60 대의 절반도 채 안된다.
그 잘난 교육 때문이겠지요.
출세의 유혹에 청춘을 빼앗기며 노동이 고통이 되었지요.
논과 밭의 환경가치는 홍수조절 효과 13 조원, 수자원 함양과 수질정화 효과 4 조원,
대기 정화와 기후순화 효과 5 조원, 토양보전과 오염원 소화 효과 1 조원,
경관 가치 1 조원 등 연간 24 조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농지는 그런 생태기능뿐만 아니라
먹을거리 안전 기능, 고용 유지 기능까지 갖고 있다.
실업자와 도시빈민, 비정규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다름아닌 바로 농업과 농지이다.
그런데 그런 가치있는 농지를, 마지막 남은 농토를 뜯어먹는 흡혈귀들이 다름아닌
참여정부와 공무원과 토지건설 투기자본들인 것이다.
산골에 살고 있는 풀천지의 자산은 참여 정부와 공무원과 토지건설 투기자본들이
건드리지만 않으면 수천억 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너무 아까워 계산에 넣지도 않았지요.
식량재앙에 대한 대책은 너무나 자명하다. 식량자급이다.
너무 간단한 얘기지요. 가족끼리 오손도손 농사지으면 간단 하지요.
한국 농민운동은 우선 자신들부터 화학농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런 근본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말았다.
무얼 위해 외치는 건지 모를 때가 많지요.
시골 마을 회의에서도 찬성과 반대가 헷갈리기만 하지요.
환경을 지키자니 돈이 울고 돈을 지키자니 환경이 울고
결국 홧술이나 마시며 불쌍한 정부 욕이나 하고 말지요.
쌀을 생산하기 위해 들어가는 에너지는 종자에서부터
논밭갈이, 재배, 농약살포, 수확, 가공, 포장, 저장에 이르기까지 엄청나다.
사실상 우리는 밥을 먹을 때 다량의 석유까지 함께 먹고 있는 셈이다.
그래 요즘 독한 쌀이 되어 쌀밥 대신 라면이나 빵을 먹는 모양이지요.
이 순간의 햇빛에너지를 이용한 건강한 농업만이
현대 산업문명의 눈먼 미친 질주를 멈추게 할 수 있다.
땅의 사랑 하나로 충분하지요.
인류는 단 200 년 만에 지구상의 화석연료를 거의 절반 이상 마구 퍼다 써버렸다.
우라늄조차 약 50 년, 채굴하는 데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까지 합해도
100 년이면 영원히 없어져 버린다.
우리나라 에너지 해외 의존율은 97 % 로 그것도 자랑스런 세계 1 위이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무슨수로 용서를 빌려는지요...
2005 년 우리나라 석유도입액은 420 억 달러나 되고, 석유소비량은 1200 억 리터나 된다.
63 빌딩을 320 번 채울 수 있는 양이며 드럼통을 늘어놓으면
서울 - 부산을 648 회 왕복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자랑스런 석유 부자네요...
가족농의 경우 적정 규모는 3,000 평 정도이다.
우리나라 평균 농가 호당 경지 면적은 대략 3,500 평 정도이다.
우리는 이미 소농 가족농을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추어져 있는 셈이다.
가족끼리 오손도손 ...
' 현재의 햇빛농업 ' 에 가장 근접하게 걸맞는 것이 지금 유기농이라는 이름의 무농약 농업이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역사는 정농회의 발족과 함께 근 30 년에 이르렀지만
아직도 생산비중은 0.05 % 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 나라들이 3 % 에서 10 % 인 것에 견주면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고
기계농, 화학농 대국인 미국의 0.1 % 에도 훨씬 못 미친다.
선비의 나라이기 때문일까... 동방 예의지국이기 때문일까... 잘난이들이 너무 많아서 일까...
6 헥타르 규모의 전업농 7 만호를 육성해
100 헥타르가 넘는 외국의 대농장과 경쟁시키겠다는 것은 소도 웃을 넌센스의 정책이다.
빚만 감수할 배짱만 있다면...
오늘날 세계화 경쟁력, 규모의 경쟁력 이데올로기를 밑에서부터 무너뜨리는 의제는
먹을거리의 안전성이다.
대규모 화학농법으로 만든 먹을 거리는 거의 독극물 수준임을 농민운동은 제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농민들로부터 화학농업으로부터 ' 현재의 햇빛 농업 ' 으로
과감한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는 공장폐수와 생활하수 등으로 강물과 지하수를 오염시켜 놓고는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마시고,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매연을 뿜어대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공기청정기를 틀어놓는,
참으로 이상한 정신병자의 생활을 아무렇지도 않게 영위하고 있다.
농민운동은 이같은 이상한 생활에 대한 문제제기부터 시작해야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부터 그러한 생활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난을 선택하고 즐거운 불편속에 행복할수 있다면... 건강한 삶을 위하여...
농민운동은 저항과 방어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은 개척되지 못한다.
가족이 함께모여 대가족의 부활로 잃어버린 농촌 문화를 되살리는 일은
헛된꿈에서 깨어 행복의 세상을 되찾는 일이지요...
미약한 실천일지라도 나부터 시작하는 실천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이끌어내는 나비의 날개짓이다.
문제속에서 나와 나부터 옳바른 삶을위해 노력할때
날마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위한 희망이 됩니다...
첫댓글 어쩔수 현실앞에서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희망은 밭에 있는데 사람들은 도시에서 문제들을 끌어안고 꿈만 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