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으아리 김순선 시인의 처녀시집 ‘위태로운 잠’이 나왔다. 59편의 시를 4부로 나누어 편집했고 배한봉 시인이 ‘풀씨 하나의 꿈이 꽃 피운 서정’ 이라는 해설을 곁들였다. 제주시에서 태어났으며 2005년 방송대학교를 졸업했으며 2006년 ‘제주작가’신인상으로 등단해 현재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 박주가리 ♧ 시인의 말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어정쩡한 모습으로 걸어온 길 작고 보잘 것 없는 들꽃에 시선 오래 머물던 길이었다. 역시 그 길을 조용히 걸어갈 뿐이다. * 흰명자꽃 ♧ 비를 맞은 명자꽃 홍옥 같은 명자나무 꽃망울 시방, 누가 뭐라고 한마디만 해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다 그렁그렁 낯을 가리는 아이다 햇살이 가지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뚝, 울음을 그친 아이 빗방울 속에 무지개를 그린다
* 매화꽃 아직, 겨울옷을 입고 있는 병솔나무 옆에서 코끝을 간질이는 사람
서투른 가지치기로 선머슴같이 서서 투박한 손으로 팝콘을 나누어 주고 있다 겨울잠이 덜 깬 나목에게 사랑을 고백하듯 경건하게 마주 서서 촛불을 켜듯 사랑이 벙그레 * 어성초(약모밀) ♧ 어성초 이야기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뭍에서 사는 사람이 어느 날 바다를 그리워하다 마디마디를 곧추세워 바다를 품었다 하얀 꽃 턱잎 바다 속을 유영하듯 지느러미처럼 움직인다 응달진 습지에서 그냥, 땅속으로 줄기를 뻗다가도 그리움은 꽃차례에 노란 알을 슬기도 하고 비릿한 생선 냄새를 풍기며 오징어 떼 무리지어 유영하는 잎새에서 바람이 몰고 온 파도에 몸을 맡긴다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뭍에서 사는 사람이 어느 날 바다를 그리워하다 상상 임신을 하듯 바다를 덥썩 품어버렸다 * 개상사화 ♧ 상사화 벌건 대낮에 알몸으로 마음에 담아 두지도 못해 하늘 향해 외길 걸어간다 한평생 팔자거니 직선을 긋다가도 스스럼없이 보내버린 당신 때문에 무너질 것 같은 자존심 붉은 입술을 뒤로 말아 올리다 기린 같은 꽃대에 도도하게 속눈썹을 치켜세운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지만 우린 언제나 어긋나기만 하여 함께 걸어갈 수 없는 * 분단나무 ♧ 분단나무 태어날 손자 이름을 생각하다가 산책로에서 분단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원죄로 다가오는 팻말 앞에서 주홍 글씨 같은 아픔이 전이 된다 졸졸 뒤를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것 대롱대롱 매달린 입술을 훔쳐보다 마른하늘에 청천벽력 같은 천둥소리 들었다 궐기하듯 잎이 펴지던 날 곱게 주름진 잎맥 부챗살을 펴며 바람을 몰고 와 너를 만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 가까이 할수록 태양은 뜨거워지고 너의 심장에 예리한 날을 세워 잎맥에 주름이 깊어지는 것 같다 행여, 오늘은 목비 내려 소통의 길을 열어다오 단절된 너와 나의 막힌 혈을 뚫고 싶다 * 엉겅퀴 ♧ 엉겅퀴 꽃 수풀 한 가운데 엉겅퀴 ?은 태양을 향해 피뢰침을 세운다 태양의 기를 모아 제 몸에 불을 붙이며 황홀한 자줏빛 자태로 사랑을 뿜어낸다 숨은 듯 수풀에 가려 요염한 웃음 흘리다가도 다가서면 강렬한 눈매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비수를 빼든다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고 가시 돋친 말을 한다 아무리 강한 척 눈을 흘겨도 마음은 한없이 부드러운 사람 보드라운 자줏빛 꽃잎에 호랑나비 한 마리가 떠날 줄 모른다 * 꿀풀꽃 ♧ 꿀풀 낮은 언덕 비탈 끝에 개망초와 들풀에 가려 있는 듯 없는 듯 낮은 자세로 수다쟁이들 틈에서 수상꽃차례 안테나를 세우고 경청하고 있는 사람 먼저 나서서 시선은 끌지 못해도 자줏빛 꽃잎을 나폴거리며 맞장구 칠 줄 안다 항상 말을 아끼듯 경청하는 사람 주위를 살피지 않으면 눈길 한 번 못주고 만다
* 광대나물 |
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
첫댓글 꽃과 시가 참 잘 어울립니다